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little thing2016. 10. 18. 15:22

2002년에 독일에서 날아온 악기가 Hiscox 케이스에 담아져 왔습니다. 그때는 "오, 이렇게 튼튼한 케이스가!" 하면서 반겼죠. 당시만해도 기타의 하드쉘케이스는 나무집성판재로 만들었거나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케이스가 일반적이었으니 압축폼을 사용해서 (비교적) 가벼우면서도 여러명의 장정들이 올라서도 안전하게 보호될만큼 튼튼하다는 Hiscox 케이스는 믿음직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당시 악기가 박스 포장도 없이 hiscox 케이스에만 담긴 상태 그대로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그랬음에도 악기에 아무런 손상이 없었던 것은 케이스의 성능을 말해주는 일이기도 했지요. 지금 와서는 그렇게 대범했던 제작자가 참 어의없기도 하고,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제도 저 가격대의 케이스 중에는 Hiscox 케이스가 가장 좋은 옵션일 꺼에요.


그런데 오래 사용하다보니 케이스에 엉뚱한 문제가 생기네요. 기타 넥 아래에 위치하게 되는 물건들 담는 수납부 내부의 벨벳 천이 구조물에서 분리되어 너덜너덜해집니다. 그냥 분리되기만 하면 접착제 같은 걸로 붙여볼텐데, 너덜너덜해진 부분에서 고운 입자의 모래 같은 것들이 떨어져나와서 수납부 안에 흩어져 돌아다니네요. 물로 닦아낼 수 없는 곳이라 청소가 곤란하고 또 어떻게든 닦아낸다 해도 계속 더 생길 게 뻔해보여요.


단순히 오랫동안 많이 여닫게 되는 부분의 접착력이 약해졌기 때문일 수 있겠죠. 어쩌면 수납부 안쪽이 습기를 먹어서 발생한 일 같은데, 습도 보충제를 넣어뒀을 때 습기를 먹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습도 보충제를 기타에 꼽아놓거나 기타 가까이에 놓지 수납부 안에 가둬둘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 일이 있었다손 친다 해도 어쩌다 한두번 발생했던 일일텐데, 좁은 공간 안에서 그정도의 수분 유출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다니...


어쩌면 Hiscox 케이스에 특화된 문제가 아니라 다른 케이스에서도 습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또다른 Hiscox 케이스를 포함해서 기타 하드쉘 케이스가 몇개 더 있는데 모두 다 한 곳에서 비슷하게 관리된 상태에서 바로 이 Hiscox 케이스에만 이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른 케이스들과 다른 게 있었다면 습기 보충제 넣어서 관리한 악기는 이 케이스에 담겼던 기타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점을 고려했을 때 습기보충제를 케이스 수납부에 넣어서는 안되겠습니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16. 5. 15. 15:00

길 가다가 포스터를 봤는데, "원스", "비긴 어게인"에 이어 존 카니 감독이 세번째 음악영화를 개봉한다고 한다. 이 감독은 음악을 소재로 하지 않고서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걸까? 두번째까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복제만 반복하는 감독의 세번째 영화를 볼 생각은 없다.


아뿔싸, 그러고 며칠 후 실수로 영화 "곡성"을 봐버렸다. 포스터나 홍보물에 나홍진 감독의 또하나의 자극적인 폭력물 또는 공포물이라고 써줘더라면, 이런 영화를 15세 관람가라고 사기 쳐놓지만 않았더라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쉬신 나오는 공포물이라도 이런 저질 공포물은 사양하겠다. 관객들을 공포스럽게 만드는 것과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은 수준 차이가 많이 난다. 이 영화는 관객들을 어두컴컴한 유령의 집에 몰아넣고 갑짜기 뒤에서 소리를 지르는 식으로 깜짝 놀래키기의 연속일 뿐이고, 자극적인 죽음과 분장으로 관객들을 거북하게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람들이 블로그 같은 데 맛집이라고 가는 식당에 가보면 막상 맵고 짜고 단 음식들 뿐이더라. 영화 곡성은 블로깅 잘 된 맛집에 다름 없다.


시나리오의 개연성도 없음에 대해서는 천우희의 역할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배역의 행동에는 아무런 동기부여가 되어있질 않다. 그 반대편에서는 그냥 악마라는 설정이면 충분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럼 천우희는 천사인 건가? 아하, 그걸 이제 깨달았군! 천우희가 천사라고 하면 말이 좀 되는 것 같다. 황정민이 언제부터 악마가 되었는지도결말에서 관객에게 "속았지?" 하기엔 억지스럽고 두루뭉술한 설정이다. 혹은 처음부터 악마였다면 왜 악마에 대항해서 살수를 날렸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혹은 악마가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카메라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변명꺼리라도 미리 만들어놓거나. 끝에 곽도원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애매하게 해놓는 것도 이젠 짜증스러운 클리쉐가 됐다.


곽도원과 장소연의 캐스팅에도 그 배우들의 개인적인 사연 때문에 불만이 있다. 쓸 데 없이 긴 영화에 그 둘의 불필요한 정사씬이 나오고 그 정사씬을 아이가 봐버렸다는 내용도 필요 없으면서도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였다고 본다.


이런 영화가 칸느 영화제에 초청됐단다. 그러고보면 칸느 영화제에 초대되는 한국 영화들의 공통점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맵고, 짜고, 달고.



이 영화는 그냥 황정민이 악마다 하면 더이상 볼 이유가 없어지는 자극적인 맛이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