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에 해당되는 글 98건

  1. 2008.08.24 무지개 1
  2. 2008.08.23 괴물
  3. 2008.08.13 옥탑방 침범사
  4. 2008.08.01 자기소개서를 써드립니다. 2
  5. 2008.07.18 단상들
  6. 2008.05.12 착각 또는 환상 1
  7. 2008.04.30 탈리는 언젠가...
  8. 2008.04.04 소통
  9. 2008.03.19 착각을 배제시킨 사랑을 그리는, 홍상수 감독
  10. 2008.03.06 뜨거움
  11. 2008.02.11 숭례문
  12. 2008.01.28 성묘가는 길
  13. 2008.01.18 15년만의 헌혈 1
  14. 2008.01.11 눈 쌓인 아침의 포근함, 혹은...
  15. 2008.01.07 친구의 결혼
  16. 2007.11.19 안마의자 체험기 1
  17. 2007.11.16 라일은 무심해 1
  18. 2007.10.26 바른말 하기가 어려운 경우 1
  19. 2007.10.22 아디다스 달리기대회 후기
  20. 2007.10.16 서점에서 단상
A Day in the Life2008. 8. 24. 19:26
가수 신해철과 윤상의 '노땐쓰' 라는 음반에 '기도'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그 노래에서 묻어나는 종교적 경건함따위 보다는 아래 인용하는 친구에 대한 가사 때문이다. 10년도 더 전에 이 음반을 샀을 때와 똑같이 지금도 나는 이 가사에 주목해서 노래를 듣다보면 등골이 오싹해짐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거친 비바람에도 모진 파도 속에도, 흔들림없이 나를 커다란 날개를 주시어 멀리 날게 하소서. 내가 날 수 있는 그 끝까지. 하지만 내 등 뒷편에서 쓰러진 친구 부르면 아무 망설임없이 이제껏 달려온 그 길을 뒤돌아 달려가 안아줄 그런 넓은 가슴을 주소서.

그리고 2년이 더 지나 이런 노래가 또하나 더 발표됐었다. 산울림의 13집에는 '무지개'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노래는 멜로디도 좋지만 그 가사가 마음을 후벼주는 매력을 갖는다. 외로움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친구가 되어주는 그런 가사 말이다.

네가 기쁠 땐 날 잊어도 좋아 즐거울땐 방해할 필요가 없지
네가 슬플땐 나를 찾아와 줘 너를 감싸안고 같이 울어 줄께
네가 친구와 같이 있을때면 구경꾼처럼 휘파람을 불께
모두 떠나고 외로워지면은 너의 길동무가 되어 걸어줄께

앞서 말한 '기도'는 사실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의미를 가사에 담고 있다. 그 안에 친구에 대한 마음이 묻어있긴 하지만 그건 소승적 구도의 길 위에 거처가는 하나의 시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무지개'는 그런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딴세상의 천사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또다른 의미에서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천사 같은 친구가 등장한다. 이건 내 스스로 천사가 되느냐 혹은 내게 천사가 있느냐의 차이 같은 거다.


이런 노래를 들을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어떤 걸까? 나에게 저런 친구가 있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도 노래는 위안이 되어줄꺼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저런 친구가 되어주고 싶은 사람도 또다른 누군가 나와 같은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생각에 쓸쓸함을 달랠 수 있을 꺼다. 그리고 내겐 후자였다. 내게 저런 천사 같은 친구가 있다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누군가에게 저런 친구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은 늘상 있어왔다. 그래서 저 노래들이 내게 위안이 되어줬던 것도 그런 의미었던 거다.

그런데 최근에 '무지개' 라는 노래가 짜증스럽게 들리기 시작했다. 20년지기 친구 하나에게서 비롯된 그 짜증은 그 20년이란 시간을 쭈욱 돌아보게 했다. 그동안 어렵고 힘들 때 내게 찾아오던 그 앞에서 안스러움에 눈물흘리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정작 좋은 일이 있을 때에 그는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곤 했었다. 내가 힘들고 의지가 필요할 때 그에게 기댈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 친구에 대한 실망은 다른 친구들에게로 옮아갔고, 그들역시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이 들자 짝사랑이란 말이 떠올랐다. 그들처럼 십수년 지낸 친구는 아닐지라도 가까이에 있어 자주 보곤 하던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올 때마다 '무지개' 를 생각하게 됐다. 내 친구들이 '무지개'를 들을 때 과연 친구를 위로하고 싶은 생각부터 할까 혹은 친구로부터 위로받을 생각만 할까 하고 말이다. 최근에 날 괴물처럼 만들고 있는 이상한 외로움이 거기서 기인한 것이다.

하나씩 지워보자. 어떨 땐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차라리 이럴 때 내게 연락하지 않으면 지워지지나 않을 너희들, 하지만 한동안 연락하지 않으면 자연히 날 지워져버리는 가벼운 사람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8. 23. 02:58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가 괴물이 되어가는 중인데,
나는 버틸 수가 없다.

아마 그 모습 그대로에 익숙해질 때쯤,
더이상 버틸 게 없어질 때쯤,
거울을 보면서도 편해질 때쯤,

비로서 그와 나의 껍데기가 뒤집히는 변태를 마친다는 걸 내가 안다.

그때엔 사람들이 나를 괴물이라 부를테고
정작 그는 그걸 듣지 못할 꺼다.

차라리 빨리 편해졌으면 하고 그가 포기하듯 바라는 이유가 거기 있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8. 13. 01:49

그곳에서 처음 자취를 시작하면서 옥탑방 주변의 옥상 전체가 내 공간이었으면 했던 건 헛된 바램이었다. 내가 그 공간에서 어떤 낭만 비슷한 걸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옥탑 주변은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쓰지 않는 물건들을쌓아놓는 지저분한 공간일 뿐이었다. 뿐만아니라 모든 세대가 빨래를 널기 위해 수시로 드나들었기에 늘상 침범당해야하는 게 못마땅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침입을 막고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옥상 출입구를 걸어잠그고 다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나만의 공간이고 싶었던 그곳을 침범당한 경우는 그것들 말고도 또 있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깜깜한 밤이었는데, 술에 취해 돌아온 내가 얼얼해진 손에 쥔 열쇠로 빙글빙글 피해다니는 열쇠 구멍을 찌르느라 옥탑방의 알미늄샤시 문과 씨름하고 있을 때였다. 열쇠를 꽂는데 성공하고도 잠금쇠가 녹슬어 열쇠가 잘 돌아가질 않아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열내고 있을 때였단 말이다. 불현듯 인기척을 느낀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거의 주저앉아버렸다. 1층에 사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빨래줄 아래에 돗자리를 펴고 나란히 누워계신 걸 그제서 발견한 거다. 아까부터 끙끙거리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계셨는데, 내가 문을 여느라 애쓰면서 당신들을 발견하지 못하자 멋적어지셨는지 숨까지 죽이고 계셨던가보다.

4층짜리 (내가 살던 옥탑까지 층으로 쳐준다면) 그건물의 1층에는 대가족이 살고 있었다. 보기 드물게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아들 부부, 또 그밑에 고등학생이거나 막 대학에 입학했을 것 같은 형제까지 그들은 그렇게 여섯 가족이었다. 간혹 비가 오는 날 내가 널어놓고 나간 빨래를 대신 걷어주시곤 하셨던 할머니는 잘 걷지 못하시던 할아버지와 함께 두분이서 동네를 거니시는 다정한 모습과 여러차례 마주쳤었다. 또 그들의 아들 부부역시 내가 집에 없을 때 등기우편 따위를 대신 받아주시기도 하셨는데, 간혹 내가 오래 집을 비울 때면 한동안 안 보이는 것 같던데 어디 다녀왔느냐고 관심을 보이시는 등, 정말 건강한 가정의 가장과 며느리의 바로 그런 모습으로 비춰보였다. 그래서, 누가 사는지 서로 마주칠 일이 없었던 2층 사람들과 간혹 고성을 지르며 부부싸움을 해대던 3층 사람들과는 달리, 1층 분들과는 늘상 서로 후한 웃음으로 인사하며 지내곤했다.

그랬음에도 비록 한밤중의 그상황 탓에 그날은 평소처럼 웃으며 인사하진 못했다. 그땐 옥상 전체를 내공간으로 하고 싶었던 만큼 어색한 상황에 대한 외면 이후 옥탑 문을 닫고나서도 그분들과 한 방에 함께 누워있는 불편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처음 한 번 당황했던 때를 빼면 옥상에 놓인 물건들이나 빨래들을 볼 때마다 일던 침범당했다는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이후로도 왕왕 나란히 누워 열대야를 즐기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마주칠 때면 옥탑에 돌출되어 늘상 혼자이고자 했던 내게까지 어떤 화목한 기운이 배어드는 기분이 됐다랄까.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의 어느 휴일이었다. 낯선 사람 하나가 옥탑방 문을 두드렸고, 그는 내게 1층에 사는 분들의 연락처를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대답하면서 무슨일이냐 되물었을 때, 1층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아느냐며 문상을 가려는데 장례식장이 어딘지를 모르겠고 1층집에 전화연락도 안되어 답답한 마음에 찾아와봤다는 거다. 그가 돌아간 후 왠지 모르게 옥탑 알미늄샷시 문을 걸어닫기가 껄끄러웠다. 그리고 옥상에 누워계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항상 웅얼웅얼 말씀하셔서 알아듣기 어려웠던 그분을 두고 언젠가 나는 침범이라 생각하며 못마땅해한 적이 있었다.

이듬해 여름의 옥탑은 전보다 더 황량해진 느낌이 되었다. 그렇게 해가 바뀌었는데도 한동안 마주치지 못했던 할머니와 건물 앞에서 마주친 어느날이다. 반갑게 인사드렸지만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신 채 그냥 지나치셨다. 항상 풍성지게 매만져졌던 새하얀 머리칼은 편한대로 잘린 산발이 되어있었고, 통통하고 고우셨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많이 야위어버린 할머니. 그후로 어쩌다 내 인사를 받으실 때도 나를 "도련님" 이라 부르시며 이 빠진 웃음을 지으실 뿐이었다. 할머니께서 정신을 놓으신 것 같았다.

그러고서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따라가셨다. 옥상에 돗자리 깔고 나란히 누워계시던 것처럼 다시 또 나란히 누우신 거다. 그해 겨울 옥탑은 살기 싫어질만큼 추웠고, 결국 겨울을 나지 못하고서 나도 그곳을 떠나버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살던 옥탑. 옛기억에 다시 찾아갔었는데 이미 낯익기보다 낯설음이 훨씬 컸다. 올라가보기 위해 용기까지 필요했을만큼 말이다. 그러나 옥상 입구는 잠겨져있었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8. 1. 19:28

절박해하는 누군가의 자기소개서를 보고서 안스러운 마음에 대필을 해줬습니다. 처음엔 '첨삭지도'를 해주려고 시작했는데 그가 써온 자기소개서의 내용을 보니 필요한 건 그게 아니라 대필일 것 같아서 그냥 갈아엎고 새로 써줬죠. 보통 창피한 생각에 자기소개서 보여주지 않으려고 할텐에 얼마나 절박하면 선듯 보여주기까지 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도 이해가 되는 것이 요새 대기업들은 요상한 질문 같은 걸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아서 작성하기도 까다롭고 하나 써놓은 걸로 다른 데 재활용하기도 곤란하게 만들더군요.

자기소개서가 최악인 경우는 '겸손'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모자라다고 쓰거나 지금은 경험이 없지만 앞으로 잘할 수 있다고 쓰는 건 겸손이기보다 회사에서 사람을 왜 쓰는지 그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이친구의 자기소개서에는 스스로가 모자란 사람이다라는 말이 너무나 많았고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활용할 수 없는 내용들을 지우기부터 해야 했습니다. 그친구가 제공한 내용은 아이디어 정도로만 활용하면서 거기서 그친구의 생각만 읽어낸 후, 평소 제가 알던 그친구가 처한 상황을 떠올리며 그안에서 처했을법한 난관과 설정했어야 할 목표 따위를 나름의 상상력으로 도출했습니다. 그리고 그친구가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왔으며 그것이 능력이다라는 식으로 바꿔 써줬죠. 한마디로 말해 거짓말을 주렁주렁 걸어줬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나치게 겸손한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거짓말 하는 것도 어려운 모양이니 제가 대신해준 샘이죠.

일단 친구의 반응은 기대이상이다 였습니다. 오늘이 마감날이었는지라 근무중인 저에게 재촉하는 연락을 해왔는데, "쓰다보니 거의 대필이 되었고, 이건 밥으로 넘어갈 게 아닌 것 같다." 했더니 지랄하지 말고 얼렁 달라고 하더군요. 그러고 결과를 본 후엔 그친구도 밥 가지고 안되겠다고 인정을 했습니다. 제가 설정한 거짓말들이긴 하지만 그친구의 상황을 모른 채 아주 없는 이야길 써준 건 아닙니다. 그래서 남이 써준 자기소개서에 그친구도 상당히 공감해버리는 것 같네요. 저는 그부분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됐고, 자기소개서 대필 서비스를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댓가를 바라는 건 아니고 그냥 밥이나 술 정도 사주면서 만족감을 표시해주는 정도면 될 것 같아요.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자기소개서도 쓸 수는 있지만, 그사람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결국 모르는 사람의 자기소개서는 쓸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별로 알고싶지 않은 사람의 자기소개서도 쓸 수 없습니다. 안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좋게 거짓말을 할 자신은 없거든요. 혹시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어려움을 격고 있다면 저에게 맡겨주세요. 제가 당신을 이해하고, 또 그렇게 써진 제 글에 다시 당신이 공감하는 걸 보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더 바랄 게 있다면, 입사지원을 하는 사람이 "그래, 내가 이런 사람이야" 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자신감을 갖도록 만들어줄 수 있다면......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7. 18. 09:24
1. 때론 고유명사 하나가 한 10년쯤 알고지낸 사람처럼 이야기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면 소설책 이름이나 뮤지션 따위들 말이다. 굳이 우리가 하지 않아도 공감해버리는 그 10년동안의 이야기들을 그 소설책이나 뮤지션들이 대신해주기도 하니까.

2. 음악을 듣고 있지 않는 채 할 수가 없었다. 내 앞에서 나를 바라보며 엉터리 연주를 하면서도 뻔뻔하게 동전을 구걸하고 있는 그를 외면하는 것만으로는 그게 불가능했다. 나도모르게 리듬을 타면서 몸의 어딘가를 흔들고 있는 음악에 대한 본능은 의식만으로 감출 수 있지가 않았던 거다. 나를 향한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을 바라보곤 깜짝 놀라 박자를 세고 있는 내 발에게 멈추라고 지시했지만 듣질 않았다. 그가 씨익 웃었다.

3. 쿠바에서 나흘간 함께 지낸 루이스에게서 장문의 메일이 왔다. 과테말라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데이트립 이야기와, 나와 함께 있을 때부터 서로 슬쩍슬쩍 이야기하며 남자들끼리의 웃음을 짖곤했던 비키니 따위의 이야기들도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과달라하라에서 나와 동갑이라는 아들 켈리를 만날 계획이라는 대목은 그가 나보다 스무살 훨씬 더 많은 작은아버지뻘이란 걸 다시금 상기시켰다. 하지만 그게 와닿지는 않는다. 날더러 brother 라고 부르는 그에게 sir 라는 호칭을 붙여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은 너무나 어색하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5. 12. 01:2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전 키우던 동물의 죽음에 관계된 글을 썼다. 그런 후에 내가 왕왕 혼자서도 가곤 하던 가베나루라는 커피점의 고양이 두마리 중 한마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지인의 블로그를 통해 접하게 됐다. 사실 마지막으로 내가 가베나루에 갔던 때에도 고양이 두 마리 중 한마리는 집을 나간 채 그곳에 없었고, 그때 난 그곳의 손님들이 가출한 고양이 소식을 주인으로부터 듣고서 남은 한마리를 만지작대며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외로워서 기운이 없어보여."

지인의 블로그글을 보아하니 둘 중 한마리가 죽어버린 지금 위와 같은 말들로 나머지 하나를 안쓰러워하는 많은 단골손님들의 손때가 남은 한마리의 털가죽을 두껍게 하고 있나보다.

인정할 수 없다. 물론 고양이에게도 쓸쓸함이나 외로움이 있겠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고양이에게서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건 자기들 생각으로 지어낸 드라마 같은 모습을 고양이에게 뒤집어씌우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들이 이쁘게 생각하는 옷이나 모자 따위를 고양이에게 입혀놓고서 "이쁘다, 귀엽다." 하며 즐기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도 외롭게 만드는 우리들이 고양이의 외로움을 쉽사리 읽을 수 있다? 착각이며 환상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로맨스를 갈구하며 드라마나 영화와 같을 꺼라고 착각에 빠지는 것처럼. 누구나 다 돌아본다면 알겠지만 스스로의 (환상 또는 착각을 이용한) 포장이 없다면 절대 로맨스란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차라리 고양이의 죽음에 대한 애도라면 모를까, 남은 한마리에 대한 측은지심이라면 단지 현실에 동떨어져있는 드라마를 즐기는 심리와 다를 게 무얼까.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4. 30. 03:09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탈리와 어머니


어머닌 탈리를 무척 좋아하신다. 거의 아기를 대하듯 이뻐하시는데 얼마전 내 집에 오셨을 때도 아주 얼싸안으신 채 털을 빗기시며 시간을 보내시더라. 팔다리 쭉 뻗고 어머니의 빗질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탈리를 내려다 보시며 어머니께서 문득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 이녀석 죽으면 어쩔꺼야?
글쎄요. 저도 걱정이긴 해요. 쓰레기봉지에 넣어서 밖에 내놓기도 그렇고, 수의사 친구가 동물병원에 처리를 의뢰하면 된다고 하긴 하던데 그래봐야 갖다 버리기밖에 더하겠어요.

그런데 어머닌 그걸 물으신 게 아니었다. 탈리가 죽는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셨던 거다. 당신은 그렇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엄마가 국민학교 다닐 때 엄마를 너무 잘 따르던 개가 있었는데, 얼마나 이쁘고 똑똑한지 엄마가 학교 끝나고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만 와도 알아차리고 뛰어나와서 깡총대고 반가워하고 그랬거든. 엄마가 엄청 이뻐했었는데 하루는 글쎄 쥐약을 먹은 거야.

정말로 외할머니 댁엔 명절이 되어 갈 때마다 개가 바뀌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외할머니로부터 쥐약 먹고 죽었다는 끔찍한 대답을 여러번 들었었다. 그게 나 어릴적 기억이면서도 어머니의 어린 시절 기억이기도 했나본데, 더 듣고 보니 어머니의 기억은 내 것보다 더 악랄했었다.

그날도 학교 끝나고 집에 들어섰는데 이녀석이 쥐약을 먹고 눈이 시뻘겋게 되서 꽥꽥 게워내며 괴로워 하는 거야. 그러면서도 엄마가 집에 돌아오니까 반갑기는 한데 괴로워서 어떻게 할 수가 없는지 버둥거리기만 하는 거 있지. 무섭고 겁나기도 했지만 너무 안쓰럽고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서 엄마도 그냥 죽어가는 그녀석 부둥껴 안고서 엄청 울었지. 그때 그 기억이 아직까지도 가끔 생각이 나.

어릴적 외할머니 댁의 쥐약 먹은 개들의 죽음이 나에게 그랬드시, 언제가 될지 모를 탈리의 죽음은 다행히 어머니에게는 그저 '부제'가 될 뿐일 꺼다. 어쩌면 나에게도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거나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맞이하게 되는, 탈리의 죽음의 그 순간은 내게 그저 '발견'에 지나지 않게 될지 모른다. 어딘가 숨어서 안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가, 시간이 좀 지나서 죽음이란 게 고장난 장난감 같은 거라고 알게 되는 그런 모습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상상해본다.

말씀을 마치신 어머니께서 고양이가 몇 년이나 사냐고 여쭤보신다. 탈리가 앞으로 짧으면 5년, 길면 10년은 더 살꺼라고 알려드렸다. 대답을 들으신 어머니께서는 속으로 무언가 다시 따져보시는 것 같았는데, 그모습을 본 나는 어떤 악랄한 상상 탓에 갑짜기 쓸쓸함이 밀려들었다. 어머니...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4. 4. 12:47

당신에 대한 좋은 기억 중 하나는 당신이 음식을 좋아하는 것 이상이란 걸 느꼈던 때였죠. 우리의 짧지 않은 인연을 당신의 음식으로만 정리해보면, 처음엔 당신의 음식이 맛있었고 그러다 음식을 공부한다고 유학을 떠났으며 다시 돌아왔을 때 당신은 음식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한 번도 말로 들었던 적은 없네요. 그냥 알 수 있을만큼 당신은 명확했거든요.

어제 친구들과 저희 동네의 닭집에 갔습니다. 다섯 명이 모여서 닭 네마리를 먹었는데 자리를 파할 무렵엔 후라이드치킨이 다 식어버린 채 좀 남았었죠. 그때 문득 당신을 떠올렸어요. 게다가 그자리에 있던 사람 중 하나는 당신의 이름을 안다고 했기에 더 그랬나봅니다. 그래서 저는 남은 닭을 포장해달라고 했던 겁니다.

그날도 아마 이렇게 친구들과 모여서 잠실의 페밀리레스토랑에 갔던 걸로 기억해요. 한참을 왁자지껄 떠들었지만 저는 별로 할 말이 없었죠. 그러고보면 당신을 만났던 때마다 제가 모르는 당신 주변 사람들 틈에 끼어있곤 했기 때문에 전 당신한테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네요. 아마 그래서 더 잘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날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설 때 남은 음식들을 싸달라고 했었어요.

저에겐 꽤 훌륭해보였던 음식들을 당신은 사람들 앞에서 약간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하곤 했었죠. 그러다가 막상 그렇게 자리에 일어설 땐 남은 음식을 가지고 가겠다며 애착을 보이는 게 처음엔 좀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분명 "없어보이는 행동" 쯤으로 오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전 묻지 않고도 당신이 그렇게 한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어제 친구들 앞에서 당신을 떠올렸을 때 저는 소통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소통의 기억 같은 것들을요. 글을 쓰고 말을 해서 과연 얼마나 전달이 될까 하는 당신의 소통에 대한 의문도 함께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아무말 하지 않았던 당신과의 소통이 제게 있었음을 말해주고 싶었어요.

친구들과 헤어지기 전에 커피를 마시러 갔습니다. 포장된 음식을 들고서요. 그곳에서 저는 실수로 음료를 여섯잔이나 주문해버렸죠. 계산을 다 마치고 여섯잔의 음료를 다섯 친구들에게 들고갔을 때서야 '아!' 하고 저는 알았습니다. 또다른 소통이라 쓰기에는 좀 쑥쓰럽긴 하지만, '그리움' 같은 것도 가능하잖을까요. 많이 라기보다 그냥 문득이라고 말하는 게 우리에겐 더 잘 어울릴 것 같긴 하지만요.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3. 19. 01:35
씨네큐브의 "씨네토크" 시간에 여러번 참석해봤지만 그중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자리 자체가 재미있었다기보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었기 때문이죠. 저는 대체로 무언가에 호감을 느끼거나 좋아하게 되면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애쓰는 편이고, 왠만해선 부족함 없이 설명하곤 합니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대해서는 그걸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무언지 알지 못하는 답답함 같은 게 있었죠. 그런데 이번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서 제가 홍상수 감독과 같은 생각을 한가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오래 궁금해왔던 문제를 하나 풀게 됐습니다. 그것은 바로 "착각을 배제시킨 사랑" 을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씨네토크가 끝나고 싸인해주는 홍상수감독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3. 6. 18:04
오늘 우리가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 공항에 마중나와 있는 나는 아까부터 속에서 끓고 있는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다. 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뜨겁게 끓던 이 마음 속에 없어 마땅한 게 있다면,

그리움.



누나가 한국을 떠난 게 10년이 다되어가지만 떨어져 지낸 건 그보다 갑절은 더 오래 됐다. 누나도, 동생도 중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학교와 독서실에서 살았고 집에서는 잠만 잤다. 주말에도 마찬가지고 방학이라고 다를 게 없다보니 있었더라도 어색했을 가족여행이란 건 단 한 번도 없었다. 누나와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고, 이야기할 꺼리는 더욱 없었다.

누나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가버렸고, 동생이 서울에 가기 하루 전에 누나는 유학을 떠났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둘이 함께 서울에 있다는 게 어색한 대다가, 지역적 거리보다 더 두드러진 단절을 곱씹는 대신에 서로에게 전보다 더 무관심해질 수 있는 핑계를 만들어줬으니까. 그러면서 시간은 흘렀고 이제 가족은 모두 각자의 섬에 살게 됐다.

그시간동안 동생은 누나가 미워졌다. 누나가 서울로 간 후로 나이드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어제가 오늘인 것처럼 바라보는 건 동생의 몫이었고, 몇달치 또는 몇년치 주름살을 한꺼번에 발견하고 호들갑스럽게 놀라는 건 누나의 몫이었다. 누나가 온다고 하면 아픈 몸으로도 벌떡 일어나신 분들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웃고 지내다 다시 가버리는 게 누나였다. 반면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실려가실 때 옆에 있었던 것도, 몇달씩 앓으시고서도 낫질 않아 만성이 되어가는 기침감기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는 것도 동생이었다. 응급실에서 어머니 스스로 당신께서 돌아가신 후의 처리에 대해 말씀해주시는 걸 들으며 겁먹고 울어야 했던 사람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사람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거다. 아니, 그래야 하는 거다.



누나가 잘못한 게 있다면 그건 집을 떠나있었다는 것 뿐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누나도, 나도,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다는 걸 알기에 방향을 찾지 못했던 그 마음은 분노를 닮아갔고, 그건 항상 누나를 향해있었다. 그리고 오늘, 어머니의 60 생일을 맞아 돌아왔다가 다시 집을 떠나는 누나를 마중하러 어머니와 함께 인천공항에 와있는 거다. 난 사실 누나를 마중하기보다 돌아선 후 눈물 쏟으실 어머니의 등을 지켜드리기 위해 여기 와있다. 항상 그랬듯 누나가 앞에서 보는 어머니의 웃는 모습 뒤의 우는 모습이 내 몫이었으니까.

비행기 시간이 다가오자 어머니께서 누나에게 그만 들어가보라고 하신다. 내가 보기엔 아직 시간이 더 남아있는 것 같은데도 어머닌 그말씀을 하셨다. 아마 들어가라는 말씀이 입에서 떨어지질 않으셨을텐데... 그 한마디 하시려고 그렇게 망설이셨을텐데도... 어쩌면 누나가 들어가겠다고 하면 마음 아파질까봐 먼저 해버리신 건지도 모르겠다. 누나는 엄마에게 포옹을 하고, 나와는 눈인사만 나누고서 공항검색대를 가린 자동문을 향해 등을 돌린다.

그런데, 누나의 뒷모습에서도 눈물이 보인다. 어머니의 그것보다 감추는데 서툰 누나의 그 떨림은 어머니를 닮아있다. 누나는 몇 걸음 걸어나가다 말고 돌아서는데, 토끼만큼 빨갛다.

"엄마, 아프지 마...."

난 너무 의외여서 얼싸안고 우는 모녀를 바라보고만 있다. 의외인 건 어머니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가 엉뚱하게 누나의 뒷모습에서 눈물을 보게 됐기 때문일까? 아니, 그보다 아무 설명이나 이해 없이 내 안에 오랫동안 끓고 있던 게 식어버린 걸 느낀 탓이다. 너무 쉽게 한순간에. 그대신 다른 무언가 뜨겁게 뿜어져 올라오는 듯해서 나도 모르게 아까보다 턱을 높히 하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것도 의외다.

어머닌 누나가 검색대 안으로 들어가고 자동문이 닫힌 후에도 돌아서지 않으신다. 머리칼 하나 빠지지 않게 단정히 묶으시고, 보라색 스웨터에 스카프까지 두른 채 향수까지 입으신 분께서 지금은 거의 무릎을 꿇다싶이 하시고서 내부를 가린 두꺼운 간유리벽의 작은 틈새에 눈을 대고 누나의 뒷모습을 부여잡고 계신다. 그리고, 그런 당신의 뒷모습은 또 내 것이 된다. 잡을 곳도 없는 유리벽에 업드린 것처럼 붙어서서 작은 틈 사이로 눈을 굴려 자식을 찾으시는 내 어머니. 그런 당신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도 익숙했던 미움 대신에 애잔함만 더해지고, 그래서 눈을 깜빡이면 창피해질 것 같은 지금, 그 뒷모습을 지키고 있는 게 나에겐 행복이란 생각을 처음 해본다. 하긴, 내가 봐 온 게 등 뒤의 눈물만이 아니었다. 누나보다 훨씬 많은 웃음의 시간들이 내게 있었는데, 미움에 가려 미처 즐기지 못한 게 나였구나.


결국 볼을 타고 뜨겁게 내린다.
그토록 참기 어려웠던 것이 이렇게 조금이었나 싶어 웃기도 한다.

오늘 우리가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
마주한 채 누나라고 또 불러볼 날이 언제가 될런지......
오랜 시간동안 뜨거움에 가려져 지냈던 시간만큼 걸리진 말아야 할텐데.

07년 11월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2. 11. 21:47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집으로 걸려온 전화 한통에 영문을 모른 채 학교에 나갔고 담임선생님을 만나 함께 금산으로 가는 길이었죠. 선생님께선 명길이를 찾아간다고 하셨습니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집이 멀어 방학 보충수업에도 나오지 않았던 명길이를 저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저를 명길이 친구라며 손잡아 맞아주신 명길이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셨죠. 명길이가 학기동안 흩어졌던 시골 고향 친구들과 함께 동네 밖으로 놀러나갔다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돌아가기 아쉬웠던지 명길이는 오는 길에 만난 큰 개울을 헤엄쳐 건너겠다고 했답니다. 함께 놀러갔던 그의 고향친구들은 다리 위에서 명길이 이름을 소리쳐 불렀지만 그아이는 그렇게 세상을 등졌던 거죠.

그날 2학년 5반 반장은 한학기 동안 이름밖에 몰랐던 명길이에 대해, 불러본 적은 있었나 싶었던 이름에 대해 여러가질 알게 됐습니다. 잘 알지 못했던 명길이가 듣고보니 참 괜찮은 아이었구나 싶었던 생각이 혹시 그의 죽음 때문이면 어쩌나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죽음 앞에서 어쩔줄 몰라했던 그때의 어색함에 가려질만큼 슬픔이 너무 작았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운전하시던 선생님께서 졸리시다며 길 옆에 차를 새우고 한 잠 주무시기 시작하셨는데, 조수석에 앉아 멀뚱멀뚱 깨어있던 제가 이제 조금 들어 알게 된 명길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어 그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졌던지... 그래서 그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오늘 저는 짧지 않은 휴가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농담에서나 수없이 불러봤던 친구 하나를 잃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언젠가 가까이 가보자 했던 날이 분명 있었는데... 그마저 때늦은 관심같아서 그게 혹시 화재 때문인가 싶어 오래전에 잃었던 친구에게 느꼈던 미안함이 또다시 떠오르네요.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1. 28. 00:31

아버지와 성묘를 가는 길이었다. 그 길은 아버지께서 운전을 시작하신 후부터 어린 나를 조수석에 태운 채 향했던 그 길이다. 길은 넓혀지고 닦이면서 조금씩 변하기도했지만 변한 건 길뿐만이 아니다. 그길을 밟았던 아버지의 차도 포니부터 세번이나 바꼈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제 그 길을 아버지를 조수석에 모시고서 내가 운전해 간다는 것이다. 아침 일찍 떠나곤하던 아버지의 고향 가는 길. 그 길 위에서 늘상 조수석에 앉았던 난 항상 졸거나 자면서 아버지의 차를 타고갔었다. 하지만 그래도 얼추 다 기억나는 길이다. 처음 출발하면서는 꼬마였다가 도착할 때 쯤 되면 현재의 나로 성장해 있는 느낌을 주는 그런 길이니까. 내가 어린 나를 기억하는 만큼 아는 길이다.

아버지와 성묘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 길은 아버지께서 늘상 잠든 나에게 매년 똑 같이 "숙박비 받아야 겠다"시며 놀리시곤 했던 그 길이다. 매년 잠들었다 일어나면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 아버지에게 언젠가부터 나는 가식적인 웃음만으로 응답하곤 했었다. 그랬던 그 길에서 이제 아버지를 조수석에 모시고 내가 운전해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버지께서 운전기사 있으니 편해서 좋다고 하시며, 당신의 어릴 적 말씀을 곁들여 고향에 다녀온 기분을 한껏 내셨다. 조금 더 일찍 면허를 딸 껄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말씀 없이 조용해지셨다.

아버지께서 주무신다, 내 옆에서...




앞으로 내달려가던 나는 아버지의 속도로, 천천히 속도를 줄인다.

나이드시면서 변하는 법을 잊어버리시고 점점 살아오신 고집만을 지키려하시는 아버지. 그분을 꺽지 못해, 나를 이해시키지 못해 갖었던 불만들이 어린시절부터 내가 앉았던 조수석에 함께 잠들어버린다. 그 모두를 아버지의 낮잠과 함께 잠재우고 이 순간만큼은, 잠든 나를 태우고 20여년을 묵묵히 당신의 어린 시절을 향해 운전해가셨던 그 길 위의 아버지가 되어본다. 아빠가 되어본다. 아빠... 아...

도착할 때쯤 아버지께서 깨시면 "숙박비 받아야겠어요." 할 생각이다. 아버지의 웃음이 기대된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1. 18. 14:03
오늘은 헌혈을 했습니다. 93년에 처음 했으니 해 수로 15년만인 샘이죠. 헌혈을 하기 위해서 문진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과거에 언제 헌혈했는지가 조회되어 알았지, 그렇지 않았으면 몇년도에 했는지 잊어버렸을꺼에요. 93년이라고 찍혀나온 걸 보고 좀 부끄러워지더군요. 요샌 수술할 때 헌혈증을 모아가도 소용이 없다고 하네요. 피 자체가 모자르답니다.

그런데 15년만의 헌혈이라도 그나마 하지 못할 뻔 했습니다. 문진표에 최근 3년 안에 해외여행지를 적는 곳이 있었는데 하필 그 기간동안 말라리아 감염지역에 두 번 갔었기 때문이죠. 아프리카와 인도 말입니다. 발병은 안했다고 했지만 보균자일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엔 안되겠다고 했었는데, 두 지역 모두 다녀온지 1년이 넘었기 때문에 헌혈할 수가 있었네요.

헌혈한 뒤 감상 두가지.

1. 오늘 수영장엘 가려고 했었는데 못 가게 된 게 쫌 아쉽다.
2. 몸관리 잘해서 앞으로 왕왕 해야겠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1. 11. 10:36

아침마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의 망설임은 몸보다 더 무겁지요.

첫번째 알람 소리에 눈떴을 때 비가 오는 줄 알았습니다. 밖에 지나가는 차들이 만들어내는 촬촬거리는 소리마저 그랬죠. 그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찰싹 붙어 두번째 알람을 기다렸고요. 그건 아침마다 제가 저에게 허락한, 그 나른함을 즐길 수 있는 잠깐 동안의 기지개 같은 시간입니다.

몸을 씻고 나와 속옷이나 양말 따위를 넣어둔 바구니를 열었죠. 그 친구가 다시 찾아오면 돌려주려고 개놓았던, 언젠가 그가 벗어놓고 떠난 양말 한 켤레가 보입니다. 그걸 꺼내들고 멍해져서는 또다시 나른한 시간 속에 들어가버렸죠.

그는 이제 오지 않을껍니다.

창밖에서 들려온 경적음이 세번째 알람인 양 저를 깨웠습니다. 그의 양말을 양 발에 씌웠죠. 그렇게 속옷 한 장과 양말만 신은 채 창문 아래 벽에 몸을 바짝붙여 알몸을 숨기고서 머리만 빼꼼히 내밀어 창문을 열었습니다.

하얗게 눈이 쌓였군요.

눈은 비보다 차갑지만, 반대로 그보다 따뜻한 느낌입니다.

그럼 이느낌은 포근함일까요?

그런데 왜 이렇게 허전한지...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1. 7. 00:00
저에겐 손가락에 꼽는 친구지만 그에겐 저같은 친구가 많았나봅니다. 예식장에 찾아온 제가 모르는 그 많은 그의 친구들을 보면서 쓸쓸해짐을 느꼈네요. 제 친구를 안다는 것만으로 저 모두가 내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부럽기도 했죠. 하지만 그렇게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친구들 하나하나에게 성의없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제 친구를 보면서, 단 한 명만 있어도 좋은 친구임을 다시 알게 됐습니다.

가끔 단둘이서도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다 서로의 집에서 신세를 질 때면, 아침이 되어 빨아놓은 양말로 갈아신고서 서로의 집에 전날 신던 양말을 벗어 남겨놓곤 했던 우리. 이제 그런 시간들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게 어찌나 서운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부에게 친구를 빼앗긴 것 같아 질투가 나는 건지 집에 돌아와서 신부가 이쁘더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머리도 크고 못생겼다고 대답해버렸죠.

그 못생긴 신부와 미리 친해뒀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하는, 결혼 전부터 생각했던 아쉬움이 점점 더 커지고 있네요.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7. 11. 19. 11:32
오늘이 제 어머니 60살 되시는 날입니다.

어제 제과점에서 케잌을 계산하며 초는 큰 거 여섯개 주세요 했더니 그순간에 실감이 되더군요. 남들에게는 "어머니" 라고 말해도 당신 앞에선 "엄마"라고 부르던 어머니께서 이제 정말 노인이 되셨다는 게, 제가 꼬맹이었을 때도 "엄마"라고 불렀던 그 젊디 젊은 분께서 이제 노인이 되셨다는 게......

가족들이 돈을 모아 안마의자를 사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고향에 갔던 어제는 혼자서 백화점 안마의자 파는 곳에 갔었더랬죠. 의자 하나당 15분씩 자동코스로 다섯개 의자를 돌면서 1시간이 훨씬 넘도록 안마만 받았습니다. 전에 쇼핑다니면서 안마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서 살 떨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기가 좀 민망했었는데 막상 제가 거기 있는 의자는 모두 다 앉아보고있으니 처음엔 좀 우습기도 했는데 나중엔 너무 편해서 잠까지 오더군요.

"아, 이런 거구나."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아 안마받는 느낌이 더 좋았더랬습니다.

그리고 역시 비싼 의자가 비싼 값을 하더군요. 카달로그들과 함께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제 체험기를 열씸히 설명드렸지요. 아들이 집에 있으면 안마의자 필요 없는데, 하시며 값이 부담스러우신지 싼 걸로 하자십니다. 그리 말씀하시면서 웃으시는데 저는 가슴이 세 번 미어집니다. 제가 집에 없음을 생각하시는 게 그렇고, 제 손을 대신할 기계를 사드려야한다는 게 또 그렇고, 그래서 좋은 걸 사드리고 싶은데 싼 걸로 하자시니 다시 또......

AS 가 비교적 잘되는 브랜드, 가격대 성능비가 좋은 제품, 비싸지만 섬세하게 잘 주물러주는 제품 등으로 나눠서 설명드렸지만 자꾸만 값이 젤 싼 제품이 결국 AS 도 잘되고 가격대 성능비도 좋고 섬세하게 잘 주물러주는 걸로만 이해를 하셔서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메모지에 제품의 특징과 가격, AS 가능여부, 체험매장 주소 따위를 브랜드별, 제품별로 적어드리고 상경했죠. 그런데 그렇게 객관적으로 써놓고보니 그래도 역시나 젤 싼 걸 가장 좋다고 보실 것 같아서 제가 추천하고 싶은 제품에 한 줄만 더 적어넣었습니다.

"아들이 주물러주는 느낌!"

부디 그한줄이 어머니 선택에 강력하게 어필해줬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7. 11. 16. 23:58

문자가 왔다. "요새 뭐하고 살아? 잘지내?"

답장을 했다. "네, 잘 지내요. 연말이라 보자는 사람들이 많아서 귀찮네요."

답장이 왔다. "무서운놈. 나도 보자고 연락한 건데."

답장을 했다. "11월은 꽉 찼어요. 잘지내시죠?"

난 사람을 잘 찾질 않는다. 찾지 않는다고 그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가끔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얼마전에도 한 사람은 나더러 무심하다고 하더라.

내가 찾지 않아도 날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런데 많은 인연들이 30대부터는 사라지게 되거나 얇아진다는 걸 격은 후부터는 그생각도 바꼈다.

그리고 외로울 수록 사람을 찾게 되고, 찾을 수록 더 외롭게 된다는 걸 안 후부터는 더 열씸히 무심해지려고 한다. 나더러 무심하다고 했던 너에게 이말을 해주고 싶었다. 난 무심한 게 아니라 외롭다고. 그리고 너도 외로워보인다고.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7. 10. 26. 15:54
1. 다수의 논리가 절대적 정의를 수적으로 이겼을 때.

2. 논리고 정의고 뭐고 없고 단지 분위기 망치는 것만으로 죄가 될 때.

3. 옳다는 건 알겠지만 설득시킬 자신 없을 때.

4. 나도 잘 한게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비겁해질 때.

5. 피곤할 때.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7. 10. 22. 09:39

짐 보관소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중학생 쯤 되어보이던 아이들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남의 짐을 마구 집어던지고, 심지어 집어던져진 짐 안에서 뭔가 굴러떨어지는 것도 볼 수 있었죠. 그 굴러떨어진 건 솔기떡이었는데 잘 못한 기색도 비추지 않고 "먹을꺼다!" 하면서 소리지르기나 하는 아주 기본도 안된 애들이었습니다.

출발선에 조금 늦게 도착했더니 대열의 거의 마지막에 서있게 됐습니다. 워낙 사람들이 많았는지라 출발하고서 제 속도를 낼 수가 없더군요. 레이스 초반에 4km 정도까지는 계속 요리저리 피해다니며 추월하느라 힘빼야 했고 그후에 6km 쯤 갈때까진 자기 페이스를 모르고 대열 앞에 섰다가 후반에 후달린 사람들을 추월하면서 힘빼야 했죠.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피해다니는 스트레스가 별로 없었습니다. 하프코스나 풀코스의 경우 참가자들이 대략 자신의 페이스를 알고 있고 또 목표 시간대별로 페이스메이커를 세워서 그 주변에 비슷한 페이스를 갖은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추월에 대한 스트레스는 참가자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죠. 10km 대회에 처녀출전했기 때문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네요.

그리고 10km 대회에서 한가지 더 예상하지 못했던 점은 젊은 여자분들이 많다는 것. 전에 하프코스와 풀코스를 출전했을 때 다방에 온 분위기었다면 그에 비해 10km 대회는 이쁜 까페에 온 기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레이스 후반부에는 뒷쪽에서 앞으로 추월해나가서 그런지 거의 안보여서 다시 다방분위기가 되더군요.

기록은 51분34초. 그동안 실내에서 5km 정도 뛰는 게 고작이었고 10km 뛰어본 것도 사실 꽤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미사리까지 가면서 기운 뺀 걸 생각하면 기록은 꽤 만족스럽죠. 사실 기록보다 이번 대회는 철인3종 올림픽코스를 뛸 수 있을까에 대한 시험 같은 거였지요. 자전거를 오래 탄 후에도 얼마만큼의 페이스로 10km 를 달릴 수 있을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상당히 만족스러웠고, 혹시 힘이 달리면 돌아올 때는 지하철에 자전거를 싣고서 오려고 했는데 힘이 남아서 되려 돌아올 때는 갈때보다 더 빨리 올 수 있었습니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7. 10. 16. 15:19
얼마전에 제 일터가 있는 목동에는 교보문고가 생겼습니다. 가끔 점심시간에 가기도 하고 그보다 더 왕왕 근무시간에 땡땡이치러 가곤하죠. 오늘은 점심시간에 갔다가 근무시간을 비집고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서 돌아왔으니 점심시간과 땡땡이가 걸친 날이로군요.

근래에 서점가서 야금야금 보는 책이 있습니다. "서울여행" 이란 책인데 한 권 사버리고 싶다가도 밝히고 싶지 않은 엉뚱한 이유로 사질 않고서 서점에 갈 때마다 야금야금 들춰보는 책이죠. 그리고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도 함께 핥고 있는데, 제가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가 수상한데다가 역시 좋아하는 작가 윤성희의 작품을 오랜만에 접할 수 있었죠. 지난 토요일엔 반디앤루니스에서 같은 책에서 김연수 작가의 중편을 읽었고, 오늘은 교보문고에 가서 같은 작품 한 번 더 곱씹고나서 윤성희 작가의 작품으로 넘어갔습니다.

윤성희 작가의 작품의 첫장을 읽다가 갑짜기 커피가 마시고 싶어지더라고요. 목동 교보문고 안에는 illy 까페가 있는데 책을 거기로 들고 들어가긴 좀 그래서 테이크아웃 해다가 서가에 가서 다시 윤성희 작가와 만났죠. 그렇게 빨대로 커피를 뽑아올리면서 책장을 넘기던 중 문득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의 뒷면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그 책의 가격이 보고 싶어진거죠.

몇년 전까지 전 꽤 많은 수의 각종 문학상수상집들과 창작과 비평 또는 문학동네 등의 계간지들을 사모았었습니다. 그런 책들을 사는 이유는 작가가 단편집을 내기 이전에 그들의 작품을 접해볼 수 있는 책이었기 때문인데, 그런 이유는 이율배반적으로 더이상 사지 않는 이유가 되었죠. 나중에 단편집이 나와서 그책을 사면 겹치기도 하고 또 그런 책들이 계속 쌓이다보니까 애물단지처럼 책꽂이만 넉넉하게 차지하길래 더이상 사모으지 않고 서점에서 보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돌고 돌았지만 결국 쉽게 말하면 "짬뽕 책 사기엔 돈이 아깝더라" 라는 거죠.

그런데 오늘 illy 커피를 들고서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근작을 들고 있으려니 어떤 가치전도된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책의 가격을 확인해보고 싶어진 겁니다. 98백원이었죠. 커피는 4천원이었고요. 서점에 서서 책을 읽는 것의 의미가 단지 돈을 아끼는 것에서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연 그 잠깐의 순간에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산 4천원짜리 커피가 사지 않고 서점을 지날 때마다 잘근잘근 읽겠다던 책 한권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있는가 싶어지더군요. 혹은 그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서점에 갈 때마다 그런식으로 커피를 한잔씩 마시게 된다면 커피는 수단이 되고 여전히 책은 목적이지만 목적보다 수단을 위한 지출이 많아지게 되어 정말 '가치전도'가 맞게 되는 거죠. 이건 저 개인에게 되묻는 질문이지 타인에겐 이런 거 물어볼 생각도 없습니다.

물론 illy 커피 한잔의 재화적 가치는 서점에 있었다는 상황과는 별개죠. 커피 한잔은 제가 어떤 상황에 있었든 마시고 싶다는 욕구를 해결해준 그 자체로 4천원의 가치를 다했습니다. 옛날에 그런 비싼 커피 사마시는 게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던 때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고, 다만 그거 두 잔 정도 마시는 걸 참으면 책 한 권 더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게 되버렸다는 게... 책도 살 수 있고 커피도 살 수 있게 됐으니 그리 변한 건데, 그렇담 들고 읽던 책을 안 사는 건 또 뭔지...

그래서 윤성희 작가의 근작 단편집 하나를 샀습니다. 괜히 혼자 찔려했다고 앞으로 커피 안마시겠다는 것도 우습고, 그렇다고 작품집을 안사는 다른 이유들을 무시한 채 예외적으로 오늘 들고 있던 책을 사버리는 것도 그렇고 해서 마침 읽고있던 작가의 근작을 사서 헷갈리는 맘을 다잡기로 한 거죠. 그러고보니 몇 년 전에도 윤성희 작가가 수상했던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서점에서 보고 있다가 윤작가의 단편집을 사들고 집에 왔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지금 찾아보니 제가 윤작가를 처음 접했던 그녀의 첫 작품집은 절판되버렸군요. 그녀가 장편으로 점프하지 못하는 것과 맞물리면서 왠지 잊혀지는 작가가 될가봐 살짝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왠지 커피 한잔만큼은 미안해지기도 하고요.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