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2008. 4. 30.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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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와 어머니


어머닌 탈리를 무척 좋아하신다. 거의 아기를 대하듯 이뻐하시는데 얼마전 내 집에 오셨을 때도 아주 얼싸안으신 채 털을 빗기시며 시간을 보내시더라. 팔다리 쭉 뻗고 어머니의 빗질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탈리를 내려다 보시며 어머니께서 문득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 이녀석 죽으면 어쩔꺼야?
글쎄요. 저도 걱정이긴 해요. 쓰레기봉지에 넣어서 밖에 내놓기도 그렇고, 수의사 친구가 동물병원에 처리를 의뢰하면 된다고 하긴 하던데 그래봐야 갖다 버리기밖에 더하겠어요.

그런데 어머닌 그걸 물으신 게 아니었다. 탈리가 죽는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셨던 거다. 당신은 그렇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엄마가 국민학교 다닐 때 엄마를 너무 잘 따르던 개가 있었는데, 얼마나 이쁘고 똑똑한지 엄마가 학교 끝나고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만 와도 알아차리고 뛰어나와서 깡총대고 반가워하고 그랬거든. 엄마가 엄청 이뻐했었는데 하루는 글쎄 쥐약을 먹은 거야.

정말로 외할머니 댁엔 명절이 되어 갈 때마다 개가 바뀌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외할머니로부터 쥐약 먹고 죽었다는 끔찍한 대답을 여러번 들었었다. 그게 나 어릴적 기억이면서도 어머니의 어린 시절 기억이기도 했나본데, 더 듣고 보니 어머니의 기억은 내 것보다 더 악랄했었다.

그날도 학교 끝나고 집에 들어섰는데 이녀석이 쥐약을 먹고 눈이 시뻘겋게 되서 꽥꽥 게워내며 괴로워 하는 거야. 그러면서도 엄마가 집에 돌아오니까 반갑기는 한데 괴로워서 어떻게 할 수가 없는지 버둥거리기만 하는 거 있지. 무섭고 겁나기도 했지만 너무 안쓰럽고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서 엄마도 그냥 죽어가는 그녀석 부둥껴 안고서 엄청 울었지. 그때 그 기억이 아직까지도 가끔 생각이 나.

어릴적 외할머니 댁의 쥐약 먹은 개들의 죽음이 나에게 그랬드시, 언제가 될지 모를 탈리의 죽음은 다행히 어머니에게는 그저 '부제'가 될 뿐일 꺼다. 어쩌면 나에게도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거나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맞이하게 되는, 탈리의 죽음의 그 순간은 내게 그저 '발견'에 지나지 않게 될지 모른다. 어딘가 숨어서 안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가, 시간이 좀 지나서 죽음이란 게 고장난 장난감 같은 거라고 알게 되는 그런 모습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상상해본다.

말씀을 마치신 어머니께서 고양이가 몇 년이나 사냐고 여쭤보신다. 탈리가 앞으로 짧으면 5년, 길면 10년은 더 살꺼라고 알려드렸다. 대답을 들으신 어머니께서는 속으로 무언가 다시 따져보시는 것 같았는데, 그모습을 본 나는 어떤 악랄한 상상 탓에 갑짜기 쓸쓸함이 밀려들었다. 어머니...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