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 over Beethoven2014. 10. 1. 01:25

내가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이었을 무렵, 부모님께서는 심심찮게 해외로 떠나셨다. 아버지께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으셨던 반면 어머니께서는 좀 안타까워하셨던 것 같다. 당신들 안계실 때 집에서 마구 소리지르다가 내가 김종서도 되고 김경호도 되더니 심지어는 신효범도 된다는 걸 발견하는 등 나름 유익하고 재밌는 시간이었다는 걸 당신들께서는 모르신다. 이건 앞으로도 비밀이어야 하는 것이, 당신들께서 나를 안타깝게 여기신 건 기실 당신의 존재감을 키우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나를 위해서도 당신을 위해서도, 기대에 걸맞게 무척 불편하고 쓸쓸한 시간들을 보낸 것이어야만 한다.


사실 그렇게 쓸쓸하게 보낸 척했던 시간에 대한 보상이 있었다. 바로 음반과 담배인데, 떠나시기 전에 CD 또는 VHS 목록을 적어드리곤 했다. 한국에서는 하나도 구할 수 없는 것들로 적어드려도, 한국에서는 음반가게 자체를 가보질 않은 분들이었음에도 해외에서는 아무 음반점에서는 그냥 흔하게 막 건져지는 물건들이었던지 적어드린 것 중 절반은 가지고 오셨다. 담배는 감히 부탁한 기억이 한 번도 없는데, 어머니께서 항상 "이것만 피우고 끊어라." 라고 하시거나 혹은 건강에 덜 헤로워보인다며 "Mild Seven"을 보루째 사다주시곤 했다. 담배를 피우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렸지만 담배값 굳는 건 좋은 일이었다.


사운드가든의 Louder Than Live 라는 공연실황 비디오도 그때 얻을 수 있었던 물건이다. 당신께서 비행기 타고 낯선 곳에 건너가 물어물어 음반 가게를 찾아가신 후 내가 적어드린 목록을 꺼내보이시면서 무겁게 들고 돌아오셨던 것들 중 하나인데, 이제 단 몇번의 클릭을 통해 볼 수 있게 됐다. 물론 당신들께선 다행히도 세상이 그렇게 간편해졌다는 걸 나만큼 실감하고 계신 것 같진 않다. 단 몇번의 클릭이 당신들께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니까.



Posted by Lyle
Every little thing2014. 9. 21. 02:47

결국 코트니가 우승했습니다. 출연자들 사이에서도 왕따격인 그녀를 응원했던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뿐만이 아니라 준결승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레슬리 또한 아무도 좋아할 것 같지 않은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다. 물론 저는 레슬리 캐릭터를 꽤 좋아했고 코트니 캐릭터도 나쁘게 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이어서 그런지 우승자 발표 직전에 결국 2등을 한 엘리자벳의 이름을 주문 외듯 외고 있었습니다.

이게 참 다른 지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실력도 있어야 함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친화력도 함께 갖춰야 하죠. 미국적 시각과 한국적 시각은 그야 말로 다름의 문제이지 어느 한쪽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할 차이는 아닙니다. 하지만 상업 방송의 컴피티션쇼에서 너무나 두드러지게 사람들이 싫어하는 인물을 수위에 오르도록 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문화적 배경이 긍정적으로 보이는 면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반면 우리에게 능력과 함께 너무 지당하게 요구되는 친화력이란 기실 필요에 의해 요구되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길러지는 것이며,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는 건 씁쓸한 일입니다. 

이 두가지 면을 종합해서 뒤집어 생각해보면 친화력 따위 필요 없이 능력만 있으면 장땡인 거냐고 미국적 시각에 반문해볼 수도 있지만, 가면보다 차라리 솔찍함이 더 나은 것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해보니 제가 왜 레슬리를 좋아했고 우승자에 대한 다른 출연자들의 왕따 시선에 동조하지 않았는지도 저 스스로에게 한꺼번에 설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솔찍한 그들인가!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