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al Mystery Tour/India2008. 2. 15. 18:51

스무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고서 아그라에 도착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무척 피곤했다. 그렇다고 인도의 기차역이 피곤한 여행자를 쉬게 내버려두는 곳이던가. "어딜 가느냐", "어디서 왔느냐", "따라와봐라", "이것 좀 사라", "돈 좀 달라". 이런것들을 뿌리친 뒤에도 끝없이 계속 되는 갖가지 성가신 찝쩍거림들은 어쩔 수가 없다. 그중 으뜸은 역전 릭샤왈라들의 호객행위. 그들을 피해 일단 역을 빠져나오고 보니 어느새 나는 목적지도 없이 한적한 곳을 향해 무작정 타박타박 걷고 있었다. 걷던 길 옆엔 아그라포트로 보이는 붉은색 성벽이 보였는데 그때문에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건지 알진 못했어도 잘못된 길이건 아니건 그냥 편안했다. 그리고 그 무렵 그 길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이 무나칸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내게 호객을 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인도 사람들이 모르는 걸 그는 알고 있었는데, 날 피곤하게 만들어서 이득될 게 없다는 것 말고도 그는 많은 걸 알고 있는 듯했다. 난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르면서 어느새 그런 그의 릭샤에 올라타있었는데, 그의 싸이클릭샤(자전거 인력거)가 오르막에서 올라가지 못하고 있을 때 나에게 내려서 밀어달라고까지 할만큼 그는 정말 뭔가 달라도 한참 다른 릭샤왈라(인력거꾼)였다.

무나칸의 속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묘한 카리스마까지 느껴지면서 함부러 할 수도 없었는데 가끔은 그가 무섭기까지 했다. 아마 그건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고 그에 비해 일반적인 인도의 단순한 사람들에 비해 너무도 다른 그의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고있는 데서 비롯된 듯 했다. 여하튼 난 그런 그에게 얼마만큼은 압도되어 끌려다닌 걸 부인할 수 없다.

아그라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빠떼뿌르 씨크리(Fathepur Sikri) 행 버스표를 살 때도 무나칸은 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정거장에서 기다리겠다며 돌아오는 시간약속을 요구했는데, 내가 돌아오는 시간을 꼭 정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더라. 그리고 사실 약간 부담스럽기도 한 그의 릭샤를 다시 타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약속은 내게서 깨지기보다 인도에서 깨지기 쉽기 때문에 난 인도의 약속을 그에게 해주고서 그곳을 떠났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버스 정거장 앞에서 그를 찾았다. 건성이긴 했지만 그건 최소한의 성의 같은 거라기보다 왠지 모르게 그렇게 해야만 했달까?

정거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나와서 그가 없다고 생각하며 묘한 안도감을 느끼게 될 무렵에 그는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사이클릭샤 위에 다릴 꼬은 채 팔장을 끼고 누워서 날 지켜보고 있는 그를 발견한 거다. 정말 귀신을 만난 듯 흠짓 놀랐다. 그는 나를 놓치거나 내가 다른 릭샤를 탔을까봐 안달복달 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편안한 자세로 정거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누워 내가 그곳을 지나갈 꺼란 걸 알고 있었던 듯 날 기다렸던 거다. 난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았던 거에 대해 변명부터 하게 됐다. 다시 한 번 그에게 압도당해버린 거다.

숙소로 돌아갈 때도, 다음 행선지인 자이뿌르로 갈 버스를 예약할 때도 그는 나에게 필요한 걸 제안하면서 탈 것을 제공하고 버스표를 살 여행사를 소개했다. 심지어 그 자이뿌르행 야간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에게 딱히 할 일이 없다는 것, 그리고 짐을 맡길 곳이 필요한 것까지 간파하고서 그는 내 짐을 여행사에 맡기게 하여 거기서 버스표를 살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그후엔 날 태우고 다니면서 쇼핑을 시켰다. 거기선 내가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손님을 태우고 온 릭샤왈라에게 커미션을 준다는 걸 내가 알고 있었다. (델리의 순박한 슈림버가 그렇다고 알려줬다.)

그렇다고 무나칸 때문에 내가 손해본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되려 편안하게 필요한 것들을 얻었다고 봐야한다. 그럼에도 찜찜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가 없었어도 될 여행에서 너무 능숙하게 날 파악하고 다루는 범상치 않은 인도인을 만났기 때문일 꺼다. 그리고 그가 되어 생각해보면서 그로부터 한가지를 배웠고, 사람들을 대할 때 간혹 실천하고 있다. 꽤 효과적이다.

자이뿌르행 버스에 오르기 전 그와 헤어지면서 그에게 일당을 거의 지불하질 않았다. 우린 그에 대해 미리 흥정하질 않았었고, 내가 흥정을 요구한 적이 있긴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no problem" 이라고만 일관했다. 그는 결국 나에게 성의껏 달라고 요구했고 나는 합리적인 돈을 줬다.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표정을 한 그에게 당신이 날 데리고 다니며 받은 커미션을 알고 있으며, 마지막에 쇼핑을 시켜서 돈을 쓰게 만들었기 때문에 남은 루피가 그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기도 했다. 대신 미안하다며 한국 동전 5백원을 주면서 루피로는 꽤 작지 않아고 알려줬다. 하지만 은행에서 동전은 환전이 되질 않는다. 영리한 그는 다른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서 능숙하게 그돈을 루피로 바꿨을지 모른다. 그러니 아마도 그 5백원은 다시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을꺼다.

무나칸 뒷모습

무나칸의 앞모습은 대략이나마 아직도 기억난다. 꽤 부리부리한 눈을 갖고 있다고만 말해두자. 뒷모습에서 더더욱 카리스마적 얼굴이 상상될 수도 있으니까.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2008. 2. 14. 10:37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를 빙글 돌던 중, 우도에서 성산으로 들어오는 배 안에서 저처럼 자전거 여행중인 한 남자와 마주쳤습니다. 그날 저녁 같은 민박집에서 우연히 그와 다시 만나게 됐는데 그때부터 그가 저에게 호기심을 갖는 눈치더군요. 나중에 듣고보니 제가 짐을 풀었던 방에 놓아둔 소설책 한 권 때문이었대요. 왜 그책이냐고 물어보고 싶었다지만 사실 그는 이미 알고있는 답을 저와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였죠.

그책은 김훈의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이었습니다. "칼의 노래"나 "현의 노래"가 아닌 왜 그책인지에 대해, 질문도 그의 몫이고 동시에 너무 당연한 답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가 시작되는 건 쉽지가 않았죠. 그런데 그가 부악문원에서 글쟁이를 꿈꾸며 수학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을 때부터 저 또한 그에 대한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호형호제 하며 밤새워 술을 마시게 된 겁니다. 우리가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걸 확인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은 '답'이었기 때문이죠.

우리 둘 모두 다음날 일출봉에 올라 해돋이를 볼 생각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간단히 한잔만 하자며 시작했었죠. 그랬던 우리들은 한 병만 더 하자며, 소주를 딱 한 병씩만 사들고 오길 몇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쓰러지기 직전엔 서로 부대끼며 기대어 또 나가서는 입가심이랍시고 맥주라도 사오면서까지 밤의 끝자락을 붙잡고 놓지를 못했었죠. 지금까지 그렇게 말 많이 하고 많이 마셔본 일이 없었어요.

그래도 해가 뜨는 걸 막을 재주는 없었습니다. 분명 일출을 포기하고 쓰러졌었는데도 새벽공기를 느꼈을 땐 눈이 떠지더군요. 그정신에 일어나서 그를 깨우지도 못하고 성산일출봉에 토하면서 기어올랐습니다. 그랬더니 일출이 시작될 무렵부터는 정신이 말짱해지더군요. 그리고 일출봉 위에서 뒤따라 올라온 그와 다시 만났죠. 그역시 저와 같았을 겁니다. 그런데 우린 다시 전날로 돌아간 듯 했습니다. 왠지는 지금도 모르겠는데, 그냥 꿈을 꿨던 것처럼 더 친해진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색해진 것도 아닌 그런 거였죠.

그 이듬해도, 그리고 올해도 전 신춘문예 당선자 명단에서 찾아보는 이름 하나가 더 늘었습니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새우잠에서 깨자마자 어제 썼던 말 하나를 또다시 바꾸고 하길 반복하다가 자기 속에 갖혀버리는 사람들 중 그 형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죠. 도대체 그게 뭐라고, 읽는 사람도 없는데 그게 뭐라고...... 그러니 좋아한다며 고래고래 고함치는 내가 얼마나 반가웠을까 싶어지고, 그럼에도 쫓고 있는 그를 내가 얼마나 부러워했나 싶어지고.

아직도 쓰고 있다면, 건배!!!!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2008. 2. 13. 01:32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이스탄불 공항 면세점에서 와인을 네 병 사왔다. 그중 셋은 터키 와인이고 나머지 하나가 Escudo Rojo. 한국에서도 어렵잖게 구해 마실 수 있는 칠레산 와인을 굳이 터키산 와인을 대신해 들고온 건 우리나라 할인마트에서 사는 값의 반 값도 안했기 때문이다. 망설일만큼 애매한 와인이 아니므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여행'과 '경험'이란 의미를 뺀다면 알지도 못하는 터키 와인 따위 제끼고서 Escudo Rojo 만 들 수 있을만큼 가지고 올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이번 여행은 미련이 없는 것 이상으로 후회스럽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좋은 기억이 없는 건 아니지만 터키 여행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면서도 스스로 저지른 엉뚱한 선택이었다. 게다가 막바지엔 여행을 망쳐버린 경험까지 하게 됐으니 더 말해서 뭐할까. 그렇게 이번 여행의 먼지를 가득 쓸어담아 더 무거워진 배낭을 처진 어깨로 걸쳐 매고서, 그럼에도 조금 더 느껴보겠다며 듣도 보지도 못한 터키 와인들을 싸들고 왔던가보다.

더 실망하기엔 때가 좋지 않다 싶어 터키산 와인들은 뒤로 미루고 방금 전 Escudo Rojo 를 땄다. 잔에 따라 빙글빙글 돌리고 코에 가져다 댄다. 이렇게 두꺼웠나, 마치 처음 느껴본 것처럼 묵직하고 풍부한 아로마에 큰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이거 참 다행이잖아.

조금 더 좋게 생각해보기로 하자.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2008. 1. 29. 01:38
조금전 여행에서 돌아왔다. 얼마간 못 봤다고 나를 낯설어하는 탈리(고양이)만큼이나 나역시 어딘가 아직 낯설고 불편하다. 그러면서도 두근거릴만큼 들떠있는 것이, 즐길 수 있는 만큼의 낯설음이 여행의 여운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그동안의 앞선 여행들이 고행을 닮았었다면 이번엔 휴식과 위안이 되어줬다. 그리고 또 이번 여행은 소설 같았다. 마치 무언가를 찾아 떠난듯한 여로형 소설 말이다.

바로셀로나 Joan Miro 미술관 앞에서 빨간 사과 한 알을 들고 나에게 다가왔던 사람. 인연이라 부르기도 쑥쓰러울만큼, 내가 타야했던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는 걸 서로가 알면서도 그렇게 몇 분간이지만 함께 버스를 기다려주었다.

세비야의 호스텔에서 내 윗 침대를 썼던 이를 꼬르도바에서 다시 만났을 때, 멀리서 그의 뒷모습과 함께 보였던 2유로짜리 반지를 내가 기억해내지 못했더라면, 그것에 우연이란 이름조차 붙이지 못했을 꺼라고 반가움 뒤에서 생각했었다.

그리고,

내가 알던 그 누군가의,
그러나 내가 알 수 없었던 그의 과거 속 순간들을
그가 아닌, 하지만 그를 닮은 누군가와 함께 다니며 엿볼 수 있었던
마드리드에서의 하루.

그 모든 순간들마다 우리에겐 각자의 여행이 있을꺼라 아쉬움 이전의 이별을 했을 때, 모두가 다 소설 속의 한 순간처럼 느껴졌다. 장소가 낯설어진만큼 길 위에서는 사람들도 함께 낯설어지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왠지 내가 가는 길 위에 필연적으로 등장했을 것 같은 그사람들을 떠올리고 있는 지금, 모든 여로형 소설들의 결말이 그러하듯 나역시 다시 현실 속으로 돌아와있다. 낯선 곳에서 얻은 무언가를 가슴에 담아갖고서.

우리가 이별을 하기 전부터 서로에겐 각자의 여행이 있었다.


2007년 10월 3일 새벽.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2008. 1. 28. 11:11
스페인 여행에서 많은 한국 여자 여행자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야길 나눈 경우는 몇 안되지만 그래도 많이 봤기 때문에 그들이 한국 사람임을 맞출 수 있을 정도가 되버렸죠. 한국 여자 여행자 구별법 중 가장 정확한 건 예쁜 여자는 다 한국여자라는 거죠. (뒤에 나올 말 때문에 약간 아부성 양념을 이렇게 뿌려야 합니다.) 그런데 간혹 그런 구별법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99%의 확률을 비켜가는 1%의 한국 여자 여행자를 구별하기 위해 두번째로 정확한 구별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더불어 일본과 중국 여자 구별법도 알려드리죠.


일본 여자 구별법

화려한 용모; 마치 신주쿠(?)에 놀러 나갈 때처럼 화려하게 치장합니다. 화장도 두 숫갈 바르고 머리도 이쁘게 모양낸 채 짧은 숏펜츠에 부츠까지 신었다면 그녀는 분명 일본인. 그런데 일본인들은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 여행자도 머리에 왁스 멋찌게 발라줍니다. 화려한 일본 여자 여행자를 마주쳤을 때 예를 갖추려면 그정도는 해야겠죠?

커플 여행; 부부로 보이지 않는 20대의 여행자 남녀가 붙어다닌다면 그건 일본인 커플. 한국 커플들은 결혼 전 해외 여행을 함께 하는 경우는 드물죠, 게다가 한국에서 먼 스페인이라면 더더욱. 그리고 일본에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본 커플은 손잡고 다니질 않아요.

따라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죠.
  • 결혼했다고 보기엔 젊거나 어린 커플이다.
  • 커플인데 손 안 잡았다.
  • 여행자로 보기엔 잘 꾸미고 다닌다.

한국 여자 구별법

99% Lesportsac 을 매고 다닙니다. 거의 예외가 없다고 봐도 될 정도죠. 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Lesportsac 이 여행용 가방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다들 들고 다닙니다. 아마 꿀리지 않는 명품스러움(?)에 가볍다는 실용성까지 있어서 그런가봅니다. 한국여자 답죠!

그래서 정리하기도 쉽습니다.

  • 동양인 서양인 막론하고 젤 이쁘다. (일단 양념 쳐놓고...)
  • 반드시 Lesportsac 매고 있다.
  • Lesportsac 안 맸으면 숙소에 놓고 왔다.

중국 여자 구별법

거의 "나머지" 격이기 때문에 설명 없이 바로 정리 들어갑니다.

  • 별로 안 이쁘고,
  • 꾸밈과는 거리가 벌고,
  • Lesportsac 을 안 들고 있다.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Africa2008. 1. 2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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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 투어 사무실 앞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브랜다.

브랜다(Brenda)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Capetown)에서 나미비아(Namibia)의 스와콥문트(Swakopmund)까지의 여행에서 제가 타고다녔던 트럭 이름입니다. '버스'가 아니라 '트럭'임을 강조할 수 밖에 없는 건, 트럭 운전사이자 투어 가이드였던 발트(Walt)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승객이 아닌 짐짝처럼 태우고 다니기 때문이죠.

브랜다의 정체

오랜지 리버를 향해가던 중 첫 1박을 했던 Gekko's Guest House 에서 발트는 사람들을 그곳의 잔디밭에 모여 앉혔습니다. 그리고 그는 트럭의 정체에 대해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했죠. 벤츠에서 만든 그 트럭은 승객을 태워 여행용으로 쓸 수 있도록 노매드 투어 워크샵에서 개조를 했고, 그렇게 개조되어 남아프리카 대륙을 여행중인 수십대의 트럭들 중 가장 최신 기종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그당시가 2005년 이었는데 그때 브랜다는 워크샵에서 개조되어 나온지 1년이 조금 더 된 깨끗한 트럭이긴 했죠. 그런데 년식을 기준으로 따지면 그걸 '최신 기종' 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말을 '현대적 편의시설' 이란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그때 발트는 이렇게도 말했죠.

"당신들은 운 좋은 걸로 알아라. 브랜다는 몇 안되는 에어컨이 설치된 트럭이다."

하지만 그 에어컨이란 건 틀어도 뜨거운 바람밖에 안 나오는 모양만 에어컨인 물건이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있었던 때가 12월 동지(아프리카 기준으로는 하지) 무렵이었는데, 남반구에서 낮이 가장 길 그무렵에 남회귀선을 통과했던 그 트럭 내부는 괴로워서 잠들어버리고 싶을만큼 엄청나게 더웠습니다. 그런 트럭 안의 천장에는 뜨거운 바람을 내뿜으며 여행자들을 약올리고 있는 에어컨이란 놈이 붙어있긴 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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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다 안에서 퍼져 자고 있는데 발트가 길 한복판에 트럭을 멈추더니 사람들을 깨웠다. 이곳이 바로 남회귀선이라며. 사진은 남회귀선 표지판에 매달린 라일.


브랜다의 이름의 유래

한가지 더 재미있는 건 트럭 이름의 유래입니다. 노매드 투어의 설립자들이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모든 노매드 투어 트럭들은 요절한 가수들의 이름을 따서 짓게 됐다더군요. 그래서 다른 트럭들 이름도 레논(John Lennon) 이나 엘라(Ella Fiztgerald)등으로 이름지어졌답니다. 그런데 트럭의 대수가 많아지면서 더이상 요절한 가수들 이름을 붙이기 어려워지자 근래에 출시된 두 대의 트럭에는 살아있는 가수의 이름을 붙이게 됐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브랜다' 였다네요. 브랜다는 남아프리카의 가장 대중적인 가수 브랜다 파씨(Brenda Fassie) 에서 따온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재수가 없었던 건지 2004년 4월에 브랜다 파씨가 천식으로 요절했고, 결국 트럭 브랜다는 요절가수의 이름을 갖는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게 된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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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기 위해 나무그늘 아래 멈춰선 브랜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트럭 옆구리에서 조리용 선반과 기구들이 있다. 사진에 보이는 개는 우리 일행이 아니었고 그냥 저곳에서 만났다.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India2008. 1. 23. 10:36

여행이 끝나갈 무렵 다시 찾은 뉴델리. 역전의 빠하르간지 메인바자르를 따라 걷다보면 여행자들에게 꽤 유명한 라씨(요구르트 음료) 가게가 보입니다. 처음 그곳을 지날 땐 그런게 눈에 잘 띄지도 않았을뿐더러 발견했다 해도 들어가질 못했었는데, 이제 라씨가게에 찾아들게 될 만큼 이곳에 익숙해진 거죠. 그런데 그럴 때가 바로 떠나야 할 때라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라씨 한 잔을 주문하려는데 왠 낯선 남자가 다가와서는 자기도 한 잔 사달라고 합니다. 여행자들을 봉으로 생각하는 게으른 인도 사람 중 하나였을 그의 이름은 "언감생심" 이었죠. 내가 왜 너에게 사줘야 하느냐고 웃으며 놀려주곤 보냈습니다. 그렇게 라씨 한 잔을 받아들고 라씨 가게를 등지고 서서 메인바자르 거리를 바라보며 라씨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앞을 지나가던 오토릭샤 한 대가 서더니 저에게 "미스터 리" 하고 소리치더군요. 빠하르간지 골목을 걷고 있자면 그렇게 저를 불러잡고 "웨어 아 유 고잉?" 하는 릭샤왈라(릭샤 운전사)들을 무척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보통은 릭샤왈라들에게 눈길도 안 주고 무시하기가 일수였죠.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건 제 이름을 불러준 릭샤왈라가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를 바라봤을 때 그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죠. 처음 델리에 도착했을 때 저를 태우고 다녔던 릭샤왈라 슈림버 였습니다. 그때와 옷도 똑같더군요. 나름 작업복이었을까요?

그는 사실 제가 델리에 도착하고 이틀째 되는 날 온종일 저를 태우고 다녔던 오토릭샤 운전사였죠. 제가 델리를 떠날 때 델리에 다시 들르게 되면 연락달라며 그가 적어준 전화번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델리에 돌아왔을 때 낯선 사람보단 나을 꺼란 생각에 그에게 전화를 해볼까 했었죠. 하지만 아무데서나 잡히는 릭샤를 타기 위해서 굳이 전화를 걸어야 할까 하고 망설이던 중이었는데 그렇게 그를 다시 만난 겁니다. 결국 그런 우연한 만남이 여행의 재미를 더해줬지요.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무척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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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짜기 오토릭샤를 세우더니 담배를 사러 달려나간 슈림버.


슈림버 아저씨는 착하고 재밌는 사람입니다. 자꾸만 쇼핑을 시키려고 해서 귀찮았고, 그럴 때마다 시간 없으니 안된다고 할 때면 가끔 못들은 척하거나, 이해 못 한 것처럼 능청떠는 게 얄밉기도 했지만 잔머릴 굴리거나 하는 낌새를 느낄 수는 없었죠. 그래서 그의 오토릭샤를 타는 건 참 편했습니다. 그는 운전하면서도 심심찮게 영어 단어를 나열하는 식의 의사소통을 저에게 시도했는데, 제가 이해를 못했을까봐 시간이 좀 지나서도 같은 말을 다시 반복하곤 했고 전 그런 그를 재밌어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죠.

"폴리스 컴, 노 미털? 유, 미털, 미털"

그 말은 경찰이 와서("폴리스 컴") 미터기 안 쓰고 있냐고 묻거든("노 미털?"), 미터기로 가고 있다고("유, 미털, 미털") 대답해달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한 세 번은 들은 것 같아요. (지방마다 다르지만 델리의 오토릭샤는 흥정으로 가격을 결정하고 달려있는 미터기는 그냥 폼이었습니다. 그런데 슈림버는 아마도 단속이 두려웠나보죠. 그러나 한 번도 경찰이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가 필요한 모든 이야기를 저에게 했죠. 저역시 제가 아는 영어를 전부 동원해 그에게 제가 필요한 말들을 했지만 그가 알아듣기엔 너무나 불피요한 단어들이 많이 섞여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그를 이해시키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르죠. 사실 유창하지도 못 한 제가 그에게 유창한 것처럼 영어를 말할 필요가 없는 건데 말이죠. 결국 그렇게 어렵게 영어를 쏟아내고 있는 제가 우스워지더군요. 아마도 의사소통이 목적이 아닌, 영어를 목적으로 공부해왔기 때문인가 싶어지기도......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India2008. 1. 22. 17:41
깜깜할 때 일어난 Jack 은 갠지스강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자며 내 방문을 두드렸다. 잠에서 깨어 문을 열어주자마자 그에게 끌려나온 나는 우리가 머물던 샨띠 게스트하우스의 옥상으로 향했다. 그 추운 밤동안에 계단이나 복도에서 아무렇게나 걸처져 자고 있었던 샨띠의 종업원들을 피해 옥상까지 오르는 길은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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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올랐을 때, 순간 나를 허탈하게 만들었던 건 아직 중천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던 보름달이었다. 그 달이 너무도 밝아 나로써는 이미 해가 떠버렸는 줄 알았던 거다. 저렇게 높게 떠있는 달이 땅 아래로 내려와야 태양이 고개를 내밀꺼란 생각을 하니 나를 너무 일찍 깨운 Jack이 약간 원망스러워졌다. 추위에 떨며 일출을 기다리기보다 달이 지길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달이 태양과 정 반대에 있을 줄 알았던 건 잘못이었다. 달은 땅 아래까지 내려오지 않았고 그보다 먼저 떠오른 태양에 빛을 잃듯, 밝아진 하늘에 녹아 없어진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그날은 Jack 이 다음 행선지로 떠나기로 한 날이었다. 우린 아침먹기 전에 강가에 나가 일출을 보며 함께 배를 탔다. 그때서야 우린 처음으로 다시 만나자 했다. 하지만 그건 여행지에서 만나는 모든 객들끼리 주고받는 끝인사를 닮은 첫인사 같은 말이었을 뿐. 그 말이 지켜지게 될지, 지켜지게 되더라도 얼마나 오래 갈 인연인지는 우리가 탄 배 위에서 알 수 있는 것이 못되었다.

그는 기차 출발시간 전까지 그의 짐을 맡아줄 곳이 필요했다. 아침식사 후 나는 따로 가야할 곳이 있었기에 그에게 내 방에 짐을 놓고서 열쇠를 가지고 나가라고 했다. 짐을 찾으러 돌아왔을 때 방문을 다시 잠그고 열쇠는 약속한 곳에 숨겨놓도록 하면 됐다. 우린 다시 한번 다음을 기약하고서 그렇게 헤어졌다.
 
빤데이 가트로부터 시작해 매번 골목을 헤매야만 발견할 수 있는 트리비니 뮤직센터에서 시타 레슨을 마친 후 다시 한 번 강을 따라 가트들을 거슬러 돌아가 저녁 무렵이 되서야 샨띠로 돌아왔다. 그는 역시 떠나고 없었다. 왠지 손해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떠났을 걸 알고 있었지만 잘가라고 미리 인사를 해버린 우리의 헤어짐이 나에겐 그의 부제를 확인하면서 그런식으로 또 한번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마치 다른그림찾기와도 같았다. 아침에 그와 함께 방을 나서면서 그의 가방이 침대 옆에 놓여있음을 보고 방문을 닫았다가, 저녁 때 돌아와 다시 열었을 땐 놓여있던 가방만 없어진 "다른 그림" 말이다. 이별이 바로 그런 거라니, 다른그림찾기 같이 아주 단순한 변화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은 약간의 위로가 되어줬다.

그리고 그 그림 속에는 그의 배낭이 없어진 것 말고도 다른 것이 또하나 더 있었다. 과일 한 알과 함께 그가 남긴 노란색 포스트잇 메모. 거기엔 다시 만나자며 "아구바" 한 알을 놓고간다고 써있었다. 사실 그 과일의 이름은 "아구바" 가 아니라 "구아바"였다. 그가 낯선 곳의 노점에서 이름 모를 낯선 과일을 사먹다가 처음엔 낯설었던 나와의 작별인사를 한 번 더 하고 싶어 메모를 적고 있었을 때, 그는 어렴풋이 잘 기억나지 않는 과일 이름을 애써 떠올리다가 "아구바" 라고 적었겠구나... 살포시 웃음짓게 되면서 그후로 오랫동안 우리가 친구가 되리란 걸, 아까 배 위에선 알 수 없었던 걸 그순간에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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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2008. 1. 15. 09:25
Pune Railway Station

인도의 기차역은...



                           
언제나 생경하지만,


그런 선자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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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Africa2008. 1. 10. 11:50

페니는 함께 케이프타운에서 트럭투어를 시작한 호주 아이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녀와 여섯명쯤 되었던 그녀의 일당들은 남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단체에서 일하는 고등학생들이랍니다. 우리나라에서 봉사활동이 내신성적에 반영되듯 호주에서도 대학입학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그들 무리 중 유난히 활달하고 시끄럽게 수다스런 아이였죠.

그런데 앞서 함께 여행하던 호주아이들을 "그녀의 일당들" 이라고 표현하는 건 기실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녀의 지나치게 발랄한 모습은 가끔씩 그녀의 소외된 모습의 반영처럼 보이도록 했기 때문이죠. 햇볓이 쨍쨍한 날에 내 그림자도 더 선명해지듯, 그녀의 밝은 모습은 그만큼 더 그녀의 어두운 모습을을 대조시켜 강조시키는 듯 보였죠. 언제나 몰려다니다가도 간혹 혼자된 모습이 유독 눈에 띄는, 페니는 그런 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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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vis 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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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Dune 45 at Namib Des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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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간혹 여행이 끝난 후에 그이상의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여행중에 본 것들이 사전 공부가 되고, 거꾸로 여행이 끝난 후에 그것을 확인하는 경험 또한 특별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 게 있다면 여행이 끝났어도 여행이 끝나지 않은 듯한 여운을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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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까르모나에서 꼬르도바를 향해 가던 버스 안에서 만난 언덕 위의 거대한 "소"가 그랬습니다. 안달루시아에서 비롯된 유명한 투우 경기를 상징하는 조형물이었지만, 별로 꾸미지도 않고 크기만 큰 소 한마리가 저리도 황량한 벌판 위에, 낮게 떠가는 구름의 그림자 아래서 쉬고 있던 그모습은 정말 기억에 남을만큼 인상적이었죠. 관광버스가 아니었기에 사진찍으라고 내려주지 않아서 찍은 사진이 좀 엉망이긴 하지만 그 느낌만은 생생하고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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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약간의 시간이 지난 어느날 저는 "나스" 라는 일본 에니메이션을 보게 되었고 거기서 그 소를 다시 한 번 만나게 됩니다. 안달루시아 지방이 고향인 주인공이 "Vuelta ciclista a Espana" 라는 스페인의 유명한 사이클경기 도중에 그 소를 만나게 되고, 그 소와의 조우는 주인공에게 어떤 무덤덤한 터닝포인트가 되죠. 그리고 에니메이션에서가 아닌 실제 Vuelta ciclista a Espana 경기사진 속에서 또다시 그 소를 만났을 땐 끝난줄 알았던 제 스페인 여행은 다시 즐길 수 있는 여운으로 되살아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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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도무지 저 소의 정체를 알 수가 없군요. 저렇게 커다랗게 눈에 띄는 것이 에니메이션에까지 나왔다면 분명 이름이 있는 명물일 것 같은데 아무리 검색해봐도 나오질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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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2007. 12. 26. 10:25

또다시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터키. 지난 9월에 갔던 스페인을 계획하기 전 저는 터키에 가고자 했었지만 갑짜기 어떤 단순한 이유로 스페인에 가는 걸로 계획을 바꿨더랬죠. 사실 지금으로써는 터키에 가고자 하는 생각이 이전 같진 않습니다. 스페인 다녀온지 얼마 되질 않아서 08년 음력설 연휴에 떠날 여행을 준비할 에너지가 덜 모아진 느낌이랄까요? 그러고서 밀린 숙제를 느즈막히 발견한 느낌으로 항공권을 알아보기 시작했죠. 먼저 이집트,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등에 가는 항공권을 찾아봤지만 모두 매진이었습니다. 터키만 덩그러니 여유좌석이 있더군요. 또다시 대한항공 배낭여행 특가 직항편을 이용하게 됐는데, 지난번 스페인 여행 때 이 특가상품 때문에 생난리를 쳐야했던 걸 떠올리자니 이번 터키 여행이 나이제한으로 인한 마지막 특가항공권 이용이겠다는 서글픔이 있네요. 그때의 생난리에 대한 내용은 trackback 글로 엮어놓겠습니다.

이번 터키 여행은 08년 2월이 되자마자 출발하는 10일 일정입니다. 겨울의 후반부가 되는데 터키의 날씨 특성상 비도 흩날릴 수 있고 날씨도 흐린데다 지역에 따라서는 한국만큼 추울 수 있다고 하니 여행하기 좋은 날씨는 아니죠. 해도 일찍 떨어져서 관광할 수 있는 시간도 짧을테고, 밤시간에 즐길만한 걸 찾는다 해도 날이 추워서 의욕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겨울의 눈 쌓인 장관을 보게 되는 행운을 기대할 수도 없을테죠. 더군다나 이전만큼 터키에 대한 의욕이 없기 때문에 여행계획을 짜기보다 앞서 걱정부터 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남은 한 달의 준비기간 동안 터키에 대해 특별한 것들을 찾아볼까 합니다. 남들이 성수기인 여름에 다녀오면서 만끽했던 일반적인 모습들은 제가 여행할 겨울에는 기대하기 어려울테니까요. 그래서 그런 상투적인 걸 배재하고 뭔가 다른 걸 찾아내어 여행에 대한 의욕을 충전시켜 나가야겠죠.

이번에도 터키의 이스탄불에 저녁 무렵에 도착하게 되고 돌아올 때 역시 저녁에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타게 됩니다. 지난 스페인 일정에서처럼 이럴 땐 차라리 도착 즉시 밤 시간을 이용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이스탄불을 마지막 여행지로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이스탄불에 볼 꺼리들이 많다고 하니 마지막 여행지로써 의욕을 유지시키는데 도움도 되겠죠. 겨울이라서 지난번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서처럼 노숙하기는 어렵겠지만 다음 도시로 트랜스퍼 하기 위한 비행기편부터 알아보기 시작하렵니다.

서두에서 터키를 재치고 이집트, 슬로베이나, 이탈리아에 가고자 했던 건 모두 사람들 때문입니다. 이집트는 그곳에 다녀온 친구의 여행담이 흥미로웠기 때문이었고, 슬로베이나는 스페인 여행 중 바로셀로나의 호스텔에서 만난 슬로베이나 학생 "우로쉬" 때문에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가봤던 이탈리아를 또 가려고 알아봤던 건 지난 9월의 여행을 터키에서 스페인으로 바꾸게 했던 사람 때문이었죠. 그런데 그 모든 인연들을 뒤로하고 터키로 가게 됐네요. 어쩌면 또 무언가를 만날 운명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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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Spain2007. 12. 19. 03:14
먹기 싫어서 피해다니지 않는 한 스페인 여행 중에 와인을 안 마신다는 건 아마 불가능에 가깝잖을까요? 우리나라 식당에서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물은 주지만 미네럴워터를 사마셔야 하는 그곳에서는 주문할 때마다 물/맥주/와인 셋 중 하나는 시켜야 합니다. (목마름을 참겠다면 주문 안해도 되겠지요.) 이 때 물을 시키자니 왠지 손해보는 느낌일테고, 맥주는 거의 시장을 통일하다 시피한 듯한 Cruzcampo 맥주가 지겨워질 때가 있을꺼고, 그렇다면 와인을 한번쯤 선택하게 되겠죠. 혹은 바에서 샹그리야를 주문하므로써 와인을 마시게 될껍니다.

저는 지난 스페인 여행중 거의 매일 하루 한 병 혹은 반 병(375ml 병)의 와인을 마셨습니다. 음료수 사러 들어간 가게에서 한국에선 사먹기엔 약간 부담스러운 고급 와인들이 무슨 간장병들처럼 선반 위에 놓여있더란 말이죠. 게다가 너무 착한 가격테그까지 달고서 말입니다. 한국에서 같으면 멋찐 와인냉장고에 들어있거나 와인셀러에 보관되어있을 그런 빈티지의 와인들도 아무렇지 않게 "나 그냥 음료수야!" 하면서 진열장에 서있었습니다. 그걸 보고서 어떻게 안 사마실 수가 있을까요? 게다가 아주 보편적인 와인들, 예들들면 Marques de Caceras 나 Marques de Riscal 같은 것들은 375ml 짜리 작은 병으로도 팔아서 부담없이 사마실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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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어느 마트에 진열된 와인 사진. 그중에 홈플러스에서 살 수 있는 Marques de Caceres Crianza 2003 입니다. 집에서 사마시던 걸 여기서 보니까 더 반갑더군요. 그런데 저 가격을 보세요. 한국 할인마트 가격의 1/3. 하지만 안샀습니다. 처음 보는 와인들도 널렸는데 굳이 저걸 살 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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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보면 750ml 짜리로 착각할 수 있지만 375ml 짜리 병입니다. 가격은 750ml 와 용량대비 비싸지만 혼자서도 부담없이 마실 수 있죠.


어느정도 와인이 쌀꺼라고 예상했기에 출발 전에 와인오프너도 챙겨갔지만 그정도로 풍부하고 부담없는 가격일꺼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그덕에 거의 매일밤 취해서 잔 것 같네요. 와인 즐기는 분들은 잔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오프너는 챙겨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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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Spain2007. 12. 19.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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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ely Planet Spain 에는 마드리드에서 가장 괜찮은 호스텔 중 하나로 Cat's Hostel 을 꼽고 있습니다. 단지 소개하는 것 이상으로 "author's choice" 로 선정하여 깔금한 시설과 멋찐 인테리어에 대해 상당히 매력적으로 소개해놓고 있죠. 뿐만 아니라 국내 관광객들에게 입소문이 좋게 나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관광객들에게 마드리드의 숙소로 Cat's Hostel 을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소개된 것과 달리 열악한 시설?

실제로 호스텔 홈페이지(http://www.catshostel.com)나 Lonely Planet 에 소개된 만큼 시설이 깔금하지도 않습니다. 시설 또는 인테리어가 모던하기는 하지만 사람들 손을 많이 탄 시설들이 보수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부분들이 쉽게 발견되더군요. 예를 들어 제가 묵었던 도미토리룸의 방 문은 전자열쇠를 아무리 가져다대어도 열리질 않아서 들고 날 때마다 귀찮았습니다. 그리고 화장실도 고장나있거나 지저분하게 사용된 채 치워지지 않은 오물들이 많이 보였고, 샤워부스 또한 비좁고 시설이 열악해서 옷을 벗어놓을 곳도 마땅치 않고 샤워중에 샴푸나 비누를 거치할 곳도 없습니다. 홈페이지에 게시된 시설 사진은 보기 좋은 모습으로 찍혔을 뿐 실제와는 다릅니다.

부엌을 쓸 수 없다.

호스텔에 부엌이 없습니다. 따라서 취사가 불가능하죠. 취사를 꼭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밖에서 사가지고 온 와인이나 음료 또는 과일 따위를 잘라먹을 수조차 없는 호스텔은 사실상 그냥 잠자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죠.

유학생들을 위한 임시 숙소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Backpacker 들이 아니었습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 그들의 옷차림이었고 또 많은 이들이 노트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일부러 몇몇에게 물어보기도 했는데 정말 꽤 많은 이들이 유학을 와서 숙소를 구하거나 방학을 이용해 잠시 체류중이지 관광에 관심이 있거나 하질 않더군요. 호스텔에서 만난 Backpacker 들간에 단골 질문인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라는 질문이 통하질 않는 곳입니다. 게다가 투숙자들도 엄청 많아서 다른 여행자들을 위한 호스텔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매일매일 낯선 느낌이 들더군요. 또 리셉셔니스트들이 무척 불친절하고 딱딱하기까지 하니 절대 여행자들의 안락한 숙소는 못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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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서 벌어지는 이벤트와 로비 인테리어는 Cool

그럼에도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하 바에서 벌어지는 공연 이벤트는 참 괜찮더군요. 하지만 서양 애들 사이에서 어울리는 게 그리 쉬운 것은 아니죠. 특히 저처럼 동행 없이 여행다니는 사람에겐 더욱 그렇고요. 또한 내부로 들어섰을 때 바로 보이는 로비의 인테리어는 무척 인상적입니다. 스페인 곳곳을 돌아다니다보면 건물이나 플라자등에서 여러번 볼 수 있는 가운데 분수가 있는 양식인데 잘은 모르지만 옛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 아닐까 싶은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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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2007. 12. 17. 13:45

쉽게 찾을 수 없는 여행의 재미 중 하나는 여행지에서 그 어떤 것과 조우하게 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얼마전 나는 이상의 문학전집을 사면서 서울 안에서 그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며 그의 작품들이 스며있는 곳들을 밟기 위해 계획하기도 했다. 그처럼 무언가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은 항상 미지의 새로운 것들만이 가득할 것만 같은 여행이란 의미의 상투성을 신선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참 모순적이잖은가, 이미 아는 무언가를 새로운 곳에서 발견하는 것이 여행을 신선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 그건 또다른 의미로 마치 옛 친구를 낯선 곳에서 만나게 되는 반가움 같은 즐거움인 것이다.

지난 금요일, 한밤에 쏟아져내린 눈을 보고있자니 소설 설국의 시작이 떠올랐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설국(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졌다."

다이현에서 니가타현을 뚫어버린 약 10km 나 되는 터널속을 기차를 타고 지나고 있다고 상상해본다. 당시 기차의 속도가 얼마나 빨랐을지 모르겠지만 100km 는 안되었을테니 꽤 한참을 어둠 속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을꺼다. 그러다 기나긴 터널을 기차가 빠져나왔을 때 펼쳐진 것이 설국이었다. 터널 안이나 그 밖이나 빛이 없는 어둠은 마찬가지었겠지만 그 밤의 밑바닥까지 하얗게 만들어버린 눈 때문에 세상은 낮보다도 하얗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설국 두권을 들고(나에겐 한글 번역판과 읽지는 못하지만 원서까지 두 권이 있다) 니가타현을 찾고 싶어졌다. 설국에 파묻혀서 설국을 읽는 호사로운 독서도 즐기고 사진도 찍으면서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 시마무라처럼 한량이 되어 그곳을 어슬렁거려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니가타현은 스키장과 온천으로 더 유명해졌기 때문에 한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편도 거의 매진이더라. 어떻게 비행기편을 구한다 하더라도 2월에 출발할 또다른 여행을 준비중이어서 회사 눈치도 보이고 해서, 이번 겨울은 그냥 꿈을 꾼 것으로 만족하고 다음 겨울을 위해 남겨둬야 할 것 같다. 그때까지 일본어로 된 설국을 읽을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니 더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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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Spain2007. 12. 7. 09:53
T4터미널 천정

9월22일 자정경에 바라하스 공항 T2 터미널에 내렸습니다. 공항에 비행기가 내릴무렵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그 때문에 짐이 다 젖었고 또 기대와 달리 형편없는 시설이었던 T2 터미널의 천정에서 물이 새기까지 하더군요. 출발 전엔 T4 사진만 봤기 때문에 설마 같은 바라하스 공항의 T2 가 그정도일 줄은...

그날의 계획은 공항에서 노숙을 한 후 아침 일찍 부엘링으로 갈아타고 바로셀로나로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위해 한국에서 마드리드 도착 직후의 계획을 생각해놓은 것들은 아래 순서였죠.

  1. T2 에서 T4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 타기
  2. consigna(코인라커) 찾아 짐 맡기기
  3. 적당히 비비고 누울 자리 찾기


T2 에서 T4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 타기
 
스페인의 방향표지판은 한국의 그것과 방향표시하는 방식이 조금 달르더군요. 정확한 차이를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경우 앞으로 가라는 표시는 화살표가 위를 향해있는데 스페인의 그것은 화살표가 아래를 향해 있습니다. 천정에 매달려 있는 화살표이니 화살표를 올려다 봤을 때 아래를 향한 화살표가 '전진'을 의미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선 그렇게 표시를 하지 않기 때문에 무척 헷갈리더군요. 방향표시의 혼돈은 그 이후로 지하철 역이나 기차역등에서 계속 격어야 했습니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방향표시판을 따라가다가 계속 헤매게 되었고 결국 짧은 스페인어로 물어물어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Donde puedo tomar el autobus para terminal T4?"
("돈데 뿌에도 토마르 엘 아우토부스 빠라 떼르미날 떼 꽈뜨로?")

질문은 이렇게 하겠는데 마구마구 빠르게 대답해버리기 때문에 도망치듯 빠져나오다보니 버스타는 곳을 찾게 되었죠. 그래서 어디로 찾아갔었는지 알 수가 없네요. 짐 찾은 곳에서 계단 하나 타고 윗층으로 올라갔던 기억 밖에 안납니다. 하여튼 셔틀은 무료가 맞았고, 왠지 지나쳤을 것 같은 불안감을 느낄만큼 오래 타고 있으면 T4까지 당도하게 되더군요.


consigna 찾아 짐 맡기기

T4 에서 consigna 찾는 것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워낙 터미널이 큰데다 표지판 인지에 대한 문화적 차이까지 알게 되니 그럴 수 밖에요. 터미널에 들어가면 곳곳에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가장 아래층으로 타고 내려가면 한쪽 끝에는 지하철을 타는 곳이 나오고 반대편 끝에는 AVIS 등의 랜트카 접수창구들이 보입니다. 랜트카 접수창구쪽에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 올라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의 오른쪽 방향으로 끝까지 가면 그곳에 외진 곳에 consigna 가 숨겨져 있더군요. 대충 이 설명으로 방향 인지가 된다면 굳이 최하층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한 층 올라올 필요는 없습니다.

코인라커 입구

코인라커 입구 Xray검색대


스페인의 모든 consigna 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공항의 consigna 는 반드시 엑스레이를 통과해야 짐을 맡겨줍니다. 여권도 제시해야 하고요. 자정이 좀 안된 시간에 들어갔지만 사진 속에 관리하는 아저씨가 친절하게도 이용시간을 알려주시더군요. 자정인 12시부터 요금이 카운트 되기 때문에 제가 찾아갔던 시간에 짐을 맡기면 요금을 두배로 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밖의 밴치에 앉아서 자정이 되기까지 기다렸죠.



적당히 비비고 누울 자리 찾기


노숙했던 그자리

노숙했던 그자리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서 노숙을 합니다. 그러니 눈치볼 필요는 없겠고 단지 좀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노숙하는 것이 관건이죠. 저는 너무 자리르 찾다가 그만 봐뒀던 자리를 빼앗겨서 말 그대로 맨바닥에서 잤습니다. 대한항공 담요를 훔쳐갖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입 돌아갈뻔했지요.

제가 죄다 돌아다녀봤지만 공항에 설치된 모든 밴치들은 팔걸이가 설치되어있어서 옆으로 누울 수 있게 되어있질 않습니다. 아마 노숙을 방지하기 위해 그리 해놓은 것 같더군요. 따라서 의자에서 누워잘 생각으로 찾아다니는 건 시간 낭비고요, 대신 영업을 끝냈음에도 셔터가 내려가지 않는 까페가 있는데 그곳에 가면 벽에 붙어있는 의자가 폭신하고 옆으로 누울 수 있도록 되어있지요. 게다가 조명에 가려져있어서 잠들기도 좋고요. 제가 뺏긴 자리도 바로 까페 자리었습니다. 그곳이 최고의 명당이니 발견 즉시 누우세요. 그냥 길바닥에서 노숙하면 조명도 밝은데다가 바닥도 차고 또 청소차 등이 계속 돌아다녀서 숙면은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단체 배낭객들은 그것도 낭만이랍시고 즐기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죠. 그렇게 비비고 누울꺼면 consigna 에 짐을 맡길 필요는 없더군요. 베고 누우면 되니까요. 또 어떤 배낭여행객의 경우 엄청 큰 배낭을 쿠션삼아 그 위에 누워 자기도 합니다.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Spain2007. 10. 5. 13:27

요샌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90년대에 '라미레즈'란 이름은 클래식기타 애호가들의 로망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카메라의 '라이카' 고, 허리띠의(?) '구찌' 또는 자동차의 '벤츠' 같은 거죠. 한번쯤 써보고 싶은 그런 것. 저역시 그런 라미레즈 기타를 스승님께서 물려주셔서 써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추어인 주제에 악기를 물려받았다는 말을 쓰는 게 어울리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선생님으로부터 샀기 때문에 물려받았다고 하는 건 사실이 아니죠. 하지만 돈주고 샀다고 말하기보다 차라리 공짜로 받은 것처럼 '물려받았다' 라고 말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을만큼, 좋은 선생님으로부터 좋은 악기를 얻었습니다.)

Jose Ramirez 는 1880년대부터 4대째 클래식기타를 제작하고 있는데, 95년에 Jose Ramirez IV 세가 죽으면서 여동생 Amalia 가 공방의 운영을 이어오고 있지만 사실상 기타제작가문으로써의 명맥은 끊어졌습니다. 하지만 4대째 이어온 기타제작의 노하우는 오랜 세월동안 라미레즈의 이름을 갖은자 말고도 여러 훌륭한 제작자들을 교육시켰기 때문에 Ramirez 라는 이름은 이미 그 이름 안에서만 의미가 한정되는 그런 이름이 아닌 거죠. 이미 많은 프로연주자들을 통해 널리 알려진 기타 제작자인 Ignacio Fleta 나 Paulino Bernabe, Manuel Contreras 등도 과거 Jose Ramirez 공방의 종업원들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있는 악기를 사용했던 사람으로써 마드리드에 있는 동안 Jose Ramirez 샵을 찾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스페인을 떠나는 당일날 살짝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했던 6시무렵에 지도를 보고 찾아낸 Calle de la Paz 에서 Jose Ramirez 라고 적힌 샵을 발견할 수 있었죠. 스페인에서 찾아낸 그 어떤 곳만큼이나 참 반갑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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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 Ramirez 기타샵. 창문에 비친 내모습도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데스크에서 한 여자분이 절 맞았습니다.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에 찾아가볼만한 곳으로도 나왔기 때문에 여타 다른 관광지에서 절 대하듯 할꺼라고 너무 당연하게 짐작했던 걸까요. 그 데스크의 여자분은 저를 그냥 일반 가게의 점원들이 하듯 대하더군요. 저는 갑짜기 관광객에서 샵에 찾아온 손님으로 저를 바꿔야 했기 때문에 약간은 당황해하며 그녀에게 물어봤습니다.

기타 박물관은 어디있나요?
론리플래닛에서는 기타샵에 기타 박물관이 함께 있다고 나와있었죠. 그녀는 지금 안에서 일 때문에 바쁘기 때문에 내일 다시 오면 볼 수 있을 꺼라고 떠듬거리는 영어로 대답해줬습니다. 보이진 않았지만 문 하나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내부에서는 여러사람이 열띠게 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그래서 저역시 떠듬거리는 스페인어와 영어를 섞어서 다시 말해줬죠.

사실 저는 내일 제 나라로 돌아갑니다. 제가 라미레즈 기타를 사용했었기 때문에 꼭 방문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찾아왔으니 여기 주변이라도 구경하고 가겠습니다. 사진 찍어도 될까요?

그녀는 약간 미안한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문제 없다며 사진찍는 것도 허락해줬습니다. 사실 제가 들어선 샵 내부는 그다지 넓지 않아서 별로 볼 게 없었죠. 그래도 제가 서있는 곳이 Jose Ramirez 기타샵이고, 진열되어있는 악기들이 제가 썼던 악기처럼 기타리스트들에게 전달되기 전의 진열된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그곳에 서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느낌이 좋았습니다.

조금 있으려니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 뭔가를 이야기하더군요. 느낌상 저라는 손님이 찾아왔음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죠. 아니나다를까 그녀가 나와서는 환하게 웃으며 이제 들어가서 구경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안에서 제가 찾아온 경위에 대해 설명했나봅니다. 그런데 참으로 미안했던 것이 안에서 일 관계로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저대신 밖으로 나와서 이야길 계속 했고 저는 그들을 몰아내고 안쪽으로 들어가 진열된 오래된 기타들을 구경할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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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박물관


론리플래닛에 'guitar museum' 이라고 적혀있어서 대단한 걸 기대했었던 것 같은데 사실 기타박물관이란 것은 사진에 보이는 왼편 진열장 안에 있는 기타들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현대 기타의 모델이며 기타의 스트라디바리라고 불리는 토레스의 악기부터 시작해서 여러 형태의 기타들이 Jose Ramirez 계보에 있는 악기들과 함께 진열되어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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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 Ramirez 가 만든 LUTE

다시 밖으로 나왔더니 저 때문에 밖으로 나와준 사람들이 여전히 뭔가를 열씸히 토의하는 중이더군요. 사진 속의 할아버지가 Jose Ramirez 3세거나 혹은 4세였으면 얼마나 반갑겠습니까만 그들은 이미 95년과 2000년에 타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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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기념이 될만한 걸 사가고 싶었지만 악기와 몇가지 악세서리 말고는 그럴만한 게 없더군요. 데스크에서 홍보용 책자와 카탈로그 하나씩을 집어들고 아주 조용히 인사하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습니다.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2007. 9. 19. 17:31
광양시 광영동의 아침엔 바다냄새가 없었다. 이제 막 굳어진 것 같은 시맨트 건물들은 바다가 부서질 때 무슨 소릴 내든 아무 상관 없어보였다. 아주 말끔하게 정돈된 신시가지 광영동. 그곳의 서쪽을 빠져나오자 내 시야는 공장들과 굴뚝에서 뿜어낸 연기들로 가득차버렸다. '광양'이란 이름 다음에 '제철소'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는 게 그제서야 떠올랐다. 섬진강을 따라 타고내려갔던 바다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은 그렇게 삭막하고 거무튀튀한 제철소들이 삼켜버렸다. 애초에 강을 따라 내려가면 시원한 바다를 만날 수 있을꺼라 기대한 게 순진했던 건지도.


그녀의 고향은 순천이라했다. 처음엔 '순창'이라고 잘 못 듣고는 고추장으로 유명한 곳이라며 껄껄 웃어버려서 멋적기도 했었다. 얼마만에 느껴본 호감이었던지,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멋적은 웃음만큼이나 바보가 되버린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호감이 좋은 만남으로 이어졌을 땐 그것 이후에 어떤 계기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만들어낼 수 없는 누군가에 대한 호감에 비하면 계기란 것은 필연이든 우연이든 어떤이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우연보단 쉬울 것 같아 묘한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그 계기를 찾거나 혹은 만드는 일일꺼라며 즐겁게 고민했었다.

그렇게 광양 제철단지를 빠져나온 난 그저 2번 국도를 따라 보성을 향하고 있었다. 가다보면 바다가 왼쪽에 보일꺼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도에서 보는 바다까지의 1cm 는 기실 내가 길 위에서 넘어다볼 수 없는 먼 거리여서 기대할 수 있는 게 못된다는 걸 그간 지나온 길을 통해 배워 알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 기대 없이 열씸히 페달만 밟던 내게 휴식같이 펼처진 곳이 순천이었다. 상사호에서 순천만으로 흘러내려가는 물줄기가 2번 국도와 만나던 바로 그곳, 순천풍경.


결국 아무런 계기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긴, 모든 게 다 인연으로 이어진다면 호감이란 단어는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말이 되버릴지도. 그런데 이 글을 쓰며 호감에 대해 말하는 이순간이 조금은 수줍게 느껴지는 건 왠지 더 오래도록 품었던 호감인듯한 느낌 때문일까? 그제서야 내가 광영동의 거무튀튀한 제촐소들을 지나 순천의 따뜻한 강줄기에 매료되어 멈춰섰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은 오래전에 자전거여행을 하며 느꼈던 순천풍경에 대한 호감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로 인해 지금이 마치 그때인 양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는 땀흘리며 페달을 구르다가 문득 풍경에 취해 잠시 멈춰섰던 순천에 대한 기억 같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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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멈춰섰던 이곳의 이름이 순천인줄도 당시엔 몰랐다. 그녀의 고향이 순천이란 말을 듣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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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2007. 9. 11. 17:59

8월 25일과 26일에 자전거를 타고 경상북도 김천으로 출발했다. 전 날 술을 좀 마셨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렇지만 워낙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기 때문인지 술에 덜 깬 상태로 해뜰무렵에 일어나 느릿느릿 짐을 챙기다보니 어느덧 술이 깨는 것 같았다.

출발; 영등포구청--(안양천)-->안양시
내가 사는 영등포구청에서 출발해서 안양천을 따라 내려갔다. 초행이라 두어번 길을 벗어났다가 돌아왔는데 한 10km 갔더니 숙취 때문인지 기운이 쫙 빠지더라. 멈춰서 생각했다.

"돌아갈까..."

아직은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만큼 와있는 나. 좀 더 가면 돌아가기도 힘들어질텐데... 뭔가 놓고 온 게 있다면 그걸 핑계삼아 돌아갔다가, 아마 그대로 눌러앉는 수도 있겠지. 이럴 땐 패달을 열씸히 굴러야 한다. 나아가는 것보다 돌아가는 것이 더 힘든 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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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천 따라가기;아마 광명시 어디쯤일듯...


안양시--(1번,42번국도)-->이천시
아무런 이정표도 없는 안양천만 따라가다보니 어디쯤 왔는지 알 수가 없어 불안했다. 차도로 올라왔지만 역시 낯설더라. 수원가는 1번국도를 찾아갔더니 작년 이맘때 쯤 출장 때문에 차몰고 종종 오갔던 곳이 나타났다. 안양역과 명학역을 지나는 그길을 이번엔 자전거로 따라가려니 왠지 쑥쓰럽더라. 차 안에 숨어있을 때와 자전거 위에서 다 드러나있을 때의 차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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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국도를 따라 수원까지 갔더니 또다시 차타고 몇 번 갔던 바로 그 길이었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서 내가 자동차고 밟았던 도로보다 자전거로 달렸던 길이 더 많다. 언젠가는 거꾸로, 자전거로 내가 지나왔던 길을 자동차를 운전해서 지나치며 옛 생각에 잠길 날이 올꺼라고 기대한다.

팔달구 수원화성에서 다시 멈춰섰다. 햇볕이 뜨거워지면서 점점 더 더워지고 그래서 더 빨리 지치는 것 같았다. 물을 한껏 마시고 썬블럭 로션을 바르고서 다시 출발하려는데 어떤 아저씨 하나가 내 옆을 지나면서 머뭇머뭇 뭔가 말을 걸려는 눈치를 보인다. 내 자전거 트레일러가 관심의 대상인가본데, 그냥 무시하고 얼른 출발했다. 저런 아저씨들은 호기심이 앞서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거다. 여러번 격어봐서 알고 있다. 일단 말을 섞고나면 존중해줘야할 것 같아 그전에 도망가는 게 습관이 되버렸을만큼 잘 알고 또 익숙해져있다.

수원화성을 지나 42번국도로 들어서려고 할 때 또다른 자전거 라이더가 내 옆을 지나갔다. 진짜 라이더처럼 쫄쫄이복장까지 입었더라. 빨리 갈 수 있어 좋겠다. 당신은 곧 왔던 곳으로 돌아가겠지. 그러나 난 돌아갈 생각이 없는 편도라서...


용인시에 접어들었을 때 길가에 어떤 여자아이 하나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아저씨 힘내세요"

들리는 쪽을 바라보니 꼬마 하나가 방끗 웃고 있다. 힘에 부쳐 일그러졌던 표정을 펴진 못하고 입으로만 씰룩 웃어줘서 답례를 보냈다. 그아이가 내 얼굴을 웃는 얼굴로 봤어야 상처받지 않았을텐데...

용인시 도착했을 땐 긴 휴식도 필요했지만 점심을 먹어야 했다. 더 가버리면 점심먹을 곳이 마땅찮을 것 같았다. 밥먹을 곳을 찾아 시가지 골목골목을 드나들며 내 취향과 마침 지나가던 식당의 맞춤이라는 우연을 기다리거나 찾아헤맬 시간이 없었다. 그대로 42번국도를 따라 용인터미널을 지나다보니 터미널에 롯데리아 간판이 보였다. 에너지 보충엔 밥이 좋겠지만 간단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것도 나쁘진 않을듯. 사실은 너무 더워서 팥빙수가 먹고싶어졌던 거다.

용인에서 이천까지 가는 사이의 42번국도는 정말 악몽이었다. 어찌나 덥던지, 살 때는 그렇게나 시원했던 물이 금새 미지근함을 지나 이글거리는 느낌이었고 그걸 마시고도 목축임과 배부름 외에 시원함을 구걸해야 한다는 게 끔찍했다. 간신히 이천시에 도착했지만 이천시 시가지는 42번 국도와 멀찌감치 떨어져있었고, 또 갈아타야하는 3번국도와도 멀찌감치 사이가 안좋아보였다. 그렇게나 덥고 힘든 길을 참으면서 이천시에 가면 잠시동안이나마 문명의 숲에서 야성을 피해 안도감을 느껴보려고 했었는데... 3번국도로 접어들기 전 주유소에 있는 편의점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으로 기대했던 안도감을 대신해야했다. 그곳에서 2L짜리 물을 한 병 더 샀다. 물은 내가 마시는 게 아니라 그냥 증발하고 있는 것처럼 바닥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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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 가는 42번의 어딘가, 물을 너무 마셔대서 노상방뇨 해야했던 그곳.


이천시--(3번,38번국도)-->충주시
비교적 쉬운 길이었다. 땡볕에도 어느정도 익숙해진건지 아까보다 수월하게 페달이 밟혔다. 38번 국도로 갈아타는 장호원 근방의 하나로마트에서 산 500ml 짜리 얼린물이 정말 큰 힘이 되어줬다. 밥이 먹힐 것 같지 않아서 또 맥주부터 한 캔 마셨는데, 뭔가 먹어야할 것 같아 냉면 한그릇 먹고 하나로마트를 떠났다. 아직 길위에 익숙해지기 이른 건지, 문명이 이렇게 반갑고 시원하게 느껴지다니.

국도를 벗어나 충주호까지 이어지는 남한강을 탄금대쪽으로 질러가는 599번 지방도를 탔다. 1차선 도로라서 길이 좁고 갓길이 없어 위험하긴 했지만 가로수가 우거져서 해를 가려준데다 호수가 보이는 길이어서 한결 나았다. '중원고구려비' 이정표가 보였는데 거기 가기 직전의 갈림길에서 520번으로 갈아타야 했기 때문에 들러보진 못했다. 언젠가 역사책에서 봤음직한 이름인데 십수년 지나 현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얼마 안되는 거리 앞에서 놓쳐야 하다니... "나중에 크면 하고 싶은 것 실컷 할 수 있다"던 학창시절 선생님들의 그말씀, 난 그때도 다 거짓말이란 거 알고 있었다. 점점 더 시간에 쫓겨살면서 하고싶은 걸 참는데 익숙해지고 있다는 거, 그때도 예상했던 내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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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로 들어가는 남한강을 막고 있는 '조정지댐'. 찍지 말라고 써있었지만 난 못봤다! ㅡㅡ;

수안보온천이 인접한 충주시에 설마 24시 찜질방 하나 없을까 싶었는데 딱 한 개 있다더라. 조금이라도 더 내려가야 다음날 일정에 차질이 없을 것 같아 충주시 중심가를 지나쳐 건국대까지 와버렸는데 그제서야 그사실을 알게 된거다. 너무나 지쳐서 찜질방에서 편하게 쉬고 싶기도 하면서, 역시 너무나 지쳐서 24시 찜질방을 찾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느니 어딘가에서 야영을 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한 이율배반적 상황이라니...

결국 건국대학교 근방의 단월초등학교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해지기 직전에 텐트치고, 해지자마자 사람들 안보는 틈을 타서 학교 뒷편 수돗가에서 목욕과 빨래를 했다. 학교 앞 가게에서 맥주 두캔을 사다가 텐트를 설치한 놀이터 잔디밭에 앉아 유난히 밝은 달을 바라보며 뭔가 그리워할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야영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돌아와서 알게 됐지만 유난히 달이 밝고 붉은 빛을 띄어서 그동네 이름이 '단월동'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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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에서 맥주마시는 동안 텐트에 침범해서 놀고 있던 개굴씨~ 안먹고 놔줌.


충주시--(3번국도)-->김천시

6시에 출발하고 싶었지만 해뜬 직후 일어나 밍기적거리다보니 7시에 충주를 떠났다. 지도에서 어림짐직했던 것과 실제 도로의 이정표상에서 확인한 거리의 차이가 상당했다. 게다가 어제에 비해 확연한 스테미너의 차이가 느껴져서 마음이 어찌나 급해졌는지... 밥을 먹고 출발했어야 했다고 후회했을 땐 이미 늦었다. 충주를 떠나자 밥먹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에도 몇 번 경험했지만 에너지 소비가 극도로 많을 땐 정말 밥 한끼 먹고 안먹고의 차이가 엄청나다. 그래도 출발 전 2L짜리 얼음물을 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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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령을 넘기 직전 휴게소에 식당이 있어 들렀지만 문이 닫혀있었다. 자판기에서 음료수 한캔 뽑아마셨지만 갈증이 풀리지 않아 하날 더 뽑아마셨다. 조령을 간신히 넘어 내려갔더니 작은 마을이 나왔고 중국집 하나가 보였다. 그런데 아직 식사가 안된단다. 오전 10시를 막 지났는데 여길 지나게 되면 앞으로 어디서 밥을 구경할 수 있을지 몰라 조금 기다리기로 했고, 결국 밥먹고 쉬면서 거기서 1시간이나 보냈다. 그래도 역시 한국사람은 밥심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후로 상주시에 도착할 때까지 내 눈에 보인 건 땡볕과 흐르는 땀에 묻어내리는 뿌옇고 진득한 썬블럭 로션뿐이다. 상주시로 들어오기 직전의 3번국도는 자동차전용도로였는데, 지난 5월 속초여행 때 경찰에게 딱지를 떼인 기억 때문에 더위도 잊고서 정신없이 페달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 전용도로 1km 남기고 중앙분리대 넘어에 경찰차가 서있는 걸 발견하고는 그 경찰차가 U턴해서 날 쫓아오기 전에 남은 1km 를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만이... 그것 말고는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만큼, 태양을 등지고 페달을 구르며 땀흘리 것 말고는 내몸이 한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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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를 지날 때부터는 마음이 놓였다. 김천에 제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런데 목적지인 김천시를 10km 앞두고부터 갑짜기 왔던 길을 되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왜그랬을까. 마치 출발 후 10km 를 지났을 때 돌아가고 싶어졌던 것처럼 도착 전 10km 를 앞둔 곳에 멈춰서서 나는 지금까지 왔던 260km 를 되돌아가야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있었다. 왠지 끝을 봐도 만족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항상 그렇듯 길 위에서 무언가 찾아질꺼라고 기대했었는데, 출발할 때의 망설임과 끝날 때의 허탈함, 그 사이 250km 는 마음을 놓은 순간부터는 더이상 기억조차 나지 않는 고통일 뿐이란 게 어찌나 허탈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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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역


도착, 김천역
그렇게 나는 경상북도 김천시 김천역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하고 싶었던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곳에서 출발 전에 상상했던 작은 불빛 하나를 찾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환하게 웃으면서 역전 새거창식당에서 설렁탕을 먹고 있는데 갑짜기 소낙비가 시원하게 쏟아지면서 뜨거워진 내 자전거를 식혀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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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150km, 둘째날 120km, 서울로 버스타고 돌아와서 고속터미널에서 집까지 30km. 총 300km 를 달렸다.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Spain2007. 9. 11. 16:51

각종 여행기를 찾아보면 사람들의 마드리드에 대한 반응은 "기대와 다르게 볼 게 없었다" 인 것 같습니다. 새로 개봉한 "본 얼티메이텀" 을 보면 제이슨 본이 마드리드에서 방황하며 쌈질을 일삼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거기서 마드리드 시가지를 미리 봤지만 정말 그냥 삭막한 도시의 모습이더군요. 어쩌면 정말 바로셀로나만큼 기대했다가는 실망이 더 클 것 같은 생각을 미리 하는 게 당연할 수도 있겠어요.

밤시간 활용

그래서들 그런지 똘레도나 세고비야 일정을 넣어서 마드리드를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전 마드리드가 이번 여행일정 중에서 가장 기대됩니다. 왜냐면 밤에 갈 곳이 있기 때문이죠. 바로셀로나나 기타 다른 곳에서도 그지방의 밤문화가 활발하여 동참할 수 있다면야 마드리드가 더 특별할 게 없겠지만 다른 곳에 비해 마드리드가 저에게 더 특별한 건 그곳에 Calle 54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빔 벤더스 감독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많이들 보셨을꺼에요. 그 다음해에 나온 영화로 스페인의 페르디난도 뜨루에바 감독이 만든 "까예(Calle)54" 가 있습니다. 상당히 호평받은 라틴재즈 다큐영화로 저도 이번 여행준비를 하면서 알게 되어 구해다 봤지요. (영화 관련 정보는 제 블로그에...) 뜨루에바 감독이 영화 개봉 후에 마드리드에 만든 라틴재즈클럽이 바로 Calle 54(http://calle54.net) 죠. 그밖에도 Cafe Central 이나 Cafe Populart (http://www.populart.es) 도 가볼까 생각중입니다.

저역시 마찬가지지만 여행중에는 early bird 가 되기 위해서 일찍 숙소에 들어가 쉬고 다음날 일찍 일정을 시작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스페인에서는 일찍 일어나봐야 별로 할 것도 없어요. 그러니 취향에 맞는 뮤직바들을 찾아다니면서 새벽까지 노는 것도 훌륭한 경험이 되잖을까 싶네요.

가이드북의 한계

배낭여행의 맹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가이드북에 의존한다는 건데, 가이드북에 나오는 정보는 어딘가에 찾아가는 방법 이외는 사실 없죠. 패키지 여행자들은 뭔가 엑티비티도 있고 유적지를 봐도 가이드가 따라붙기 때문에 배낭여행자들이 여행지를 대하는 태도와 좀 다른데, 배낭여행자들은 어딘가에 찾아가서 "나 여기 갔다" 하고 그 앞에서 증빙사진 한 장 찍고 훌쩍 다음 목적지로 가버리는 걸 자주 봅니다. 그런식으로 여행을 압축해서 몸 부서지만큼 빠듯한 일정을 소화해내고는 뿌듯해하지만 돌아와서 남는 전 다녀왔다는 증빙사진 말고는 없는 거죠. 사실 그건 여행이기도 하지만 탐험에 가깝습니다. traveling 보다 exploring 이죠. 그걸 더 즐긴다면야 모를까...

여행 인프라가 발달된 나라에서는 지방마다 다양한 투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 작게는 박물관이나 유적 단위로도 투어가 있죠. 만약 마드리드에서 똘레도나 세고비아에 간다면 가이드북에 있는 "그곳에 가는 법" 따위에 의존해서 차표 사서 돌아다니지 말고 현지에서 "guided tour" 를 예약해서 다녀오는 게 좋습니다. 설사 직접 트랜스퍼를 예약해서 도착했다해도 똘레도등에 도착하면 투어를 찾는 게 더 이롭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그러느니 트랜스퍼까지 포함된 투어를 예약하는 게 더 영양가 있겠죠.

언젠가 인도의 아잔타석굴에 갔을 때 현지 가이드를 입구에서 사서 들어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그런 가이드들이 100루피네, 200루피라네 하면서 달려들면 호객하는 것 같아서 인상쓰고 지나쳤더랬죠. 그런데 정말 가이드를 안샀더라면 다른 유적지들처럼 아잔타석굴역시 탐험목적지에 불과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충분한 가치가 있었죠.

그런 현지 투어들은 관광지 앞에서도 구할 수 있고 혹은 숙소에서도 부킹할 수 있습니다. 어떤 건 픽업까지 오는 경우도 있고 bus tour 나 bike tour 등은 피크닉 식사까지 포함되어있는 경우도 있죠. 실제 해외 관광객들은 그런 투어들을 십분 활용하더군요. 유독 한국관광객들만 헝그리하게 탐험정신으로 다니곤 하는 것처럼 보여요. 일본인 관광객들만해도 여행목적지의 관광청 사무실에 가보면 왕왕 보이는데 한국인 관광객들은 가이드북하나 들고 용감해지는 것만이 배낭여행으로 생각하죠. 물론 투어 않하는 해외 배낭족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다른게 있다면 그들은 장기 여행을 하면서 관광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면서 여유있게 다닌다는 거죠.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서점에서 책 찾아보거나 숙소에서 인터넷 통해 관광지에 대해 공부를 하곤하지만 우리는 현지 서점에 가도 읽을 게 별로 없고, 또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슬프게도 회사에서 짜를려고 칼들고 있기 때문에 얼렁얼렁 돌아다니기에 바쁩니다. 그러니 어느 여유에 서점을 가고 인터넷을 찾겠어요. 그렇다면 정말 현지 가이드가 해답이되잖을까요?

말이 길어졌는데, 마드리드에는 예뻐서 감동할만한 뭔가는 별로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아는만큼 보인다" 라는 말의 뜻처럼 뭔가를 알려줄 가이드를 찾거나 사전에 관광지에 대한 공부를 충분히 해두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다시 반복해서 말하지만, "아는만큼 보인다" 라는 말을 "찾아갈 곳을 많이 알아야한다" 고 착각하는 탐험가가 되지 말고, 마요르 광장 옆에 붙어있는 건물들에 어떤 사연이 있고 왜 저런 모양인지를 알고가는 것이 마드리드를 더 보람차게 여행하는 길일겁니다.

미술관

마지막으로 박물관과 미술관입니다. 이건 개인적인 취향인데요, 약 6년쯤 전에 한국에서 피카소전이 열렸더랬습니다. 그후에도 열렸겠지만 그때처럼 큰 규모로 열렸던 적이 없죠. 전 그 때 게르니카 앞에서 울뻔했습니다. 그때의 게르니카는 세계를 순회공연다니고 있는 3개의 모작품 중 하나였지만 그래도 무언가에 압도되어 울컥했던 기억이 잊혀지질 않네요. 그 후로,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이 신축되기 직전에 찾아갔던 옛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반가사유상을 보고 또한 번 울컥했더랬는데... 그보다 더 강렬한 감동을 마드리드에 있는 레이나 소피나 미술관에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곳의 2층 6번방에 게르니카 원본이 있다는군요. 그 앞에서 한참 앉아있고 싶네요. 쁘라도 미술관도 엄청난 규모랍니다. 조깅하듯 작품들 앞을 지나갈 게 아니라 두 개의 미술관만으로도 하루를 충분히 다 보낼 수 있잖을까요?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