Roll over Beethoven2008. 3. 19. 01:40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읽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낯설게 하기 - 황수정}
배우 황수정이 출연하는 걸 모르고 봤다면 어땠을까. 아니, 영화 홍보매체를 통해서 그녀의 출연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들 영화 등장인물의 역할까지 파악하고 보지 않는 이상 --- 어쩌면 그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서 영화를 봐야 한다는 건 불쌍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 홍상수감독이 파놓은 함정(?)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되어있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이제는 낯설어진 황수정이란 배우에게 홍상수 감독이 장치해놓은 '낯설게 하기'에 속아 관객들은 제대로 계산된 재미를 느끼게 된다.

프랑스로 도피중인 김성남(김영호 분)이 밤에만 전화를 통해 그리워하는 아내, 낮에 그리워할 사람이 생기기 전까지 외로움과 정욕을 참기 어려워하는 남편을 위해 자위를 해주는 아내의 목소리, 바로 그 주인공이 황수정이란 것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에 난 무릎을 쳤다. 황수정이 출연하는 걸 어딘가에서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영화에 몰입하면서 그녀의 등장을 기대하고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설사 기대하고 있었더라도 주인공 김성남이 길모퉁이를 돌다가 마주치게 될 등장인물일 것을 기대하지 전화 목소리의 주인공일 꺼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론 배역의 특성상 처음엔 전화로 등장했다가 나중에 실체를 드러낼 수 밖에 없지만, 그런 배역에 우리들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어진 배우를 썼다는 건 그런 배역의 특성에 대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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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하기 - 꿈} 또 하나 감독이 성공한 '낯설게 하기' 중에 감탄을 자아냈던 것은 다름 아닌 '꿈'이었는데, 내가 본 영화의 그 어떤 꿈에 대한 표현보다 훌륭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레이션이 들어간 1인칭 시점이기 때문에 모든 씬에는 주인공 김성남이 들어가있다. 영화를 보면서 어느순간부터 그걸 의식하게 됐는데, 갑짜기 어떤 시점에서부터는 그의 시점이 빠진 씬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그 씬부터는 배경과 등장인물의 역할이 갑짜기 바뀌어 또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의아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안 것은 김성남이 꿈에서 깨는 순간이었다.

홍상수 감독은 정말 꿈 같은 꿈을 그렸다. 우리네 꿈이 언제나 황당무게하듯 관객들로 하여금 황당함을 점점 고조시키게 하다가 극에 달한 순간에 돼지를 끼워넣어 꿈에서 깨도록 한다. 아마 그순간에 관객들이 "저게 뭐야" 했던 것처럼 꿈을 꾼 김성남 역시 "저 돼지는 뭐야" 하면서 꿈에서 깼을 것이다.

게다가 그 꿈의 내용이란 게 무작정 황당함만을 지향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영화를 한 번만 봐서 약간은 불확실하지만, 홍상수 감독은 낮의 연인 유정(박은혜 분)이 배낀 그림의 원작자로써 김성남과 잠깐의 만남을 갖게 했던 여배우를 김성남의 아내로 재배치하여 출연시킨 것 같다. 만약 내가 본 배역이 맞다면 홍상수 감독이 김성남이 꾸도록 한 꿈은, 그가 왜 그런 내용의 꿈을 꿨는가를 생각해봤을 때,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전이'와 '치환'등으로 어떤 얼개를 풀어낼 수 있다. 다만 그 내용은 개인적인 해석일 뿐 정신분석학 따위는 그 얼개를 통해 재미를 느끼는 정도의 의미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실제로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그 어떤 상징성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혹은 어떤 의미부여를 하고 싶어 애쓰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런 작용들이 그다지 영화를 재밌게 만드는에 필요한 것 같진 않기 때문에 더더욱 나의 해석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