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고서 아그라에 도착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무척 피곤했다. 그렇다고 인도의 기차역이 피곤한 여행자를 쉬게 내버려두는 곳이던가. "어딜 가느냐", "어디서 왔느냐", "따라와봐라", "이것 좀 사라", "돈 좀 달라". 이런것들을 뿌리친 뒤에도 끝없이 계속 되는 갖가지 성가신 찝쩍거림들은 어쩔 수가 없다. 그중 으뜸은 역전 릭샤왈라들의 호객행위. 그들을 피해 일단 역을 빠져나오고 보니 어느새 나는 목적지도 없이 한적한 곳을 향해 무작정 타박타박 걷고 있었다. 걷던 길 옆엔 아그라포트로 보이는 붉은색 성벽이 보였는데 그때문에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건지 알진 못했어도 잘못된 길이건 아니건 그냥 편안했다. 그리고 그 무렵 그 길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이 무나칸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내게 호객을 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인도 사람들이 모르는 걸 그는 알고 있었는데, 날 피곤하게 만들어서 이득될 게 없다는 것 말고도 그는 많은 걸 알고 있는 듯했다. 난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르면서 어느새 그런 그의 릭샤에 올라타있었는데, 그의 싸이클릭샤(자전거 인력거)가 오르막에서 올라가지 못하고 있을 때 나에게 내려서 밀어달라고까지 할만큼 그는 정말 뭔가 달라도 한참 다른 릭샤왈라(인력거꾼)였다.
무나칸의 속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묘한 카리스마까지 느껴지면서 함부러 할 수도 없었는데 가끔은 그가 무섭기까지 했다. 아마 그건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고 그에 비해 일반적인 인도의 단순한 사람들에 비해 너무도 다른 그의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고있는 데서 비롯된 듯 했다. 여하튼 난 그런 그에게 얼마만큼은 압도되어 끌려다닌 걸 부인할 수 없다.
아그라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빠떼뿌르 씨크리(Fathepur Sikri) 행 버스표를 살 때도 무나칸은 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정거장에서 기다리겠다며 돌아오는 시간약속을 요구했는데, 내가 돌아오는 시간을 꼭 정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더라. 그리고 사실 약간 부담스럽기도 한 그의 릭샤를 다시 타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약속은 내게서 깨지기보다 인도에서 깨지기 쉽기 때문에 난 인도의 약속을 그에게 해주고서 그곳을 떠났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버스 정거장 앞에서 그를 찾았다. 건성이긴 했지만 그건 최소한의 성의 같은 거라기보다 왠지 모르게 그렇게 해야만 했달까?
정거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나와서 그가 없다고 생각하며 묘한 안도감을 느끼게 될 무렵에 그는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사이클릭샤 위에 다릴 꼬은 채 팔장을 끼고 누워서 날 지켜보고 있는 그를 발견한 거다. 정말 귀신을 만난 듯 흠짓 놀랐다. 그는 나를 놓치거나 내가 다른 릭샤를 탔을까봐 안달복달 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편안한 자세로 정거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누워 내가 그곳을 지나갈 꺼란 걸 알고 있었던 듯 날 기다렸던 거다. 난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았던 거에 대해 변명부터 하게 됐다. 다시 한 번 그에게 압도당해버린 거다.
숙소로 돌아갈 때도, 다음 행선지인 자이뿌르로 갈 버스를 예약할 때도 그는 나에게 필요한 걸 제안하면서 탈 것을 제공하고 버스표를 살 여행사를 소개했다. 심지어 그 자이뿌르행 야간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에게 딱히 할 일이 없다는 것, 그리고 짐을 맡길 곳이 필요한 것까지 간파하고서 그는 내 짐을 여행사에 맡기게 하여 거기서 버스표를 살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그후엔 날 태우고 다니면서 쇼핑을 시켰다. 거기선 내가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손님을 태우고 온 릭샤왈라에게 커미션을 준다는 걸 내가 알고 있었다. (델리의 순박한 슈림버가 그렇다고 알려줬다.)
그렇다고 무나칸 때문에 내가 손해본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되려 편안하게 필요한 것들을 얻었다고 봐야한다. 그럼에도 찜찜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가 없었어도 될 여행에서 너무 능숙하게 날 파악하고 다루는 범상치 않은 인도인을 만났기 때문일 꺼다. 그리고 그가 되어 생각해보면서 그로부터 한가지를 배웠고, 사람들을 대할 때 간혹 실천하고 있다. 꽤 효과적이다.
자이뿌르행 버스에 오르기 전 그와 헤어지면서 그에게 일당을 거의 지불하질 않았다. 우린 그에 대해 미리 흥정하질 않았었고, 내가 흥정을 요구한 적이 있긴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no problem" 이라고만 일관했다. 그는 결국 나에게 성의껏 달라고 요구했고 나는 합리적인 돈을 줬다.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표정을 한 그에게 당신이 날 데리고 다니며 받은 커미션을 알고 있으며, 마지막에 쇼핑을 시켜서 돈을 쓰게 만들었기 때문에 남은 루피가 그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기도 했다. 대신 미안하다며 한국 동전 5백원을 주면서 루피로는 꽤 작지 않아고 알려줬다. 하지만 은행에서 동전은 환전이 되질 않는다. 영리한 그는 다른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서 능숙하게 그돈을 루피로 바꿨을지 모른다. 그러니 아마도 그 5백원은 다시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을꺼다.
무나칸의 앞모습은 대략이나마 아직도 기억난다. 꽤 부리부리한 눈을 갖고 있다고만 말해두자. 뒷모습에서 더더욱 카리스마적 얼굴이 상상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