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 꽤 잘 삽니다. 그냥 돈만 많아서 잘 사는 정도가 아니라 남의 나라 구경도 갈 줄 알만큼 잘 삽니다. 랜즈알 하나 제대로 못 깎는 나라에서 카메라 보급률은 어찌나 높은지,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의 최신 장비들로 무장하지 않은 여행자가 없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가족이 여행가면 애, 엄마, 아빠 한대씩 카메라를 가져가는 게 한국사람들입니다.
그런 한국여행자들이다보니 여행가면 사진을 엄청 찍어댑니다. 메모리가 허락한다면 아마 출발에서 도착까지 동영상으로 남기려할지도 모릅니다. 인천공항샷, 기내샷, 현지공항샷, 호텔샷, 화장실샷, 식당샷, 관광샷, 셀프샷, 샷샷샷… 정말 엄청납니다. 그러다보니 누가 요새 여행경험을 글로 적나요? 사진이 글자보다 많을 게시글도 꽤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직접 갈 필요도 없이 왠만한 곳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다각도의 사진들로 구경해도 되겠다 싶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거의 모든 유명관광지들은 인터넷에서 앞/뒤/옆모습들을 보고싶은 방향에서 확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거의 먹어본 거나 진배없는 느낌을 주는 솜씨좋은 음식사진들까지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냥 줄줄줄 스크롤하면 남들이 돈들여 시간들여 다녀온 여행을 몇 분만에 손가락으로 답사하는 샘이 됩니다. 물론 갈수록 사진찍기가 귀찮아지는 여행을 즐기는 저는 그렇게 보고도 직접 가보거나 이미 가봤더라도 또 갈 생각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뭐가 문제라고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지 모르겠는 사람들을 위해 한 문장으로 지금까지를 요약해드리자면, 그렇게나 여행사진들이 우리 주변에 차고 넘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남들이 감사히 공유해주신 여행사진들을 보면서 불편해질 때가 간혹 있습니다. "저들에게 초상권이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 때 바로 그렇습니다. 저는 기계적 흥미 때문에 가지고 있는 이런저런 카메라가 한 열대쯤 되는데, 사람은 기계만큼 흥미가 없는 건지 왠만큼 흥미로운 순간이거나 일부러 연출한 상황이 아니면 인물 사진은 거의 찍지 않습니다. 의식하고보면 어디에서건 거의 모든 인물 사진은 피사체에 대한 도촬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죠. 제가 전통무예를 하는 곳에 관광객들이 와서 사진을 찍을 때도 저는 같은 이유로 찍지 말라고 부탁하거나 강하게 거부하기도 합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저에게 이유를 물어볼 때면 "I have a privacy" 라고 대답을 하죠. 물론 같이 전통무예를 즐기는 다른 분들중엔 그렇게 사진 찍히기를 즐기거나 별로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터넷 어디선가 멋대로 걸려진 본인 사진을 걱정하는 태도야 그렇게 저마다 다를 수 있는데, 더이상 가족엘범으로 들어가지 않고 인터넷을 쉽사리 떠돌게 될 그 한 컷을 저는 절대 허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이 정중히 허락을 구한다 해도 한국이 참 까칠해졌다고 소문날지언정 앞으로도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참 보기 좋은 여행사진들이 인터넷에 많습니다. 여행자 본인의 연출되지 않은 어울림 순간을 찍은 사진들인 경우 저는 가장 즐겁고 순수하게 감상하게 됩니다. 여행자 본인이 사진 속에 있건 없건 그것이 현지인들과의 자연스러운 어울림 속에 나온 사진인지 아닌지는 누구나 쉽게 분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현지인들과의 어울림 순간일지라도 본인 얼굴만 모자이크한 채 게시한 사진을 발견하면 "씨발" 하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연출이거나 도촬이더라도 현지인들의 이색적인 모습들을 담은 사진들도 꽤 즐겁게 바라보곤 합니다. 하지만 정도를 따지지 않고 저건 도촬이거나 혹은 카메라 든 이방인의 폭력임을 언제나 조금씩은 생각합니다. 피사채가 웃고 있더라도 그걸 내맘대로 어딘가에 걸어놓는 순간 그건 작은 폭력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행지에서 (특히 인도에서) 현지인들이 사진 찍힌 후에 돈을 요구할 경우 돈을 줬습니다. 그렇게 명분을 사고나면 제 행위에 대해 편리한대로 사면을 받는 샘이고, 이후 내맘대로 어디에 게시를 해도 마음이 편해질지도 모르니까요. 어딜 가나 현상 맡기기 위해 억지로 한 롤 간신히 채워내곤 하는 여행사진의 대부분 혼자 보고 말기 때문에 게시하지도 않을 거면서 일단은 그렇게 합니다. 생각이 그렇다보니 어울림 사진을 얻지 못할바에는 사람 사진을 찍으려는 생각 자체를 거의 하지 않게 됐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혹은 욕심에 따라서 자의적인 예외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카메라가 흔한 내가 그들을 대함이 카메라가 없는 그들이 나를 대하는 것과 똑같아야겠다는 생각은 그대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