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에 해당되는 글 98건

  1. 2007.09.07 아디다스 달리기대회
  2. 2007.06.29 사귈까? 1
  3. 2007.06.26 좀머씨 이야기 1
  4. 2007.04.19 궁도
  5. 2007.03.14 일루셔니스트를 함께 본 사람 (영화이야기 아님)
  6. 2006.09.13 이사
  7. 2006.08.05 엘러지 2
  8. 2006.08.03 알러지
  9. 2006.04.24 외삼촌의 기타
  10. 2005.09.07 빨간모자, 그 이후
  11. 2005.08.11 빨간모자에게 짜증이 많이 난다.
  12. 2005.08.09 pattern
  13. 2005.06.21 재부팅; back to life
  14. 2005.06.19 6인실
  15. 2005.06.19 내가 아픈 동안
  16. 2004.05.27 배철수 음악켐프 5000회
  17. 2003.09.23 사랑에 빠졌어요.
  18. 2003.01.13 불행한 것과 다른 우울함
A Day in the Life2007. 9. 7. 20:17
오늘 아디다스 킹오브더로드 대회에 참가신청 했습니다. 4년 전쯤인 것 같은데, 그당시 킹오브더로드 대회가 두번째를 맞았던 것 같고, 그땐 더 더울 때 임진강 옆에서 대회가 치뤄졌었는데 날짜도 시원할 때로 미뤄지고 대회 장소도 미사리 경정장 근방으로 옮겨졌네요.

그밖에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수년 전에 나갔던 대회에는 10km 대회와 21km 의 하프코스가 있었는데 지금은 좀 더 대중성을 갖기 위함인지 하프코스가 없어지고 5km 와 10km 대회만 치뤄지는군요. 사실 육상 트렉경기에서도 10,000m 경기가 있기 때문에 더이상 이 대회를 "마라톤"이라고 부를 이유도 없어진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일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풀코스 3회, 하프코스 5회 완주하면서 한 번도 10km 대회를 나가지 않았던 것은 평소 연습할 때 매일 달렸던 10km 를 돈주고 뛰어야 하는 게 아까웠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이번에 마라톤 대회도 아닌게 되버린 킹오브더로드에 참가신청을 한 첫번째 유혹은 기념품이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4년 전에 출전했던 대회때 받았던 시계는 그저그래서 쓰다가 버렸지만 그당시 받은 속건성 티셔츠는 아직도 운동할 때나 자전거탈 때 등 몸에 땀이 날 일이 있다 싶으면 종종 입곤 하죠. 그것과 유사한 티셔츠와 가을에 운동할 때 유용할 수 있는 바람막이 자켓까지 준다네요. 한동안 달리기를 게을리 했고 솔직히 관심도 좀 멀어졌음에도 기념품 때문에 이대회에 솔깃해졌습니다.

그리고 또한가지 결정적으로 4만원이란 참가비를 결재하게 만든 이유가 있다면 집에서 대회 행사장까지의 35km 를 자전거타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죠. 하프도 아닌 10km 를 돈주고 뛰어야한다는 건 여전히 자존심상하는 일이지만(물론 빨리 뛰어서 좋은 기록 낸다면 그것도 의미있겠지만) 만약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자전거타고 대회장까지 도착한 후 10km 를 달리고 도로 자전거타고 집에까지 돌아오면 할만한 이벤트가 되겠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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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 of the road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7. 6. 29. 14:32
사람들과 술 좀 마시고 정신이 물렁해졌을 무렵 마주보고 앉아있던 한 사람이 계속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그사람이 제 오른쪽에 와서 앉았고 좀있다가는 슬며시 제 손을 잡더군요. 누가 볼까봐 민망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전 고개를 돌리지도 못한 채 그냥 가만히 손에 힘을 빼고 있었지요.

내 손목 위에 닿고서 수줍게 흘러내려 잡아드는 그 손.
내 손등을 살짝 덮고있다가 티 안 날 만큼만 스다듬는 그 손짓.

그순간 마음이 가진 않았지만 어떤 간절함이 묻어있어 저로써는 확고한 몸짓을 할 수가 없더군요. 잡을 수도, 뺄 수도......


사람들과 헤어진 후 그사람에게서 좋은 사람 같아보여서 그랬다고, 앞으로 또 그럴지 모른다고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그다음날, 숙취의 괴로움이 지나가자 어제의 그 기억이 섬짓한 느낌과 함께 찾아오더군요. 온종일 떠오르길래 마침 나좋다는 여자 본지도 오래되서 외로운데 그냥 사귈까 하고 피식 웃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주저하게 만드는 단 한가지 이유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저는 여자만 좋아한다는 거지요.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7. 6. 26. 17:13
전 잘 모르는 사람하고 있거나 잘 아는 사람이라도 할 말이 없으면 입을 닫는 편입니다. 상대방이 어색해함에 대해 굳이 배려하지 않아도 되는 대부분의 상황이라면, 억지로 가벼운 말들을 만들어내고 웃음 지어보이는 게 피곤해요.

건성으로 던졌기 때문에 대답도 건성일 수밖에 없는 그런 대화들, 건성으로 묻는 법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도 서툴러서 본의아니게 다른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 때도 있습니다. 방금 전에도 피상적인 대화를 장기로 하는 것 같은 여자분과 엘리베이터에서 단둘이 됐었는데, 그런 사람이란 걸 의식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부터 피했다가 다른 걸 탈까하는 생각도 해야했고, 결국에 잘지내냐는 말부터 식사 이야기와 본부 행사 참석에 대한 질문까지 "네", "네", "아니오" 라고만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좀 어색해지는 상황이 그렇게 못견딜만한 순간인지, 그냥 서로 어색한 거 잊어버리고 각자의 상념에 빠진 채로 내버려두면 안되는 건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기보다 사회생활 속에서의 습관이 되버린 걸 내가 따라해야 하는 건지...

그냥 날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어요.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7. 4. 19. 13:17

운동을 즐기는 편이긴 합니다만 성격 탓인지 혼자하는 걸 좋아합니다. 오래달리기 좋아하지만 기록경쟁 하라고 하면 안할꺼고요, 수영도 좋아하는데 등수 따지면 역시 물에 들어가기 싫겠죠. 자전거도 좋아하지만 그거 타고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지 경주하라면 역시 안탈껍니다. 남들을 이긴다고 특별히 기뻐하지도 않지만 지는 건 또 기분나쁘기 때문에, 그런 부담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이 저에게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공 가지고 하는 운동처럼 반드시 경쟁자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운동은 잘 하지도 않죠.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하던 농구도 대학교 이후론 안했고, 재밌게 배우던 테니스도 그런 이유로 그만 뒀고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 보고 일찍 끝나는 날이면 항상 친구들과 가던 탁구장도 언젠가부터 안가게 되더군요. 그런데 말이 좋아 혼자 하는 걸 즐긴다고 하는 거지, 보편적인 관점에서 보면 완전 왕따당하기 쉬울 수도... 같은 이유로 당구나 포커,고스톱, 심지어 스타크래프트도 안하니까요.


한 3년 전에 서울숲 근방에 잠깐 살았었는데, 조깅하러 한강변으로 나갔을 때 거기서 국궁장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메가패스 장군께서 매주 두 번씩 주말마다 TV에 출연하시던 터라 국궁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러나 그 국궁장은 한 번도 열리질 않더군요. 그냥 시설만 되어있고 운영은 안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고서 잊고 지냈었는데 영등포에서 목동으로 출근하는 요즘 안양천을 건너면서 그곳에 있는 국궁장을 바라보곤 합니다. 잡풀이 무성하긴 하지만 뭐라고 써있는 플랭카드가 걸려있는 걸 봐서는 제가 출근을 안하는 주말에는 활들이 날라다니지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곤 하죠. 어쩌면 그 플랭카드에는 "회원모집" 이라고 써있을 수도 있고요.


설마 활 가지고 서로 쏴대지는 않을테고, 양궁처럼 점수 메기는 건 아니니 제 취향에 맞을 것 같은 기대감이 다시 일어나네요.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자전거타고 국궁장을 지나쳐보려고요.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7. 3. 14. 11:46
애드워드 노튼 좋아하는데 마침 영화 예매순위도 높고 해서 재미있을 것 같아 어제 보러 갔더랬죠. 전 눈보다 귀로 영화를 봤습니다. 모르고 갔었는데 영화 시작할 때 필립 글래스 이름이 나오길래 영상보다 음악이 귀에 쏙쏙 들어오더군요. 특히 Orange Tree 마법을 쓸 때... 예전에 스텔스에서 봤던 제시카 비엘도 은근한 매력이 있더군요. 전 그배우의 엉덩이가 참 이쁜 것 같습니다. 그밖에 스토리는 그만그만한 것 같고, 구성도 식상하면서도 불필요하게 앞뒤를 섞은듯하며(처음부터 그렇게 의도된 구성이 아니라 시나리오상으론 시간순이었는데 편집하면서 단순히 후반부에서 5분 정도의 필름을 잘라다 앞에다 붙여놓았을 것 같네요.) 사람들이 반전이라 말하는 것도 별로 놀랍지도 않았고... 기대한 것만큼 못됐지만 반면 기대하지도 않았던 필립의 음악과 제시카의 엉덩이가 있었으므로 결국 만족스럽게 볼 수 있었죠.

그리고 좀 가십으로 삼기 망설여지는 이야기지만 자꾸 가슴 속에 남는 일이 영화와 함께 묻어있네요.

영화는 퇴근길에 목동 현대백화점 지하에 있는 CGV에 혼자서 보러갔고, 극장 왼쪽 통로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극장 불이 꺼지고 영화가 막 시작될 무렵에 제 왼쪽자리, 즉 통로에 인접한 남은 좌석에 한 여자분이 와서 앉더군요. 하나의 이벤트나 시간 때우기 수단이 아니라 영화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은 영화를 혼자보길 즐기는 것 같습니다. 연극이나 콘서트도 마찬가지로 그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은 시간 맞는 사람이 없더라도 혼자 즐기기를 꺼려하지 않고 때론 일부러라도 혼자 가서 즐기기도 하죠. 그런 행동 자체가 약간의 쓸쓸함을 이겨야 하는, 혹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살짝 견딜 수도 있어야 하는 무덤덤함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단할 것은 없어도 흔하진 않으며, 그런 흔치않게 공감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옆에 앉아있다는 게 왠지 반갑더라고요. 게다가 이성인 여자분이... 하지만 이율배반적인 것이 그런 공감대는 각자가 따로일 때 공감대인 거지, 기실 공유를 해야 형성되는 말 그대로의 공감대를 위해 이야길 한다거나 하면 그때부터는 더이상 공감대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어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은 보고 반가움을 느끼는 것 이상의 뭔가를 해본적은 없었네요. 달리 말하면 무덤덤함 이상의 용기를 내지 못한 걸 수도 있겠지만요.

영화가 시작됐는데 계속 왼쪽의 여자분이 신경씌었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계속 부시럭거렸기 때문이죠. 들고 온 현대백화점 종이 쇼핑백 속에서 과자봉지를 꺼내더니 과자 봉지 소리를 부시럭부시럭 내면서 과자를 먹기 시작하더군요. 과자 먹는 건 좋지만 지나치게 부시럭거리는 것 같았네요. 그 작은 과자봉지 속에 과자가 그렇게나 많이 들었던 건지 금방 먹어버리지도 않고 계속해서 부시럭거렸습니다. 나중엔 과자 속에 부스러기도 한 다섯번은 털어서 먹는데 과연 그렇게 많이 털어나올 부스러기가 있었을까 싶었네요. 그뿐만 아니라 영화보는 내내 꿈틀거리면서 종이쇼핑백 속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며 종이 구겨지는 소릴 내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종이백을 치어 시종일관 잡음을 만들어냈습니다.

힐끔힐끔 바라보면서 눈치를 줘볼까 했는데 노골적으로 바라볼만큼 날카로운 성격도 못되고, 옆에 앉아서 제가 그정도 힐끔거렸으면 어쩌면 약간 눈치챘을꺼란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혼자 영화를 즐기러 왔으니 남들 신경 안쓰고 편하게 있는 걸꺼다 이해하려는 쪽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그랬네요. 여하튼 영화보면서 이정도 생각했으면 신경 많이 쓴 건 분명합니다. 어쩌면 그여자분도 혼자 보러온 제가 마찬가지로 신경씌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부시럭거리지도 않았고 또 남을 신경쓰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부시럭대지도 않았을것 같네요.

영화가 끝났습니다. 앤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보통은 거의 끝까지 앉아있는 편이지만 통로쪽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필립 글래스의 앤딩곡을 포기해야 했죠. 한편으로 왼쪽 여자분이 계속 앉아있어서 통로를 막는 핑계꺼리가 되어준다면 나도 그냥 앉아서 앤딩곡을 감상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영화가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는 겁니다. 저도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일어섰는데 그러면서 왼쪽 여자분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어둠속에 두시간동안 가려져있던 사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온 거죠. 그런데 제가 일어섰을 땐 극장 불이 여전히 꺼진 상태었고, 스크린 불빛에 비춰볼 수도 있었겠지만 빤히 바라볼 자신도 없었네요.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그여자분은 일어서서 통로를 비켜주었을 뿐 그자리에 그냥 서있었습니다. 아마도 통로를 비켜주면서 앤딩을 감상하려는 거였을까요? 그렇다고 그여자분 옆에 서서 마치 함께 온 것마냥 앤딩을 감상하긴 좀 그래서 전 고개를 숙인 채 여자분을 스치어 등뒤로 하고 그대로 극장을 벗어났네요. 극장을 벗어나면서 출구를 잘 못 찾아 헤매는바람에 극장 밖에서 그분과 마주치는 일도 기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대로 빠이빠이었던 거죠.

현대백화점 지하 목동CGV는 바로 오목교역과 연결되어있습니다. 11시가 가까워진 시간에 지하철역에 들어섰을 때 역사에 있는 꽃집이 아직 열려있길래 꽃집 아가씨에게 오늘 팀원들에게 바칠 장미꽃을 예약하느라 그곳에서 시간을 더 보내게 됐죠. 그러고 영등포구청 방향의 승강장으로 통하는 오른쪽 개찰구를 통과했고, 내렸을 때 집과 가까운 방향의 출구로 바로 나갈 수 있게 늘 가던 오른쪽 하향계단을 거쳐 승강장으로 내려갔으며, 승강장에서는 열차의 꼬리 방향으로 타박바닥 더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우연이 벌어진거죠. 걸어가는 방향 앞에서 승강장 밴치에 앉아있는 그여자분을 발견한 겁니다. 어두운 곳에서 옆자리에 앉은 것만 보았고 영화가 끝나서 일어섰을 때는 외투만 봤을 뿐이지만 그녀가 극장에서처럼 다리 앞에 놓은 현대백화점 종이백을 본순간 그냥 그여자분이 맞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닐꺼란 의심이 전혀 들지 않았던 건 두시간 내내 신경쓰면서 의식하지 못한 채로 수집했던 그녀를 식별할 수 있는 어떤 느낌 탓이겠죠.

밴치에 고개숙인 채 앉아있는 그분을 스쳐지나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밝은 곳에서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우연히 그렇게 만나게 해준 것도 땡큔데, 제가 앞을 스치고 지나갈 때 얼굴을 들어주기까지 하더군요. 어쩌면 그분도 그렇게 눈이 마주친 저를 알아봤을지도 모릅니다. 아까 극장에서 자기와 마찬가지로 혼자 관람하러 왔던 남자고, KFC 콜라컵을 자신의 오른쪽 팔걸이에서 종종 뽑아들어 신경쓰게 했으며, 두시간 내내 자신에게 눈치주려는 것 같았고, 자리가 불편했던지 허리를 숙여 팔을 괸 자세를 반복했으며, 자신과는 다르게 앤딩을 포기하고 벌떡 일어나 나가버린 오른쪽 자리에 앉았던 남자. 그여자 앞을 지나치며 잠깐 눈이 마주친 순간에 제가 그여자를 알아봤던 것처럼 아마 그사람도 절 그렇게 알아봤을 거란 생각이 그순간에 들더군요.

인터넷 상에서 볼 수 있는 글들 중 꽤 긴 편인 이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영화보다 더 자세히 쓸 정도로 그사람이 지금까지 속에 남아있는 이유를 전 헷갈려하고 있습니다. 처음 인상처럼 어떤 공감대 때문일까요? 아니면 영화 보는 내내 신경쓰게 했기 때문에? 우연히 지하철에서 다시 만나게 된 인연으로? 아니만 잠깐 눈이 마주첬을 때 봤던 그녀의 얼굴일까요?

아마 그녀의 얼굴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안면장애... 화상을 입은 것 같은 피부였고 보통 사람들처럼 두 눈이 평행하게 있지도 않았으며 얼굴 형태역시 보통보다 더 길었고 고개를 갸우뚱하지도 않았는데 기울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 그런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눈을 질끈 감을 뻔했습니다. 보통 그렇게 스치고 지나는 사람과 눈이 마주칠 때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아무렇지도 않게 시선을 비껴내곤 했던 것처럼 그녀와의 짦은 눈마주침이 보통의 그것과 다를 게 없이 행동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애써야 했죠. 과장해서 피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빤히 바라볼 수도 없었습니다.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또한 날 알아봤을 꺼란 생각과 함께 정말 순간적으로 그래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스치고 지나가서 옆 밴치에 앉아서 열차를 기다렸죠.

열차가 도착했습니다. 언제나처럼 열차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밴치에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보통사람들처럼 멈추지 않은 열차 앞으로 일어서서 다가가더군요, 다리를 절면서요. 우린 서로 다른 칸에 탔고 제가 영등포구청에서 내려서 출구를 향해 걸어가면서 옆칸의 그사람을 다시 바라보았지만 이번엔 얼굴을 마주치진 않았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다음날인 화이트데이에 부서 여직원들에게 줄 초코랫을 사러가기로했습니다. 그런데 여직원들에게 예약한 꽃을 함께 주면서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탕발린 말을 해줄 마음은 사라졌습니다. 그 느낌이 이번엔 공감대가 될 수 없고 대신 동정이 되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뭔가는 불공평하고 뭔가는 억울한 느낌입니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6. 9. 13. 18:46

살면서 쌓아둔 것들을 다 들어낸 빈 방에 서서 놓고갈수밖에 없는 공간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던 순간엔 익숙했던 내 숨소리마저 낯설게 빈 방을 울리며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런데 아직 날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듯한 새로운 공간에서 익숙해지면서 나는 알았다. 공간은 추억에 묻어 나를 따라다닌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창문을 갖게 됐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6. 8. 5. 18:00

계속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 짬을 내어 엘러지 검사 결과를 보러 병원에 갔습니다.

고양이 엘러지가 맞답니다. 그런데 고양이 말고도 소고기, 돼지고기, 우유 등도 함께 알러지로 나왔습니다.

그 좋아하는 우유도 못먹는다면 고양이랑 함께 사는 게 뭐 대수겠어요. 그냥 신경 끄고 살렵니다.

결국 12만원 땅바닥에 버린 거네요.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6. 8. 3. 15:03

얼마전에 병원에서 알러지 검사를 했습니다. 무려 12만원이나 들여서 했는데 검사 직후부터 바빠져서 아직 검사결과는 못봤네요.

제 팔에서 피를 뽑던 의사가 묻더군요, 왜 검사를 하는 거냐고. 저는 키우는 고양이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몸에 나타나는 증상의 원인이 혹시 고양이 때문인 것만 아니라면 최선을 다해서 치료하기 위해 덤빌꺼라는 거죠. 그랬더니 고양이 알레르기로 판명되면 어쩔꺼냐고 또 묻더군요. 그럼 12만원 길바닥에 버린 샘이라고 했습니다.

고양이를 다른 사람에게 준다거나 하면서 "잘 키워주실 분인 것 같아서 맡깁니다." 라고 하는 게 얼마나 우스운지 모릅니다. 아마도 그렇게 고양이를 받은 사람도 어떤 사정이 생겨서 또다른 누군가에게 "잘 키워주십시오." 하면서 맡길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제가 특별히 동물 애호가이거나 키우는 고양이에게 극성스럽게 잘하는 사람도 아닙니다만. 아침마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마다 눈을 맞추는 녀석을 어딘가로 보내버리는 건 저에게 해로운 일일 것 같군요.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6. 4. 24. 11:54

정말 오랜만에 기타를 잡아봤다.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네 걸음만 걸어가서 옷장에서 하드케이스를 꺼내 열면 되는 건데, 마지막으로 그렇게 했던 게 언제인가 싶을만큼 까마득한 일이 되버렸네.

악기를 안고서 6번줄부터 1번줄까지 훑어내렸다. 디리링~ 해야할 소리가 드리룽~ 하고 들리더라. 조율한지 오래 되서 줄이 늘어난 소리. 순간 내 방은 어렸을 때 어머니랑 함께 놀러가곤 했던 외할머니 댁의 어두침침하고 서늘한 다락방으로 변해있었다. 할머니 방의 아랫목 병풍 뒤에 숨겨진 작은 문을 열고 가파른 나무계단을 통해 들어갔던 그곳, 나에겐 신기하게만 보였던 갖은 잡동사니들이 쌓여있던 다락방에 내가 다시 와있었다.

갈 때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재밌는 물건들이 가득한 곳에서 외삼촌이 쳤다던 통기타를 발견했다. 비닐케이스를 벗겨보니 줄이 한 두 개 끊어져있었다. 나름대로 폼을 잡고서 6번줄부터 1번줄까지 훑어내렸다. 그리고 또다시 드리룽~ 그 소리가 조율 안된 소리라는 것도 알 수 없었고 또 조율할 줄은 더더욱 몰랐던 어린 나로 돌아가, 할머니의 다락방에서 기타를 조율하고 기억을 더듬어가며 곡 하나를 떠듬떠듬 연주해봤다.

아마 외삼촌은 다락방에 버려진 그 기타를 다시 조율하지 않으셨을꺼다. 부모님이나 외할머니를 통해 들어온 외삼촌의 갑갑한 삶이 그걸 알게 해준다. 어쩌면 말이다, 오늘 내가 오랜만에 이렇게 기타를 잡지 않았더라면 내 누이의 아이가 (조카가 생기기 전에 시집부터 갔으면 좋겠다.) 훗날 조율 안된 내 악기를 만지면서 한 껏 폼잡을 날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지. 아마 외삼촌의 기타가 다락에 들어가기 전에 외삼촌은 오늘의 나처럼 연주할 수 있다는 걸 슬며시 잊어가다가 바쁘게 삶을 쫓아가셨던 거다.

다행이다, 다시 조율하게 돼서.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5. 9. 7. 16:01
얼마전부터는 빨간모자가 대열의 선두에 서고 있다. 내가 강습 시간에 늦게 갔던 어느날 처음으로 빨간모자가 선두에 있는 걸 발견했을 때는 그냥 어쩌다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후로도 계속 선두를 고집하더라.

무슨 이유일까. 후미가 불합리해서? 어떤 이유에서건 열씸히 해보려고 선두에 서는 건 절대로 아니다. 왜냐면 빨간모자가 선두에 선 날부터 반 전체의 수영 속도가 엄청 느려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선두에 서서 뻔뻔하게도 다른 사람들을 막고 있었다. 그 본색을 알고나서 정말 기가 막혔다. 빨간모자 덕분에 항상 선두그룹에 섰던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강사도 당황해 하고 있다.

풀장 속에 빠진 똥을 피해야만 했다. 그래서 한 단계 윗 반으로 올려서 등록해버렸다. 화목토는 조금 힘들더라도 월수금은 수월하게 하려고 일부러 그반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날 시뻘건 똥덩어리가 떨어지다니 끔찍하다. 시뻘건 수영모를 뒤집어쓴 그 고약스런 표정까지 떠올리면 끔찍함이 배가 된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5. 8. 11. 02:20

아마도 은연중에 그일이(그럴 일이 있음) 작용을 하는 것 같다. 그이후로 난 짜증이 많아졌다. 스스로도 단속이 필요하겠다 싶을만큼이니 내 주변을 얼마나 불편하게 만들고 있을까 생각하면 사람을 피하고 싶어지기도하다.

같은 강습시간에 수영하는 아줌마가 있다. 처음 그아줌마가 눈에 띈 건 그의 빨간 수영모보다 항상 대열의 맨 뒤에 선다는 걸 인식하게 됐을 때었다. 대열의 앞이나 중간쯤에 서면 그러지 않아도 될 것을 유난히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꼭 대열의 맨 뒷자리를 고집하더라

수영 강습을 안받아본 사람들에게 설명하자면, 수영장 한 레인을 한개의 강습반이 줄을 서서 연습메뉴를 소화하는데, 레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우측통행으로 레인을 왕복하면서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뒤에 서는 사람은 실제로 왕복코스를 다 활용할 수 없을 때가 있다. 10명이서 줄을 섰을 때 10m 정도가 필요하다면 25m 한 레인을 왕복해서 10명이 레인의 출발점에 나란히 줄서게 되면 대열의 첫번째 사람은 50m 를 수영하게 되지만 마지막 사람은 40m 를 수영하게 되는 샘이다. 그밖에 선두가 후미에 비해 상당히 많은 운동량을 더 소화해야한다는 등의 부담에 비하면, 사실 이 문제는 소소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보통 수영강습에서 한가지 연습 메뉴는 여러바퀴를 연속으로 돌기 때문에 왕복코스에서 줄서있는 대열만큼을 손해보는 건 실제로는 마지막 한바퀴에서만 발생할뿐이기 때문이다.

빨간모자는 그 작은 손해가 불만인건지, 연습메뉴마다 마지막 바퀴를 돌때면 레인 끝에 도착하여 우측에 나란히 줄서서 호흡을 가다듬는 사람들을 밀치듯 수영해 지나가서 레인 끝까지 가곤 했다. 거기까지만해도 눈에 띄는 행동인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헤집고 지나온 사람들을 거슬러 다시 대열의 끝으로 걸어돌아가면서 여기 서있으면 수영하는데 방해가 되니까 자기가 도착할 땐 비켜줘야한다는 식의 잔소리를 예외없이 항상 하곤 했다.

앞서 말했드시 대열의 후미만 고집하지 않으면 격지 않아도 될 손해임에도 항상 맨 끝에 서서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거는 행동이 고약해보이기까지했다. 나는 항상 선두에 서기 때문에 그 빨간모자의 시비를 직접 접할 일이 없었지만 그 고양한 모습을 보기만해도 인상이 찌푸려지면서 눈가의 피부가 물안경을 꽈악 조이곤 했었다. 그런데 빨간모자와 내가 맨 끝과 맨 앞이어서 마주치지 않아도 됐던 편리함(?)이 머리와 꼬리가 만나는 일이 생기면서 부숴졌고 결국 빨간모자에게 짜증을 냈다.

접영을 하게 되면 레인을 우측통행 할 수가 없게 된다. 팔을 양쪽으로 넓게 벌리게 되는 영법이기 때문에 우측통행을 하면 오른팔은 레인을 가르는 줄과 닿게 되고 오른 팔은 돌아오는 사람과 부딪히게 되어 위험하다. 그래서 보통 접영 연습메뉴는 25m 레인을 편도로 사용하여 후미가 도착하면 선두가 다시 출발하도록 한다. 그런데 이때 역시 후미는 먼저 도착해서 서있는 대열의 길이만큼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접영을 왕복으로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강습레벨에서는 접영으로 25m를 갔다가 돌아올 때는 레인을 사용하는 폭이 좁은 크롤이나 한 팔 접영 같은 영법으로 왕복을 시킨다. 이렇게 하면 후미가 접영으로 25m 를 모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빨간모자와 마찰이 생겼던 날에 그런 식의 접영 왕복 메뉴가 있었다. 강사는 1바퀴 왕복 단위로 끊어서 후미가 도착하면 다시 접영으로 출발하라고 말했는데, 선두였던 내가 한바퀴를 돌아 왔을 때 후미가 아직 출발하지도 못한 상태었기 때문에 후미가 돌아올 때까지를 기다려 다시 접영을 하려면 나를 꽤 기다리게 해야했다. 강습받는 사람들이 많고 선두와 후미의 실력차이가 나면 그 간격이 벌어져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데, 강사가 선두인 나를 계속 기다리게 만들기가 뭐했는지 후미가 접영을 마치고 자유형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을 때 나를 출발시켰다. 그렇게 두바퀴 째를 돌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더니 후미었던 빨간모자가 나를 돌아도면서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는 거다.

"분명히 후미가 도착하면 출발하라고 말했어요!"

너무 뜬금 없어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벌써 도착했느냐는 말인가 싶어서 쑥쓰럽게 웃으면서 뭐라고 했냐고 물었더니 이번엔 따지듯 같은 말을 반복하더라.

"후미가 도착하면 출발하라고 분명히 말했다고요!"

그때서야 강사가 접영메뉴를 시작하기 전, 레인 왕복 후에 선두는 멈췄다가 후미가 도착하면 출발하라고 했던 말을 내가 어겼다고 잔소리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다짜고짜 따지고 드는 빨간모자가 황당하여 인상을 찌푸렸는데 물안경 밖으로 찌푸린 인상이 어떻게 비춰보였을런지...... 빨간모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 때문에 팔이 부딪혀서 아프다고 말하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표정을 보고있자니 짜증이 밀려왔다. 여러사람이 수영하면서 서로 부딪혀서 때로는 다치기도 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바로 잔날에도 앞자사람의 자유형 발차기에 손을 맞아서 왼손에 멍이 들었고 그날만해도 옆 레인에서 평영하던 사람의 발에, 배영하던 사람의 팔에 여러번 맞았다. 나역시 격고 있는 그런 일들 때문에 고의가 아닌 타인을 탓하는 것을, 그것도 내가 가해자가 아닌 상황에서 원망을 듣고 있자니 짜증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비교적 부드럽게 시작했다.

"네, 그런데 선생님이 출발하라고 해서 출발했어요.

내말은 듣지도 않고 부딪혀서 아프다는 말만 계속 하길래 빨간 모자의 말을 잘라먹고 짜증스런 어조로 말해줬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요, 선생님이 출발하라고 해서 출발했거든요?"

그때서야 빨간모자는 고약한 표정을 풀더니 갑짜기 웃으면서 황당한 말을 하고는 돌아서는 거다.

"내말은 웃자는 거지!"

기가 막혀서 더 할 말도 없었지만 그때부터 다시 후미와 선두가 만나는 상황이 껄끄러워졌다. 다시 왕복해서 돌아왔을 때 여전히 후미에 서있는 빨간모자는 출발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다시 만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빨간모자 뒤에 도착하자 꼭 내가 들으란 듯 이번엔 강사에게 불만을 말하기 시작했다. 후미가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선두를 출발시켜서 팔을 부딪혔고 그래서 다쳤노라고. 강사가 어쩔줄 몰라 대꾸를 못하고 있으니까 빨간모자는 아까보다 더 황당한 말을 남기고 뒤돌아섰다.

"그냥, 웃자고! 하하, 아~ 재밌다."

어쨌든 수강생의 불만을 듣게 된 강사는 다음 차례부터는 후미의 도착을 기다리도록 했다.

나이가 이모뻘 되는 사람임에도 그리 짜증이 나더라. 그런데 후미와 마주칠 일이 별로 없는 내가 느끼는 정도라면 배열의 끝부분에 주로 서는 사람들은 나처럼 짜증내진 않더라도 속으로는 빨간모자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을게 뻔하다. 도착하면서 항상 자기들과 부딪히는 행동에서부터 힘들어서 천천히 출발하고 싶은데 항상 후미를 유지하기 위해 먼저 출발하라고 부추기는 걸 자주 당했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다음에 또 마주치면 좀 더 대범하게 짜증을 부려볼지, 아니면 인격수양하는 샘치고 계속 참아볼지 생각중이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5. 8. 9. 23:17

tiered 롱 스커트, 젤리 슈즈, 본더치 모자, 안나수이 손거울 등의 유행, 친구의 여행 사진들 속에서 본 페턴화된 포즈들... 실증에서 비롯된 피곤함을 넘어서서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페턴화된 모습들.

그래, 또냐?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5. 6. 21. 08:48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것과는 달랐다. 그건 차라리 TV에 불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갑짜기 시끄러운 쇼프로가 중간부터 틀어진 듯, 판단이 잘 서지 않는 주변 상황들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내가 꺼졌던 후에도 멈추지 않았을 주변 상황들이, 피빛으로......

그건 내가 다시 부팅된 순간이었다.

어느새 밝은 조명 아래 누워있었다. 상처를 씻어내는 고통 때문에 눈을 질끈 감았음에도 눈이 부실만큼의 조명이 날 내리쬐고 있었다. 누워있던 곳이 스텐레스로 만들어진 실험대일 것만 같이 차가웠다. 난 물 밖으로 꺼내져서 어렵사리 아가미를 벌름 거리며 해부되길 기다리는 붕어 같았다.

사고의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충돌의 고통까지도. 그냥 누군가에 의해 재부팅되버린 것만 같다. 그리고 붕어처럼 누웠을 때 분명 이런 생각을 했었다.

"깨어나지 않았으면."

내가 다시 부팅되지 않았더라면 난 고통없이 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생각했봤었던 죽음이 바로 이 순간으로 이어졌더라면,
하는,

농담같은 아쉬움.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5. 6. 19. 15:56
아침에 깨어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매끈한 대머리 같아서 가발이라도 씌워야할 것 같았던 그의 잘려서 남은 다리었다. 그 옆에서 빨간 티셔츠를 입은 대머리의 아내가 그의 긴 다리를 잡고 있었고 반대편에서는 하얀 까운을 입은 의사가 그의 짧은 다리 끝에 약품을 발라 닦아내고 있었다. 그는 곧이어 하얀 붕대를 그위에 감았고, 나는 무더위에 붕대 때문에 땀띠가 돋을까 걱정스러웠다. 덥긴 한가보다, 그가 항상 환자복 앞섶을 풀어놓고 있는 걸 보면...

밤이 되자 문가에 누워서 산소마스크를 쓴 채 눈을 멀뚱거리던 환자에게 설치되어있던 전자 장비에서 자꾸만 버저가 울렸다. 며칠 전부터 간병을 해왔던 환자의 딸로 보이는 여자는 그옆에서 쉬지않고 부채질을 했고 친구로 보이는 남자는 별로 하는 일 없이 지켜만 보고 있었다. 부저가 울린다고 간호사가 달려오거나 간병인들이 부산을 떨지 않는 걸 보니 응급 상황은 아닌 것같았다. 그래서 처음엔 그소리에 놀라다가 나중엔 양치기 소년의 외침 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의미 없는 듯 반복되던 부저 소리말고도 산소마스크 안에서 헉헉 거리는 소리가 함께 들리기 시작한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간병하던 아저씨가 밖으로 나갔다. 곧이어 간호사가 그를 따라 들어와서는 환자의 침대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아저씨가 나머지 다섯개의 침대를 훑어보며 민망한 얼굴로 인사를 한다. 진작에 옮겼어야 했는데 방해되서 미안하다고, 숨쉬기가 불편해서 그런 거라고. 내 옆에 누워있던, 코에 커다란 솜을 박아넣은 할아버지가 애써 일어나 되려 미안한듯 인사를 받는다. 난 그대로 누워서 읽던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못 본 척 했다.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산소마스크는 어디로 옮긴 걸까.

그날 밤도 잠이 오질 않아서 휴게실에서 책을 읽다가 새벽 2시가 지나서 자리로 돌아와 두웠다. 내 옆 침대의 할아버지가 코 속에 솜을 박아넣은 만큼이나 답답하게 코를 골고 있었다. 할아버지한테서 등을 돌리고 잠을 청하려니 밖에서 한 여자의 울음 소리가 들리기시작했다. 아까 밤에 병실을 옮긴 산소마스크의 멀뚱거리던 눈망울이 떠올랐다. 잠시 후 할아버지의 코골이가 멈춘 후부터는 여자의 곡하는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그때 난 직감했다. 이 병실 안의 모두는 지금 깨어있어 저 울음 소리만을 제외한 이 완벽한 정막을 연출하고 있다. 코골이를 멈췄던 할아버지가 정막을 깨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곧바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병실 사람들이 간밤에 죽은 사람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병실들을 청소하러 다니는, 그래서 병실 사람들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아주머니가 산소마스크의 최후에 대해서 이런 저런 사연들과 함께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렇게나 나이들어보이던 산소마스크는 사실 서른 여섯으로, 딸처럼 보이던 여자의 남편이었단다. 다섯 침대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그 여자의 어린 아이들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때 코골이 할아버지의 아들이 들어오면서 침대 하나가 빠진 걸 보고 퇴원한거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힘 빠진 외마디 웃음을 터뜨릴 때 할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안타깝게 대답했다.

"아주 갔어."

지금 내가 앉아있는 병원의 유료 PC 양 옆에서 꼬마 아이들이 게임을 하면서 시끄럽게 놀고 있다. 정신없이 놀면서도 잠깐씩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아마도 이 아이들에게 찢어지고 부어오른 내 얼굴은 내가 병실에서 본 것에 대한 느낌과는 다를 거다. 더 무섭기는 해도 더 슬프지는 않을테니까.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5. 6. 19. 00:58
"얼굴 마주보고 있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병실 침대 옆에 앉아 별달리 할 것도 없이 날 바라보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웃으면서 그러셨다. 어렸을 땐 손가락 하나만 베어도 몸에 상처내면 큰 일이라도 날 듯 겁을 주셨던 어머닌 어디가신건지. 살아있어 이만하길 다행이라시며 되려 웃으시는 어머닌 내게 낯설기까지 했다. 거기다가 타지 생활하면서, 또 이런 저런 일들로 아들과 멀어져 한참동안 얼굴을 마주보지 못하시다가 피자국이 딱지지고 그 옆으로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얼굴로 누워 약기운에 힘이 빠져 멍하니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는 아들에게서 마주보고 있는 기쁨마져 느끼시나보다.

참 짧은 시간동안 여러가지 일들이 날 지치게 하고 있다. 왜 그래야하는 건지 화도 나고 또 이게 마지막이 아닐지도 몰라 겁도 나고, 멈추지 말고 돌봐야 하는 많은 일들이 걱정스럽기도 하고, 참 많은 생각들이 나를 괴롭힌다.

교통사고가 일순간 모든 걸 멈춰버렸다. 앞 뒤 안가리고 모든 것들을... 그리고 오늘은 평화롭게 딱 한가지 생각만 했다.

내가 아픈 동안 난 다시 착한 아들이 될 수 있을까?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4. 5. 27. 01:56
중학교 3학년의 어느날, 평소 잘 듣지 않던 라디오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배철수 음악켐프의 첫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100회 특집 방송에서는 방송 중간에 광고가 너무 많다라는 한 청취자의 건의 내용을 읽은 배철수는 곧바로 "배철수의 '광고' 켐프, 광고 듣고 다시 오겠습니다." 해버렸다.

나에게 정말 많은 음악을 들려준 그 방송에 출현해서 음악을 틀었던 적도 있다. 스튜디오까지 동행해준 지숙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러는 사이에 5000회란다. 내 취미가 라디오의 비대중성 마져 뛰어넘어버렸던 대학 재학시절부터 거의 듣지 않아서 15년 중 내가 아는 시간은 5년이 채 안될 것 같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5000회란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3. 9. 23. 15:27
정말 정말 사랑했던 후라이드 치킨과 헤어진 후 새로운 사랑을 찾았어요. 바로 립톤 아이스티 피치 340ml!! 사실 얘를 처음 만났을 때도 치킨을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이스티 때문에 치킨과 헤어진 것은 아니에요. 치킨과 헤어진지 1주일밖에 안됐지만 그래도 우리는 애절하게 사랑하고 있답니다. 그동안 몇 번 아이스티를 울리기도 했지만 함께 역경을 헤쳐나가면서 우린 매일 만나고 있어요. 오늘도 두번이나 만났답니다.

치킨은 밤에만 먹게 되잖아요. 그게 그녀와 헤어진 이유였어요. 살찔까봐서... 치킨에겐 미안하지만 더운 여름에 맥주를 찾게 되면서 그녀를 더욱 자주 만나게 되던 저의 불안한 마음을 아마 그녀도 이해해주겠죠. 제가 아니더라도 치킨을 사랑해줄 사람은 많으니까... 행복해야해, 후라이드 치킨!

그러고보니 제가 아이스티를 사랑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답니다. 수 년 전 회사 탕비실에서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던 저지만, 몇 달 전 월마트 판촉 아줌마가 그녀와 미팅시켜줬을 때 그 맛을 알지 못했던 저지만, TV 광고에서 미친 개시끼가 건방지게 해변에서 귀 펄럭이고 있을 때도 그녀를 못알아봤던 저지만, 그녀의 길고 긴 기다림을 생각하면 어찌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동안 그녀를 여러 번 울린 건 저의 바람끼 탓이었어요. 길을 가다가 그녀가 보고 싶어 들렀던 편의점에 그녀가 없어서 그만 네스티를 집어들었지 뭐에요. 저도 무척 실망했지만 그녀도 무척 슬펐을 꺼에요. 또 한 번은 복숭아 향이 없어서 레몬향 아이스티를 샀는데 아뿔싸, 처제가 될 사람과 바람이 날 뻔 했던 거지요. 더군다나 처제는 245ml 이었는데 날씬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물이 중요한 거란 깨달음을 얻었지요. 또 그런 일들이 있은 후에 "유사품을 주의하시오." 라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님을 절실히 깨닫고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됐답니다.


처제

역경도 있었어요. 사실 그 일 때문에 제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얼마전 지하 매점에 갔을 때 냉장고에 그녀가 없었지요. 네스티, 실론티, 아이스티 245ml 등의 유혹을 뿌리치고 저는 매점을 지키고 있던 여자분에게 다음부터 꼭 립톤 아이스티 피치향 340ml 을 빼놓지 말라고 당부를 했답니다. 그녀는 그때 저의 그런 모습에 감동했을 꺼에요. 어쨌든 그녀의 갑짝스런 부재를 격고 나니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됐던 거죠.

원래 모습과 바뀐 모습

사실 얼마 전 그녀는 겉 모습이 약간 달라졌어요. 저에게 더 예뻐보이려고 했던 것인지 "ICE TEA" 란 글자가 더 작아지고 그대신 "Lipton" 이 더 커졌으며 복숭아가 반쪽이었는데 1/8 쪽 쯤으로 작아졌답니다. 약간 알록달록하던 피부색도 밋밋하게 바꼈고요. 하지만 제 사랑은 변함이 없답니다. 전에도 깨달았드시 저는 그녀의 외모보다 내용물의 맛과 풍만한 용량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복숭아가 1/8 쪽으로 줄어든 것이 맛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지만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이상 그냥 믿기로 했어요.

오늘 지하에서 그녀를 두번이나 만났는데 역시 살찌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엄습하더군요. 그녀의 엽구리에 써있는 "설탕"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한 것이 더더욱... 그래서 저는 결심했답니다. 그녀를 더욱 오래 사랑하기 위해서, 지키기 어렵겠지만 저는 그녀를 낮에만 만날 꺼에요.

그녀의 옆구리

우리 사랑을 축복해주세요. 아, 부끄러...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3. 1. 13. 00:00
아직 좀 시간이 남았지만 아무리 늦어도 2월 10일 전에는 역삼동으로 이사를 간다. 모아놓은 거 한꺼번에 풀고 대출도 졸라 받았다. 방 구하러 다니면서 자기 집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하지만 나도 이제 침대에서 자게 됐다. 빨래를 널 베란다도 얻었다. 작은 식탁도 있으니까 가끔 라면을 끓여먹더라도 바닦에 쪼그리고 앉아서 먹지 않아도 되겠지...

어제 밤 잠을 청하면서 조그만 카페트를 사서 깔고 그위에 나무 탁자를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 앉아서 책 읽는 걸 상상해봤다. 책장도 하나 사서 바닦에 탑을 쌓던 책들도 가지런히 꽂아놓아야지 했었다. 자리가 좁아서 악기 연습할 때마다 보면대와 의자를 꺼내고 정리해야하는 것이 귀찮았는데, 이제는 아예 한쪽 구석에 늘상 보면대를 펴놓고 지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밖에도 많이 있다.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 어떤 사람들은 상상할 가치도 못느끼는 것들이... 난 행복하기도 하면서 여전히 조금 우울하다. 왜냐면 내가 내 부모님의 보호를 받던 시절에는 너무 당연하게 갖었던 것들을 내 손으로 하나하나 다시 얻고 있고 그 과정이 너무나 까마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자기들이 이미 갖고 있어서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나의 우울함에 공감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행복해하길 바란다. 나역시 그런 방법으로 우울함을 매워보련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