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 over Beethoven2016. 11. 3. 11:12

며칠전 잠에서 깨어 핸드폰을 켜니 구글뉴스에 그의 사망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잠들기 전 그에 대한 최신 뉴스를 찾아봤던 터라 구글신은 짓궂게도 내가 잠든 사이 영원히 잠들어버린 그의 소식을 찾아내 내게 알린 것이다.


그 어떤 뮤지션의 죽음이 이정도의 아쉬움을 남겼던가. 좋은 음악만 만들어준다면 그들이 마약 좀 하면 더 잘된 것 아니냐던 나로써는, 그동안 많은 뮤지션들의 부고를 접하면서 거의 항상 앞으로는 그들의 과거만 쫓으면 될 뿐 미래를 쫓느라 신경쓸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하기 일수였다. 하지만 Roland Dyens 은 다르다.


오늘은 이 연주를 들으면서 뜬금없이 라마누잔 이라는 천재 수학자가 떠올랐다. 그는 복잡한 수학문제를 신께서 주신 아이디어로 공식을 만들어 풀어내지만 정작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수학적 지식이 없었다고 한다. 범인들로써는 잘 이해가 되질 않는 상황이지만 그는 그냥 그걸 직관적으로 알아내는 그런 수학자였다.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어느날 그는 택시 번호 1729 를 보고는 아주 흥미로운 숫자라고 말한다. 두 정수의 세제곱의 합의 형태로 서로 다른 두가지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숫자들 중 최소값이라는 것이다. (1729 = 1^3 + 12^3 = 9^3 + 10^3) 그런 그를 보고 동료 수학자는 모든 정수는 라마누잔의 친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말인 즉 모든 정수 하나하나에 대해 라마누잔은 그 특성을 다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는 뜻이다.


음악에서 Roland Dyens 가 바로 그런 독특한 천재 였던 것 같다. 혹자는 재즈 뮤지션들 중에서 Egberto Gismonti 나 Ralph Towner 가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클래식기타리스트인 Roland Dyens 는 역설적이게도 재즈 뮤지션인 그들에게 없는 직관적 천재성을 갖고 있다. 계산하거나 연습하지 않고도 그냥 그 음이, 그 감성이 저 악기에서 나올 수 있다는 걸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듯한 작곡, 편곡, 혹은 연주를 하는 것.


천재들은 단명하더라. 라마누잔 역시 마흔을 못 넘겼다. 61세에 타계한 그가 너무 짧게 느껴지는 아쉬움은 그다지 많은 족적을 남기려 하지 않았던 바람 같은 뮤지션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언제 또 후 하고 불어지나칠까 우린 더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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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little thing2016. 11. 2. 12:58

애플PC를 손에서 놓은지 여러 해가 지났다. 새로운 맥북프로가 나오면서 화려한 데스크탑환경이나 IDE 에 의존적이지 않은 *nix 기반 개발자들로부터 애플은 더욱 외면당할 게 뻔해보인다.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래도 수많은 사용자들이 여전히 쓸텐데...


3년전부터 사용해온 Dell XPS 13, 나뿐만 아니라 리누스 토발즈 역시 사용하고 있고 그의 딸에게도 쓰라고 선물했다는 이 랩탑이 발매된 이후 꾸준히 맥북프로의 대항마로 비교되어왔다. 단순히 개발자PC로써만 아니라 일반 사용자를 위한 PC로써도 말이다. 최근 새로운 맥북프로가 나오면서는 이미 나와있던 Dell XPS 15 가 대안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맥OS 대신 리눅스로 옮겨갈 조짐도 보이는 듯하다.[각주:1]


개발자들에게 맥북을 대신할 리눅스 랩탑으로 Dell XPS 15System76 을 추천하고 싶다. 사용중인 XPS 13 9333 이 하스웰 프로세서의 배터리 소모속도와 노후된 배터리의 용량이 불만이긴 하지만 이미 어댑터를 3개나 가지고서 큰 불편없이 사용중임에도 XPS15 와 System76 은 너무 유혹적이다. 둘 다 GeForce GTX 그래픽카드를 가지고 있어서 CUDA 를 돌릴 수도 있어 GPU 연산용 PC 를 별도로 사려고 준비중인 상황에 더욱 더 그렇다.


리눅스는 최근에 나온 16.04 LTS 나 16.10 말고 14.04 LTS 가 차라리 났다. 16.04 가 14.04 의 문제점을 몇몇 해결한 것들도 있지만 그 자체도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으니 차라리 14.04 가 개발에 성가심을 덜 준다. 16.10 도 Unity 나 Gnome 어플리케이션 업그레이드 위주인데다 4.8 커널 업그레이드로 추가로 사용할 수 있게된 디바이스들이 개발자들에게 얼마나 매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리눅스를 사용할 꺼면 스트레스의 원흉이 되는 Unity 와 Gnome 데스크탑환경을 피하는 게 좋다. 물론 데스트탑환경이 최대의 강점인 맥OS 에서 이사왔다면 리눅스에서 Unity 나 Gnome 사용을 피하라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조언이 될 듯. 여전히 불편하고 이쁘지도 않겠지만 데스크탑환경 없이는 리눅스를 못쓰겠다면 차라리 xfce 같이 가벼운 걸 사용하길 추천한다. 시스템 리소스를 잡아먹고 자잘한 문제들을 발생시키며 사용자에게 여러가지 성가신 노력을 유발시키는 원흉 Unity 와 Gnome 데스크탑환경만 없어지면 개발자에게 리눅스는 거의 완벽하다.



  1. 맥북프로2016 vs XPS 15 : http://www.trustedreviews.com/opinions/15-inch-macbook-pro-2016-vs-dell-xps-15 [본문으로]
Posted by Lyle
Every little thing2016. 10. 18. 15:22

2002년에 독일에서 날아온 악기가 Hiscox 케이스에 담아져 왔습니다. 그때는 "오, 이렇게 튼튼한 케이스가!" 하면서 반겼죠. 당시만해도 기타의 하드쉘케이스는 나무집성판재로 만들었거나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케이스가 일반적이었으니 압축폼을 사용해서 (비교적) 가벼우면서도 여러명의 장정들이 올라서도 안전하게 보호될만큼 튼튼하다는 Hiscox 케이스는 믿음직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당시 악기가 박스 포장도 없이 hiscox 케이스에만 담긴 상태 그대로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그랬음에도 악기에 아무런 손상이 없었던 것은 케이스의 성능을 말해주는 일이기도 했지요. 지금 와서는 그렇게 대범했던 제작자가 참 어의없기도 하고,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제도 저 가격대의 케이스 중에는 Hiscox 케이스가 가장 좋은 옵션일 꺼에요.


그런데 오래 사용하다보니 케이스에 엉뚱한 문제가 생기네요. 기타 넥 아래에 위치하게 되는 물건들 담는 수납부 내부의 벨벳 천이 구조물에서 분리되어 너덜너덜해집니다. 그냥 분리되기만 하면 접착제 같은 걸로 붙여볼텐데, 너덜너덜해진 부분에서 고운 입자의 모래 같은 것들이 떨어져나와서 수납부 안에 흩어져 돌아다니네요. 물로 닦아낼 수 없는 곳이라 청소가 곤란하고 또 어떻게든 닦아낸다 해도 계속 더 생길 게 뻔해보여요.


단순히 오랫동안 많이 여닫게 되는 부분의 접착력이 약해졌기 때문일 수 있겠죠. 어쩌면 수납부 안쪽이 습기를 먹어서 발생한 일 같은데, 습도 보충제를 넣어뒀을 때 습기를 먹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습도 보충제를 기타에 꼽아놓거나 기타 가까이에 놓지 수납부 안에 가둬둘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 일이 있었다손 친다 해도 어쩌다 한두번 발생했던 일일텐데, 좁은 공간 안에서 그정도의 수분 유출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다니...


어쩌면 Hiscox 케이스에 특화된 문제가 아니라 다른 케이스에서도 습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또다른 Hiscox 케이스를 포함해서 기타 하드쉘 케이스가 몇개 더 있는데 모두 다 한 곳에서 비슷하게 관리된 상태에서 바로 이 Hiscox 케이스에만 이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른 케이스들과 다른 게 있었다면 습기 보충제 넣어서 관리한 악기는 이 케이스에 담겼던 기타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점을 고려했을 때 습기보충제를 케이스 수납부에 넣어서는 안되겠습니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16. 5. 15. 15:00

길 가다가 포스터를 봤는데, "원스", "비긴 어게인"에 이어 존 카니 감독이 세번째 음악영화를 개봉한다고 한다. 이 감독은 음악을 소재로 하지 않고서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걸까? 두번째까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복제만 반복하는 감독의 세번째 영화를 볼 생각은 없다.


아뿔싸, 그러고 며칠 후 실수로 영화 "곡성"을 봐버렸다. 포스터나 홍보물에 나홍진 감독의 또하나의 자극적인 폭력물 또는 공포물이라고 써줘더라면, 이런 영화를 15세 관람가라고 사기 쳐놓지만 않았더라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쉬신 나오는 공포물이라도 이런 저질 공포물은 사양하겠다. 관객들을 공포스럽게 만드는 것과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은 수준 차이가 많이 난다. 이 영화는 관객들을 어두컴컴한 유령의 집에 몰아넣고 갑짜기 뒤에서 소리를 지르는 식으로 깜짝 놀래키기의 연속일 뿐이고, 자극적인 죽음과 분장으로 관객들을 거북하게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람들이 블로그 같은 데 맛집이라고 가는 식당에 가보면 막상 맵고 짜고 단 음식들 뿐이더라. 영화 곡성은 블로깅 잘 된 맛집에 다름 없다.


시나리오의 개연성도 없음에 대해서는 천우희의 역할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배역의 행동에는 아무런 동기부여가 되어있질 않다. 그 반대편에서는 그냥 악마라는 설정이면 충분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럼 천우희는 천사인 건가? 아하, 그걸 이제 깨달았군! 천우희가 천사라고 하면 말이 좀 되는 것 같다. 황정민이 언제부터 악마가 되었는지도결말에서 관객에게 "속았지?" 하기엔 억지스럽고 두루뭉술한 설정이다. 혹은 처음부터 악마였다면 왜 악마에 대항해서 살수를 날렸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혹은 악마가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카메라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변명꺼리라도 미리 만들어놓거나. 끝에 곽도원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애매하게 해놓는 것도 이젠 짜증스러운 클리쉐가 됐다.


곽도원과 장소연의 캐스팅에도 그 배우들의 개인적인 사연 때문에 불만이 있다. 쓸 데 없이 긴 영화에 그 둘의 불필요한 정사씬이 나오고 그 정사씬을 아이가 봐버렸다는 내용도 필요 없으면서도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였다고 본다.


이런 영화가 칸느 영화제에 초청됐단다. 그러고보면 칸느 영화제에 초대되는 한국 영화들의 공통점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맵고, 짜고, 달고.



이 영화는 그냥 황정민이 악마다 하면 더이상 볼 이유가 없어지는 자극적인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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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can work IT out2016. 4. 14. 14:54

이틀 전에 19대 국회의원 의결 성향에 대한 분석을 공개했었습니다. 정당은 빨강과(여) 나머지 파랑/초록/노랑이(야) 위/아래로 갈려있는 반면 의결 성향은 왼쪽/오른쪽으로 나뉘어있음을 보였었죠.

오늘은 어제 20대 국회의원 지역구 당선자를 19대 국회 의결성향에 그려봤습니다. 19대 국회의원들 중 20대에 당선된 사람들의 의결성향이 어느쪽일까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극 왼쪽 일부와 오른쪽 다수가 20대 국회에 재선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림에서 흐릿하게 표시된 사람들은 공천을 못 받았거나 20대 국회에서 낙선한 사람들 입니다. 출마자를 대상으로 낙선과 당선을 따지지 않고 단순히 당선자 목록을 19대 국회의원과 교집합 시켰기 때문에 각 당의 공천 성향이 상당 수 반영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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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can work IT out2016. 4. 12. 12:04

선거공보물이 도착했습니다. 모든 후보들이 낯설기만 합니다. 제가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지하여 당선됐던 후보는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질 않았습니다. 입후보한 사람들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지지하는 정당은 있습니다. 그러나 정당을 지지한다고 무작정 그 정당의 후보를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뽑을 수는 없습니다. 무조건 기피하고 싶은 정당이 있지만 가끔 보면 그 정당에도 괜찮은 입후보자가 있을 수 있

고, 반대로 지지하는 정당에도 보기 싫은 정치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하길, 국회의원을 다시 분류해보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 안에서도 친박이 있고 반박이 있다고 하듯 서로 성향이 다르고 그만큼 의정활동도 다르게 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런 성향과 의정활동 내용은 같은 정당 내 국회의원들보다 다른 정당의 국회의원과 유사성을 갖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19대 국회 의안들 중 표결이 이뤄진 것들을 취합했습니다. 데이터는 국회정보시스템, 참여연대 열려라국회, 그리고 포커 등의 사이트에서 크롤링 혹은 마이닝 했습니다. 수집한 의안 표결 건수는 총 1739건 입니다. 이중 찬성표가 330,489개, 반대표가 172,823개, 기권을 포함한 그외 표가 4,476개 입니다. 4,476개 중에는 표결에 참여한 국회의원의 명시적인 기권표도 있지만 불참 또는 결석 등도 다수 있는데, 모두 기권으로 분류했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국회의원은 292명입니다. 그런데 의안 표결 결과는 항상 292명이 아니고 또 도중에 표결 국회의원이 바뀌기도 합니다. 19대 국회 도중에 의원직을 상실한 사람들도 있고 보궐선거로 중간에 국회에 입성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의정활동을 하지 않은 시점의 표결 결과가 기권으로 분류됐기 때문에 노이즈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전체 중 작은 일부이므로 노이즈를 무시했고, 의원직을 상실했거나 보궐로 당선된 국회의원의 경우 결과에서 그 사연을 감안해서 보면 되겠습니다.


아래 그림은 국회의원별 의안 표결 결과를 찬성, 반대, 기권으로 분류해서 두개의 클러스터로 재분류한 것입니다. 클러스터링 방법은 K-means 를 사용했고 PCA 를 사용해 1739차원의 벡터를 2차원으로 줄여 화면에 표시했습니다. 각 점은 국회의원 한 명을 나타냅니다. 이 점들은 정당과 상관 없이 하나의 의안에 대해 같은 내용의 투표를 많이 할 수록 점은 서로 가까이 표시됩니다. 반대로 어떤 의안에 대해 서로 다른 내용의 투표를 많이 한 점들은 서로 멀리 표시 됩니다.


그림1. 2개로 클러스터링된 19대 국회의원 성향


파란색(cluster0)과 주황색(cluster1)은 각 군집의 중심(센트로이드)에서의 거리를 기준으로 분류된 것 입니다. 군집의 경계에 있는 점들은 분류하기 애매한 경우로 볼 수도 있고 군집의 좌우 양 극단에 있는 경우 훨씬 더 성향이 대조적인 것으로 볼 수 있죠. 그런데 이런 표결 성향은 무조건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지지 않는 걸 아래 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정당명국민의당더불어민주당무소속민주당새누리당정의당
cluster#

0 파랑

1584911075
1 주황61920440


위 표는 정당별로 파란색(황cluster0)과 주황색(cluster1)으로 분류된 수를 표시한 것입니다. 파란색 분류(cluster0)에는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속해 있습니다. 이 분류 안에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은 잘 협력하고 있는 모습니다. 또한 정의당은 한가지 성향으로만 단결되어 있는데, 이들을 진보성향이라고 레이블링 한다면 나머지 정당들의 국회의원들 상당수가 정의당 의원들처럼 진보적인 표결을 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반대로 정의당 의원이 존재하지 않는 주황색 cluster1 에는 새누리당 국희의원 중 1/3에 해당하는 44명이 포진해있습니다. 정의당의 진보적 성향에 반한 이 군집을 보수성향이라고 레이블링 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의 19명 국회의원들도 이들과 비슷한 보수 성향을 갖고 있다고 읽을 수 있겠죠.



그림2. 국회의원 성향 클러스터링 결과에 정당명과 국회의원 이름 레이블링


이번에는 각 점에 해당하는 국회의원의 이름을 표시해봤습니다. 각당의 대표색깔에 맞춰 새누리당은 빨간색, 더불어민주당은 파란색, 국민의당은 녹색, 정의당은 노란색, 그리고 무소속(11명)과 민주당(1명)은 회색입니다. 표결 성향은 좌우로 나뉘어있는데, 그 위에 당의 색깔을 표시해보니 상하로 나뉘어진 것이 흥미롭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은 거의 다 아래편에 군집했고 새누리당은 윗편으로 갈리면서 야와 여의 성향이 서로 다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혹시 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한 19대 현직 국회의원이 있다면, 그런데 그 국회의원의 성향이나 의정활동을 잘 알지 못한다면 위 플롯을 약간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해당 출마자의 이름을 찾고 그 주변에 자신이 타지역구이건 타정당이건 상관 없이 자신이 지지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눈여겨볼만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거꾸로 평소 자신이 지지하던 국회의원의 이름을 먼저 찾고 그 국회의원 주변에 어떤 의원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5. 9. 10. 13:35

아버지 머리 맡에 "대통령 박정희" 라는 책이 놓여있다. 어머니는 종편 채널에서 돌고래호 뉴스를 보시며 "또 박 대통령에게 살려내라고 하려나?" 그러신다.


그 느낌 아나, 좀비들이 득실득실 하는 곳에서 내 가족들이 감염된 걸 보는 기분. 나도 좀비가 되고 싶어진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5. 3. 25. 15:56



Posted by Lyle
her Little White Book2014. 12. 5. 17:01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鑛夫)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思索)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大統領)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김사인님의 낭독으로 처음 듣게 된 신동엽 시인의 산문시(1) 입니다. 그의 낭독을 두 번을 듣고서 한번을 읽었는데, 세번 모두 다 뭉클해졌습니다. 그러고서 이 시가 1968년에 씌어진 시라는 걸 알고, 그 시대에 이런 풍경을 꿈꾸다가 젊은 나이에 죽은 시인이 그가 살았던 만큼의 시간이 더 지나서도 그와 같은 평화에 대한 염원을 그대로 공감할 수 있는 나와 만나지면서, 그 시절 그에 대한 연민이 나에게 이입되면서 ...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14. 11. 11. 20:56

세월호 사고 직후에 트위터에서 한 뮤지션과 한 평론가와 나머지들간의 설전이 있었다. 뮤지션은 이언 이었고 평론가는 서정민갑이었는데, 논쟁은 뮤지션들의 음악적 사회참여를 아쉬워하는 서정민갑의 기고문에 대한 이언의 반론에서 시작됐다. 내가 보기엔, 뮤지션의 사회적 이슈 참여는 선택의 문제인데 그런 기고문이 참여적이지 않은 뮤지션에 대한 비난으로 비춰보일 수 있다는 걸 우려하는 뮤지션의, 속된 말로 "니가 그러면 난 뭐가 되냐" 는 싸움이었다. 그당시는 모든 사람들이 탓할 사람을 찾기 바빴거나 본인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며 슬퍼하던 무렵이었기 때문에 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설전에 주목하거나 말 한마디 보태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니 사회참여적이지 않은 뮤지션 입장에서는 세월호가 가라앉은 게 내 탓이냐고 따져묻지 않을 수 없는 거지.


얼마전에 김태춘의 "가축병원블루스" 음반을 사서 듣고 있는데 문득 그때의 논쟁이 떠올랐다. 사실 그 논쟁보다 유신시대 때 금지곡 지정하는 것에 모자라 음지로 끌고 가버렸다던 시절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는 것만 같은 이른 걱정이 먼저 엄습했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단순히 비속어나 음탕한 말들이 가사에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김태춘 같은 뮤지션이 저런 노래를 부르면 20년전에 없어졌던 사전검열제도가 다시 호출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김태춘의 음반이 나온 시점이 세월호 사고보다도 1년이나 더 이른데, 내가 좀 더 일찍 들었다면 혹시 그때의 논쟁에서 참신한 의견을 보탰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회 참여적 뮤지션들이 많아져서 그때문에 사전검열 제도가 부활면 어쩔 꺼냐는, 요즘 트랜드대로 인과관계를 뒤집은 논리로 말이다. 사전검열제도가 없어진지 꽤 됐고 이제 그랬었던 시절이 있었다며 우스개말로 추억하기도 하는데, 정작 표현의 자유가 주워졌다고 생각하면서(혹은 착각하면서) 살고 있는 이때에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음악도 함께 없어진 것을 우리가 자각하고는 있나?


잠깐동안 이 또한 시장논리 때문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어디선가 누군가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 같은 테이프를 만들어 노래부르고 있는데 팔리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내 귀까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없어진 거라고 생각하게 된 거라는 식으로 시장만능주의를 탓해보려고 한 거다. 김태춘의 음반이 1년이 훨씬 지난 시점에서 벌써 없어진 한 듣보잡 팟캐스트에 의해 우연히 발견 되면서 내가 사서 듣게 된 것 만큼 어려운 일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공장의 불빛"은 양지에서 유통될 수도 없었고 테이프를 복사해서 옮겨들었는데, 우린 클릭 두어번으로 복제해서 듣는 시절에 살고 있잖나. 아무도 그런 노래를 돈 주고 사지 않는다고, 팔리지 않으니 상품으로 진열되어있지 않다고 해서 들을 수 없게 되는 거라고 한다면, 뮤지션도 밥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런 노래를 만들고 있지 않은 거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그렇게 불법복제를 해대는 대중들중 하나이거나 배 고파가면서도 음악을 열씸히 하다가 심지어 죽기까지도 하는 뮤지션 본인일테니 거울 한 번 보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알겠지. 외면하고 싶은 거다, 나처럼, 우리처럼.


저항의 음악이 사라졌다. 이미 경찰 곤봉에 맞아죽었거나 모멸감에 자살하거나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근로자들을 노래하고 있는 음악이 있으면 좀 알려달라. 혹은 쥐새끼나 마녀를 욕하는 노래도 좋다. 곧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 모독 방지법" 같은 것도 없는 이 때 뮤지션들이 대통령을 모독할 참 좋은 기회이니, 있다면 있는 만큼 "사" 모아서 즐겨 듣다가 혹시 언젠가 금지되면 열씸히 복제해서 저작권과 모독법을 강간하리라.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4. 11. 6. 01:59

기도


나를 절망의 바닥끝까지 떨어지게 하소서
잊고 살아온 작은 행복을 비로소 볼 수 있게
겁에 질린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라 해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그런 입술을 주시고, 
내 눈물이 마르면 더 큰 고난 닥쳐와
울부짖게 하시고 잠 못 이루도록 하시며
내가 죽는 날까지 내가 노력한 것 그 이상은
그저 운으로 얻지 않게 뿌리치게 도와주시기를..
거친 비바람에도 모진 파도 속에도 흔들림 없이 나를
커다란 날개를 주시어 멀리 날게 하소서
내가 날 수 있는 그 끝까지

하지만 내 등 뒤편에서 쓰러진 친구 부르면
아무 망설임 없이 이제껏 달려온 그 길을
뒤돌아 달려가 안아줄 그런 넓은 가슴을 주소서



오래전 난 그의 가사처럼 바랬었다. 그런데 쓰러진 친구도 쓰러질 친구도 없다. 그가 했던 노래 그대로를 보여주고 영원히 가버린 그의 뒤에서 다시 한번... 혹시 앞으로 친구가 생긴다면 다시 한번 넓은 가슴을 다짐해보리라.

Posted by Lyle
Every little thing2014. 10. 3. 16:05

인터넷 포털 A사는 자살편지를 남기고 떠난 사람이나 범죄 용의자의 소재 파악을 위해 협조한 이력이 있다. 심지어 수사기관의 요청이 아니더라도 아는 사람이 위급한 상황이라며 한밤중에 고위자의 허락을 받아 내용을 봐준 사례도 있었다. 그런 협조가 잘못된 일인지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실시간 감청이 "가능"하고 "실제 있는 일"이다.


다시 말하건데 그게 잘못된 일인지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있는 일을 왜 없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옛날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그렇게 안한다거나, A사는 그랬을지 몰라도 다음카카오는 그렇게 안하고 있으니 내가 확대짐작하고 있는 걸로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A사는 법률적 근거 없이도 협조를 하는 거거나 혹은 다음카카오가 법을 어겨가면서 회원들을 보호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혹은 옛날엔 법이 그랬고 지금은 안 그래서 협조할 필요가 없거나... 웃기지마 좀, 뻔한 일을 가지고.


현안인 감청과는 다른 문제지만 개인정보의 유출이라는 큰 틀에서 묶어 생각해봤을 때, 심지어 또다른 인터넷 포털 B사는 로긴 암호가 평문으로 저장되어있었고, 통신사인 C사는 거의 전국민의 주민번호, 주소지 따위의 정보를 쉽사리 조회해볼 수 있었다. A,B,C 사들은 그랬을지 몰라도 다음카카오는 안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고, A,B,C 사들 역시도 그땐 그랬지만 지금은 안 그렇다고 할 수 있는 노릇이긴 하다. 참고로 C사는 불과 몇달전에 정보유출건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었다. 그럼 C사가 그 전에는 정보유출이 없었는데 얼마전에 또 그랬나? 그땐 그랬지만 지금은 안 그렇다 한들, 그걸 누가 믿겠어. 


내가 A,B,C사는 재직중에 그런 일들을 직접 확인했던 반면, 다음카카오에 적을 둔 적이 없어 짐작일 수 밖에 없는 이야기다. 그래도 "한다" 라고는 말 못할지언정 "안한다" 라는 말을 믿을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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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over Beethoven2014. 10. 1. 01:25

내가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이었을 무렵, 부모님께서는 심심찮게 해외로 떠나셨다. 아버지께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으셨던 반면 어머니께서는 좀 안타까워하셨던 것 같다. 당신들 안계실 때 집에서 마구 소리지르다가 내가 김종서도 되고 김경호도 되더니 심지어는 신효범도 된다는 걸 발견하는 등 나름 유익하고 재밌는 시간이었다는 걸 당신들께서는 모르신다. 이건 앞으로도 비밀이어야 하는 것이, 당신들께서 나를 안타깝게 여기신 건 기실 당신의 존재감을 키우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나를 위해서도 당신을 위해서도, 기대에 걸맞게 무척 불편하고 쓸쓸한 시간들을 보낸 것이어야만 한다.


사실 그렇게 쓸쓸하게 보낸 척했던 시간에 대한 보상이 있었다. 바로 음반과 담배인데, 떠나시기 전에 CD 또는 VHS 목록을 적어드리곤 했다. 한국에서는 하나도 구할 수 없는 것들로 적어드려도, 한국에서는 음반가게 자체를 가보질 않은 분들이었음에도 해외에서는 아무 음반점에서는 그냥 흔하게 막 건져지는 물건들이었던지 적어드린 것 중 절반은 가지고 오셨다. 담배는 감히 부탁한 기억이 한 번도 없는데, 어머니께서 항상 "이것만 피우고 끊어라." 라고 하시거나 혹은 건강에 덜 헤로워보인다며 "Mild Seven"을 보루째 사다주시곤 했다. 담배를 피우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렸지만 담배값 굳는 건 좋은 일이었다.


사운드가든의 Louder Than Live 라는 공연실황 비디오도 그때 얻을 수 있었던 물건이다. 당신께서 비행기 타고 낯선 곳에 건너가 물어물어 음반 가게를 찾아가신 후 내가 적어드린 목록을 꺼내보이시면서 무겁게 들고 돌아오셨던 것들 중 하나인데, 이제 단 몇번의 클릭을 통해 볼 수 있게 됐다. 물론 당신들께선 다행히도 세상이 그렇게 간편해졌다는 걸 나만큼 실감하고 계신 것 같진 않다. 단 몇번의 클릭이 당신들께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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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little thing2014. 9. 21. 02:47

결국 코트니가 우승했습니다. 출연자들 사이에서도 왕따격인 그녀를 응원했던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뿐만이 아니라 준결승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레슬리 또한 아무도 좋아할 것 같지 않은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다. 물론 저는 레슬리 캐릭터를 꽤 좋아했고 코트니 캐릭터도 나쁘게 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이어서 그런지 우승자 발표 직전에 결국 2등을 한 엘리자벳의 이름을 주문 외듯 외고 있었습니다.

이게 참 다른 지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실력도 있어야 함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친화력도 함께 갖춰야 하죠. 미국적 시각과 한국적 시각은 그야 말로 다름의 문제이지 어느 한쪽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할 차이는 아닙니다. 하지만 상업 방송의 컴피티션쇼에서 너무나 두드러지게 사람들이 싫어하는 인물을 수위에 오르도록 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문화적 배경이 긍정적으로 보이는 면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반면 우리에게 능력과 함께 너무 지당하게 요구되는 친화력이란 기실 필요에 의해 요구되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길러지는 것이며,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는 건 씁쓸한 일입니다. 

이 두가지 면을 종합해서 뒤집어 생각해보면 친화력 따위 필요 없이 능력만 있으면 장땡인 거냐고 미국적 시각에 반문해볼 수도 있지만, 가면보다 차라리 솔찍함이 더 나은 것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해보니 제가 왜 레슬리를 좋아했고 우승자에 대한 다른 출연자들의 왕따 시선에 동조하지 않았는지도 저 스스로에게 한꺼번에 설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솔찍한 그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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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2014. 8. 25. 02:37


라오스에 시판돈(Si Pan Don)이란 이란 곳이 있다. 시판돈은 4천개의 섬이라는 뜻이고, 그 섬들 가운데 돈콩(Don Khong;콩섬), 돈뎃(Don Det;뎃섬) 등에 여행자들이 머문다. 나는 돈뎃에서 한 여흘 남짓 머물렀고 할 말이 참 많은 곳이지만 내 주변 사람들 중 거기 가서 좋아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아서 여행지로 추천할 마음은 없다. 


문득 떠오를 때마다 그곳에 놓고 온 물건 하나가 마음을 그곳으로 돌아가게 만들곤 한다. 


깜빠이라고 하는 청년이 매일 방갈로로 찾아와 잠깐씩 놀다 가곤 했었다. 자신의 고기잡이 배를 태우기 위한 목적이 있어보였지만, 바쁘고 부지런한 여행자가 머무는 곳이 아니어서 주민들이 장사속 없이 순박하기만 하다보니 깜빠이역시 자주 찾아와도 거부감을 주지는 않았다. 낮부터 온종일 맥주를 마시다가 오줌이 차면 방갈로 발코니 밖 메콩강을 향해 지퍼를 내리고 올리기를 수차례 반복하다가 취해서 골아떨어지곤 했기 때문에 깜빠이가 놀러오면 배 타러 가자던 그에게 되려 맥주와 뱀부봉을 권하곤 했다. 그때마다 깜빠이는 시도를 해보면서도 술도 봉도 맛없어서 못하겠다던 그런 순박한 청년이었다. 여행이라기엔 그곳에서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었으면서도 그렇게 잠깐씩 찾아와 고기잡이 배 이야기를 하던 깜빠이 배역시도 일관성있게 한번도 타지 않았다. 

그 섬을 떠나던 날 섬을 나가는 배를 기다리던 중 깜빠이가 내게 와서 자기가 그린 그림이라며 내밀었다. 그러면서 내게 뭔가 선물을 교환하자고 했다. 그림은 여자 그림이었다. 벗은 것 같기도 하고 입은 것 같기도한 이해하기 힘든 그림이었는데, 내용이 뭐가 됐든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그림은 아니었고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더욱이 뭔가와 바꾸길 기대하고 있는 그에게 이미 짐을 다 싸놓은 상태에서 떠날 생각만 하던 도중에 줄만한 게 뭐가 있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얼버무려서 거절하자 깜빠이는 그냥 그림을 내게 주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떠났다. 둘둘 만 종이 그림을 덩그러니 손에 들고 배낭을 짊어진 채 배를 타러 가면서, 꽤 오랜 시간 차를 여러번 갈아타야 하는 앞으로의 여정에 손에 든 깜빠이의 그림이 거추장스럽기만 했고, 결국 깜빠이가 없는 곳에서 한 상점 테이블 위에 그림을 놓고 섬을 나왔다. 테이블에 올려놓은 걸 깜빡 잊은 것인냥 나는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었지만 걸리지 않았다.


내가 놓고온 깜빠이의 그림은 어떻게 됐을까? 가게 주인이 주워다가 버렸을지도 모르고 혹은 그 작은 섬에서 도로 깜빠이에게 돌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그림을 버리고 간 걸 발견한 깜빠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어쩌면 내가 내 기준으로 걱정하는 것과는 달리 나 다음에 만난 친구에게 다시 그 그림을 내밀면서 내게 보였던 그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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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little thing2014. 8. 19. 14:37

"교황님께서 다녀가셨으니 다 힐링 됐을 꺼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이번 일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더 강해졌으니 결국 이로운 일입니다. 아마 앞으로 자기 자식이 죽어도 이겨낼 만큼 충분히 강해졌을 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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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little thing2014. 7. 8. 22:09

제가 매일 보고 듣는 뉴스는 JTBC 뉴스9과 CBS 뉴스쇼입니다. 그외 시사프로들 중엔 가끔 정관용 교수가 진행하는 CBS 시사자키를 듣습니다. 뉴스쇼나 시사자키에서 이미 세월호 사건은 뒤로 밀려났는데, 그 두 프로가 그럴 정도면 다른 프로들이 어쩌고 있을지는 뻔해보입니다. 


그런데 뉴스9은 아직도 세월호 이슈가 탑뉴스입니다. 그러다보니 손석희 앵커는 매일 왜 그래야하는지를 이야기하면서 뉴스를 시작합니다. JTBC 에서 연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단독취재 결과들을 내면서 다른 언론들이 그 뉴스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후속보도를 조금씩 할 수밖에 없도록 견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JTBC 보도국 손석희 사장이 그 건조한 목소리 톤과는 달리 내일 죽더라도 오늘 할 말은 해야겠다는 고집으로 뉴스를 지휘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고집스러운 보도 이면에 얼마나 큰 압력들과 실질적인 문제들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을지도 상상해보게 됩니다. JTBC 보도국은 손석희 사장이 꺽이고 나면 바로 그 다음날부터 그냥 "종편뉴스"가 되버릴 게 뻔할만큼 손석희 사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지금 전국을 누비고 있는 김관기자나 여전히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서복현기자등 여러 기자들이 있지만 거목을 대신할 거라고 기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죠. 


겁도 없이 세월호 국정조사를 정쟁으로 몰아가는 걸 보면 더이상 세월호를 보고 있는 눈이 얼을 거란 걸 알게 합니다. 이제 그렇게 세월호를 감춰나가야 할 마당에 탑뉴스로 다루고 있는 JTBC가 눈에 가시 같을 겁니다. 그러니 이제껏 꾸욱 눌러보길 계속해오던 그들은 한번에 힘을 줘서 부러뜨려버리고 싶을 겁니다. 남은 11명은 이제 잊혀질만하다는 거죠.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그렇습니다. 세월호 보도를 더이상 보고 싶지 않아하는 시청자들 또한 "그들" 입니다.


최근 제가 부정적인 예측들을 하면 다행스럽게도 틀리길 두어번 반복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또한번 예측해봅니다. 손석희 사장은 부러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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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little thing2014. 4. 27. 23:58

컴퓨터란 용도에 맞게 구입해야 합니다. 이 글은 HP Chromebook 11 에 대해 단지 제 입장에서만 바라본 리뷰이므로 일반적인 활용성을 대변하진 못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어떤 용도로 컴퓨터를 사용하는지 또는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설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읽는 사람에게 필요한 내용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고, 없다면 다른 데서 더 조사를 해보셔야겠죠. 


쿨링팬 없습니다. 그래서 환기구도 없고 소리도 안납니다. 디자인면에서 잇점을 주긴 하지만 소리가 안난다는 것 자체는 큰 장점으로 작용하진 않습니다. 적당히 열이 나긴 하지만 뜨거워서 플라스틱바디를 못만질만큼은 아니기 때문에 쿨링팬이 없는 거겠죠. 


스피커가 특이한 컨샙으로 장착되어있고 소리도 상당히 큽니다. 애초에 랩탑 스피커에 좋은 소리를 기대하진 않지만 이런 특이한 컨샙이면 그 자체로 만족감을 주죠. 스피커가 키보드 아래에 있습니다. 보통은 디스플레이 패널과 본체를 잇는 부분이나, 아예 후면을 향하고 있거나 키포드 주변에 송송송 구멍을 뚫어서 스피커를 설치하죠. 그런데 HP크롬북11은 키보드 패널 바로 아래에 스피커가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키보드 키캡 주변에 빈 공간들이 있으니 굳이 본체에 작은 구멍들을 뚫을 필요가 없죠. 큰 소리와 함께 혁신적인(?) 아이디가 만족감을 주는 반면 활용성할 일이 별로 없는 건 안타까움을 남깁니다. 컨텐츠 연결이 불편하거나 제약이 있어서죠. 일단 Google Play 는 한국에서 서비스 하지 않고 VPN 꼼수를 써도 다운로드 조차 잘 되질 않습니다. 주로 사용하는 아이튠즈 서버에 접속할 방법도 없거니와, 갖고 있는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구글드라이브에 올린다 해도 이미 구축해놓은 라이브러리를 다시 일일히 만들어줘야 하는 번거로운 수고를 하면서까지 크롬북으로 음악을 들을 일은 아니죠. 결국 Spotify 같은 웹기반 서비스 이용하지 않는 한 크롬북 스피커는 Youtube 나 Hangout 용일 뿐입니다.


어댑터는 HP크롬북11을 선택한 직접적인 이유중 하나였습니다. 안드로이드 휴대전화기와 함께 보편화되어버린 마이크로 USB 단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충전기를 구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일반적인 휴대전화나 태블릿등의 휴대기기들이 0.5A~1A 출력전류를 내는 충전기를 필요로하는 데 반해 HP크롬북11 충전기는 출력전류는 3A 입니다.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USB 충전기는 0.5A가 대부분이고 혹은 1A 죠. 따라서 HP크롬북11이 마이크로USB단자를 통해 충전한다 해도 주변에서 빌려다 충전하기는 어렵습니다. 1.3A 충전기로도 충전이 거의 되질 않고, 그나마 크롬북을 사용하는 상태에서 1.3A 충전기를 연결하면 서서히 충전량이 줄어들 뿐 충전은 안됩니다. 고로 전용 3A 충전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 충전기로 핸드폰도 충전할 수 있다는 정도의 장점일뿐인 거죠. 그럼에도 인터페이스가 다른 별도의 충전기가 아니라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더군요. 구멍 모양과 크기가 서로 다른 충전기를 더이상 늘리고 싶진 않거든요. 게다가 마이크로USB 단자는 충전기능만 있는 게 아니라 Slimport 비디오 출력 단자로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환기구, 스피커구멍 등을 포함해서 단자 구멍까지 최소화해버린 샘이죠.


어댑터 리콜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죠. 13년 말에 어댑터 과열 문제로 HP크롬북11의 판매가 중단되었고 기존 구매자들의 경우 어댑터를 교체해줬습니다. 그 교체 과정에서 경험한 서비스는 놀라울 정도로 훌륭했는데,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종류의 서비스라고 단언하겠습니다. 일단 어댑터 리콜에 대해 홈페이지 등에서 알리는 정도의 소극적인 공지가 아니라, 크롬OS 업데이트를 통해서 기존 어댑터 사용을 인식해서 자동으로 온라인 교체요청 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도록 크롬북이 안내해줍니다. 그 안내메시지는 리콜을 위한 웹사이트로 가서 교체신청을 하거나, 임의로 이미 교체된 어댑터를 사용하고 있다고 선택하는 방법 외에는 꺼지지도 않도록 되어있어서 고객이 리콜에 대응하지 않고서는 크롬북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구글 웹사이트를 통해 신청을 했더니 한 시간도 안되어 Fedex 트래킹과 함께 어댑터를 새로 보냈다는 이메일이 오더군요. 가지고 있는 어댑터는 새 어댑터의 포장 상자에 담고 포함되어진 프리페이드 반송 라벨을 붙여 반송하면 됩니다. 구글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어댑터 반송은 단지 안전하지 않은 어댑터를 회수했음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지 반송해주지 않더라도 교체 어댑터는 보내준다고 하더군요.


키보드역시 좋은 점수를 줄만한 부분입니다. 이부분은 모든 크롬북에 해당되는 사항인데, 랩탑의 키모드에 큰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키감 같은 걸로 장단을 따지지 않기 때문임과 동시에 크롬북의 키 구성이 단순하고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안드로이드폰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느끼는 것이 바로 공통으로 적용되어있는 "back", "home", "menu" 버튼입니다.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H/W로 구성되어있어서 얻게 되는 S/W 인터페이스의 공통성과 직관성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크롬북에서도 역시 키 레이아웃이 모든 크롬북에 동일하게 적용되어있고 무척 편리합니다. 첫째로, 윈도우나 애플 키 따위가 없습니다. 둘째로 맥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spotlight 기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검색 기능이 키 하나로 호출되는 것도 장점입니다. 셋째로 윈도우 창의 전체화면 전환도 버튼 하나로 가능하도록 되어있고, 브라우져 기반 OS 답게 back, forward 기능도 버튼으로 따로 나와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팅을 통해서 검색, Ctrl, Alt 키 배열을 바꿀 수 있게 되어있고, back, forward, 전체화면 키 등 상단열에 배치된 기능키들을 일반 키보드의 F1~12 의 function 키 기능으로 전환할 수도 있습니다. 검색, Ctrl, Alt 키 배열을 서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저에게 가장 큰 매력포인트 입니다.


성능은 기대했던 것보다 좋지만 약간 인내력을 필요로 합니다. CPU 사양이 낮아서 뭔가 계산을 시켜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동영상 재생 같은 거 하면 답답해서 ... 


다자인은 현존하는 크롬북 중에 단연 돋보이고 범위를 모든 랩탑으로 확대해서도 수위를 차지할 겁니다. 이견이 있을 수 없을 정도이므로 HP크롬북11을 선택한 또다른 이유가 되었습니다.


IPS 디스플레이는 상당히 선명하더군요. 디스플레이에 투자하지 않는 편이어서 IPS가 뭔지도 몰랐는데 11인치 스크린이 작기는 하지만 작은 글씨도 선명하게 표시되어 가독성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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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can work IT out2014. 4. 25. 03:53



얼마전 사용하던 맥북에어가 부팅이 되질 않았습니다. SSD 가 고장이어서 부품을 사다가 바꿔주니 다시 살아나기는 했는데, 그렇게 복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었죠. 그사이에 사용할 대체품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참에 최신 맥북으로 바꿀까 생각했지만 돈이 아까웠습니다. 09년 맥미니, 10년 맥북을 사용하면서 불편을 끼치는 문제는 메모리지 CPU 가 아니기 때문에 엇비슷한 성능의 CPU를 가지고 디자인이나 디스플레이 개선해가며 나온 이후의 모델들에 그다지 끌리질 않았거든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더미 터미널(dummy terminal) 처럼 사용할 수 있는 랩탑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크롬북을 만나게 되었죠.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이 마치 새로운 패러다임인 것처럼 이야기되면서도 아직은 범용성을 갖지 못하고 있는데, 이름이 달라졌을 뿐 유사한 개념의 컴퓨팅 환경은 이미 80년대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렴풋이 알기로 그당시 MIT 에서 IBM 과 함께 아테나 프로젝트란 걸 했었는데, 캠퍼스 안에서 교육용 분산 컴퓨팅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프로젝트쯤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시작되어 LDAP, Active Directory, 메신져서비스 등이 만들어졌고 그뿐만 아니라 더미 터미널과 X윈도우도 그때 만들어진 거라고 합니다.



오래전 학교 컴퓨터실에 SPARC Xterminal 이 두어대 있었는데, 아무도 사용하질 않았기 때문에 주로 저와 몇몇 사람들만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하드디스크는 커녕 디스크 드라이브도 없고, 켜봐야 텍스트 환경이어서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사용되기 어려웠죠. X윈도우를 띄우면 넷스케이프 같은 응용프로그램들도 몇개 쓸 수 있었지만 그역시 서버에서 윈도우 디스플레이를 터미널로 돌리기 위한 환경변수를 설정해줘야 했기 때문에 유닉스 환경에 익숙한 사람들만 사용했던 겁니다. 그덕에 프로그래밍 숙제 마감날짜가 다가오면서 PC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질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었죠.


X terminal대충 이것과 비슷하게 생긴 터미널이었습니다. 입출력장치로는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가 있고, 본체에는 HDD 나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도 없이 단지 X서버만을 내장해서 리모트데스크탑 같은 기능만을 할 뿐이죠.X윈도우 화면지금은 리눅스에도 화려한 윈도우가 대중적이지만, 당시엔 X11 API 또는 Motif 프레임워크로 윈도우 프로그래밍을 해야 했는데 기본적인 위젯 이외에 꾸밀 수 있는 게 없었죠.


정확히 따지자면 이런 컴퓨팅 환경은 Thin Computing 이지 분산컴퓨팅은(Distributed Computing) 아닙니다. 분산컴퓨팅 환경이란 어떤 커다란 계산을 하거나 혹은 특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여러 컴퓨팅 노드들이 활용되는 개념이지 사용자가 그러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원격에서 접속하는 것까지를 범위에 넣지는 않습니다. 반면 Thin Computing 이란 다른 노드에 의존적인 클라이언트를 통해 서비스를 이용하는 환경을 의미하기 때문에 위에서 소개한 X terminal 은 분산컴퓨팅이기보다 Thin Computing 환경이었다고 말해야 맞겠죠. 그리고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이란 말도 앞서 둘의 개념들과 교집합이 있을 뿐이어서, 사용자에게 서비스의 인터페이스만을 제공할 뿐 사용자의 연결 방식을 Thin Computing 으로 제한하지도 않고, 서비스 내부적으로 분산환경이라 해도 그것이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인터페이스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구름과 같은 모호성을 갖는 개념일 뿐입니다. 그래서 클라우드 서비스는 반드시 분산컴퓨팅으로 제공될 필요도 없고 사용자 역시 다양한 노드를 통해 동일한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는 데서 결을 달리 하는 개념인 거죠.



사실 제가 경험해본 Thin Computing 은 앞서의 X terminal 보다 더 오래 되었습니다. 하이텔단말기가 그 앞에 있었죠. 하이텔 단말기는 90년대 초부터 PC통신 하이텔의 보급과 함께 한국통신에서(현 KT) 마치 메가패스 ADSL모뎀 대여하듯 보급했던 단말기 입니다. 오로지 하이텔 서비스만 이용할 수 있었고, 깡통이기는 X terminal 과 동일했죠. 짐작이지만 내부 구조나 구동 SW 도 X terminal 과 거의 유사할 겁니다. 다만 랜선 대신 전화선을 연결해서 원격 UNIX 환경에 구동되어있는 하이텔에 접속해서 텍스트 기반의 화면을 보여주는 거죠. 한국의 PC 보급은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이뤄졌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모뎀 통신하던 시절에 하이텔 서비스의 이용을 늘리기 위해서 더미 터미널을 보급했던 거지요. 


하이텔단말기하이텔 단말기 출처 : http://zecca.tistory.com/114프랑스 미니텔 단말기프랑스 미니텔 단말기 출처 : https://flic.kr/p/9XLdSE



그런데 사실 하이텔단말기는 프랑스의 미니텔을(minitel) 따라한 겁니다. 1978년부터 시작된 프랑스의 미니텔이야말로 Thin Computing 의 시초가 아닐까 싶은데, 프랑스텔레콤은 장기적인 성장안으로 영국까지 사업영역을 넓힐 계획도 만들었었고 미국에도 퍼뜨릴 생각이었다죠. 아마 그와중에 한국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거라고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90년대에 시작된 하이텔단말기가 존재감이 없었던 것에 비해 미니텔은 90년대 2천5백만명까지 이용자가 증가했었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미니텔이 불과 2년전인 2012년에 사업을 접었다는 거죠. 한국에서 하이텔 단말기는 2013년에 방영된 응답하라1994 같은 드라마에서 추억하는 대상인 반면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살아있는 전설이었던 거죠. 미니텔의 서비스 종료 당시에도 약 60만명의 사용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꽤 오랜시간동안 애플의 컴퓨터들만 사용했던 것은 디자인이 좋아서도 성능이 뛰어나서도 아닙니다. 개발용 랩탑이란 말도 있는데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각주:1] 애플 기기들의 매력은 여러개를 한꺼번에 사용할 때 비로서 경험하게 되는데, 바로 기기들간의 연결성 때문에 저는 애플의 제품들을 애용해왔습니다. 애플의 제품들에는 꽤 오래전부터 어떤 철학처럼 구축되어온 기기들간의 연동 컨셉이 있는데, 그것이 처음엔 개인 클라우드 환경이었다면 mobile me 와 이후 icloud 가 등장하면서 더 큰 범위로 확장되려는 시도가 있은지 벌써 오래 되었죠. 그러다가 스티브 잡스가 죽고 그 철학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음을 하나 둘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티브 잡스의 죽음 이후의 애플을 의심하게 되었고, 메버릭스(OS X 1.9) 업데이트를 하지 않고 마운틴 라이언을 쓰고 있으며 iOS 역시 6버젼에 머물다가 앱들의 지원이 안 따라줘서 불과 얼마전에 어쩔 수 없이 7버젼으로 갈아탔을 정도로 애플이 유지해왔던 컨셉을 좋아했었습니다. 아마도 얼마전 맥북이 고장났을 때 최신의 맥북으로 대체하고 싶은 마음도 안 생겨났던 이유로 한몫을 차지하기도 하겠죠.


HP chromebook 11HP Chromebook 11


그러다가 크롬북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터미널 랩탑이더군요. 어차피 무거운 작업들은 서버에서 처리할 것이므로 랩탑은 큰 저장공간이나 빠른 CPU 도 필요 없습니다. 다만, 이런 Thin Computing 장비는 하이텔이나 미니텔이 그랬듯 특정 서비스 이용을 위한 단말기일 뿐이어서 인터페이스가 폐쇄적입니다. 애플 제품과의 직접적인 연동성까지 기대하지는 않더라도 네트웍드라이브 지원이라도 해준다면 어떻게든 연결해서 사용하겠지만 그야말로 구글드라이브 아니면 USB드라이브만이 저장매체로써의 대안이죠. 그렇게 스토리지 서비스만 아니라 그밖의 각종 컨텐츠 등도 구글의 서비스만을 향하고 있죠. 이런 폐쇄성을 사용자들이 '개선'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그건 착각일 뿐입니다. 하이텔에 접속하기 위해 보급시킨 하이텔단말기로 나우누리나 데이콤에도 접속할 수 있도록 01420, 01433 등 전화번호를 지정할 수 있게 개선해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거죠. 그러니 크롬북이 폐쇄성을 '개선'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었다면 어쩌면 다음에 나올 랩탑은 크롬북과 같은 것이지 않았을까요? 자꾸 더 작게 만들어서 줄줄이 이름에 "Air" 붙이는 것도, 줄줄이 레티나 디스플레이 달아서 새제품이라고 발표하는 것도, 인텔의 저전력 하스웰 CPU 심고서 롱라이프를 자랑하는 식으로 작금의 애플 같지는 않았을 테니 컨샙을 바꾸는 시도가 분명 있었을 법 하고, 비록 구글이 먼저 시작하긴 했어도 icloud 를 포함한 제품들간의 연계를 극대화시킨 형태의 랩탑과 태블릿의 중간 어디쯤의 하드웨어가 나오잖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저에겐 바로 그런 게 필요한데 애플의 제품들이 조금씩 엉망이 되어가고 있으니 어쩌면 크롬북을 시작으로 애플과 멀어지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1. OS X 가 유닉스 커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해서 그것이 유닉스가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같은 BSD 기반이었다가 나중에 System V 에 기반했던 SunOS 랑 비교해도 다른 점이 무척 많죠. System V 기반인 HP-UX 와 IBM AIX 역시 서로 너무 달라서 SunOS 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을 HP-UX 또는 AIX 에 포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던 걸 생각했을 때 OS X 는 독자적인 개발환경을 갖고 있음에도 리눅스 개발자들에게 환영 받는 것은 그것이 유닉스 기반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건 아마 착각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4. 4. 10. 22:59

네이버에서 우연히 발견한 "다레스(dares)". 다음에선 어쩌나 싶어 찾아보니 다행히 다음은 멀쩡. 엉뚱하게도 영화가 궁금해진다.



네이버 영화 담당자 영어실력 보래요~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