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마지막 날, 우리 집에선 가족들이 모여앉아 0시를 기다렸다가 자곤 했었다. 그런데 누나와 내가 둥지를 떠난 후에도 부모님은 여전히 그렇게 하고 계실까? 그런 의문이 자이뿌르에 있었던 12월 31일에 들었다. 그래서 한국 시간으로 0시가 될 때를 기다릴까 했지만 혹시 쉬시는 걸 방해할까봐 일찌감치 집에 전화를 넣었다.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함께 못해서 죄송합니다.

한국 시간으로 0시가 되는 순간은 알지도 못했다. 인도 시간으로 0시가 될 무렵에 나는 자이뿌르 기차역 웨이팅룸에서 델리로 출발하는 기차를 기다리며 졸고 있다가 갑짜기 서로 얼싸안으며 인사를 나누는 인디언들 때문에 졸음에서 깨면서 새해를 맞게 됐다. 그때 웨이팅룸에 있던 인디언들이 새해를 행복하게 보내라고 인사해준 첫번째 사람들이다.

새해 첫날밤에 우리나라 남대문 격인 인디아게이트에 찾아갔다. 그 앞에서 삼각대를 써서 내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새해 첫날이라 친구들, 연인들, 가족들이 몰려들어서 인디아게이트 주변에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바리케이트를 설치했을 줄이야... 인디아게이트와 타지마할(삼각대 반입 금지) 때문에 무거운 삼각대를 여행 내내 들고다녔던 건데 뒷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더이상 뭘 할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바리케이트 앞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사람들을 모아 사진을 찍었다. 돈 달라고 할 껄 두려워해서 공짜라고 소리를 질러야 일단 경계심을 풀고, 자기들 끼리는 사진을 찍어도 낯선 사람에게 사진을 찍히면 영혼을 빼앗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더욱 사람들 모으기가 힘들었다. 심지어는 내가 그곳에 삼각대를 설치하고서 얼마 후부터 사람들로 빼곡했던 내 주변이 텅 비어있는 걸 보게 됐다. 돌아가는 길을 모르는 나를 기다리던 릭샤꾼에게 시간이 늦었으니 먼저 가라고 말한 후부터 두시간을 그곳에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커플이 멈짓하며 내게 가까이 왔다.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자 왜 이런 짓을 하냐고 묻더라. 아마도 계속 나를 관찰했던 것 같은 그들에게 새해 첫 날을 타지에서 혼자 보내고 있노라고, 하지만 내 나라로 돌아가서 새해 첫날에 행복한 한해를 기원해하며 즐거워하는 인디언 친구들, 커플들, 가족들과 한자리에 있었던 걸 추억하고 싶다고 말해줬더니 경계심을 풀고 모델이 되어주었다. 사진을 찍은 후에 그들에게 결혼할꺼냐고 물었더니 아직 조심스러운지 서로 대답하기를 어려워하더라. 내가 잘못된 질문을 해서 미안하다고 했을 때 괜찮다면서 남자가 말문을 열었다.

"I'm not sure about our marriage. But I'm sure that we love each other and we will be together forever."

내 수첩에 그때 내 모델이 되어준 수많은 행복한 인디언들의 이메일 주소가 적혀있다. 알아보지도 못하게 쓴 글씨로 사진을 보내달라며 빼곡히 적어준 이메일 주소로 모두 다 보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커플에게만은 꼭 보내주고 싶다. 그리고 그 커플을 포함해서 새해 첫날 밤을 함께했던 행복한 인디언들의 사진을 찍던 때를 생각하면 내가 사진을 더 잘 찍을 줄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안타까움이 생긴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4. 5. 27. 01:56
중학교 3학년의 어느날, 평소 잘 듣지 않던 라디오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배철수 음악켐프의 첫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100회 특집 방송에서는 방송 중간에 광고가 너무 많다라는 한 청취자의 건의 내용을 읽은 배철수는 곧바로 "배철수의 '광고' 켐프, 광고 듣고 다시 오겠습니다." 해버렸다.

나에게 정말 많은 음악을 들려준 그 방송에 출현해서 음악을 틀었던 적도 있다. 스튜디오까지 동행해준 지숙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러는 사이에 5000회란다. 내 취미가 라디오의 비대중성 마져 뛰어넘어버렸던 대학 재학시절부터 거의 듣지 않아서 15년 중 내가 아는 시간은 5년이 채 안될 것 같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5000회란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