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발렌타인 데이 입니다. 그리고 어제, MBC 의 W 라는 프로그램에서
달콤한 초콜릿에 숨겨진진 핏빛 카카오의 비극 이란 꼭지를 보았죠.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농장에서 초콜릿을 먹어본 적도 없는 노동자들이 재배한 피땀어린 카카오 열매에 대한 이야기었죠. 우리가 초콜릿의 달콤함만을 떠올리는 발렌타인데이에 앞서 이런 내용을 방송하며 또다른 세계 속에서는 초콜릿에 달콤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보도하는 시기적 기획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꼭지의 방송맨트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마디가 있었는데, 바로 "초콜릿의 달콤 쌉싸름함" 이란 말이죠.
"달콤 쌉싸름한 초컬릿" 이란 말은 방송의 내용을 함축하는 말이면서도 사실은 우리가 "달콤 쌉싸름한 초컬릿"으로 알고 있는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또는 그 소설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말일 겁니다. W 의 작가는 그 소설의 제목에서 맨트를 빌어오면서 그 짧은 맨트 안에 상당히 깊은 의미를 새겨넣은 거죠, 은근하게. 정말 박수쳐주고 싶습니다.
이 소설의 원제목은 '초콜릿을 끓이는 물처럼Como agua para chocolate' 입니다. 우리에겐 잘 와닿지 않는 말인데, 초콜릿을 끓인다는 말이 낯설기도 하고 그런 표현이 갖는 정서적 배경도 우리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런 이유로 번한 제목이 엉뚱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 된 것 같습니다. 소설의 내용을 보나 초콜릿의 달콤함 이면에 숨겨진 코트디부아르 노동자들의 애환을 떠올리면, 번한된 제목은 상당히 잘 된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처음 제가 이 소설을 접했을 때는 번한 제목에 잘못이 있을 꺼라는 의심을 했었죠. '초콜릿을 끓이는 물처럼' 이란 말이 소설 속에서 주제를 드러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런 중요한 말에 묻어있는 어떤 정서적인 공감대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란 제목으로 번한되면서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부분에 대한 의문 때문에 혹시 번한된 소설에 오역이 있잖을까 싶어 스페인어로 된 소설책을 사서 비교까지 했습니다만 오역은 없었습니다. 결국 그런 의문에 대해 제가 내린 결론을 말하자면 번한된 제목은 소설 내용의 열쇠가 되는 정서에 대한 생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보충설명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번한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컬릿' 과 스페인 원서 'Como Agua Para Chocolate'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사탕과자 초콜릿 보다 먼저 쪼꼴라떼 라는 음료가 중남미의 아즈텍 문명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전편인
Chocolate (1) 에서 다뤘던 내용인데, 그 내용을 요약, 보충하면서 chocolate 란 말에서 비롯된 오해를 없앨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초콜릿'이란 말은 영어의 'chocolate' 에서 왔지만 영어의 'chocolate' 은 스페인어의 철자가 같은 말 'chocolate'(쪼꼴라떼) 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어의 '쪼꼴라떼' 또한 스페인이 아닌 멕시코 중부 나홧 지방의 언어 'Xocolatl'(소콜랏) 에서 만들어진 말이고, 소콜랏은 Xocolli + Atl 의 합성어로 각각의 단어는 나홧어에서 '쓴 맛'과 '물'을 의미하므로 결국 쪼꼴라떼의 오리지널 의미는 '쓴 맛의 물' 입니다. 소콜랏은 쓰기만한 게 아니라 매운 맛도 나는 음료였다니 절대 소콜랏이 달콤할 꺼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겠죠. 물론 근원을 생각했을 때 아즈텍 문명 사람들이 마시던 음료가 그렇다는 거고 멕시코 사람들의 쪼꼴라떼는 달콤한 것이 맞습니다. 단지 쪼꼴라떼가 물에 타마시는 음료라는 이야길 하고 싶은 거고, 지금도 멕시코에선 물에 타마시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우린 여러가지 오해를 가지고 있죠. 그 첫번째로 영국의 산업혁명과 함께 발달한 가공법으로 만들어진 사탕과자 chocolate 이 영어식 독법인 '초콜릿'과 함께 받아들여져 '초콜릿은 사탕과자다' 라는 오해가 있습니다. 그다음은 스페인어로 읽었을 때의 chocolate 에서 '-late'(라떼) 가 이테리어의 우유(latte라떼)일 거라는 언어적 착각을 불러일으켜 쪼꼴라떼를 '초콜릿 우유음료' 라고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겁니다. (정확히 하자면 이테리어로 '초콜릿우유' 는 'latte al cioccolato', 스페인어로는 'chocolate con leche', 영어로는 'chocolate milk' 입니다.) 기실 스페인에서 쪼꼴라떼는 '우유 음료' 가 맞지만, 그건 멕시코를 식민지로 했던 스페인이 멕시코의 Xocolatl 을 자기들 나라로 가져가면서 우유음료로 만들었던 것이므로 이또한 스페인문화를 중심으로 한 '쪼꼴라떼는 우유 음료다' 라는 오해를 만듭니다. 더욱이 멕시코에서 우유를 마신 역사가 스페인의 식민통치 이후라는 걸 생각했을 때 멕시코의 쪼꼴라떼는 물에 타마시는 음료가 맞습니다.
다시 소설의 제목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제 우린 앞서 제가 잘 못 적었던 '초코릿을 끓이는 물처럼' 을 일단 '쪼꼴라떼를 끓이는 물처럼' 으로 고쳐쓰자는 데 이견이 없어야 하고, 또 그 제목이 우유음료 쪼꼴라떼가 아닌 '쓴 맛의 물' 인 '소콜랏' 또는 물에 타마시는 멕시코의 쪼꼴라떼에서 정서적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는 걸 생각할 수 있어야겠죠. 그러고나면 '쪼꼴라떼를 끓이는 물처럼' 이란 제목의 정서적 배경에 훨씬 더 가까워지게 됩니다.
멕시코의 쪼꼴라떼 음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카카오 열매에서 가공된 카카오 고형이 필요합니다. 참고로 카카오는 카카오 고형과 카카오 버터로 가공되는데, 산업혁명 이전에 카카오 버터를 굳혀서 사탕과자로 만드는 기술이 발달해있질 못했죠. 그리고 그 카카오 고형은 우리가 흔히 마시는 '마일로'나 '네스퀵'처럼 그냥 적당히 뜨거운 물에 타마실 수 있는 게 아니라 팔팔 끓는 물이어야지만 녹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쪼꼴라떼를 끓이는 물' 은 적당히 뜨거운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극한의 상태를 이르는 의미인 거죠.
'Como agua para chocolate' 는 에스끼벨이 소설을 위해 만들어낸 말이 아닙니다. 본디 스페인어의 관용어구로써 열정이나 성적 흥분 상태와 같은 달콤함을 의미하면서도 극한의 끓어오르는 광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용어구는 앞서 길게 설명했드시 스페인어의 정서라기보다 소콜라 음료를 마시던 멕시코의 고유정서를 바탕으로 생겨난 말이겠죠. 에스끼벨은 바로 그러한 정서를 빌려온 겁니다. 그리고 이런 정서를 이해하면서 언어적 지역적 배경을 파고 들었지만 이해하고나면 지역이나 언어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단 걸 알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의 단 맛과 쓴 맛을 경험해봤기 때문이죠. 그러고보니 영어에도 비슷하게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는 이율배반적 의미로 bittersweet 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유의 말로는 어떤 게 적당할까요? 혹시 맛도 있지만 뜨거워서 고통스럽기도 한 '뜨거운 감자'? 그럼 번한 제목을 '뜨거운 감자' 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역시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