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 Little White Book2008. 7. 25. 11:30

1968년 4월이 시작되자마자 마틴 루터 킹이 살해당합니다. 그의 죽음으로 흑인 인권운동에서의 유일한 '비폭력'이 사라졌다는 걸 기념이라도 하듯 미국 전역은 흑인들의 광폭에 휩싸이게 되죠. 그러던 중 오클랜드에서는 블랙팬더당이 흑인 청년들의 폭동을 제지하고 있었고, 법규를 준수하며 냉정히 행동할 것을 충고하는 블랙팬더당 당원들은 흑인 청년들에게 우상시 되어가고 있을 정도였답니다.

하지만 경찰들의 폭동 진압 목적은 질서유지와 법준수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거죠. 조작으로 의심되는 경찰의 부상이 있었고 그로인해 18번가에 두 블럭이 차단되고 그곳에 숨어있다고 보고된 블랙팬더당 몇명을 잡기 위해 오클랜드의 경찰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의 군부대까지 출동하여 그곳에 수천발의 총알을 퍼부었습니다.

머리 위로 날아드는 총알을 피해 건물 지하에 납짝하게 엎드려있던 블랙팬더당의 정보장관 엘드리지 클리버(Eldridge Cleaver)와 17세의 바비 허튼(Bobby Hutton)은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경찰과 군 병력 한가운데로 걸어나가야만 했습니다. 클리버는 이미 최루탄을 직격으로 맞아 몸에 불이 붙었다가 끈 상태로 발에는 파편이 밖혀 걷기조차 힘든 상태였답니다.


이런 판단은 오랜 수감 생활 경험과 지속적으로 경찰을 관찰한 결과 나온 것이다. 그 결론은 이렇다. 모든 경찰은 동성애적이다. 동성애자는 벌거벗은 남성의 육체와 마주쳤을 때 몹시 놀라면서도 기본적으로 그 육체를 애무하고자 하는 충동을 일으킨다. 오클랜드 경찰은 나에게 총격을 가하는 대신 내 벌거벗은 몸뚱어리를 차고 짓밟았다. 그런 환경에서 발로 차고 짓밟는 행위는 총격을 가하는 행위와 대조해 보았을 때 하나의 애무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극도로 흥분한 경찰 50여 명이 총을 들고 내 주위에 서 있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제정신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죽었을 것이다.
(엘드리지 클리버의 "Soul on ice" 중에서)

엘드리지 클리버는 "Soul on Ice" 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함께 있던 허튼에게 기대어서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고, 무장하지 않고 있다는 걸 경찰에게 보여주기 위해 허튼에게 알몸으로 나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경험이 없었던 어린 허튼에겐 죽음의 공포 말고도 수치심이 남아있었고 그걸 옷으로 가려야만 했죠. 그래서 허튼은 사살되었고 클리버는 짓밟혔습니다. 당시 상황 속에서 죽임을 당한 것에 비했을 때 짓밟힌 것을 '애무'에 비유한 것, 그리고 경찰들이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자신이 살았다고 말하는 것이 그의 분노를 극명하게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책의 반어적인 제목만큼이나 말이죠.

그리고 그 다음 대목에서는 우리의 현 상황과 맞물려 공감대를 형성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경찰의 야만적 행위에 분노하면서 흑인은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경찰은 단지 결정권자들의 정책 수행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말이다. 경찰의 야만적 행위는 테러와 억압이라는 결정체의 한 면일 뿐이다. 경찰의 야만적 행위 이면에는 사회적 야만과 경제적 야만, 그리고 정치적 야만이 존재한다. 흑인의 시각에서는 이것이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엘드리지 클리버의 "Soul on ice"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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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야만'은 인종차별을 의미하는 것일 테고, 경제적 야만은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흑인들의 고통을 뜻하는 걸 겁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조장하는 '정치적 야만'에 의해 '경찰의 야만적 행위'를 당해야만 하는 흑인들에게 결국 그들이 사회 속에서 격고 있는 모든 것들이 '야만적 행위'들일 수밖에 없다는 클리버의 호소......


현재 우리가 총격을 받는 상황은 아니기에 ---과거에는 있었죠--- 저런 극단적 호소에 빗대어 말하기에 무리가 있지만, 정치/경제/사회적 야만이 경찰의 야만적 폭력으로 결정지어지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