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듣는 음악이 싫어졌다. 그건 이동중이 아닌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은 공연장에서 듣는 게 가장 즐겁고 혹은 오디오 앞에 앉아서 음반 뒤집어가며 듣는 것이지, 이어폰으로 세상과 나를 단절시켜놓고도 모자라 딴짓해가면서 듣는 음악은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그 둘은 최선과 차선 또는 선택과 타협의 대상도 못 되기 때문에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은 그냥 안 듣게 되는 음악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로인해 불행은 시작됐다. 가만히 앉아 음악을 즐길 여유가 없어지자 수천장의 소장 음반들은 단지 장식품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이사를 가야 할 때면 그 장식품으로써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공간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그렇게 지켜온 장식품을 바라보는 느낌은 멍청한 만큼의 뿌듯함이기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대한 괴로움이었다. 그나마도 이제 이사짐 박스 안에 잠재운 채 고국에 두고 이렇게 멀리 와버린 것까지, 불행이라고 정의하기에도 창피할만한 욕심과 후회 그리고 미련의 뒤안길.
정말 생각지도 못한 행복감이 찾아왔다. 알기나 했나, 저 작은 USB 스피커와 80GB 만큼 셔플링할 수 있는 아이팟이 나를 밖에 나갔다가도 얼렁 들어오게 만들고 방에서 못 나가게 붙잡아두기까지 할 수 있다는 걸. 언제나 엘범 단위로 음악을 듣곤 했었는데, 솔직히 왜 "셔플" 기능 따위가 존재해야 하는지 이해 못했었는데, 셔플로 온종일 틀어놓는 음악이 이렇게 좋을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