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일 같은 눈물, 난 딱 한 번 본적이 있다. 식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정면으로 마주 앉은 어머니의 울음이 그랬다. 해일이 뭔지 모르는 내게, 그 순간에 그게 해일이었다.



에페스 유적지에서 다시 셀축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유적지 후문에서 한글이 적힌 성지순례단 관광버스를 발견하곤 그걸 얻어탔었다. 무임승차에 귀동냥까지 하려니 괜히 미안해져서, 그 뻘쭘함을 견디기 위해 내내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중이었다. 셀축과 에페스 사이에 위치한 아르테미스 신전의 옛 터를 지날 무렵 인솔자가 마이크를 꺼내 들었다.

"여러분들 왼쪽에 보이는 곳이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던 터 입니다. 지금은 다 부서지고 터만 남았는데, 여러분들이 내렸던 에페스에서 보셨던 것들 중 일부는 이곳에 있던 것들을 옮겨다 놓은 것들이기도 해요. 자, 이렇게 여러분들은 오늘 세 곳을 보신 겁니다. 처음에 들르셨던 게 성모마리아의 집이었고요, 에페스를 거쳐서 들르진 않았지만 이렇게 아르테미스 신전까지......"

인솔자의 그런 안내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의 말로 짐작컨데 아마 이들은 이 버스를 타고 성모마리아의 집을 거쳐서 에페스의 유적지로 왔던 모양이었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이곳에 성지순례를 오셨을 때 이런식으로 다니셨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어머니께서 언젠가 말씀하셨던 성모마리아의 집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로써는 차편이 마땅치 않아 가보지 못했던 곳을 이들이 오늘 방문했다는 사실. 그곳에서 내가 확인해보고 싶었던 어떤 것을 이들이 봤을까 싶게 만들었다. 어머니께서 성모마리아의 자취를 쫓으셨던 것처럼, 어머니의 자취를 쫓아 성모마리아의 집을 가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지기도 했다.



몇 해 전 그날은 어머니께서 터키와 그리스로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후의 부활절이었다. 부모님과 난 식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막 식사를 마쳤는데, 날이 날인만큼 어머니께서 당신의 성지순례 경험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 그의 제자 요한이 성모를 에페스로 모시고 와서 살게 했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신자가 아닌 내겐 길어질 수록 지루하기만 했다. 그런데 에페스 유적지 뒷편 산자락에 위치한 성모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셨던 이야기만은 경우가 좀 달랐다.

성모마리아의 집 안에서 보셨다는 성모마리아상은, 보통은 순백인 것이 너무 당연한데 그 안에 있었던 것은 얼굴만 검은 색으로 변색되어 있었단다. 종교가 없는 나라면 도둑질 당한 성상의 일부를 다시 만들어놓는 과정에서 그렇게 됐다거나 하는 세속적인 이유를 짐작했을텐데 어머닌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종교적인 해석을 하신 것도 아니었다. 어머닌 성모마리아의 검은 얼굴에 대해 '어머니'로써의 공감을 녹이셨다. 십자가에 못이 밖혀 메달린 자기 자식을 바라보는 어미라면 그렇게 얼굴이 시커멓게 되고도 남을 꺼라는 거다. 당신의 그런 말씀은 한편으론 말도 안된다 싶긴 하지만 그건 이해나 공감 따위보다 차라리 성모와의 인간적인 합치 같았다.

그리고 그 말씀을 하시던 순간에,  아니 '순간'보다 더 짧은 시간,  당신의 말씀을 별 관심 없이 들으며 고개를 떨구고 있던 난, 뭔가 엄청나게 쏟아질 것 같은 기운을 느낀 채 당신의 얼굴을 바라봤고 아니나 다를까 그 말씀을 꺼내시면서 해일 같은 눈물이 당신의 얼굴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창밖을 보고있다가 문득 당신의 눈물이 떠올라 버스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낯선이에게 묻고 싶어졌다.

"성모상의 얼굴이 정말 검은 색인가요?"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