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번역 소설을 즐기지 않는 이유는 문체나 문장에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감정이나 상황 비유 같은 걸 언어적, 문화적인 차이로 느낄 수 없거나 번역되는 과정에서 감지하기 어렵게 되버리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소설가 박상우 선생님께서 이런 저의 생각을 듣고서 "독서법이 잘 못 되었다." 라고 일축해버리신 적이 있는데, 그일이 신경 씌어서 작품을 대할 때 너무 협소한 관점을 갖고 있잖나 하는 생각에 가끔씩 억지를 써서라도 번역서를 읽곤 하죠. 사실 번역서 중에도 읽고 싶은 책이 많은데 쉽게 손이 가진 않거든요.
그래서 약간 꺼려지면서도, 그런 이유로 읽기 시작하게 된 책이 중국계 미국작가 하진(Ha Jin;진쉐페이)의 기다림(Waiting)입니다. 역시 500페이지에 가까운 장편을 읽는 내내 저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약간의 인내력을 갖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 전개가 마치 영화의 진행을 보는 것 같아서 잘 읽히는 편이었죠. 반면 장면묘사들이 세밀한 편이고 전개가 느리기 때문에 약간 지루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이소설은 (중국계) 미국인 작가가 영어로 쓴 소설이지만 중국의 문화혁명시대의 지식층과 여성에 대해 세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조금 지루하게 전개되는 데 대해 아이러니컬한 결말부에서 약간의 보상이 있기도 합니다만, 너무나 직설적으로 상황을 정리하면서 독자의 생각까지 정리해주는 듯한 결말부가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읽은 작품에 대한 생각이란 걸 제가 느낀 거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긴 합니다만, 정리해서 적자면 이런 겁니다.
"A 보다 B 를 더 사랑할 수는 있지만, 과연 B 는 내가 사랑했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랑에 대한 진심을 알 수 없다면 나를 안정시켜주는 가정이 더 소중한 것 아닐까."
저도 옛날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A 보다 B 를 더 사랑하게 될 수는 있지만 언젠가 B 보다 더 사랑하는 C 를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내가 A 를 떠나서 B 를 사랑하는 건 어쩌면 앞으로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될 C 에 대한 기다림을 선택하는 일인 건지도 모르죠. 이 소설은 그 부질없는 "기다림"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만나게 해준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