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말기, 근대화되어가던 사회 속에서의 과도기적 시대상을 3대에 걸처 표현한 소설이 염상섭의 '삼대' 였다면, 여기 이번엔 남북분단의 전후 세대에 걸친 또다른 삼대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최인훈의 '광장', 그리고 박상연의 DMZ 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광장부터 시작하자. 이 소설은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기실 잘 모르고 있다. 대입시험을 위해 짜여진 교과과정을 소화했던 사람이라면 본인이 소설 '광장'을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기 쉽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보자. 수학능력시험 지문에 나오는 이 소설의 결말 말고는 그 내용에 대해 아는 게 무엇인지. 시간이 오래 지나서 잘 기억나지 않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모르고 있었으면서 낯익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우릴 만들어낸 교육이란 게 그랬는 걸 어쩌겠나.
2001년 문학과지성사에서, 2000년으로 출간 40주년이 된 '광장'의 2000부 한정 양장본을 펴냈을 때 위와같은 생각을 했었다. 일단 나부터가 광장의 결말 말고는 줄거리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생각을 계기로 '광장'이 세상에 나온지 40년만에 처음으로 그 소설을 접하게 됐다. 뒤에서 이야기될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보다 늦게, 그리고 그 영화의 원작소설인 DMZ를 만나게 된 것과 비슷한 시기에 말이다.
DMZ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의 원작소설이다. 2000년 개봉 당시의 남북상황과 함께 엄청난 관심을 불러모았던 영화지만 그 영화의 원작이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더욱이 그 DMZ 마저도 바탕을 이룬 소설이 있으며 그 밑바탕이 바로 '광장' 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야기를 여기서 하고 싶은 거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35세였던 젊은 작가의 시선의 폭으로 씌어졌다고 믿기 어려운, 그리고 너무도 잘 읽히는 문체와 흥미로운 이야기를 갖고 있는, 박상연의 유일한 작품인 DMZ는 분명 최인훈의 '광장'을 바탕으로 염상섭의 '삼대' 의 구도를 의식하고 씌어졌다. 8.15 해방 직후부터 6.25 한국전쟁까지의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는 것이 '광장' 이라면, DMZ 는 한국전쟁 이후 휴전상태의 남북한의 이야기로 그 뒤를 이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두 소설이 서로 연결되는 3대의 구도란 이렇다.
'광장'에서 포로가 된 이명준은 제3국을 선택한 후 인도로 향하는 배에서 바다에 몸을 버린다.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두 소설이 혈연관계로써는 이어질 수 없는 게 아니냐고 따져물을 수도 있겠고, 확실히 DMZ 의 베르사미는 이명준의 숨겨둔 자식도 아니다. 더욱이 베르사미의 아버지는 제3국으로써 인도가 아닌 브라질로 갔으며 여전히 생존해있다.
하지만 DMZ 는 그 3대를 혈연으로 묶지 않고서 더 큰 시각으로 연결해냈다는 것이 매력이다. DMZ 의 서두에는 제3국행 인민군 포로가 76명이었는데, 그중 인도로 갔다가 자취를 감춘 이연우란 사람이 베르사미의 아버지로 오해받는 상황이 나온다. 설사 그 이연우가 베르사미의 아버지가 아닐지라도 '광장'의 이명준과 한 배를 타고 인도로 향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게다가 이념적 갈등과 분단상황이 낳은 자식이 제3국으로 향하던 이명준이라면, 같은 배 안에서 제3국을 향하던 사람들 중 그누가 이명준이 아닐 수 있을까. 설사 베르사미가 인도에서 사라진 이연우의 자식은 아닐지라도, 분단상황이 만든 또다른 희생자의 아들 베르사미를 삼대째라고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앞선 두 세대에 대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깔고서, 그런 삼대째의 제3자이면서도 제3자일 수 없는 미묘한 타자의 시선으로 다시금 분단상황을 조명한 소설이 바로 DMZ인 것이다.
광장부터 시작하자. 이 소설은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기실 잘 모르고 있다. 대입시험을 위해 짜여진 교과과정을 소화했던 사람이라면 본인이 소설 '광장'을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기 쉽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보자. 수학능력시험 지문에 나오는 이 소설의 결말 말고는 그 내용에 대해 아는 게 무엇인지. 시간이 오래 지나서 잘 기억나지 않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모르고 있었으면서 낯익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우릴 만들어낸 교육이란 게 그랬는 걸 어쩌겠나.
No.1093/2000
DMZ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의 원작소설이다. 2000년 개봉 당시의 남북상황과 함께 엄청난 관심을 불러모았던 영화지만 그 영화의 원작이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더욱이 그 DMZ 마저도 바탕을 이룬 소설이 있으며 그 밑바탕이 바로 '광장' 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야기를 여기서 하고 싶은 거다.
- 一代 : 해방 후 이념의 문제로 자식을 버리고 월북한 아버지 이형도.
- 二代 : 월북한 아버지와의 갈등과, 남북의 이념 모두에 대한 모순적 갈등 속에서 6.25 전쟁을 격고 제3국행을 선택하는 이명준.
- 三代 : 남북전쟁 이후 제3국 브라질로 간 아버지에 대한 갈등을 안고서, 남북 대립상황이 나은 또다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중립국감독위 유엔군 자격으로 판문점에 파견된 베르사미.
하지만 DMZ 는 그 3대를 혈연으로 묶지 않고서 더 큰 시각으로 연결해냈다는 것이 매력이다. DMZ 의 서두에는 제3국행 인민군 포로가 76명이었는데, 그중 인도로 갔다가 자취를 감춘 이연우란 사람이 베르사미의 아버지로 오해받는 상황이 나온다. 설사 그 이연우가 베르사미의 아버지가 아닐지라도 '광장'의 이명준과 한 배를 타고 인도로 향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게다가 이념적 갈등과 분단상황이 낳은 자식이 제3국으로 향하던 이명준이라면, 같은 배 안에서 제3국을 향하던 사람들 중 그누가 이명준이 아닐 수 있을까. 설사 베르사미가 인도에서 사라진 이연우의 자식은 아닐지라도, 분단상황이 만든 또다른 희생자의 아들 베르사미를 삼대째라고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앞선 두 세대에 대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깔고서, 그런 삼대째의 제3자이면서도 제3자일 수 없는 미묘한 타자의 시선으로 다시금 분단상황을 조명한 소설이 바로 DMZ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