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al Mystery Tour/Africa'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0.06.28 남아공의 백패커스에서 훔쳐온(?) 콘돔
  2. 2008.03.04 케이프타운(Capetown) 도착
  3. 2008.01.25 브랜다(Brenda) 2
  4. 2008.01.10 Penny
  5. 2006.09.03 속이는 사람보다 속는 사람이 더 바보
  6. 2006.07.06 스와콥문트를 떠나며
Magical Mystery Tour/Africa2010. 6. 28. 00:28
캐이프타운을 떠나던 날의 이른 아침이었다. 백패커스를 떠나며 도미토리의 다른 여행자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부엌에서 짐을 꾸리고 있었는데, 한 여자가 졸린 눈을 비비며 나와 내게 떠나느냐고 물었다. 그때 처음 마주친 그녀와 내가 오버스럽지만 마치 함께 밤을 보냈던 것 같은 인상을 남기게 된 건 그녀가 내 앞에서 팬티만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마주쳤던 백패커스 부엌 테이블. 그녀는 금발이었고팬티 색깔은 기억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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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패커스의 라운지 한쪽 선반에 커다란 와인잔이 있었는데 거기엔 콘돔이 가득 담겨있었다. 지나가면서 얼핏 보고 궁금했지만 차마 이게 뭔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별로 필요도 없는 물건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성적인 것이 아닌, 그게 거기 왜 놓여있는지에 대한 존재론적(?) 의문이었다. 그러니 느낌상 공짜 같긴 했어도 괜한 오해를 살까봐서 공공의 장소에 놓인 그것에 다가가기조차 쑥쓰러웠다. 기실 아무도 날 바라보고 있지 않고 아무도 내 행동에 대해 오해하거나 판단조차 하지 않는 곳에서 주목받고 있을지 모른다는 조심성은 나의 착각에서 비롯된 거란 걸 안다. 기념품 삼아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딱 두 개 집었는데, 왠지 훔쳐낸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공짜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자발적으로 어딘가에 동전을 기부하거나 "나 다 컸어요." 라는 자랑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리셉셔니스트를 찾아가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중에 집어온 걸 몰래 꺼내볼 때서야 뒷면에 "NOT FOR SALE" 이라고 적힌 걸 발견했다.

레드리본 마크가 후변에 인쇄된 콘돔은 남아공의 보건국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것이다. 인쇄된 글씨를 보면 09년 12월로 유통기한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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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AIDS 환자가 가장 많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민들의 HIV 바이러스 감염율은 11% 에 달한다. 이중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는 감염자는 30%도 되질 않는다. 그런데 2002년부터 2008년 사이 10대들의 HIV 바이러스 감염율이 절반으로 떨어지고, 같은 기간 10대 감염자들이 20대로 이동한 만큼 20대 이상의 감염율이 상승한 것은 콘돔의 보급 때문이다.

남아공에서는 레드 리본 캠패인 마크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레드 리본 캠패인이란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화합을 이루자는 취지의 운동인데, 그것의 상징인 레드리본은 따뜻한 혈액을 의미한다. 그런 레드리본은 그냥 길을 가다가도 벽이나 간판에 그려진 걸 무심코 보게 될만큼 꽤나 흔한데, 어디서 들은 이야기로는 캠패인의 국제 지원금을 여기저기 레드 리본을 그리는 데 탕진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캠패인 자체를 홍보하는 것보다 남아공 국민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콘돔의 보급이었다.
 



Posted by Lyle

Capetown 에 도착하기 위해서 엉덩이가 네모내지도록 비행기를 탔다. 그렇게 간신히 도착했지만 정작 시내로 가기 위해 미리 예약해둔 트랜스퍼를 찾지 못해 어찌나 당황했던지 모른다. 심난하던 나에게 호객하며 귀찮게 하던 택시기사는 나에게 예약한 트랜스퍼의 도착 여부를 물어보라며 자신의 휴대전화기를 내밀었다. 갖 환전을 마치고 나온 상태어서 랜드(Rand) 화폐 동전이 있을리 만무하니 어딘가에 전화를 걸려면 그의 미심적은 호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트랜스퍼는 있었다. 전화기를 돌려주며 늦어졌을 뿐이라고 설명하자 택시기사는 전화요금을 요구했다. 애초에 전화를 시켜보고 트랜스퍼가 없으면 택시 손님으로 돈을 벌고, 트랜스퍼가 있으면 전화 손님으로 돈을 벌 궁리었던 거다.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아프리카에서의 첫 대화가 그런식이다보니 앞으로의 여행이 상당히 피곤해질 것 같은 예감에 몸이 더 지치는 듯했다. 그에게 얼마나 줘야 하냐고 물었더니 나더러 알아서 달랜다. 내가 제안을 하면 그가 그대로 받아들일 리 없고, 분명 올려서 다시 부르겠지. 왜 흥정이란 과정에는 먼저 카드를 꺼내보이는 게 불리하게 여겨지는 걸까? 내 생각을 먼저 들키기 때문일까?

정리하자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내가 처음 쓴 랜드 화폐는 전화사용료가 됐다, 택시기사에게 지불한.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Africa2008. 1. 2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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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 투어 사무실 앞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브랜다.

브랜다(Brenda)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Capetown)에서 나미비아(Namibia)의 스와콥문트(Swakopmund)까지의 여행에서 제가 타고다녔던 트럭 이름입니다. '버스'가 아니라 '트럭'임을 강조할 수 밖에 없는 건, 트럭 운전사이자 투어 가이드였던 발트(Walt)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승객이 아닌 짐짝처럼 태우고 다니기 때문이죠.

브랜다의 정체

오랜지 리버를 향해가던 중 첫 1박을 했던 Gekko's Guest House 에서 발트는 사람들을 그곳의 잔디밭에 모여 앉혔습니다. 그리고 그는 트럭의 정체에 대해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했죠. 벤츠에서 만든 그 트럭은 승객을 태워 여행용으로 쓸 수 있도록 노매드 투어 워크샵에서 개조를 했고, 그렇게 개조되어 남아프리카 대륙을 여행중인 수십대의 트럭들 중 가장 최신 기종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그당시가 2005년 이었는데 그때 브랜다는 워크샵에서 개조되어 나온지 1년이 조금 더 된 깨끗한 트럭이긴 했죠. 그런데 년식을 기준으로 따지면 그걸 '최신 기종' 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말을 '현대적 편의시설' 이란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그때 발트는 이렇게도 말했죠.

"당신들은 운 좋은 걸로 알아라. 브랜다는 몇 안되는 에어컨이 설치된 트럭이다."

하지만 그 에어컨이란 건 틀어도 뜨거운 바람밖에 안 나오는 모양만 에어컨인 물건이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있었던 때가 12월 동지(아프리카 기준으로는 하지) 무렵이었는데, 남반구에서 낮이 가장 길 그무렵에 남회귀선을 통과했던 그 트럭 내부는 괴로워서 잠들어버리고 싶을만큼 엄청나게 더웠습니다. 그런 트럭 안의 천장에는 뜨거운 바람을 내뿜으며 여행자들을 약올리고 있는 에어컨이란 놈이 붙어있긴 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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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다 안에서 퍼져 자고 있는데 발트가 길 한복판에 트럭을 멈추더니 사람들을 깨웠다. 이곳이 바로 남회귀선이라며. 사진은 남회귀선 표지판에 매달린 라일.


브랜다의 이름의 유래

한가지 더 재미있는 건 트럭 이름의 유래입니다. 노매드 투어의 설립자들이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모든 노매드 투어 트럭들은 요절한 가수들의 이름을 따서 짓게 됐다더군요. 그래서 다른 트럭들 이름도 레논(John Lennon) 이나 엘라(Ella Fiztgerald)등으로 이름지어졌답니다. 그런데 트럭의 대수가 많아지면서 더이상 요절한 가수들 이름을 붙이기 어려워지자 근래에 출시된 두 대의 트럭에는 살아있는 가수의 이름을 붙이게 됐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브랜다' 였다네요. 브랜다는 남아프리카의 가장 대중적인 가수 브랜다 파씨(Brenda Fassie) 에서 따온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재수가 없었던 건지 2004년 4월에 브랜다 파씨가 천식으로 요절했고, 결국 트럭 브랜다는 요절가수의 이름을 갖는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게 된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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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기 위해 나무그늘 아래 멈춰선 브랜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트럭 옆구리에서 조리용 선반과 기구들이 있다. 사진에 보이는 개는 우리 일행이 아니었고 그냥 저곳에서 만났다.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Africa2008. 1. 10. 11:50

페니는 함께 케이프타운에서 트럭투어를 시작한 호주 아이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녀와 여섯명쯤 되었던 그녀의 일당들은 남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단체에서 일하는 고등학생들이랍니다. 우리나라에서 봉사활동이 내신성적에 반영되듯 호주에서도 대학입학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그들 무리 중 유난히 활달하고 시끄럽게 수다스런 아이였죠.

그런데 앞서 함께 여행하던 호주아이들을 "그녀의 일당들" 이라고 표현하는 건 기실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녀의 지나치게 발랄한 모습은 가끔씩 그녀의 소외된 모습의 반영처럼 보이도록 했기 때문이죠. 햇볓이 쨍쨍한 날에 내 그림자도 더 선명해지듯, 그녀의 밝은 모습은 그만큼 더 그녀의 어두운 모습을을 대조시켜 강조시키는 듯 보였죠. 언제나 몰려다니다가도 간혹 혼자된 모습이 유독 눈에 띄는, 페니는 그런 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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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vis 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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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Dune 45 at Namib Desert


Posted by Lyle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행 비행기를 타려고 기다리던 중 한 국 사람 셋을 만났다. 그중 둘은 교인내외로 봉사활동인지 관광인지를 가는 사람들이었고, 또 하나는 요하네스버그에서 아버지 사업을 돕는 건장한 20대 남자였는데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가 돌아가는 중이라했다. 13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가는 중에 그친구와 함께 노닥거리면서 갔다.

그친구가 말이 좀 많은 편이기도 했지만 나로써도 아프리카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들을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때 그가 한 말 중 기억에 남는 말 하나가 아프리카에서도 같은 민족 등쳐먹는 건 한국사람 뿐이라는 말이었다. 현지에서 듣던 것처럼 흑인들이 매우 위험하긴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끼리는 헤치지 않는데 한국 사람들은 서로서로 믿을 게 못된단다.

몇해전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사람들에게도 사기를 치는 한국 사업가들에 대한 TV다큐가 떠올랐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릴 때쯤 그친구가 나에게 돈을 얼마나 가지고 가느냐고 은근히 물어오자 그조차도 경계를 하게 되는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 위험한 사람들이 득실득실하는 한국에서 속이는 사람보다 속는 사람이 더 바보 취급 당하는 걸 보면 얼마나 그런 한국인들에게 익숙해져있으면 그럴까 싶어 이땅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도 든다.

Posted by Lyle

스와콥문트 해변의 Sand Lodge


사실상 나의 아프리카 여행은 스와콥문트(Swakobmund)에서 끝났다. 아직 투어를 반이상 남겨놓고 전날의 파티를 마치고 재충전을 하며 잠든 이들을 뒤로하고서, 이른 아침에 숙소를 나와 나를 나미비아(Namibia)의 수도 빈툭(Windhoek)으로 태우고 갈 버스를 기다렸다. 그곳에서 난 또다시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했다.

유치한 신경전을 벌이고선 끝까지 나와 아는 척을 안했던 볼트(Walt)의 형이 나보다 먼저 일어나 바닷가를 산책하고 숙소로 올라오다 숙소 앞에서 마주칠뻔했는데, 나는 그를 목격하고서 슬며시 딴청을 피우며 자릴 피해버렸다. 내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숙소의 문으로 들어올 게 뻔한데, 마지막 가는 길에 감정을 풀고 허심탄회하게 작별인사를 나눌까 싶었지만...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