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2013. 2. 12. 23:55

계속 흐린 날의 연속이었다가 날이 쨍하자 몸 좀 말리자고 드래곤스 백 트레일(Dragon's back trail)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뭔가 잘 못 알고 간 것 같아 다녀와서는 다시 검색을 해봤는데요, 역시 쓰레기 바다인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가 저를 오해하게 만든 거였더군요. 이 글이 트랙백하고 있는 글은 그나마 가감 없이 사실대로 쓴 편이고요, 그밖에 다른 글들은 대게 인터넷에서 본 내용들을 옮기다가 말 하나씩 빠뜨리면서 드래곤스 백 트레일을 히말라야쯤 되는 곳으로 만들려는가봅니다.


블로그들에 씌어진 내용들을 보면 짧은 홍콩 여행중에 반나절 이상을 드래곤스 백 트레일에 할애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일부러 드래곤스 백 코스 때문에 일부러 홍콩에 왔다는 경우도 있더군요. 한국 등산객들의 특징대로 복장과 장비를 완벽히 착용하고서 말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된 이유이면서, 다녀온 후에 의미부여 하기 위한 말이기도 하고, 블로그마다 서로들 퍼나르며 빠지지 않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타임지 선정 아시아 최고의 하이킹 코스" 


오늘 다녀온 저는 이 말이 뭔가 이상해서 잘못된 걸 꼬집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찾아보니 04년 11월 22일 아시아판 타임지에 커버로 "The Best Urban Hike in Asia" 라고 소개되었더군요. "Urban" 이 빠진 건 상당히 큰 차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소개된 내용에도 가장 큰 장점으로 도시에서 상당히 가깝다는 점을 쓰고 있죠. 그걸 감안해오늘 그 길을 걸으면서 대체 그 기사를 작성한 사람은 얼마나 많은 하이킹을 다녀보고 감히 그래곤스 백 트레일을 아시아에서 최고라고 쓸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기자한테 뭘 기대하겠어요, 더구나 아시아판 타임지한테. 사진기자가 찍어온 사진들 보면서 쓴 기사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 소감으로 드래곤스 백 트레일은 한국의 동네 뒷산 정도입니다. 물론 동네 뒷산이라고 하기엔 코스가 긴 게 사실이지만, 버스가 거의 산의 능선까지 날라다주고요,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약간만 올라가면 그 이후부터는 거의 평지입니다. 중반부터는 능선을 따라 가는 게 아니라 거의 평행으로 계곡을 가로지르며 닦여진 흙길을 지나게 되고, 후반에는 시멘트 길도 나옵니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코스라는 게 제게는 가장 큰 감점요소 입니다.


등산의 개념보다 운동으로써의 달리기, 자전거 타기, 또는 피크닉에 더 적합한 길입니다. 홍콩 사람들은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한국의 등산로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내리막 길을 못 걷더군요. 그걸 감안하면 한국 사람들에게 드래곤스 백 트레일은 오솔길 정도의 난이도일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양손에 지팡이 짚고 등산곡에 배낭까지 무장을 하는 건 분명 뭘 잘못 알고 온 거죠.


홍콩에 관광온 분들은 여기 가지 마세요. 풍경이 멋있다고는 하지만 며칠 안되는 여정을 할애하기엔 한국사람 성격상 신발부터 모자까지 챙겨야 하니 아까운 시간과 무거워진 짐 생각하면 정말 아까운 일입니다. 혹시 한 열흘정도 체류한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서쪽에 해변 산비탈에 지은 아파트들 보이고요, 동쪽에 조그만 부자동네 하나랑 골프장 하나 보이고요, 그리고 끝에 아주 작은 해수욕장 하나가 보게 되는 풍경의 전부 입니다. 히말라야 같은 데 가려고 비행기표 사는 건 이해가 가지만 심심하게 2,3시간 걷는 것이 홍콩을 찾는 이유라면 인터넷 블로그들 너무 믿지 말고 다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사람들이야 이미 다녀왔으니 좋았다고 의미부여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Posted by Lyle
Every little thing2012. 9. 5. 21:53

나역시 냉소적인 사람이다. 아마 아버지에게 유전 또는 전염되었을 것 같은 나의 냉소는 어렸을 때 나를 고민에 빠지게 했고 괴롭게 만들기까지했다. 그런데 여전히 그런 냉소를 가지고서도 나이먹을 수록 조금씩 편해지는 것은 어렸을 때보다 신중해지고 부드러워졌기 때문인 한편, 나의 냉소를 나이먹은 논리로 뒷받침할 줄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성숙한 논리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생각이 모자르고 표현도 잘 못하고 그래서 헛점을 더 드러내는 사람들 앞에서 꿀리지 않아서일 거다.) 그리고 또한 믿고 싶은 가치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가치를 남에게 전파할 수 있을만큼 성장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어떤 가치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나의 냉소는 내가 믿는 가치들에 반하는 것들을 향해서만 작용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세상에 냉소할 꺼리들이 참 많아서 여전히 나는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내 자신도 그렇다보니 나는 냉소적인 태도 때문에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는데도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른 채 가끔씩 접하게 되는 허지웅을 싫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다만 허지웅의 글에서 자신의 냉소와 상대방의 진심에 대한 고민을 읽었을 때 그가 냉소하지 않는 가치는 어떤 것일지, 존해하기는 하는지 궁금해졌다.

 

허지웅이 찾아가서 격었다는 나이로비의 난민촌은 허지웅에게 진실일 뿐이다. 같은 아프리카 대륙이라고 퉁쳐서 말하자면 내가 격은 난민은 달랐고, 동정은 그들에게 상품이었다. 또 인도의 한 난민촌에서는 상품인 정도를 넘어서 동정을 강탈당해야 하는 상황도 격어봤다. 허지웅의 키베라에서의 생각을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상대적이라는 거다. 어떤 아이는 돈을 바라고 어떤 아이는 온기를 바랬을 뿐 진심은 한가지가 아니다. 어떤 여행자는 동정을 배풀어 즐거움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를 찾기도 하고, 어떤 여행자는 마음 편하기 위해 간 인도여행에서 왜 이런 불편한 마음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인도 여행을 후회하기도 했다. 손을 내미는 사람도, 그 손에 무얼 쥐어주는 사람도 각자의 진심이 있는 거다.

  

누군가 자신의 진성성을 호소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의 진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진심은 믿고 싶은 사람에게만 설득력을 갖는다. 그건 일종의 희망이라고 하겠다. 내가 믿고 있거나 믿고 싶은 가치에 설득당하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성에 대한 호소가 냉소의 대상이 되는 건 상대방의 진심의 반대편에 서있을 때 차라리 의미를 갖게 되지, 맹목적인 냉소로 대하는 것은 잡아달라며 내민 손을, 또는 잡아주려고 내민 손을 뿌리치는 것과 같다. 손을 잡아주거나 먹을 걸 쥐어주거나의 문제가 아니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