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 over Beethoven2011. 12. 6. 14:49
일찌감치 예매해둔 백건우 티켓 한 장을 취소해야 한다. 두장씩 예매하고 하루 전날 취소하는 게 대체 몇번째인지 모를만큼 나에게 흔한 일이지만, 백건우 콘서트는 한 장이라도 취소하기가 너무 아깝다. 그리고 취소하기 아까워지니 별게 다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지인들에게 "공짠데 볼 사람" 하고 물어보면 보겠다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백건우에 관심있는 게 아니라 액티비티에 관심있는 사람들 뿐이다. 그들중에는 심지어 본다고 해놓고 퇴근 전에 술약속 따위가 생기면 거기로 가버린 사람도 있었다. 끼리끼리 모인다던데 내 주변엔 왜 나 같은 사람이 없는 걸까.

나는 개인적으로 아는 뮤지션의 공연이나 혹은 공짜표를 주겠노라고 뮤지션이 초대를 해도 (어차피 비싼 표도 아니니) 내 돈 주고 가겠다고 하는 편이다. 그런 태도는 뮤지션이 마련한 무대의 가치를 인정해줄 기본적인 준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친분이 그에 대한 매너를 바꿔놓을 수는 없다. 거기에 같은 뮤지션에 대한 취향까지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내 지인들중에 단 한 명도 없다. 매너가 있어도 취향이 다르고, 그보다 흔하게 취향은 있지만 매너가 안된 경우는 많다. 결국 원망할 일은 아니란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난 두장씩 예매하고 하루 전날 취소하길 꾸준히 반복하고 있다.

Posted by Lyle
Every little thing2011. 12. 1. 09:46
부모들의 극성은 유통 중심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허수들의 먹이감이거나 또는 그 부작용들 중 하나다.

이 사회에서 가치생산을 위함이 아닌 오직 유통만을 위한 마케팅적 속임수에 대한 예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역사적 실존인물에 근거하는 것처럼 이야기되는 발렌타인데이부터, 순수상술의 산물인 화이트데이 또는 빼빼로데이 따위가 그렇다. "호화 결혼식", "웨딩 촬영", "돐사진" 따위의 "단 한번뿐" 마케팅도 제공되는 가치에 대한 개발보다 오로지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서비스의 유통이 만들어내는 허수적 가치의 대표적 예시다.

그런 순수상술의 허수는 자식을 둔 부모, 특히 애 키우는 엄마들한테 쉽게 작용하고 있어 그들의 '과소비'로 특징지워지는 '극성스러움'이 결국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이라는 핑계까지 만들어준다. 거기에 이시대가 키워낸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빈약한 자아와 정확히 맞물려, 그들로하여금 머리 아픈 의식따위 필요 없이 '마음'있기 때문에 '소비'하는 것이고, 소비하지 않으면 마음이 없는 것이라며 극성을 조장하고 어딘가 불편한 마음에 대한 자위적 핑계도 만들어주기까지 한다. 더불어 불편한 진실 중 한가지는 사람들은 조종당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

우리와 비슷한 경제수준을 갖고 있으면서 유통 중심이 아닌 나라들도 분명 있다. 과연 그나라 부모들도 애들을 대상으로 극성을 피우고 소비를 조장당하고 있을까? 유통 중심의 사회가 아닌 경우는 대게 우리가 갖지 못한 풍부한 자원과 넓은 땅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짐작컨데 그런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극성스러움은 사회적 보편성을 띄지 않거나 적어도 '소비'의 형태로 발산되고 있지는 않은 게 분명하다. 대조해서 봤을 때 결국 우리나라 부모들의 극성스러움은 그들의 의식에 기인한 자발적인 것이 아니어서, 쉽게 말해 그들 탓이 아니므로 그들을 비난하거나 이후 세대의 자아를 강하게 키워서 애한테 쏟는 에너지를 스스로에게 쓰도록 해야 한다고 해봐야 공허한 메아리일 수밖에 없다. 참 안타까운 부분이다. 좁은 땅에서 부족한 자원을 서로 뺏어가며 아둥바둥 사는 한 부모들의 억척스러움은 바뀌지 않을 거다. 이지경이니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상한 분위기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