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칭찬부터 하고 시작하자. 그것이 책 내용과는 크게 상관 없기 때문에 깔끔하게 칭찬부터하고, 욕은 뒤에 하는 게 좋겠다.
나는 번역서를 잘 읽지 않는다. 그 이유중 하나가 문체인데, 이책의 역자인 맹보용이 번역한 책이라면 읽을만도 하겠다 싶어졌다.
단지 일본어가 어순이 같고 정서적으로 닮은 면이 있어 매끄러운 번역이 된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쉽표 하나도 친숙한 우리말의
그것으로 찍혀있는 것이 대단히 쉽게 읽히는 번역이 되어 반가웠다. 그것도 아니었다면 이 장편인척하는 중편스러운 소설을 읽다가
던저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책을 골라들은 것은 소재 때문이었다. '여행'이란 범위 넓은 소재의 틀에서 그 배경이 여행자들의 게스트하우스였다는 점이 무척 끌렸다. 여행에서 돌아왔지만 여전히 여행에 얽매여 있는 여행자들이 다음 여행을 꿈꾸면서 지내는 곳이 바로 도쿄 게스트하우스라는 기대를 갖게 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실제로 그런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상상해왔던 나의 막연한 개인적 바램이나 기대감과 합해진 지레짐작이었을 뿐이지, 내용을 읽어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곳은 서로 교차 섹스를 즐기거나 성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일 뿐이다. 작가의 말처럼 여행에서 돌아왔음에도 지난 여행에 갖혀 있는 것이기보다, 현실에 적응할 수 없는 나약함 때문에 그 공간은 그들에게 도피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 도피성 공간에서 또다른 무책임한 도피가 이뤄지고(주인인 쿠레바야가 집을 팽개치고 도망 간다), 그것을 개기로 주인공은 자신의 애인이었던 마키코에 대해 똑같은 짓을 했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걸로 소설이 끝나버린다. 정말 이렇다할 사건도 없이 말이다.
번역서를 좋아하지 않다보니 일본소설 또한 몇 권 읽어보질 않았지만, 주류를 이루는 것들은 대략 이렇다고 나는 짐작한다. 내용보다 장면이 좋은 영화 같고, TV 이미지 광고 같은 애매함과 여운으로 포장된 것. 그에 비하면 우리 소설들은 누더기와 같다는 느낌이다. 일본 소설은 격식을 차려입는 정장이 불편한 독자들에게 케쥬얼한 코디로 부담을 주지 않는 옷과 같다면, 우리 소설들은 정장의 불편함보다 더한 누더기의 초라함에서도 삶을 살아내는 인간들의 고뇌까지 깊히 내려간다. 그저 즉흥적이고 단편적인 비유일 뿐이지만, 이 책에는 소설을 쓰게 된 배경적 문제의식 따위도 없을뿐더러, 그렇다고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감성을 갖고 있다고 하기엔 그것이 너무나 얇팍하다. 그나마 내가 여행을 좋아하기에 이정도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었을 때도 감동 비슷한 걸 느낄 수 있을까? 그렇게 일반적인 정서를 움직이는 소설일 수는 없다고 확신한다. 작가는 그런 걸 기대하고 있지도 않고 독자를 그렇게 만들 능력도 없잖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여행가이드 책은 실용서라는 특성상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찾아서 읽게되는 것처럼, 역으로 이 소설은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찾는 여행 후기 같은 느낌이다. 만약 어떤 여행가이드북이 있어서 여행을 생각하고 있지도 않은 사람조차 여행을 꿈꾸게 만든다면 그게 바로 훌륭한 소설 한 편일 거다. 이런 소설은 거기 미치지도 못할 뿐더러 가이드북의 역할도 하지 않는다. 소설 속 '여행제왕'이 다른 여행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급기야 쿠레바야를 가출하게 만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여행제왕'은 이 책의 작가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이책을 골라들은 것은 소재 때문이었다. '여행'이란 범위 넓은 소재의 틀에서 그 배경이 여행자들의 게스트하우스였다는 점이 무척 끌렸다. 여행에서 돌아왔지만 여전히 여행에 얽매여 있는 여행자들이 다음 여행을 꿈꾸면서 지내는 곳이 바로 도쿄 게스트하우스라는 기대를 갖게 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실제로 그런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상상해왔던 나의 막연한 개인적 바램이나 기대감과 합해진 지레짐작이었을 뿐이지, 내용을 읽어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곳은 서로 교차 섹스를 즐기거나 성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일 뿐이다. 작가의 말처럼 여행에서 돌아왔음에도 지난 여행에 갖혀 있는 것이기보다, 현실에 적응할 수 없는 나약함 때문에 그 공간은 그들에게 도피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 도피성 공간에서 또다른 무책임한 도피가 이뤄지고(주인인 쿠레바야가 집을 팽개치고 도망 간다), 그것을 개기로 주인공은 자신의 애인이었던 마키코에 대해 똑같은 짓을 했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걸로 소설이 끝나버린다. 정말 이렇다할 사건도 없이 말이다.
번역서를 좋아하지 않다보니 일본소설 또한 몇 권 읽어보질 않았지만, 주류를 이루는 것들은 대략 이렇다고 나는 짐작한다. 내용보다 장면이 좋은 영화 같고, TV 이미지 광고 같은 애매함과 여운으로 포장된 것. 그에 비하면 우리 소설들은 누더기와 같다는 느낌이다. 일본 소설은 격식을 차려입는 정장이 불편한 독자들에게 케쥬얼한 코디로 부담을 주지 않는 옷과 같다면, 우리 소설들은 정장의 불편함보다 더한 누더기의 초라함에서도 삶을 살아내는 인간들의 고뇌까지 깊히 내려간다. 그저 즉흥적이고 단편적인 비유일 뿐이지만, 이 책에는 소설을 쓰게 된 배경적 문제의식 따위도 없을뿐더러, 그렇다고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감성을 갖고 있다고 하기엔 그것이 너무나 얇팍하다. 그나마 내가 여행을 좋아하기에 이정도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었을 때도 감동 비슷한 걸 느낄 수 있을까? 그렇게 일반적인 정서를 움직이는 소설일 수는 없다고 확신한다. 작가는 그런 걸 기대하고 있지도 않고 독자를 그렇게 만들 능력도 없잖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여행가이드 책은 실용서라는 특성상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찾아서 읽게되는 것처럼, 역으로 이 소설은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찾는 여행 후기 같은 느낌이다. 만약 어떤 여행가이드북이 있어서 여행을 생각하고 있지도 않은 사람조차 여행을 꿈꾸게 만든다면 그게 바로 훌륭한 소설 한 편일 거다. 이런 소설은 거기 미치지도 못할 뿐더러 가이드북의 역할도 하지 않는다. 소설 속 '여행제왕'이 다른 여행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급기야 쿠레바야를 가출하게 만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여행제왕'은 이 책의 작가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