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장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을 읽고나서 처음 들었던 생각이 흥미를 끌던 초반에 비해 중반 이후부터 지루하게 끌고 나가더니 결말 부분에서 너무 많은 걸 직설적으로 설명하고 끝내버린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번 장편 '밤은 노래한다' 에서 역시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번엔 결말의 내용에 대한 실망감까지 안겨줬다.
마지막에서 김해연이 최도식을 죽이지 않는 건 납득이 되질 않는다. 차라리 다시는 만나지 못했거나 했더라면 그나마 개연성을 해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작가는 주인공 김해연이 잘나가는 만철 직원이라는 양지의 신분에서, 민생단 사건에 휘말려 밤의 노래를 부르게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최도식을, 한 번 죽이려고 찾아갔다가 실패했던 그를, 다시 만나게 했다. 그런데 그저 오래전 편지를 전해줬던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하고 헤어지게 한다는 건 지독히 억지스럽다. 물론 '작가의 말'을 통해서 왜 그런 결말을 지었는지를 이해도, 공감도 했지만 그건 작가를 이해했을 뿐 작품을 이해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독자와 이야기해야 한다.
분명 주인공이 최도식을 찾아갔다면 그를 죽이러 갔어야 했음에도 되려 고맙다고 말하고 그자리를 벗어난다는 건 어색하다. 더구나 독자가 최도식에 대한 복수의 순간을 목격하며 마지막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도록 한 데서 작가 또한 그걸 의도했음이 뻔히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억지 매듭을 지었다는 건 도무지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한가지 더 실망스러운 건 작가 역시 그걸 알아차리고 있는 듯,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최도식의 아이들을 만나게 하므로써 김해연이 살의(殺意)의 마음을 접게 만드는 장치로 보여지도록 했다는 거다. 게다가 용의주도하게도 그 앞부분에서, 김해연은 겁먹은 여자 아이의 울음 소릴 뒤로 한 채 방금 전까지 총으로 그 아이의 부모를 위협하던 스스로를 미워하는 장면을 넣음으로써 '순수한 어린아이'란 장치에 대한 개연성을 갖추게 까지 했다.
그런 결말로 하마터면 실망을 안고서 책을 덮을 뻔 했지만 다행히 그렇지 않고 짜릿한 감동에 전율하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닫았다. 그 감동은 바로 1941년을 살고 있던 김해연이 최도식을 죽이지 않고서 헤어진 직후, 그가 1932년에 이정희가 죽기 전 최도식을 통해 그에게 보낸 편지를 꺼내면서 시작된다.
(전략)
그걸 알겠어요. 이미 너무 늦었지만. 그러기에 말했잖아요. 지금까지 내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그러니까 당신과 그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그때, 이 세상은 막 태어났고, 송어들처럼 힘이 넘치는 평안 속으로 나는 막 들어가고 있다고. 사랑이라는 게 우리가 함께 봄의 언덕에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 죽음이라는 건 이제 더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이겠네요. 그런 뜻일 뿐이겠네요.
김해연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 이미 혁명가의 길을 걷고 있었던 이정희는 죽음을 앞둔 채 사랑 앞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랑하는 이정희를 잃고 나서 이정희의 뒤를 따라가던 중 동족상잔의 비극을 격게 되는 김해연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말했던가.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시간의 문제였을 뿐. (중략) 하지만 여전히 과연 누가 옳았는지는 알 수 없다. 먼저 죽었다고 해서, 혹은 나중에 죽었다고 해서 그가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결국 그들은 다 죽었으니까.
이 세계가 청년들에게 가혹한 세계라면, 죽음에서 가장 멀리 있는 청년들마저도 노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세계라면, 내가 몇 명을 조금 일찍 죽인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으랴. 반쯤 죽은 자들과 반쯤 살아 있는 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계라면, 삶과 죽음이 서로 자리를 바꿔가면서 이뤄내는 세계라면 인간을 죽인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어디 있겠는가?
죽음 앞에서 그것을 더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되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정희와, 사랑하는 이를 잃고서 삶과 죽음에 어떤 의미를 두지 않고서 이토록 하찮게 여기게 되는 김해연은... 동족상잔의 비극은 그런 식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더욱더 멀리 갈라놓고 있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위 인용문 중 "죽음에서 가장 멀리 있는 청년들마저도 노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세계" 라는 표현이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든다. 이 얼마나 간결하면서 그 길이보다 훨씬 많은 이야길 담은 문장이란 말인가.)
그리고 더불어 한가지 더. 대체 김연수 작가는 몇번이나 사랑을 해봤기에 지금까지의 작품 속 많은 사랑들을 저마다 다르게, 그리고 그토록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치 사랑을 하면서 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정희의 편지도 그랬지만, 여옥과 김해연이 사랑을 나누게 되는 장면에서의 그 시각적 긴장감이란... 어찌나 사랑이 많은 작가인지 심지어 '사람'이란 단어가 '사랑'이라고 씌어진 오자도 발견될 정도다.
1박2일동안 페달을 굴러 찾아간 김천역. 김연수작가의 '뉴욕제과점' 에서는 '뉴욕제과점'이 김천역을 나서서 광장 좌측에 있다고 했지만 그곳에는 뉴욕제과점이었을 법한 곳이 없었습니다. 나무들과 주차장에 가려져있어서 더더욱 그런 곳에 꽤나 유명했다는 제과점이 있었을까하는 의심부터 들었죠. '뉴욕제과점'이 아무리 자전적 소설이라지만 어차피 소설에서의 '진실'은 '사실'이기보다 '사실인 것 같은 허구' 이므로 그것이 꼭 김천역 왼편에 있지 않을 수도 있고, 책에서처럼 24시 국밥집으로 바껴있지도 않을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허구였기 때문에 소설을 읽고서 김천역 앞으로 찾아간 것 자체가 바보짓이었을 수도있는 거죠. 비단 작가가 책 속에 쓴 내용이 허구가 아니었다 해도 작가가 국밥을 먹으며 씁쓸해했던 그 국밥집역시 지금은 다른 것으로 바꼈을 수도 있으니 찾지 못해도 실망하지 말자고 처음부터 마음먹어야 했습니다.
제가 찾아야하는 것이 '사실'인지 '진실' 또는 '허구'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닿는 한 한 번 찾아봐야겠기에 탐문수사(?)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김연수작가의 소설을 통해 가지고 있는 단서는 단 두가지 뿐이었습니다. 상호가 뉴욕제과점으로 20여년 전에 꽤 유명했던 제과점이었다는 것과 그 이후 24시 국밥집으로 바뀌었다는 것. 거기다가 24시 국밥집이 현재 다른 걸로 업종을 바꿨을 수도 있다는 제 나름의 추측까지 보태서 단서는 세가지뿐이었죠.
먼저 김천역을 마주본 방향으로 광장 왼편에 있는 식당들을 봤습니다. 김밥집이 하나 있고 문을 닫은 크라운베이커리, 그리고 새거창식당부터 까치방 등의 이름을 갖은 깨끗한 간판으로 새단장한 국밥집들 네 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어느곳 하나에도 24시라고 써있진 않더군요. 비록 작가가 말한 반대방향에 있었지만 작가가 24시 국밥집이라고 표현했음직한 걸 생각하면 그 네 식당들이 가장 유력했습니다. 식당으로 향해가다가 주차관리용 가판대에 앉아계시던 나이 지긋한 분께 제가 갖은 세가지 단서를 가지고 물어봤지만 모르시겠답니다.
네 식당들은 식당 문 앞에 종업원들이 호객하며 서있는 듯해보여서 접근하기 좀 꺼려졌고 다시 반대방향으로, 김연수작가가 말했던 광장의 왼쪽 방향으로 갔습니다. 싱글복어, 오성과한음, 서울식품 등이 있었는데 그 중 오성과한음은 문을 닫았더군요. 싱글복어와 김천역 사이에 경찰서가 하나 있었는데 혹시나해서 경찰서에 들어갔습니다. 또다시 세가지 단서를 가지고 물어봤죠. 경찰아저씨는 무척 친절하셨지만 역시 모르시더군요. 그걸 왜 찾느냐는 대답하기 참 쉽잖은 질문도 던지시고...
김연수 작가가 '뉴욕제과점'이 있다고 했던 김천역 광장 왼편
나이 지긋하신 분도 모르고 경찰서에서도 모른다면 뭘 더 기대할 수 있을까하고 반쯤 포기한 채 다시 반대편 식당가로 갔습니다. 김천역에서 가까운 식당부터 문열고 들어가 호객하느라 절 맞아주던 사람이거나 안에서 일보던 종업원에게 또다시 세가지 단서를 읊으며 '뉴욕제과점'을 물어봤죠. 그들에게 제가 얼마나 황당한 사람이었을까요. 그런데 그 중 네번째, 마지막 식당이었던 새거창식당 아주머니께서 옛날에 광장 반대편에 있었던 것 같다는 실마리를 주셨습니다. 다시 반대편으로 가서 서울식품에 들어갔습니다. 음료수 하나를 골라들고 계산을 하면서 주인아저씨로 보이는 분께 넌즈시 물어봤죠. 또다시 세가지 단서를 가지고 말입니다. 서울식품 주인아저씨는 뭔가 수상쩍다는 표정으로 저에게 반문을 하셨습니다.
그건 왜 찾아요?
그 질문을 듣고나니 왠지 뭔가 아시는 것 같기도 하면서 그냥 호기심을 발동시킨 동네아저씨일 것 같기도 해서 가뜩이나 설명하기 어려운 여행동기를 말하기가 더 어려워졌지요. 그냥 얼버무리고 있는데 반복해서 세 번 정도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는 분이 작가인데 김천에 가거든 뉴욕제과점을 찾아보라고 했다고 대충 설명드렸죠. 그랬더니 그 작가이름이 뭐냐고까지 물으시더군요. 좀 꼬치꼬치 물으시는 게 이상하기도 했지만 이번엔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므로 김연수라고 바로 대답했고요.
연수가 내 생질이야.
쓰윽 웃으시더니 그렇게 말씀하셨죠. 정말 깜짝놀랐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김연수작가가 미국에 가있으며 자신도 소설속에 나온다는 등의 말씀도 해주시고, 저역시 소설 속 김작가의 어머님 병환이 현재 어떠신지부터 시작해서 놀랍다는 등의 말들을 이어갔죠. 물론 그분을 통해서 뉴욕제과점의 정확한 위치도 알아냈습니다. 바로 오성과한음이었죠. 뉴욕제과점은 24시 국밥집이 되었다가 다시 오성과한음이란 호프집이 되었는데 그역시 문을 닫은 상태라네요. 그래서 왠지 씁쓸하기도 했지만 제가 찾으려 했던 '진실'이 '사실'과 일치함을 확인한 순간이었고 그래서 묘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연수 작가
김연수 작가 삼촌. 확실히 닮았습니다.
호프집마저 문을 닫았으니 국밥대신 맥주 한잔 할 수도 없게 된 상황이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사실 24시 국밥집을 찾게 되면 거기서 식사를 하려고 그때까지 허기를 참고 있었거든요. 그대신 아까 저에게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해준 새거창식당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는 아주머니께 씨익 웃으면서 밥먹으러 왔다고 하니까 친절하게 한 상 차려주셨습니다. 갑짜기 쏟아져내린 소낙비도 새거창식당에서 여유롭게 쉬며 피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김천역 앞에 있으면서 왜 식당 이름이 '거창'인건지는 물어보질 못했군요.
8월 25일과 26일에 자전거를 타고 경상북도 김천으로 출발했다. 전 날 술을 좀 마셨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렇지만 워낙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기 때문인지 술에 덜 깬 상태로 해뜰무렵에 일어나 느릿느릿 짐을 챙기다보니 어느덧 술이 깨는 것 같았다.
출발; 영등포구청--(안양천)-->안양시 내가 사는 영등포구청에서 출발해서 안양천을 따라 내려갔다. 초행이라 두어번 길을 벗어났다가 돌아왔는데 한 10km 갔더니 숙취 때문인지 기운이 쫙 빠지더라. 멈춰서 생각했다.
"돌아갈까..."
아직은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만큼 와있는 나. 좀 더 가면 돌아가기도 힘들어질텐데... 뭔가 놓고 온 게 있다면 그걸 핑계삼아 돌아갔다가, 아마 그대로 눌러앉는 수도 있겠지. 이럴 땐 패달을 열씸히 굴러야 한다. 나아가는 것보다 돌아가는 것이 더 힘든 곳까지.
안양천 따라가기;아마 광명시 어디쯤일듯...
안양시--(1번,42번국도)-->이천시 아무런 이정표도 없는 안양천만 따라가다보니 어디쯤 왔는지 알 수가 없어 불안했다. 차도로 올라왔지만 역시 낯설더라. 수원가는 1번국도를 찾아갔더니 작년 이맘때 쯤 출장 때문에 차몰고 종종 오갔던 곳이 나타났다. 안양역과 명학역을 지나는 그길을 이번엔 자전거로 따라가려니 왠지 쑥쓰럽더라. 차 안에 숨어있을 때와 자전거 위에서 다 드러나있을 때의 차이랄까?
1번국도를 따라 수원까지 갔더니 또다시 차타고 몇 번 갔던 바로 그 길이었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서 내가 자동차고 밟았던 도로보다 자전거로 달렸던 길이 더 많다. 언젠가는 거꾸로, 자전거로 내가 지나왔던 길을 자동차를 운전해서 지나치며 옛 생각에 잠길 날이 올꺼라고 기대한다.
팔달구 수원화성에서 다시 멈춰섰다. 햇볕이 뜨거워지면서 점점 더 더워지고 그래서 더 빨리 지치는 것 같았다. 물을 한껏 마시고 썬블럭 로션을 바르고서 다시 출발하려는데 어떤 아저씨 하나가 내 옆을 지나면서 머뭇머뭇 뭔가 말을 걸려는 눈치를 보인다. 내 자전거 트레일러가 관심의 대상인가본데, 그냥 무시하고 얼른 출발했다. 저런 아저씨들은 호기심이 앞서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거다. 여러번 격어봐서 알고 있다. 일단 말을 섞고나면 존중해줘야할 것 같아 그전에 도망가는 게 습관이 되버렸을만큼 잘 알고 또 익숙해져있다.
수원화성을 지나 42번국도로 들어서려고 할 때 또다른 자전거 라이더가 내 옆을 지나갔다. 진짜 라이더처럼 쫄쫄이복장까지 입었더라. 빨리 갈 수 있어 좋겠다. 당신은 곧 왔던 곳으로 돌아가겠지. 그러나 난 돌아갈 생각이 없는 편도라서...
용인시에 접어들었을 때 길가에 어떤 여자아이 하나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아저씨 힘내세요"
들리는 쪽을 바라보니 꼬마 하나가 방끗 웃고 있다. 힘에 부쳐 일그러졌던 표정을 펴진 못하고 입으로만 씰룩 웃어줘서 답례를 보냈다. 그아이가 내 얼굴을 웃는 얼굴로 봤어야 상처받지 않았을텐데...
용인시 도착했을 땐 긴 휴식도 필요했지만 점심을 먹어야 했다. 더 가버리면 점심먹을 곳이 마땅찮을 것 같았다. 밥먹을 곳을 찾아 시가지 골목골목을 드나들며 내 취향과 마침 지나가던 식당의 맞춤이라는 우연을 기다리거나 찾아헤맬 시간이 없었다. 그대로 42번국도를 따라 용인터미널을 지나다보니 터미널에 롯데리아 간판이 보였다. 에너지 보충엔 밥이 좋겠지만 간단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것도 나쁘진 않을듯. 사실은 너무 더워서 팥빙수가 먹고싶어졌던 거다.
용인에서 이천까지 가는 사이의 42번국도는 정말 악몽이었다. 어찌나 덥던지, 살 때는 그렇게나 시원했던 물이 금새 미지근함을 지나 이글거리는 느낌이었고 그걸 마시고도 목축임과 배부름 외에 시원함을 구걸해야 한다는 게 끔찍했다. 간신히 이천시에 도착했지만 이천시 시가지는 42번 국도와 멀찌감치 떨어져있었고, 또 갈아타야하는 3번국도와도 멀찌감치 사이가 안좋아보였다. 그렇게나 덥고 힘든 길을 참으면서 이천시에 가면 잠시동안이나마 문명의 숲에서 야성을 피해 안도감을 느껴보려고 했었는데... 3번국도로 접어들기 전 주유소에 있는 편의점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으로 기대했던 안도감을 대신해야했다. 그곳에서 2L짜리 물을 한 병 더 샀다. 물은 내가 마시는 게 아니라 그냥 증발하고 있는 것처럼 바닥이 난다.
이천시 가는 42번의 어딘가, 물을 너무 마셔대서 노상방뇨 해야했던 그곳.
이천시--(3번,38번국도)-->충주시 비교적 쉬운 길이었다. 땡볕에도 어느정도 익숙해진건지 아까보다 수월하게 페달이 밟혔다. 38번 국도로 갈아타는 장호원 근방의 하나로마트에서 산 500ml 짜리 얼린물이 정말 큰 힘이 되어줬다. 밥이 먹힐 것 같지 않아서 또 맥주부터 한 캔 마셨는데, 뭔가 먹어야할 것 같아 냉면 한그릇 먹고 하나로마트를 떠났다. 아직 길위에 익숙해지기 이른 건지, 문명이 이렇게 반갑고 시원하게 느껴지다니.
국도를 벗어나 충주호까지 이어지는 남한강을 탄금대쪽으로 질러가는 599번 지방도를 탔다. 1차선 도로라서 길이 좁고 갓길이 없어 위험하긴 했지만 가로수가 우거져서 해를 가려준데다 호수가 보이는 길이어서 한결 나았다. '중원고구려비' 이정표가 보였는데 거기 가기 직전의 갈림길에서 520번으로 갈아타야 했기 때문에 들러보진 못했다. 언젠가 역사책에서 봤음직한 이름인데 십수년 지나 현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얼마 안되는 거리 앞에서 놓쳐야 하다니... "나중에 크면 하고 싶은 것 실컷 할 수 있다"던 학창시절 선생님들의 그말씀, 난 그때도 다 거짓말이란 거 알고 있었다. 점점 더 시간에 쫓겨살면서 하고싶은 걸 참는데 익숙해지고 있다는 거, 그때도 예상했던 내모습...
충주로 들어가는 남한강을 막고 있는 '조정지댐'. 찍지 말라고 써있었지만 난 못봤다! ㅡㅡ;
수안보온천이 인접한 충주시에 설마 24시 찜질방 하나 없을까 싶었는데 딱 한 개 있다더라. 조금이라도 더 내려가야 다음날 일정에 차질이 없을 것 같아 충주시 중심가를 지나쳐 건국대까지 와버렸는데 그제서야 그사실을 알게 된거다. 너무나 지쳐서 찜질방에서 편하게 쉬고 싶기도 하면서, 역시 너무나 지쳐서 24시 찜질방을 찾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느니 어딘가에서 야영을 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한 이율배반적 상황이라니...
결국 건국대학교 근방의 단월초등학교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해지기 직전에 텐트치고, 해지자마자 사람들 안보는 틈을 타서 학교 뒷편 수돗가에서 목욕과 빨래를 했다. 학교 앞 가게에서 맥주 두캔을 사다가 텐트를 설치한 놀이터 잔디밭에 앉아 유난히 밝은 달을 바라보며 뭔가 그리워할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야영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돌아와서 알게 됐지만 유난히 달이 밝고 붉은 빛을 띄어서 그동네 이름이 '단월동'이란다.
잔디밭에서 맥주마시는 동안 텐트에 침범해서 놀고 있던 개굴씨~ 안먹고 놔줌.
충주시--(3번국도)-->김천시 6시에 출발하고 싶었지만 해뜬 직후 일어나 밍기적거리다보니 7시에 충주를 떠났다. 지도에서 어림짐직했던 것과 실제 도로의 이정표상에서 확인한 거리의 차이가 상당했다. 게다가 어제에 비해 확연한 스테미너의 차이가 느껴져서 마음이 어찌나 급해졌는지... 밥을 먹고 출발했어야 했다고 후회했을 땐 이미 늦었다. 충주를 떠나자 밥먹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에도 몇 번 경험했지만 에너지 소비가 극도로 많을 땐 정말 밥 한끼 먹고 안먹고의 차이가 엄청나다. 그래도 출발 전 2L짜리 얼음물을 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조령을 넘기 직전 휴게소에 식당이 있어 들렀지만 문이 닫혀있었다. 자판기에서 음료수 한캔 뽑아마셨지만 갈증이 풀리지 않아 하날 더 뽑아마셨다. 조령을 간신히 넘어 내려갔더니 작은 마을이 나왔고 중국집 하나가 보였다. 그런데 아직 식사가 안된단다. 오전 10시를 막 지났는데 여길 지나게 되면 앞으로 어디서 밥을 구경할 수 있을지 몰라 조금 기다리기로 했고, 결국 밥먹고 쉬면서 거기서 1시간이나 보냈다. 그래도 역시 한국사람은 밥심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후로 상주시에 도착할 때까지 내 눈에 보인 건 땡볕과 흐르는 땀에 묻어내리는 뿌옇고 진득한 썬블럭 로션뿐이다. 상주시로 들어오기 직전의 3번국도는 자동차전용도로였는데, 지난 5월 속초여행 때 경찰에게 딱지를 떼인 기억 때문에 더위도 잊고서 정신없이 페달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 전용도로 1km 남기고 중앙분리대 넘어에 경찰차가 서있는 걸 발견하고는 그 경찰차가 U턴해서 날 쫓아오기 전에 남은 1km 를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만이... 그것 말고는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만큼, 태양을 등지고 페달을 구르며 땀흘리 것 말고는 내몸이 한 게 없었다.
상주시를 지날 때부터는 마음이 놓였다. 김천에 제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런데 목적지인 김천시를 10km 앞두고부터 갑짜기 왔던 길을 되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왜그랬을까. 마치 출발 후 10km 를 지났을 때 돌아가고 싶어졌던 것처럼 도착 전 10km 를 앞둔 곳에 멈춰서서 나는 지금까지 왔던 260km 를 되돌아가야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있었다. 왠지 끝을 봐도 만족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항상 그렇듯 길 위에서 무언가 찾아질꺼라고 기대했었는데, 출발할 때의 망설임과 끝날 때의 허탈함, 그 사이 250km 는 마음을 놓은 순간부터는 더이상 기억조차 나지 않는 고통일 뿐이란 게 어찌나 허탈하던지...
김천역
도착, 김천역 그렇게 나는 경상북도 김천시 김천역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하고 싶었던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곳에서 출발 전에 상상했던 작은 불빛 하나를 찾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환하게 웃으면서 역전 새거창식당에서 설렁탕을 먹고 있는데 갑짜기 소낙비가 시원하게 쏟아지면서 뜨거워진 내 자전거를 식혀주더라.
첫날 150km, 둘째날 120km, 서울로 버스타고 돌아와서 고속터미널에서 집까지 30km. 총 300km 를 달렸다.
지난 주말, 친구가 책 추천해달래서 김연수의 '내가 아직 아이었을 때'를 들고나갔지만 그친구한테 바람맞았습니다. 덕분에 나가는 지하철 안에서 단편 '첫사랑' 을 읽었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또다른 단편 '뉴욕제과점'을 읽었죠.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 은유적이면서도 소박한 표현, '단문단문장문'의 기본에 충실한 문체, 그리고 그만의 감성...
바람맞아도 감미로운 (옛날에 가나쪼꼬렛 광고 페러디 입니다. 아시려나 ㅡㅡ;) 감동을 또다시 느끼게 해주더군요.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옛날에 '문학동네'라는 계간지에는 작가들의 자전소설을 한 편씩 실는 꼭지가 있었고 제 기억에 거기서 처음 '뉴욕제과점'을 읽었던 것 같네요. 나의 이야기를 남 이야기처럼 쓸 수 있을만한 이야기꾼이 아니고서야 자전소설이란 것이 의미를 갖을 수 없을껀데, (아마 그런 이유로 그 계간지에서도 그런 꼭지를 만들었겠죠. 일종의 작가 테스트?) 그당시엔 군더더기 없이 참 단백하게 썼구나 싶었던 게, 어제 다시 읽었을 때는 그 아래 깊숙히 스며있는 성찰까지 공감이 되더라고요. 20대 중반이었던 제가 30대에 접어든 김연수의 '뉴욕제과점'을 느꼈던 것과, 작품 속의 작가와 같은 나이를 살고 있는 지금의 '뉴욕제과점'이 다르게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경상북도 김천의 기차역에서 나오면 광장의 왼편에 보였다던 그 '뉴욕제과점'. 그곳이 문을 닫은 후 24시 국밥집으로 바뀌었다며 자기 인생의 꺼져버린 작은 불빛 하나를 추억하며 서글퍼했던 김연수. 시간이 지나 용기를 내어 그 국밥집에 들러 고개를 떨군 채 국밥 한그릇을 비우고 나오면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필요한 또다른 작은 불빛들 앞에 눈시울을 붉혔던 김연수. 그의 그런 심정을 공감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지금, 김천역 앞의 옛 뉴욕제과점 앞을 나서며 작가가 봤다던 그 눈물에 비춰진 몽글몽글한 불빛들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저에게도 삶을 살아감에 있어 필요한 작은 불빛들이 거기에 비춰보여지게 될런지도...
인생이 그렇듯, 쉽게 찾아가 국밥 먹고 나오면서 그런 게 보일리는 없고, 자전거를 타고 가겠습니다. 혹시 국밥집마저 없어져서 도착해도 국밥 한그릇 먹을 수 없더라도, 제가 찾는 불빛은 김천역 광장 옆에 있는 게 아니라 길 위에 있을꺼니까요.
예전에 박상우 선생님께서 가르치는 소설창작커뮤니티에 몇 개월 다닌 적 있었는데, 거기서 기성작가들을 가끔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거기 발들이기 직전에 김연수 작가가 다녀갔다고 하더군요. 그전엔 알지도 못했던 작가였는데 박상우 선생님께서 섭외했다는 것 때문에 관심갖었던 게 시작이었죠.
그러다 그의 작품을 하나 둘씩 읽으면서 그사람이 부러워지더니 나중엔 제가 뭘 해도 저사람 같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질투가 나기까지 했더랬죠. 물론 제가 글쓰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뭘 해도 저사람만큼은... 아무리 잘나고 공부 잘하고 돈 많은 놈도 별로 부러워하지 않을만큼 삶에 만족하는 편인데 정말 드물게 느껴본 질투였죠.
오늘 조선일보에 김훈작가의 인터뷰기사가 있습니다. 두페이지나 차지하는 인터뷰기사를 읽으면서 짧막한 문장문장 하나하나 곱씹어 읽으며 몇 번이나 싸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나 몰라요. 그러다 김연수 작가를 떠올렸죠, 내가 만족하며 살아도 저사람만큼은 할 수 없겠다 싶은 김연수에 비하면 김훈은 어떤 사람일까. 사실 김연수와 비교해서 생각하질 않았을 뿐 그전에도 이런 생각은 했었고 그래서 바로 답이 나왔지요.
예전에 김훈의 자전거여행을 펼쳐들었다가 그냥 덮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책은 여전히 그렇게 들춰보지 않은 채로 책장에 꽂혀있죠. 몇 페이지 읽다가 알았거든요, 제가 이걸 이해하기엔 아직 덜 컸다고. 지금은 읽어도 바보 같을 뿐이겠지만, 생각 좀 많이 하고나서 읽으면 지금보다 더 재밌을 것 같았죠. 그때 생각이 김훈 작가를 만나서 이야기 할 기회가 있다면 저같은 사람은 인사 말고는 아무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뼈에 살을 질펀하게 처발라야 하는 사람이 뼈대만 남기고도 그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사람과 말이나 통할까 하는 거죠.
오늘 조선일보의 김훈작가 인터뷰기사 바로 아래엔 김연수 작가의 김훈에 대한 짧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 그걸 읽고 또 한 번 김연수를 질투하게 됐습니다. 김연수는 김훈 작가와 술마시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나봅니다. 거기까진 공감할 수 있는 기쁨인데 제가 질투하는 건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거죠. 전 책장도 넘길 수 없는 작가와 말이 통한다니...
처음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김연수가 번역한 책이기 때문이다. 새 책을 기다렸으나 새 책이 나오질 않아서 그가 쓴 글 대신 그가 선택한 글이라도 읽자는 것이 첫번째 이유다.
두번째 이유는 책 맨 마지막에 나오는 옮긴이의 말 중에 적혀있다.
"현대 사회가 말하는 편리함은 사실 편리함이 아닌 것이다. 시간을 단축시켜준다는 컴퓨터는 오히려 시간을 더 빼앗았다. 자동차와 전철의 등장은 통근거리를 최대 두 시간까지 늘렸다. 아파트 생활의 즐거움은 적어도 10년간에 걸친 융자금 납부라는 올가미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우리는 융자금을 갚고 노후를 보장 받기 위해 평균적으로 매일 한 시간씩 멍한 정신으로 출근하고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도 또 저녁이면 원치 않은 술자리에 나갔다가 늦은 시간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이혼 가정은 늘고 아이들은 길거리를 방황하게 된다. 이건 분명히 미친 짓이다."
평상시 내 생각을 그대로 적어놓았더라. 딱 저만한 생각을 가지고서 이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책을 읽는 내내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너무나 급진적으로 현대 사회를 외면하는 아미쉬들 역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현실적인 대안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역자의 글 따위는 안 읽었는데 책을 덮기 전 김연수의, 진짜 김연수의 '옮긴이의 말'을 읽었기 때문에 기분 좋게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책 내용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구절은 안타깝게도 책의 내용이 아니라 책에 인용된 시 "A Place in Space" 의 한 문장이다. 뭐 그것도 책 안에 있으면 책의 내용이긴 하겠다.
"한때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갈 것이라 여겼던 그 행성이 고작 우리 두 손 안에서 터지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