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의 첫번째 소설집 '팽귄 뉴스'는 저에게 약간 각별한 소통의 느낌을 안겨줬었습니다. 사실 소설의 내용으로 작가와 소통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어느날 제가 이 책을 읽고 있는 걸 본 어떤 사람이 제가 권해준 적도 없는데 책을 사서 읽고 다니는 걸 제가 우연히 목격했기 때문이죠. 저에겐 그게 각별한 소통의 설레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누군가에게 권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고 상대방을 가려가며 할 일이며 왠만해선 하지도 않는 행동입니다. 쉽게 말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에게나 소개팅 상대로 만나게 할 수도 없는 거고, 상대방을 가려서 잘 맞을 것 같다 생각하고 소개해준다 한들 맺어지는 경우가 드문 것처럼 말이죠. 물론 책 같은 것보다 더 쉬워진 게 사람 사귀기인 것 같을 때엔 이 어찌나 소심한 생각인가 라는 자책도 해봄직합니다. 반대로 사람만나기보단 책 읽는 게 쉬운 제가 상대방 역시 같은 걸 좋아할 꺼라고 기대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하는 이상 소심함을 면할 길이 없겠습니다만, 그 소심함 때문에 누군가 같은 걸 좋아한다는 사실이 커다란 흥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게 저는 무척 좋습니다.
김중혁의 '팽귄 뉴스'를 상대방이 좋아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사람이 그 책을 읽으므로써 저와 소통을 시도하려했다는 것이 기뻤죠. 마치 누군가에게 "난 당신을 좋아합니다." 라고 말로 해버리는 것보다 은근히 알려오거나 들켜버리는 호감의 마음 같은 설레는 느낌 말입니다.
얼마전 여행을 떠나기 전에 따끈따끈한 김중혁의 새 책이 나왔기에 다녀와서 읽겠노라고 사놨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읽기 시작했네요. 기왕이면 다 읽고나서 이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 에 대해 쓰고 싶지만 너무나 재밌게 읽고 있어 단편 세개만 읽고도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졌습니다. 이 책이 저를 흥분시키는 요소는 세가지 입니다. 첫번째는 소설들이 음악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하기 쉽고, 두번째는 훌륭한 상상력으로 흥미를 놓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거죠. '매뉴얼 제너레이션' 같은 경우 매뉴얼을 통해 세상에 없었던 소통을 시도하는 내용에 전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출근 길에 소음 차단을 위해 귀에 이어폰을 꼽아 놓고는 정작 음악을 재생하는 걸 잊은 채로도 아무런 소음도 듣지 못했을만큼...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아직 읽지 않은 단편 '무방향 버스'에 대한 기대감 입니다. 이 소설엔 '리믹스, [고아떤 뺑덕어멈]'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고아떤 뺑덕어멈'이 뭔지 아는 사람에겐 작가와의 소통 채널이 하나 더 늘어나는 거죠.
이토록 신나게 읽고 있는 책이다보니 책을 덮고 나면 '팽귄 뉴스'를 다시 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오래전 꼽아놓았던 책갈피를 거기서 발견하게 된 것처럼 옛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면 그사람은 '팽귄 뉴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나봅니다. 그사람이 엄청 눈물을 쏟았다던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읽던 제가 눈물은 한방울 만큼만 흘렸었기에(하품하느라) 그다지 억울한 마음은 없지만, 중요한 건 소통에 대한 설레임을 갖었다는 거죠. 그건 그사람에게도 있었을 꺼라고 생각하고나면 이별이 한쪽을 억울하게 만들거나 하진 않습니다. 지나고나서는 이별이란 말조차 어울릴 것 같지 않게 되버렸는데, 흔히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 바로 그렇게 된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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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7.17 김중혁의 새 책 1
her Little White Book2008. 7. 17. 1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