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역 앞 광장
1박2일동안 페달을 굴러 찾아간 김천역. 김연수작가의 '뉴욕제과점' 에서는 '뉴욕제과점'이 김천역을 나서서 광장 좌측에 있다고 했지만 그곳에는 뉴욕제과점이었을 법한 곳이 없었습니다. 나무들과 주차장에 가려져있어서 더더욱 그런 곳에 꽤나 유명했다는 제과점이 있었을까하는 의심부터 들었죠. '뉴욕제과점'이 아무리 자전적 소설이라지만 어차피 소설에서의 '진실'은 '사실'이기보다 '사실인 것 같은 허구' 이므로 그것이 꼭 김천역 왼편에 있지 않을 수도 있고, 책에서처럼 24시 국밥집으로 바껴있지도 않을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허구였기 때문에 소설을 읽고서 김천역 앞으로 찾아간 것 자체가 바보짓이었을 수도있는 거죠. 비단 작가가 책 속에 쓴 내용이 허구가 아니었다 해도 작가가 국밥을 먹으며 씁쓸해했던 그 국밥집역시 지금은 다른 것으로 바꼈을 수도 있으니 찾지 못해도 실망하지 말자고 처음부터 마음먹어야 했습니다.
제가 찾아야하는 것이 '사실'인지 '진실' 또는 '허구'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닿는 한 한 번 찾아봐야겠기에 탐문수사(?)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김연수작가의 소설을 통해 가지고 있는 단서는 단 두가지 뿐이었습니다. 상호가 뉴욕제과점으로 20여년 전에 꽤 유명했던 제과점이었다는 것과 그 이후 24시 국밥집으로 바뀌었다는 것. 거기다가 24시 국밥집이 현재 다른 걸로 업종을 바꿨을 수도 있다는 제 나름의 추측까지 보태서 단서는 세가지뿐이었죠.
먼저 김천역을 마주본 방향으로 광장 왼편에 있는 식당들을 봤습니다. 김밥집이 하나 있고 문을 닫은 크라운베이커리, 그리고 새거창식당부터 까치방 등의 이름을 갖은 깨끗한 간판으로 새단장한 국밥집들 네 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어느곳 하나에도 24시라고 써있진 않더군요. 비록 작가가 말한 반대방향에 있었지만 작가가 24시 국밥집이라고 표현했음직한 걸 생각하면 그 네 식당들이 가장 유력했습니다. 식당으로 향해가다가 주차관리용 가판대에 앉아계시던 나이 지긋한 분께 제가 갖은 세가지 단서를 가지고 물어봤지만 모르시겠답니다.
네 식당들은 식당 문 앞에 종업원들이 호객하며 서있는 듯해보여서 접근하기 좀 꺼려졌고 다시 반대방향으로, 김연수작가가 말했던 광장의 왼쪽 방향으로 갔습니다. 싱글복어, 오성과한음, 서울식품 등이 있었는데 그 중 오성과한음은 문을 닫았더군요. 싱글복어와 김천역 사이에 경찰서가 하나 있었는데 혹시나해서 경찰서에 들어갔습니다. 또다시 세가지 단서를 가지고 물어봤죠. 경찰아저씨는 무척 친절하셨지만 역시 모르시더군요. 그걸 왜 찾느냐는 대답하기 참 쉽잖은 질문도 던지시고...
김연수 작가가 '뉴욕제과점'이 있다고 했던 김천역 광장 왼편
나이 지긋하신 분도 모르고 경찰서에서도 모른다면 뭘 더 기대할 수 있을까하고 반쯤 포기한 채 다시 반대편 식당가로 갔습니다. 김천역에서 가까운 식당부터 문열고 들어가 호객하느라 절 맞아주던 사람이거나 안에서 일보던 종업원에게 또다시 세가지 단서를 읊으며 '뉴욕제과점'을 물어봤죠. 그들에게 제가 얼마나 황당한 사람이었을까요. 그런데 그 중 네번째, 마지막 식당이었던 새거창식당 아주머니께서 옛날에 광장 반대편에 있었던 것 같다는 실마리를 주셨습니다. 다시 반대편으로 가서 서울식품에 들어갔습니다. 음료수 하나를 골라들고 계산을 하면서 주인아저씨로 보이는 분께 넌즈시 물어봤죠. 또다시 세가지 단서를 가지고 말입니다. 서울식품 주인아저씨는 뭔가 수상쩍다는 표정으로 저에게 반문을 하셨습니다.
그건 왜 찾아요?그 질문을 듣고나니 왠지 뭔가 아시는 것 같기도 하면서 그냥 호기심을 발동시킨 동네아저씨일 것 같기도 해서 가뜩이나 설명하기 어려운 여행동기를 말하기가 더 어려워졌지요. 그냥 얼버무리고 있는데 반복해서 세 번 정도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는 분이 작가인데 김천에 가거든 뉴욕제과점을 찾아보라고 했다고 대충 설명드렸죠. 그랬더니 그 작가이름이 뭐냐고까지 물으시더군요. 좀 꼬치꼬치 물으시는 게 이상하기도 했지만 이번엔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므로 김연수라고 바로 대답했고요.
연수가 내 생질이야.쓰윽 웃으시더니 그렇게 말씀하셨죠. 정말 깜짝놀랐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김연수작가가 미국에 가있으며 자신도 소설속에 나온다는 등의 말씀도 해주시고, 저역시 소설 속 김작가의 어머님 병환이 현재 어떠신지부터 시작해서 놀랍다는 등의 말들을 이어갔죠. 물론 그분을 통해서 뉴욕제과점의 정확한 위치도 알아냈습니다. 바로 오성과한음이었죠. 뉴욕제과점은 24시 국밥집이 되었다가 다시 오성과한음이란 호프집이 되었는데 그역시 문을 닫은 상태라네요. 그래서 왠지 씁쓸하기도 했지만 제가 찾으려 했던 '진실'이 '사실'과 일치함을 확인한 순간이었고 그래서 묘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연수 작가 |
김연수 작가 삼촌. 확실히 닮았습니다. |
호프집마저 문을 닫았으니 국밥대신 맥주 한잔 할 수도 없게 된 상황이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사실 24시 국밥집을 찾게 되면 거기서 식사를 하려고 그때까지 허기를 참고 있었거든요. 그대신 아까 저에게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해준 새거창식당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는 아주머니께 씨익 웃으면서 밥먹으러 왔다고 하니까 친절하게 한 상 차려주셨습니다. 갑짜기 쏟아져내린 소낙비도 새거창식당에서 여유롭게 쉬며 피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김천역 앞에 있으면서 왜 식당 이름이 '거창'인건지는 물어보질 못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