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버이 날입니다.
타국에서 부모님을 생각에 뭐라도 해드려야 겠다 싶어 인터넷으로 꽃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왕왕 이용했던 양재동화훼단지를 찾았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 간혹 찾아갔었는데 꽤 만족도가 높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치만 기억했지 이용했던 꽃집을 정확히 알진 못했고, 결국 작년에 이용했던 카드 명세까지 뒤져가며 그 가게를 찾아내긴 했습니다. 그런데 카드 명세서에 적혀있는 업체명을 검색해보니 양재화훼단지가 아니라 분당 옆 고속도로변에 있는 꽃유통센터 같더군요. 제가 보냈던 꽃은 양재동화훼단지에서 직접 만들어진 꽃다발이 아닌, 전국 꽃배달 체인을 통해 보내진 거였다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긴, 부모님이 계신 대전에 꽃을 보내면서 서울에서 꽃다발을 만들어 내려보내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죠. 그저 직접 꽃집에 가서 주문했다는 것에 스스로를 위로했을 뿐인 걸 압니다.
그래서 대전에 있는 꽃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대전에는 이미란꽃집이라고 오래전부터 꽤 유명한 꽃집이 있습니다. 제가 이용해본 적이 없으면서도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마도 지역 광고에서 많이 봤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제 어린 시절부터 각인된 꽃집인지라 처음에는 솔깃했지만, 막상 꽃배달 체인의 원조격이거나 혹은 그렇게 변질되어버린 이미란 꽃집의 이미지를 보고 마음을 돌렸습니다.
꽃배달 체인 가맹점이 아니라 그냥 꽃집을 찾기 시작했죠. 직접 인터넷지도의 로드뷰를 통해 꽃집의 실제 모습을 확인하기까지 했습니다. 서울에서 중국집 찌라시만 보고서 배달만 시켜먹다가, 알고보면 그 집은 손님접대용 홀도 없고 그냥 지하에 주방만 차려놓고 배달만 하는 가게인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런 집들은 간판만 바꿔가면서 영업을 하기 때문에 서비스 마인드는 커녕 위생관리 같은 것도 기대할 수가 없죠. 꽃집도 똑같습니다. 음식 자체보다 배달에만 전념하는 꽃에 편리함 이외의 의미가 담길 수 있을까요?
저는 꽤 오랜 시간을 들여 검색과 (대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드물게 적혀있는 리뷰를 보면서 결국 타샤의 정원이라는 가게를 찾았습니다. 사실 다른 가게들에 뭔가 흠을 잡아가며 탈락시키다가 타샤의 정원이 마지막으로 남았던 거지, 어차피 인터넷으로 진열된 꽃을 주문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그런식의 선택이었던 겁니다. 다만 타샤의 정원 카네이션에는 한가지 제 마음에 들면서 장점이 되었던 게 있는데, 제가 주문한 카네이션 상품에는 카네이션 두 송이를 부록으로 준다는 상품 설명이었습니다. 자식을 타지에 둔 부모님께 꽃다발만큼이나 가슴에 꼽고 일부러라도 밖에 나갈 수 있는 카네이션 송이에 의미를 두게 되었던 거죠. 어차피 인터넷으로 주문한 거 꽃 상태를 보장할 수 없으니 최선은 못되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싱싱한 꽃이 풍성하게 갔으면 하는 마음에 선택한 상품에 2만원을 추가로 결재했습니다. 그렇게 꽃이 어버이날 하루 전날 도착하도록 해놓고 저는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참 편리하죠, 어차피 인터넷으로 사진보고 주문하는 거 뭘 해도 도진개진일텐데, 그렇게 해놓고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니......
조금아까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제가 보낸 꽃에 무척 기뻐하고 계셔서 저는 다시 만족스러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꽃 상태를 확인 안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화면을 통해 꽃다발을 확인했죠. 다행히도 꽃은 싱싱하고 풍성하게 배달되었고, 짐작하건데 꽃집에서 일하는 분께서 직접 가져다 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카네이션 두 송이를 빠뜨렸더군요. 그로써 제가 부여했던 의미가 무너진 샘입니다. 다행히 부모님께선 멀리 사는 제가 보낸 꽃다발에 만족하셨지만, 자식 키운 부모로써 자랑스럽게 가슴에 걸 훈장을 드리지 못한 제 마음은 무너졌습니다.
물질사회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값어치과 가치를 따로 생각하지 못 하고 있어 제 마음을 오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빼빼로데이에 빼빼로 팔듯 어버의날 되면 편의점에서도 파는 카네이션 두 송이 값을 손해본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에 마침 메일유업의 떠넘기기식 납품과, 편의점 가맹주들에게 발주품이 아님에도 제품을 할당하는 대기업들의 횡포가 기사화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편의점에서 편리하게 사는 빼빼로나 카네이션과 꽃집에서 만들어 파는 꽃의 가치를 달리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벽에 열리는 꽃도매시장에서 직접 꽃을 가져오고, 배운 기술로 정성스럽게 꽃을 다듬고 이쁘게 포장해서 꽃마다 담긴 의미에 따라 손님들에게 꽃을 파는 꽃집이 이제는 모두 편의점처럼 운영된다고 생각해봅시다. 꽃은 아마 꽃공장 같은 데서 상대적으로 험하게 다뤄진 채로, 꽃의 싱싱함보다는 어떻게 하면 유통기한이 다 지나 시들시들해진 꽃들을 잘 숨겨 포장하거나 적당한 가격에 소비자들에게 팔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 담긴 채 우리들 앞에 진열될 겁니다. 꽃을 좋아해서 꽃집을 열었거나 꽃꽂이를 배운 아름다운 꽃집아가씨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겠죠. 그대신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도 보장 받지 못한 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비정규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저는 제가 편리하게 선택한 타샤의 정원이 그런 가게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혹시 삶의 피곤함에 찌들었거나 반대로 여유롭게 살만큼 살게 되어 더이상 초심을 지키고 있지 않더라도, 부디 당신들이 꽃에는 꽃말과 함께 의미가 담겨있고 그걸 통해 사람들끼리 마음을 전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 하는 참 순진한 바램이죠. 그래서 저는 타샤의 정원에 글을 남겼습니다. 이미 날짜가 지나 카네이션은 의미가 없어졌으나, 어머니께서 장미꽃을 좋아하시니 단 두송이라도 정성껏 포장해서 가져다 드리면 제 마음이 나아질 것 같다고요.
우리가 너무 흔하게 "안 사면 그만"이라고 하고 또 "안 팔면 그만"이라고들 하죠. 만약 타샤의 정원에서 제 상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달래준다면 저는 앞으로도 저 편한대로일지언정 꾸준히 부모님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가게를 찾았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 있게 됩니다. 혹여 타샤의 정원에서 안 팔면 그만이라 생각한다고 해도 제가 뭘 어쩔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 이미 아는 것처럼 그런 걸 기대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니 실망하진 않겠지만, 우리가 꽃 몇송이에 담아 전하는 마음을 한번 더 기대해봅니다.
우리들이 꽃을 보면서 웃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