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 over Beethoven2011. 11. 27. 21:59
mp3 같은 매체로 음악을 들을 경우 일단 허전해지는 것이 손에 잡히는 자켓이 없기 때문입니다. 음반을 플레이어에 넣고 나면 CD 나 LP 나 mp3 와 똑같은 음악이 나오는 건 사실입니다만, CD 나 LP 는 알맹이가 빠진 자켓이 손에 남게 되죠. 앨범 아트웍을 제쳐두고서도 자켓에는 곡목들부터 시작해서, 앨범을 소개하는 liner note, 어떤 작곡자나 연주자들이 참여했는지 등에 대한 album credit 들이 적혀있습니다. 그밖에도 어디서 언제 프린트된 건지 따위의 자질구레한 읽을 꺼리들이 있죠. 특히 이런 정보들은 새 음반을 처음 뜯어 플레이어에 걸었을 때 습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첫 곡과 함께 즐기곤 하는 반찬같은 존재가 되곤 합니다.

그런데 mp3 는 그런 게 없습니다. 검색으로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정보지만 mp3 위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 중 album credit 을 일부러 찾아보는 사람이 있기는 있을까요? 앨범의 주인공만 관심있을 뿐 누가 작곡한 건지, 누가 연주를 했는지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아지는 게 mp3 로 즐기는 편리한(?) 음악일 겁니다. 휴대하기 편한만큼 버려지거나 생략된 것들도 있는 거죠. 그럼에도 음악만 들었으면 됐지 그딴 정보는 필요 없다고 할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음악 듣는 즐거움 하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Marc Ribot 이란 기타리스트가 있습니다. 미국의 아방가르드 재즈 기타리스트로 대중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추앙받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실 그를 아는 음악 애호가를 저는 몇 명 만나본 적이 없긴 합니다.) 아래 자켓 사진들이 제가 갖고 있는 Marc Ribot 의 앨범자켓들입니다. Marc Ribot 의 음반들은 구하기가 무척 어려운 편이어서 두 장밖에 없었는데 얼마전에 좀 희귀한 CD 를 하나 더 구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실험성이 가득한 음악들입니다만 근래에 비 상식적인 금액을 지불하고 구한 "Solo works of Franc Casseus" 의 경우는 일반적인 클래식기타 음악이 담겨져있습니다. Marc Ribot 이 어려서 클래식기타리스트 Franc Casseus 를 사사했다고 합니다. 이미 80년대부터 아방가르드 재즈 씬에서 활동을 해온 그가 2000년에 발표한 음반이 바로 그의 스승 Franc Casseus 헌정 음반이었고, 그가 전혀 보여준 적 없었던 클래식기타 음악들이 들어있다는 건 참 뜬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소장가치 때문에 가격도 비상식적이게 된 거겠죠. 
Marc Ribot - Shrek

Shrek

Marc Ribot - Yo! I killed your god

Yo! I killed your god

Marc Ribot - Yo! I killed your god

Solo guitar works of Franc Casseus


사실 제가 Marc Ribot 을 처음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된 건 그의 리더 작품들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80년대 뉴욕에서 활동했던 The Lounge Lizard 라는 밴드의 "No pain no cakes" 음반에서 처음 그를 알게 됐죠. 밴드 정식 멤버는 아니었지만 Marc Ribot 은 여러차례 이 밴드에 찬조출연 형식으로 공연을 하거나 음반을 녹음했었는데, 아무래도 연주곡들이다보니 연주자가 누군지 알기 위해 album credit 을 보다보니 그의 이름이 눈에 익게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동안 알지 못한 채 여러 재즈 음반들에서 이미 그의 연주들을 듣고 있었습니다. 대중적으로 꽤 유명한 Medeski Martin and Wood 의 음반에서, 혹은 Dave Douglas 등의 음반에서 그의 이름을 나중에서야 발견하게 되었죠.
The Lounge Lizard - No pain no cakes

The Lounge Lizard - No pain no cakes

Dave Douglas - Freak in

Dave Douglas - Freak in

Dave Douglas - Freak in

Medeski Martin and Wood - End of the world party


알고보니 그는 재즈 음반에서만 아니라 팝이나 컨트리 음반에도 손을 뻗치고 있었기 때문에 제 컬렉션들 중 의외의 앨범들에서도 그의 이름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Tom Waits 입니다. Tom Waits 의 가장 최근 음반 "Bad as me" 에서도 연주한 Marc Ribot 은 이미 1985년의 명반 "Rain Dogs" 에서부터 연주를 했고, 이를 포함해 제가 갖고 있는 Tom Waits 음반 중 세 장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Tom Waits - Rain Dogs

Tom Waits - Rain Dogs

Tom Waits - Real Gone

Tom Waits - Real Gone

Tom Waits - Real Gone

Tom Waits - Bad as me


그의 이름이 credit 에 있기 때문에 산 음반들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09년 그래미를 수상한 Robert Plant 와 Alison Krauss 의 "Raising Sand" 가 있죠. 컨트리 스타일까지 커버할 수 있는 Marc Ribot 의 연주는 Alison Krauss 의 이후 작품들에서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또 한참동안 제 휴대전화 착신음을 장식했던 Lucien Dubius Trio 의 "Ultime Cosmos" 음반의 경우 Marc Ribot 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음반은 발매되자마자 국내 재즈팬들 사이에도 큰 호평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이 앨범에는 DVD가 포함되어있어 Marc Ribot 이 음반을 녹음하는 장면을 직접 볼 수도 있었죠. 마지막으로 얼마전에 산 Rebekka Bakken 의 "Morning Hours" 음반도 Marc Ribot 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사지 않았을 겁니다. 노르웨이 포크송 스타일이 짙은 Rebekka Bakken 의 초기작에는 기타리스트 Wolfgang Muthspiel 이 있어서 좋아하게 됐었는데, Wolfgang Muthspiel 이 작업에서 빠지고부터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죠. 그래서 새 음반이 나와도 관심갖질 않은지 몇 년 됐는데, '09년에 발표한 이 음반의 credit 에 Marc Ribot 이 올라와있는 걸 보고 망설임 없이 샀습니다.
Robert Plant & Alison Krauss - Raising Sand

Robert Plant & Alison Krauss - Raising Sand

Lucien Bubuis Trio & Marc Ribot - Ultime Cosmos

Lucien Bubuis Trio & Marc Ribot - Ultime Cosmos

Lucien Bubuis Trio & Marc Ribot - Ultime Cosmos

Rebekka Bakken - Morning Hours


Marc Ribot

Marc Ribot 의 저 기타를 한 때 갖고 싶어서 찾아봤었는데, 구할 수도 없을만치 오래된 빈티지 기타였다.

Marc Ribot 의 음악적 폭이 얼마나 넓은지는 제가 갖고 있는 음반들 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일이지만 찾아보니 그보다도 더 하더군요. 정말 뜬금없는 음반에 가서 세션으로 참여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Elton John, Elvis Costello, John Mellencamp 등입니다. 기타리스트가 여기저기 세션으로 출연하는 게 뭐가 이상하냐고 한다면 일단 그가 주로 하고 있는 음악이 어떤지를 들어본 후에 이야기할 일입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뮤지션의 다양한 모습을 여러 다른 뮤지션들의 음반에서 경험할 수 있는 건 음반으로 음악을 듣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일부러 찾아들어야 하는데 mp3 로 듣는 음악이 그런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나요? 또 그렇게 깊은 취미를 위해 찾아듣는 일 자체가 mp3 라는 매체의 틀에서 가능하기는 할까요?

그저 유행에 따라 듣는 음악에서는 음악 듣는 이런 즐거움을 찾을 일이 거의 없겠지만 연주음악, 특히 재즈에서는 음반을 통한 음악감상이 필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만큼 여러 뮤지션들이 서로의 다양한 음반에서 연주를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재즈에서 한정해서 따질 일도 아닌 것이, Michael Brecker 나 Pat Metheny 가 팝 음반에서 연주하는 걸 들을 수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음반 재킷이 없다면 아주 민감한 귀가 아니고서야 듣고도 모르고 지날 일이죠.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11. 11. 27. 13:28

글을 쓴 이홍주는 예술에 쏟는 흥미가 줄지 않고 있음을 점점 더 부담스러워하는 재즈 애호가다. 대부분의 시간을 밥벌이에 전념하고 있지만, 음악을 이어폰으로 듣지는 않는다.

월간 재즈피플 기고자 소개.

간간히 공연리뷰를 기고했던 월간 재즈피플에 기고자 소개 내용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직접 쓴 문장인데, 매번 좀 수줍긴 했습니다. 왜냐하면 매번 원고를 낼 때마다 원고 끝에 적어서 보내줬었고, 시험삼아 살짝 바꿔봤더니 정말 그대로 반영되어 서점에 나오더란 말이죠. 다시 말해 잡지사는 저 글귀에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았던 거고, 저는 저 스스로를 소개하는 내용을 제가 쓴게 아닌 것처럼 3인칭 시점으로 적었던 거죠. 저 글에 담긴 의미는 글자 그대로의 "이어폰 음악 감상"은 아니었습니다만, 저 문구가 다시 떠오르게 된 건 제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지 않게 된 시점이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Sony D-777

처음 샀던 휴대용 CDP

Sony 의 혁신적인 휴대용 CDP D-777 모델입니다. 샵을 지나가다 무심코 보고 사버렸었죠. CDP 가 이렇게 작을 수 있을까 하는 단순한 이유가 작용했을 뿐이었는데 이후로 한참동안 어딜 가든 항상 함께 다니게 됐습니다. 약간 특이하게 생긴 상자 모양의 가방을 사서 십여장의 CD 들과 함께 넣어서 다녔고 그덕에 "전자인간" 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었죠. 지금으로써는 이해가 안 가겠지만 mp3 가 나오기도 전이었던 때니까요. 그러다가 픽업 수명이 다해서 더이상 쓸 수가 없게 되었고, 그 후로 휴대용 기기로 음악 듣는 일이 드물게 되었습니다.

한참 지나서 갖게 된 iPod 은 갈아 끼울 CD 들을 들고다닐 필요 없이 충분히 많은 음악들을 휴대할 수 있게 해줬죠. 하지만 이미 이어폰은 부자연스러운 게 되어버려서 아이팟은 거치형 스피커에 꽂아서 사용하게 되더군요. 이어폰이나 헤드폰, 그리고 휴대용 음악기기들이 아니라 저는 mp3 같은 매체도 듣기 불편합니다. 아마도 CDP 의 고장과 mp3 시대의 도래라는 것이 맞물려서 제게 음악을 이어폰으로 듣는 일 자체를 그만두게 하다시피 했던 게 아닐까 싶네요. 음악은 음반을 스피커로 들어야 제맛이죠.

그러다가 제게 새로운 휴대용 CDP 가 생겨났습니다. 맥시코와 쿠바 여행을 앞두고 항공경유지인 일본의 오사카 전자상가에 들러Sony D-NE20 을 샀고, 상자 따위들을 다 버리고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랬던 이유는 여행중에 만나게 될 CD 들을 mp3 로 아이팟에 넣고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실제로는 쿠바와 맥시코에서 CD 를 구해듣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행중에 만난 음악이라고 해서 아무거나 다 환상적인 음악이라고 우긴다면야 길거리 시장에서 넘쳐나는 불법 CD 들을 가지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쿠바나 맥시코가 그리 문화예술적으로 발전해 있는 곳은 아닙니다. 되려 그 반대죠. 그러니 양질의 음악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우리나라보다 더 불법 복제 CD 가 보편화되어있는 환경에서 그 음악을 양질의 CD 로 구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짐만 되다시피 했던 CDP 는 여행중에 이미 고장이 나버렸습니다. 충전이 되질 않는 고장이 생겨서 여행중에도 건전지를 끼워 사용했었는데, 그역시 건전지 사용량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문제로 여의치 못했죠. 결국 그상태로 수년을 묵혀두다가 최근에 서비스 센터에 맡겼는데, 허탈하게도 CDP 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소위 껌전지라고 부르는 충전지에 문제가 있다는군요. 지금은 Sony 가 CDP 를 더이상 만들지 않기 때문에 껌전지를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 간단한 문제었다면 벌써부터 껌전지를 교체했으면 됐을 일이었던 건데 말입니다. 아마 고장이라고 판단했던 때부터 휴대용 음악기기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고쳐서 쓸 의지가 없었던 걸 겁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CDP 가 필요해졌습니다. 앉아서 스피커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없어졌고 앞으로 더할 거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포장조차 뜯지 않은 많은 CD 들을 한번씩은 들어줘야 겠는데, 그러니 이동중에라도 들어야겠더군요. 그래서 결국 여분의 껌전지도 구했고, 인터넷에서 배터리 에러를 고치는 방법을 찾아 직접 고쳤습니다. 그러고나니까 기분이 좋아졌네요.

Sony D-NE20

남아돌아 붙여본 애플 스티커는 괜히 붙인 듯.

Sony D-NE20 분해

분해된 D-NE20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