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책들은 고급스럽고 참 이쁘기도 하다. 그래봐야 책 표지에 또다른 표지를 덧댄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전과 다르게 표지가 이뻐야 팔리는 건지 눈길을 끄는 화사함으로 포장하고 가로 또는 세로의 벨트 형태의 종이를 그위에 둘러 문학상 수상작이라던가 책의 중요 문구를 강조하곤 한다.
김영하의 새 책 빛의 제국에도 세로로 벨트가 둘러져있다. "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는 폴 발레리의 시구의 인용이 적혀있어 --- 책 안에서는 전혀 그런 의도로 인용된 것 같진 않지만 --- 마치 책이 서점에서 항상 베스트셀러가 되는, 그래서 소설을 안읽게 만드는 성공비결 서적인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읽는데 거추장 스러운 세로 벨트를 푸르고 역시 불편한 겉 표지를 벗겨내고 나니 책이 꼭 복사해서 제본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400페이지 분량의 장편이어서 그런지 종이도 얇고 가벼운 걸 써서 더더욱 제본한 느낌이 들었는데, 속 표지에(책의 진짜 표지를 이런 식으로 불러야 하다니, 어떤 의미에서 내용보다 포장이 두꺼워질 날도 멀잖았다) 인쇄된 그림 역시 그런 느낌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책 제목의 발상을 알게 하고 왜 이런 이미지를 차용했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 속 표지에 인쇄되어있다. 그런데 그림을 알아봤다 해도 앞서 말한 것처럼 제본한 책을 달력종이를 싼 것 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다.
김영하는 장편에 대한 어떤 관념에 사로잡힌 것 같다. 그의 인터뷰 등을 통해 그가 말하고 있는, 시간을 이겨내는 문장을 통한 통시(通時)성이나 번역되어 읽혀도 손색이 없는 어떤 탈 국지(局地)성, 그리고 옳은 말이지만 잘 못 받아들인 단편과 장편에 대한 작품관과 장편 작가로의 이동 동기 등에 대한 생각이 고스란히 소설에 변질된 강박관념으로 녹아들어있다. 그런 표시들의 나열을 정말 지루하고 짜증스럽게 읽어내다보니 마지막 장면에서 르네 마그리트를 만나고 소설이 끝나게 되더라.
근래 '부자되기'나 '성공하기'를 다루는 책을 빼면 팔리기나 할까 싶지만, 그런 중에도 김영하만큼 성공한 작가가 또 있을까 싶을만큼 그는 책 자체로도 유명해졌지만 여러 편의 영화에 원작을 제공하면서 '성공하여 부자된' 작가다. 다행히 그간 그의 작품들을 모두 좋아해왔기 때문에 한 번도 이런 생각을 갖지 않았지만, 빛의 제국을 읽고 나니 김영하도 문단의 또다른 권력 아이콘이 되어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가 모두 아는 그가 정치적 권력 아이콘이 됐드시 김영하는 경제적 권력 아이콘쯤 되지 않을까? 어쨌든 소재 하나만큼은 여전히 기발하니 아마 조금 있으면 이책도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her Little White Book2006. 10. 25. 1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