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2009. 7. 24. 00:02


탈리와 파리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집에서,

아무런 방해 없이,

숏다리 한 봉지를 다 먹었다,

혼자서.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9. 7. 21. 21:59

내 팔뚝에 앉는다.

귀찮아서 꿈틀대면 이내 가버리지만 다시 내 몸 어딘가를 간지른다.

손에 닿을 듯하지만 약아서 잡히진 않는다.

용써보면 잡겠다 싶어져도 귀찮아서 내버려둔다.

한편으론 그덕에 심심찮은 맘이 있다, 인정하긴 싫지만.


탈리가 집에 없다.

팔뚝에 또 앉았다, 며칠째 한마리 파리가.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9. 6. 20. 08:34
아침부터 아버지랑 말다툼을 했습니다. 우리 부자에게는 거의 없었던 일이죠. 화목해서가 아니라 별로 대화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조선일보 보세요."

제 말이 시발이 됐습니다.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이 묻어있는 말임을 아시고서 아버지께서 너도 큰일이라며 버럭 하셨겠지만, 아마 제게 그런 의도가 없었다 해도 똑같이 그러셨을 꺼에요. 제가 조선일보에 대해 싫어하는 것처럼 보수세력에 가까운 아버지도 젊은 세대 하는 짓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거니까요. 당신이 언론인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어서 항상 같은 세대의 비슷한 생각을 갖은 사람들하고만 맞장구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을 겁니다. 저도 노인들 모여 진보세력에 대해 막무가내로 욕하는 걸 본 적 있어서 그게 어떤 모습이었을지 압니다. 그러나 반대 입장의 젊은 세대들과 그런 이야길 해보신 적이 별로 없으니 평소 젊은 세대들에게 말하고 싶은 불만이 많으셨겠죠. 그걸 저에게 쏟으신 거고요.

하고 싶으신 말씀이 많아서 그랬는지, 아버지의 말씀은 중구난방 널뛰듯 했습니다. 신문에서 시작해서 갑짜기 노무현으로 뛰더니 공산당과 데모 등 서로 연관성을 짓지도 않고서 논쟁이 이어졌죠. 젊은 사람들이 인터넷만 보고 생각을 조종당하듯 아버지도 신문만 보시고 실정을 모르셔서 오래 사시면서 경함한 통밥을 다 늘어놓으시는 거죠. 당신의 가장 큰 무기가 오랜 경험 뿐인 겁니다. 체력도 기술도 없고 단지 노련함만 남아있는 은퇴 직전의 운동선수처럼.

그런데 저라고 다른 게 별로 없었어요. 그런 아버지께 맡서서 별로 논리적인 이야길 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논리가 어떻게 틀린지 이야기하기에 급급하고 거기엔 제가 추구하거나 옳다고 말하는 주장 같은 건 들어있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면 저역시 인터넷 따위에 한정되어 생각하는 젊은이들 중 하나인지도 모릅니다. 광장에 나가지도 않고 경험해보지도 않은 걸 이야기할 땐 조선일보를 보고 생각하는 아버지와 제가 다를 게 없다 싶네요.

그렇다고해서 광장에 몇 번 나가본 걸로는 별 도움도 안 될 것 같습니다. 그 몇 번의 경험에 국한되어 입장이 굳어져 한쪽에서만 생각하게 된다면 안하느니만도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뭘 읽고, 뭘 경험해봐야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생각하고 남들에게 더 잘 이야기해줄 수 있을지가 궁금합니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9. 5. 23. 20:05
16대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점심무렵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싫어하시는 아버지의 전화 때문에도 그랬었지만, 인터넷 상의 게시판들을 보고도 기분이 착잡해진건 좀 다른 의미었다. 닉네임에 검은 리본을 달고 저마다 뭐라뭐라 추모의 게시글들을 토해내고 있고, 그와 관련지어 현 정권을 비판하거나 현실을 한탄하는 내용들을 적어내는 걸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랬다.

"투표나 하지..."

아마 전자투표라는 것이 있었다면 20대, 30대의 투표율을 100%를 육박했을 꺼다. 그들이 인터넷에서 쏟아내는 관심들을 보면 쉽게 그렇게 예측할 수 있다. 그들이 현 정권을 비판하고 현실을 한탄하는 관심들을 손가락으로 실천하고 있는 걸 보면, 아마 자발적 기권이라면서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밉상들은 전자투표 형태의 선거에서는 보이지 않을 거다.

이와 비슷한 느낌은 08년 하반기에 국민행사처럼 벌어졌던 소위 '촛불집회', '초불문화제' 등으로 불렸던 시위때도 마찬가지었다. 참여자들의 대다수가 2030들이었고, 집회참가자들 중 과격시위를 벌여 언론에 노출된 사람들 역시도 2030들이었다. 그때도 그들이 과연 성의있는 투표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투표를 했다 해도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후보자를 선택했을까. 선거권 행사를 무성의하게 했거나, 아예 하지 않았다면 그런 행동 자체가 현 정권을 선택한 거나 마찬가지 결과라고 본다. 뽑을 때 그리도 소극적이던 자들이 현 정권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그들이 물대포를 맞는 모습은 다친 그들에게 또는 민주주의에게 미안하지만 쌤통인 면이 있다.

물론 그들이 선거에 무관심했다 해서 현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는 데 자격미달이라거나 하는 말은 아니다. 현 정권이 바른 말을 허락하지 않고, 나서는 자들을 탄압한다는 핑계로 인터넷 뒤에 숨어서 게시판에서나 목소리를 높히고 있는 사람들 중 투표하지 않은 자들의 소극성이나 비겁함이 과거에 있었을지라도, 그들은 민주주권자의 한사람으로써 어떤 큰 일이 벌어졌을 때 하고 싶은 말을 얼마든지 내뱉을 수 있다. 다만 그들의 그런 행동이 주변에서 쉽게 옮는 유행성 감기 같은 게 아닐까, 그냥 단발성에 그치는 행동이 아닐까 싶은, 그래서 너무 가볍게 보이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는 거다.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인터넷 상의 추모와 그와 연관지어 인터넷에서나 쉽게쉽게 키보드를 두들기는 행동들에서도 그런 우려를 느낀다.

그건 마치 2002년 월드컵 때 광장에 응원차 모인 (평소 타인에게 절대 호의적이지 않던) 사람들이 서로서로 얼싸안고 함께 소리를 질러대던 것처럼, 혹은 평소 때는 환경운동이나 자원봉사 따위에 소극적이었던 사람들이 서해안에 기름이 유출됐을 때는 방제복이 무슨 붉은악마 티셔츠나 되는 듯 입고, 쓰고, 쭈그리고 앉아서 기름을 닦던 모습처럼 일회성 이벤트일지도 모른다. 그런 걸 볼 때면 '평소 한국 축구에 관심 좀 갖지.', '평소에 환경 보전에 신경 좀 쓰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래서 촛불시위 때도 그런 행동들이 다음번 선거에 무관심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치에 대해 신물을 느꼈다며, 그래서 선거권 행사를 자발적으로 포기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휴일인 선거일을 이용해 놀러나가거나 하지나 않을까? 힘들어 포기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를 보고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며 그들은 또다시 다음 선거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의 가벼움에 비하면 지금 전대통령의 서거에 기가막히면서도 차라리 아무말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뭔가 더 큰 생각을 속으로 품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람들이 일회성에 그치지 말고 더 꾸준했으면 좋겠고, 그 꾸준함도 키보드 위에 놀리는 손가락들보다 그들의 발을 움직이는 형태였으면 좋겠다.

20대 30대의 저조한 투표율에 대한 분석

최근 선거의 연령대별 투표율 변화 (출처: 선거관리 위원회)


16대 대선 때 노무현이 인터넷의 힘을 입었다곤 하지만 인터넷의 최대 이용층인 2030의 투표율은 60%를 넘지 못한다. 다른 선거에 비해 2030의 투표율이 높은 게 사실이지만 16대 대선은 모든 연령층의 참여율이 그 이전이나 이후보다 높았다. (물론 3김 시대의 투표율에 비하면 투표율 하락세는 지속되는 추세다.) 게다가 16대 대선의 다른 연령대의 투표율에 비해 2030이 낮은 투표율을 보인 건 다른 선거 때 보인 결과와 저조하긴 마찬가지다.

17대 대선의 성별,연령대별 투표율 (출처: 선거관리위원회)


투표율이 가장 저조했던 건 남성 20대 후반이었다. 여성 20대와 비교해보면 재밌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여성 20대투표율이 46%대인데 반해 남성 20대 전반은 그보다 10%나 높고, 남성 20대 후반은 6%나 저조하다. 이유는 남성 20대 전반이 군대에서 부재자 투표를 했기 때문에 투표율이 높은 영향이다. 30대라고 달라질 것 없지만, 남성 20대들이 얼마나 투표에 성의가 없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최근 선거의 성별,연령대별 투표율 변화 (출처: 선거관리위원회)


17대 대선을 16대 대선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투표율이 떨어진 연령대는 남성 30대 전반(-13.6%) 과 남성 30대 후반(-13.4%) 이다. 17대 대선 당시보다 5년 전이었던 16대 대선 때 남성 30대 전반은 20대 후반이었고, 30대 후반은 30대 전반이었던 걸 생각해보자. 그들은 5년 전보다도 투표를 안했다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실소할 수밖에 없는 건, 16대 대선 당시 군인이었을 남성 20대 전반이 부재자 투표의 힘을 빌어 63.1%의 투표율을 보였던 것에 반해, 5년 후인 17대 대선에서 남성 20대 후반이 39.9%에 머물고 있단 점이다. 20대가 이토록 꼴통이니, 현재 남성 20대 전반의 전경들이 일회성 이벤트 시위 현장에서 시위에 참여한 2030들 중 일부 꼴통들에게 곤봉을 휘둘렀다는 게 우습지 않은가.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9. 4. 25. 12:57
나는 화요일부터 목요일을 잃어버렸다.

늘어지게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 때 쯤 되면 다음날 회사 가기 싫다는 생각이 시작되지만

그도 잠시뿐, 잠들었다가 눈떴을 때 "앗, 늦겠다." 하고 외치면 받아주는 이 없는 투정 따위 금새 사라진다.

그렇게 사무실에 내 몸 조립해넣고 시작한 월요일, 그리고 그 다음 날은 곧바로 금요일이 되버린다.

한 주간 다 하지 못한 일들이 미뤄져서 다음주 시계는 더 빨리 돌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퇴근을 한다.

결국 월요일에 출근하면 퇴근은 금요일에 하는 기분.

주말에라도 뭔가 더 해볼까 생각하지만,

또다시 투정이 일기 전까지,

주말의 나는 늘어져버린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9. 3. 15. 23:43

Alexander Supertramp


여행에서 돌아와 집에서 쉬고 있던 어느날, 어머니께서 대체 왜 그렇게 힘든 여행을 하곤하느냐고 여쭈셨다. 딱히 이렇다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난 대답하지 못했는데, 어머니께서 그런 내게 이르시길, 너는 원래 여린 아이야 라고 하신다. 그순간 나 스스로에 대해 지각하지 못하고 있던 것에 대해 알게 됨과 동시에 어떤 치부를 드러낸 것 같은 부끄럼이 일었다.

난 그 나약함을 스스로에게 감추기 위해서 그런 여행을 하곤 하는 거다. 그리고 그점이 Alexander Supertramp 에게 내가 이입되고있는 부분이다.

그의 여행을 끝맺게 했던 것처럼 나는 나 스스로를 극한의 상황까지 내몰았던 적은 없었다. 겁이 많고 그보다 더 나약한 나로써는 아마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혹시 내가 강해졌을 때 여행은 멈추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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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09. 2. 7. 12:40
아마 9년 전일 꺼지. 그 사람을 만나러 가면서 떠올려보니 그 때 한 공연장에서 스쳤던 게 그를 마지막으로 본 기억인 듯. 엘범 리뷰도 쓰고 음악잡지에 기고도 할만큼 열씸히었던 그를 오늘 오랜만에 대면했다. 그가 가수 장호일 닮았다고 기억했었는데, 꽤나 길었던 세월이 내 기억을 너무 오래됐나 싶어지게 만드는 건지, 아니면 그의 피부에 잡티를 많이 심어준 건지, 그는 정말 많이 변해있더군.

그런 외모의 변화야 나에게도 있는 것이니 거울 보고 세월을 확인하는 꼴이라지만, 그런 것보다 더 놀라웠던 건 그가 더이상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것. 어찌어찌 살다보니 가끔 mp3 로 듣는 것 말고는 듣지 않게 되더라는 그의 말 끝엔 내게 동의를 구하는 물음표가 달려있었다. "그렇지 않던가요?" 아마 그건 옛 시절의 친구들, 어쩌면 나도 알지 모르는 그사람들 역시도 그렇다는 의미가 아니었을지.

그럼에도 다행히 나는 아니라는 대답에 망설이지 않았다, 뭔가를 예측하거나 인정하듯 '아직'이란 단서를 붙일뻔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와의 짧은 만남 뒤에 마음이 이상해져버렸다.

어떤 사람이 내게 그러더군. 열정과 환경 둘 중 하나라도 있으면 되는 거라고. 환경은 바뀔 수 있고 열정은 식어버리거나 다른 것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 내 안에서 영원할 것 같은 어떤 것이 다른 사람 속에도 있음에 공감하던 그 마음이 오늘처럼 꺾어지면서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아니 그러기는 어렵다는 걸 확인한 것만 같다.

음악도, 문학도, 어쩌면 사랑도.

훗날 그것들이 내게 묻는다면, "아직도 날 사랑해?" 라는 그 물음에 망설이게 될지 모를 내게 미리 관대해져야 하는 걸지도.......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9. 1. 1. 01:00

On Dec. 17th, There was a concert of SatoKo Fuji Trio at EBS Hall. I really enjoyed the show but I found a man who had been sat beside me and recorded the performance during the concert. Normally I ignore whoever does such a thing as I'm not a judge, but at the moment it was delightful to meet such a fan who wants to keep the live recording. So I wanted to have short conversation with him.

"Sir, you were recording the show!"

"Yes."

"It's none of my business whether it's illegal or not but... Just I would like to let you know that another concert of Satoko Fuji Trio and Korean musicians will be held on this Saturday."

"Oh, I know that."

"Really? How did you know that?"

"I'm a friend of Satoko and came here to see her concert."

"Wow, what a suprise. OK. Then we will gonna meet again on Saturday. See you than."


On Saturday after the incredible concert, I met the man again and had chance to talk with him with taking photos each other and with musicians including Satoko Fuji. After exchanging email addresses we said farewell but I met him again in metro station since we had been waiting for the same metro in same direction. So we had more time to chat.

Mr. Susuki (the man's name) was very interesting person as his first impression. After his retirement from a post he started his second career as a Music Recording Engineer. The bond between him and Satoko Fuji had started when he participated in recording her album. And he also loves to travel. He already had traveled more than 30 countries. He chose Hong Kong as a best site when I asked about and that was mainly because of good food. (I agree with that no more than food.)

I think he's the one who had realized that spare time is more important than money which everybody focusing at, and earning money is enough when it keeps our lives as plain folks. That was a sort of belief to me but never been convinced in real. Therefore listening his words was interesting with verifying my thoughts.

Mr. Susuki, here are photos taken on that day. Happy new year.

사용자 삽입 이미지Me and Mark Dresser. Mr. Susuki took this photo with my camera. Missing focus is not his fault because the Range Finder camera is unfamiliar to the most. I expected the result but I like it. Thank you Sir.


사용자 삽입 이미지Mark Dresser and Kang, Tae-Hwan. Two world class avant-garde performers.


사용자 삽입 이미지Jim Black an amazing drummer.


사용자 삽입 이미지Mr. Susuki and Satoko Fuji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12. 20. 06:26
잠든지 세 시간도 못되어 깨버렸다, 탈리가 침대에 오줌싸놓은 걸 뒤치닥거리 하느라고.

이불 걷어내고 침대시트를 벗겼더니 하얀 매트리스에 냄비뚜껑만한 자국이 펼쳐져있었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건데 하는 한숨만 나왔다. 마를 때까지 찌푸리며 기다리다가 안보이도록 무언가로 덮고서 잊어버리는 수밖에.

그런데 매트리스의 거의 같은 자리에 아주 오래전 똑같은 짓을 해놓은 자국이 있었다. 내가 그때도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 한숨을 쉬었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아마 지금처럼 탈취재를 깊숙히 스며들도록 아낌없이 뿌려댔겠지.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는 걸 알았을꺼고, 마르도록 아파하다가 시트와 이불을 깔아서 보이지만 않게 했겠지. 그리고 그 위에 시간을 덮어 결국 매일 여기서 잠들면서도 잊고 지낼 수 있었건만, 탈리는 그게 아니었나보다.

이친구에게도 기억이란 게 있구나. 고양이가 오줌 싼 걸 가지고 이렇게 궁상 떨고 있는 것처럼, 녀석도 한밤중에 불현듯 잊지 못하겠는 게 떠오른 게지. 눈만 가리면 잊어버리는 나보다 더 민감한 후각으로 옛 흔적을 찾아가서 결국 그 위에 또다시 울어버렸나보다.




잠지를 콱 묶어버릴까보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12. 16. 23:48
"내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봐준 사람이 있다."

그사람이 나를 보고 그 마음을 보여주기 전까진,

그는 내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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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08. 11. 18. 00:56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 모습이 아버지를 닮아가는 건 내가 당신을 부정했던 증거.


그렇게 닮기 싫고 이겨 넘어서고 싶었는데,

결국은 나를 부정하고 당신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훗날에 거울을 보다가 목 놓아 울기도 하겠지.

아니라 했었던 당신에 대한 그리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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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08. 10. 31. 13:11
시월의 끝자락에

이제는 끝보다 시작이 떠오르는 건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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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08. 10. 28. 11:50
나의 편지에 돌아온 그로부터의 답장들은 항상 우체통 대신 전화통으로 들어왔었다. 지금이라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그시절에도 편지의 무게는 부담스러우리만치 무거운 것이었나보다. 그의 호출기 번호는 구이팔이칠오일. 음성사서함에서 그의 잘 받았다는 신호를 --- 편지에 비하면 그건 '신호'란 말이 맞다.--- 듣고나면 수화기에서 기계음으로 저장인지 삭제인지를 물으며 또박또박 불러주던 그 번호. 되뇌지 않는데도 그번호는 잊혀지지도 않는다. 마치 그건 첫 번호가 두번째 번호를 부르고, 두번째가 세번째를 기억하는 연쇄적인 느낌이어서, 내가 숫자 9를 잊어버리지 않는 한은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무렵부터 쓰기 시작한 편지봉투와 편지지가 있다. 편지란 건 받아줄 사람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할까. 그만큼 자주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10년이 더 넘도록 나는 그 편지지만을 사다놓고 쓴다. 누군가 내 편지들을 모아둔다면 그것이 하나로 포개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후부터였다. 책상 한구석에 쌓아두거나, 책갈피에 끼워서 책장에 숨겨지거나 그대로 잊혀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편지들 중간중간에 끼워지는 일은 아마 없을 꺼다. 그리고 혹시 기억한다면 내가 보낸 말들이 일관적인 모양을 하고 있었다고 기억해주길 바란다. 아주 오랜만에 꺼낼지언정 모양만으로도 나를 기억할 수 있도록.

10년쯤 지나더니 이제 편지는 보내기만 하는 거지 답장하는 건 아닌 게 되버렸다. 우리들이 답을 하는 건 핸드폰 문자메시지, E-mail, 전자게시판과 그것의 댓글들이고, 편지는 아니다. 그래서 이제 편지에는 되도록 물음표를 그리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혹은 상처받지 않으려는 장치랄까.

손으로 편지를 써본 게 언제인지 기억하냐고 묻는 인기가 좋은 저 사람은, 쓰는 게 가끔일지언정 답장은 그때그때 받았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쓰는 편지의 수신인이 비단 그와같이 편지를 쓰곤 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그의 편지는 받은 사람으로하여금 오랜만에 편지지를 사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될 것만 같다. (나에겐 없는 능력이다.)

편지란 건 참 괜찮은 보람에 대한 증거품이다. 답장이 없어 쓸쓸해지는 건 무형의 공허함으로만 있었다 여겨질 뿐 증거로 남지는 않으니까. 그대신 답장을 받은 기쁨은 그만큼 더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내게도 꽤 훌륭한 증거품들이 있다. 그래서 쓰는 것보다 보내는 것보다 더 귀한 기억들이, 썼지만 보내지 못한 것들과 포개어져 함께 떠오른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10. 6.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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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남자친구 No.1 이 지워졌다. 정말 의외었던 건 그것의 연쇄반응들이었는데, 그탓에 몇몇 오랜 친구들을 마음 속에서 지워버리거나 먼 기억으로 묻어버렸다. 지금도 그짓은 계속 되고 있는데, 별것도 아닌 듯 하면서도 어찌나 허전한 마음이 되고있는지 모르겠다.

한편 여자친구들은 감성적으로 잘 맞아서 친하게 지낼 뿐 어느 선 이후부터는 어렵다거나, 흔히 결혼이라 부르는 시간경계선을 넘을 때 축의금 제출하고 빠이빠이 하는 정도로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내 스스로가 여자들과 잘 친해지는 편이면서도, 남녀사이에 친구란 거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건 너무 멀리만 내다보고 영원한 친구를 바랬기 때문인 거지 현재의 친구에게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의미이기도 했다. 남자친구들도 영원하긴 어렵다는 걸 이번에 알았고, 며칠 전에는 남자던 여자던 지금 가까이에 있는 친구가 가장 소중하게 느껴지는 걸 경험했다.

현재 나의 여자친구 No.1 은 첫직장에서 상사였던 EJ. 10년 가까이 언제나 한결같은 그분에게 No.1 을 붙였던 어느날이 떠올랐다. 그건 이친구에게서 그런 한결같음이 보였던 순간이었는데, 그래서 이친구에게 여자친구 No.2 를 매겼다. 그녀에게 나는 남자친구 No.3 라니까 자신이 No.2 라고 질투할 일은 없을 꺼다. 내가 네게 No.3 임을 고맙게 생각하듯 너도 내게 No.2 임을 소중히 생각하길. 하긴 No.1 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내게 그 소중함을 가르쳐준 게 너이긴 하다만.


앞으로도 계속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려고 노력, 정진하길 바라노라. 그래야 먼 훗날에 함께 하기로 한 사업에 차질이 없을지어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9. 30. 08:34
한참 전에 녹음한 걸 가지고 너무 오래 여기저기서 우려먹는 게 아닌가 싶어진다.

내일이면 벌써 10월, 지금 맘 상태가 이노래처럼 평온했으면 좋겠지만......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9. 26. 13:07
숨이 막히도록 울었던 기억이 있다라고만 생각한다.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분명 나도 그랬었다.

그래서 숨막혀 신음하고 있는 네 앞에서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거다.

숨 쉬어, 포기하지 말고.
괜찮아질꺼야.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9. 16. 14:38
아들이 고향집에 오면 어머닌 자식의 뱃 속 장에 각종 음식물을 순대 소 집어넣듯 계속 넣어주십니다.

배불러서 못 먹겠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대꾸도 안하신 채 정말 묵묵히 날라다 주십니다.

어쩌면 울 어머닌 저를 살찌워서 잡아드시려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 페이스에 말려들었다가 도로 서울 올라갈 생각을 하니 땀을 좀 빼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어제 밤늦게 학교 운동장을 하염없이 뛰었죠.

그대로 씻고서 뻗어자다가 아침 8시경에 일어났어요.

거실 쇼파에 기어올라 다시 잠들었는데 어머니께서 소릴 지르시며 깨우시더군요.

왠지 밥먹으라는 목소리에 신경질이 배어있으신 것 같아 벌떡 일어나 눈치를 좀 살폈습니다.

혹시 오늘이 절 잡아먹는 날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식탁에 차려진 아침을 보니 제 꺼 하나만 있더군요.

아버진 이미 식사를 하셨고, 저 때문에 상을 두 번 차리셨나봅니다.

조용히 식탁에 흘러 올라가서 잠도 덜 깬 채로 입맛 없이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죠.

좀있다가 어머니께서 식탁에 앉아있는 절 내려보시며 물으십니다.

"오늘 스케쥴이 어떻게 되는고?"

"저 점심 먹고 올라가려고요."

잠깐 침묵이 흘렀습니다.

저를 점심 먹고 잡아드실지 아니면 그전에 잡으실껀지 생각하시는 걸까요?

왠지 분위기가 서먹해서 혹시 저 때문에 밖에 못 나가시나 싶어지기도 해서 살랑거리며 여쭤봤죠.

"엄닌 스케쥴이 어케 되시는데용?"

그랬더니 돌아온 싸늘한 대답...

"스케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인이 무슨 스케쥴이 있겠어?"

갑짜기 왜 그러셨던 걸까요. 더욱더 토실토실해져야 할 아들이 간밤에 땀 빼고 들어와서 실망하셨던 걸까요?

여하튼 그말씀에 기운이 쑥 빠져서 저도 함께 삐져버렸고 그자리에서 숟가락을 놓고 내려와버렸습니다.

"그럼 저 점심 안 먹고 그냥 올라갈께요."

제 방에 들어와서 문닫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삐졌다고 울진 않았구요.

점심시간이 다가올 무렵 엄니께서 문을 벌컥 여시며 들어오셨어요.

무슨 약물을 컵에 담아 들어오셨는데, 누워 널부러진 저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시며 컵을 내미시더군요.

아마도 사약인가 했습니다. 드디어 제 몸 바쳐서 부모님 봉양할 시간이 온 거죠.

부모님께 제가 못해드릴 게 뭐있겠습니다. 망설임 없이 마셨습니다. 영지버섯 달인 물이었어요. 아직은 때가 아닌가봅니다.

빈 컵을 받아든 어머니께서 역시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시며 이말씀 남기신 채 방을 나가셨습니다.

"점심은 비빔국수다."

당신은 제가 비빔국수에 죽는다는 거 아시는 거죠.

점심 안 먹고 갈까봐서 미리 들어오셔서는 안 먹고는 못 가도록 슬쩍 점심 메뉴를 흘리고 나가신 어머니의 쎈쓰.

나중에 시간이 좀 더 지나 어머니께서 잡아드시겠다 하실 때 미련 쫌만 갖고나서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9. 3. 23:25
이번주 한주간 제가 집밖에서 지내게 됐어요. 집에 혼자 놔뒀던 건 3박4일까지가 지금까지의 최고 기록이었는데, 이번에 우리가 4박5일에 도전을 해보는 거죠. 떠나오던 날 새벽에 화장실의 모래를 깨끗하게 갈아줬고 물그릇도 깨끗하게 씻은 후에 한사발 가득 떠놓고 잠들었어요. 그런데 잠들면서 내일 아침에 한사발 더 떠놓고 나온다고 생각했던 게 깜빡 했네요. 분명 오늘쯤 늦어도 내일쯤엔 물이 떨어질텐데...

씽크대도 깨끗히 비워놓았기 때문에, 물 떨어지면 거기 기어올라가서 드러운 물 마시고 그러던데, 그짓도 못할꺼에요. 화장실 문이라도 열어놨다면 조금 안심이 됐을텐데 변기 뚜껑까지 닫아놓고 나왔기 때문에 녀석에게 방법이 없어요. 물 못마시면 변비 걸릴껀데, 변비 걸리면 똥누다가 x구멍에 피나올텐데 걱정이네요.

누가 우리집 고양이 좀 구해주세요.

조금만 버텨라 탈리야.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9. 1. 03:11
지난 8월25일에서 26일로 넘어가는 때에 저는 서초동의 모차르트 홀에서 미연 & 박재천 님의 Queen & King 2집 녹음 현장에 있었습니다. 음반 녹음현장에 있어보기는 처음이어서 왠지 방해가 될 것 같은 부담감에 가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현장에 계시던 분 하나가 녹음 시작 전 30분 전에 얼렁 튀어오라고 꼬시는 바람에 차몰고 마구 밟아갔죠. 결국 사고 한 번 치고 저 때문에 녹음이 중단되기도 했네요. 무척 민망하고 죄송했지만 언제나 그러셨듯 넉넉한 웃음을 보여주시는 두분...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하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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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올 음반의 피아노 듀엣곡이자 박재천님의 피아노 데뷔곡이기도 한 '재진자진' 녹음 중인 두 분. 하지만 곧 저 때문에 이 녹음은 중단 되었고 처음부터 다시 하셔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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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다보면 그냥 옆집 누나 같은 미연님. 푸근하고 친근한 느낌의 이분은 연주중에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발산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EBS 스페이스공감에서 예산족 연주 때 보여주셨던 마녀와 같은 카리스마가 가장 인상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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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천님의 연주를 들은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강태환 선생님 공연을 쫓아다니다가 알게 된 이분 역시 앨범보다는 공연을 훨씬 더 많이 봤죠. 그나저나 녹음 방해해서 죄송해요. T_T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8. 31. 03:49
대전의 교보문고는 저에게 학창시절부터 많은 추억이 묻어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갈 때면 단골 음반가게였던 세레나데의 상희누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되어야 했고, 두어시간 동안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진열된 음반들을 전부 다 손으로 훑곤했으면서도 단 한번도 거기 갔었다는 말은 상희누나에게 한적이 없었죠. 세레나데에 가면 듣고 싶은 음악이 있었고 또, 음악을 좋아하는 상희누나와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반면 교보문고는 내가 살면서 익숙해진 동네는 아니었지만 더 넓고 희안한 것들로 가득한 해외여행지 같은 느낌이었죠.

지금 세레나데는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전에 대전에서 교보문고에 갔을 때 무척 당황했었죠. 층을 잘 못 들어왔나 싶을 정도로 믿어지질 않았어요. 그 쪼끄맣던 세레나데가 없어지는 건 차타고 지나가며 확인하면서도 마치 세월 탓인냥 그러려니 할 수 있었지만, 그 커다란 교보문고가 송두리째 없어져서 사무실들로 바껴있을 수 있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죠.

어느덧 저는 상희 누나가 음악을 들려주지 않아도 될만큼 많은 음악들을 알게 됐고, 또 교보문고가 이젠 비좁다 여겨질만큼 다양한 음반 유통경로를 이용하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저를 오늘에까지 오게 했던 그것들이 사라졌다는 건 오래도록 씁쓸해 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에요.

하긴 단골로 다니던 음식점이나 술집들도 어느새 가보면 사라지고 없죠. 특히 그런 곳들은 저 혼자서만 찾는 단골이 아니라 같이 갔던 이들과 다시 모였을 때 떠올리며 함께 했던 추억을 공감했기에 또다시 찾아가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단골이 되기 때문에 사실은 없어도 그만인 경우가 많으면서도 여러사람들이 모여 함께 아쉬워하곤 합니다.

그렇게 사람들과 추억을 공유했던 곳도 또하나 사라진답니다. 오랜만에 교보문고를 찾았다가 충격을 받았던 그날에 뉴스를 통해 또한번 놀랐죠. 덕적도 옆의 작은 섬 굴업도가 리조트화 된다더군요. 아마 그 뉴스를 접한, 저와 그곳에 함께 있었던 모두가 서로 각자의 집 안방에서 저처럼 아쉬워했을껍니다. 나중에 꼭 다시 와서 무인도에 가까운 그곳의 해변을 벌거벗고 뛰어놀겠노라 생각했던 곳이, 이젠 다시 가도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는 곳으로 바뀐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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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이 사진 솜씨


앞으로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게 될 날보다, 지금까지 소중히 여겨왔었지만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것들을 잃게 되는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중히 만드는 법을 까먹는 것과 동시에 잃어버리는 것도 익숙해질까요?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