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al Mystery Tour/Cuba2008. 9. 23.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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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던 건 서쪽 끝에서부터 시작한 여행이 동쪽 끝으로 치닫을 무렵부터였다. 여정의 반을 소화할즈음에, 다시 거슬러오게 될 길을 더 깊히 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날 더 피곤하게 했다. 그럼에도 관타나모Guantanamo는 지도 위의 한 점으로만 보고있어도 나를 끌어들이는 느낌이 있었다. 도중에 발길을 돌릴 수 없는, 마치 그곳이 깃발 꼽힌 반환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쾌쾌한 버스 냄새에서 잠시 벗어나 바람 한 점 없이 푹푹 찌는 땡볕을 휴식인냥 달게 받아내고 있던 나.

어느새 관타나모 가는 길 위에 있었다.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Cuba2008. 9. 15. 20:43
어느나라든 화폐에 인쇄된 인물들은 그나라 역사를 통틀어 등수 안에 드는 위인들입니다. 쿠바의 역사는 비록 짧지만 그들의 페소 화폐에도 역시 호세 마르띠(Jose Marti), 시엔 후에고(Cien Fuego) 등 주로 쿠바 혁명에 이바지한 사람들 위주로 인쇄되어있죠. 그런데 쿠바 하면 체 게바라 아니겠습니까? 반대로 체 게바라 하면 그가 태어난 아르헨티나를 제끼고 쿠바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그는 쿠바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체 게바라는 단 3페소 화폐에 등장합니다. CUP 3페소가 150원, CUC 3페소는 3천원 정도고. 최고액권은 100페소 지폐입니다. (참고로 쿠바에는 CUP 와 CUC 두가지 화폐가 있습니다. CUP : Cubano Peso, CUC : Cubano Convertible, 1CUC = 24CUP, '08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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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P 3페소 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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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C 3페소 앞면

씨엔 후에고와 카스트로 형제등과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체 게바라는 혁명 이후에 쿠바국립은행(Banco Nacional de CUBA) 총재로 임명됩니다. 이부분도 약간 이해가 되질 않죠. 쿠바 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를 정치 일선과는 거리가 있는 보직에 뒀다는 건 대략 그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가 죽은 이후로도, 지금까지 체 게바라는 쿠바 사람들에게 아미고(amigo, 친구)로 통합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3페소짜리죠.

드물지만 CUP 3페소의 경우 지폐만 아니라 동전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3페소 동전에도 체 게바라가 양각 되어있죠. 여기에 한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이 동전이 사기꾼들의 사기 수단으로 쓰인다는 건데요. 우리 돈으로 150원도 안하는 작은 돈이기 때문에 지폐도 있지만 동전도 유통되었던 거겠죠. 그런데 CUC 를 주로 쓰는 관광객들이 CUP 화폐를 얻을 기회도 쓸 기회도 흔치 않을뿐더러 희소한 3페소짜리 CUP 동전을 접할 기회는 더더욱 없죠. 그래서 길거리 기념품 상인들이 이 동전을 마치 귀한 기념주화인 양 속여서 비싸게 팔곤합니다. 그들이 1CUC 만 받아도 대략 8배를 부풀려 받는 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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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에게 선물받은 CUP 3페소 앞면

제가 체 게바라가 새겨진 3페소 동전을 처음 갖게 된 건 트리니닫TRINIDAD에서 였습니다. 함께 여행하던 루이스와 트리니닫 북쪽 언덕의 무너진 옛 병원(Ermita de Nuestra Señora de la Candelaria de la Popa)에 올랐을 때 그곳에서 기념품 행상들을 만났죠. 사실 그때만해도 저는 이 동전에 대한 진실을 알지 못하고서 그것이 기념주화인 걸로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행상들에게 둘러싸이는 걸 안좋아했기 때문에 피해있었고, 반면 루이스는 그걸 사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그의 성격상 아마 가격협상을 했을테지만, 그래도 훨씬 비싸게 속아서 샀을겁니다. 그때 루이스는 저에게 주려고 그걸 하나 더 샀던가봅니다. 그리고 서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 날 제게 선물로 주더군요.

그 이후로 쿠바를 돌아다니면서 저는 CUP 로 궁거질 하는 데 익숙해지게 됐습니다. 그러던 무렵에 거스름돈으로 받은 CUP 동전들 속에서 체 게바라 얼굴이 보이는 3페소 동전을 발견했죠. 게바라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사실을 깨닫고서 혼자서 웃었습니다. 그리고 루이스를 회상하며 그리움에 빠져들기도 했고요. 여행을 하는 중에 여행을 그리워했던 건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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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Cuba2008. 9. 13. 02:30
[쿠바 화폐의 종류]

쿠바는 두가지 종류의 돈을 사용합니다. 기본적으로 Cuban Pesos 가 있고 외국인들이 주로 쓰는 Cuban Convertible Pesos 입니다. 앞에 '쿠바의' 라는 의미로 쓰인 'Cuban' 을 빼면 그냥 '페소'와 '환전용 페소'라는 걸 알 수 있죠. 현지에서 전자의 화폐를 부를 때 Pesos Cubanos (페수스 쿠바노스)라고 부르기도 하고, 후자는 Pesos Convertible (페수스 꼰베르띠블레) 또는 CUC (쎄우쎄) 라고 줄여부르는데 그냥 '달러'라고 가장 흔하게 불려집니다. 여기서는 편의상 Cuban Pesos 는 CUP, Cuban Convertible Pesos 는 CUC 로 줄여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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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BAN CONVERTIBLE PESOS 1 PESO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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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BAN CONVERTIBLE PESOS 1 PESO 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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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BAN PESOS 1 PESO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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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BAN PESOS 1 PESO 앞면


보통, 현지에서 만나는 관광객들이 알기로, CUP 는 현지인들의 화폐고 CUC 는 외국인들의 화폐로써, 외국인들에게 훨씬 더 비싸게 값을 지불하도록 하는 시스템으로 오해받습니다. 아마 그건 외국인들은 외국인들만 가는 곳에 가기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좀 더 다니다보면 그게 아니란 걸 알 수 있게 되죠. 저역시 그렇게 오해하고 있다가 쿠바 사람들도 공산품을 살 때는 CUC 를 쓰는 걸 발견하고서는 정부에서 관리하는 공산품이나 서비스 등을 이용할 때 CUC 를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반면 시장에서 과일등의 농산물이나 빤데리아Panderia(빵집)에서 식빵 같은 걸 사거나 혹은 노선버스나 트럭버스를 탈 때는 CUP 를 사용하죠. 기본적으로 화폐의 이름이 말해주듯이 외환으로 환전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으로써 만들어진 게 CUC 입니다. 그도 그런 것이 1 CUC 는 1 USD 로 거의 변동 없이 맞춰져있고, 1 CUC 를 부를 때 '1 달러' 라고 하기도 하니까요.

쿠바를 짧게 여행하는 사람들의 경우 CUP 를 접해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CUC 와 CUP 를 구분하는 건 중요합니다. 왜냐면 사기를 당하거나 실수를 해서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죠. 더구나 스페인어를 모르는 사람에겐 그 위험도가 더 커집니다. 1 CUC 가 24 CUP 로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에 화폐 구분에 주의를 해야 합니다. 가장 쉬운 구분 방법이 있습니다. CUC 와 CUP 는 모두 1, 3, 5, 10, 20, 50, 100 페소로 단위가 같지만, CUC 의 경우 모든 권별로 뒷면의 모양이 똑같습니다. 따라서 한가지 모양만 기억하면 구별이 쉽습니다. 


[종류별 화폐의 쓰임]

관광객들은 기본적으로는 CUC 를 사용해야 합니다. 호텔이나 민박등을 모두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CUC 아닌 걸로는 지불할 수가 없고, 레스토랑 역시 마찬가지며 빨라도르Palador라는 민간인이 운영하는 식당 역시도 똑같습니다. 텍시나 고속버스등의 교통수단도 정부가 운영하기 때문에 CUC 로만 지불하며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그렇죠. 결국 먹고, 자고, 이동하고, 보는 것들 모두가 CUC 를 써야 하죠.

그런데 CUP 의 활용도도 쏠쏠합니다. 일반 노선버스는 1 CUP 밖에 안합니다. 트럭처럼 생긴, 우리로 치면 근거리 시외버스격인 까미욘Camion은 그보다 좀 더 비싸지만 역시 CUP 로 지불합니다. 한개의 도시 기반으로 인근의 관광지를 반나절 코스 정도로 다녀올 때 까미욘을 타게 되는데, 가끔 외국인에겐 1 CUC 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냥 줘버리고 타거나 혹은 다음 차를 타면 됩니다. 따져봐야 소용 없더군요.

교통비 말고도 CUP 는 먹는데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엘라도르Helador(아이스크림가게)에서 페소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도 있고, 페소 까페에 가면 센드위치나 담배 또는 맥주를 페소로 먹을 수도 있죠. 자주 보이진 않지만 암부르게리아Hamburgeria(햄버거가게)에 가면 꽤 훌륭한 한끼 식사를 CUP 로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CUP 의 활용도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길거리의 가판대 음식인데, peso pizza 라고 불리는 피자가 3~8 CUP 정도 하고, 그와 함께 센드위치나 생과일음료를 팔기도 하는데 이게 꽤 먹을만합니다.

잠시 길거리 음식 이야길 하자면 그런 곳에서 먹는 음식은 기본적으로 맛이 없습니다. 거기다 지저분하기까지 해서 우리나라에서 먹는 센드위치를 기대하면 절대 먹을 수 없을테죠. 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풍미를 갖고 또 가끔 그리워지는 수도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한국에서 먹는 인도레스토랑의 커리는 무척 깔끔하고 또 고가여서 고급인양 먹게 되지만, 인도 여행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날파리들이 빠져드는 지저분한 커리가 더 나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그곳에선 그렇게 먹어야 맛있는 거고, 또 그곳을 좋아하게 되면 그곳에 어울리는 음식까지 함께 사랑하게 되는 겁니다.

다시 본디 이야기로 돌아와서, 시장에서 과일을 살 때도 CUP 는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민박집(Casas Publicas;까사스 뿌블리까스)에서 아침밥을 먹으면 망고 같은 열대 과일이 풍부하게 먹을 수 있지만, 그보다 훨씬 싼 값에 과일들을 사다 먹을 수가 있는 거죠. 민박집에선 그런식으로 싸게 사다가 투숙객에겐 CUC로 팔겠죠. 밤에 출출함을 해결하기에 시장 과일이 특히 좋습니다. 간혹 CUC 로 지불하지 않으면 안 판다고 배짱 부리는 상인도 있는데 저는 안 먹어도 그만이기 때문에 그런 경우 그냥 안 샀습니다.


[환전 사기 행태]

1 CUC 는 24 CUP 입니다. 반대로 CUC 를 살 때는 25 CUP 를 줘야 하는데 CUP 로 CUC 를 살 일은 없겠죠. 대략 우리돈으로 따져보면 1 CUC 가 1 천원이 조금 넘는 거니까 1 CUP 는 40원이 좀 더 되는 거죠. 쿠바의 관문 도시는 항상 아바나Havana 이기 때문에 가장 능숙한 여행자도, 가장 초보인 여행자도 아바나에 있습니다. 그래서 환전사기꾼들을 꼭 만나게 되죠. 주로 은행이 문을 닫는 주말에 더 성행하는데, 환전 했냐고 물어보면서 CUC 는 너무 비싸니까 자기가 CUP 를 파는 곳에 데려가주겠노라고 꼬시는 거죠. 어디선가 CUP 란 게 있다는 걸 주워들은 사람이라면 솔깃해지는데, 아직 쿠바를 잘 모르고 또 주말이어서 은행에 아직 못 가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칩니다. 혹은 외환을 받고 CUC 를 준다고 했다가 실제로 줄 땐 CUP 를 줘서 CUC 와 CUP 를 구분할 줄 모르는 외국인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죠.

이런 사기는 아주 조직적이고 치밀하기까지 하더군요. 저도 처음엔 몰랐다가 여행중 만난 외국인들과 이야기하면서 발견한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인데요. 처음 관광객에게 접근한 사람은 이름이 뭐고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등을 물어보면서 친절하게 반갑다고 인사하다가 또 보자며 가버립니다. 그리고 두번째 접근한 사람이 그 정보를 이어받아서 "너 어디 근처에 머물고 있잖느냐, 그 집이 내 앞집인데 오전에 너가 나오는 거 봤다." 라는 식으로 친한척하면서 접근하죠. 그리곤 환전 같은 거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며 가버리거나 혹은 직접 사기를 시도합니다. 그런식이기 때문에 세번째 만난 사람은 아주 처음부터 관광객의 이름을 알고 있기도 합니다. 아까 아무개한테서 들었다면서 환전 필요하잖냐고 사기를 시도하죠. 엉뚱한 사람들이 불쑥 나타나서는 내 이름을 알거나 내 숙소를 안다고 하는데 그런 건지 처음엔 정말 몰랐었죠.


[환전 TIP]

호세 마르띠(Jose Marti) 공항의 환전소 환전률은 꽤 좋은 편입니다. 보통 공항 환전률은 가장 안좋다는 것이 여행자들 사이의 정설임에도 쿠바는 예외입니다. 저는 밖에서의 환전율을 몰랐기 때문에 공항을 빠져나갈 돈과 첫날 숙박할 돈만 환전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 공항에서 충분히 환전을 하세요. 위에서 언급한 환전 사기꾼들이 그런 점을 노리기도 합니다. 대부분 공항에서 조금만 환전을 하기 때문에 아바나에서의 첫날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환전소겠고, 쿠바는 사설 환전소도 없을뿐더러 은행역시 찾기 쉬운편이 아니기 때문에 환전사기꾼들에게 매우 유리한 시장이 형성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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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추천하는 환전소는 까데까CADECA입니다. 'Casas de Cambio' 의 줄임말로 우리말로는 '환전의 집'이죠. 절대적으로 까데까가 다른 은행들에 비해 유리합니다. 거기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 까데까는 지점에 따라서는 주말에도 문열 엽니다.
  • 환전률이 은행에 비해서 좋은 편입니다. 여러차례 비교해봤는데 정말 그렇더군요.
  • 다양한 외환을 취급합니다. 은행에 따라서는 달러만 취급하는 경우도 있는 반면 까데까는 미국달러, 유로, 케나다 달러, 멕시코 페소 등 다양한 외환을 취급하며, 특히 CUP 를 살 수 있는 곳은 까데까뿐입니다.
  •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은행들은 현지인들로 엄청 붐비는 경우가 많아서 줄을 오래 서야 하는데 까데까는 환전소다보니 줄을 서더라도 길이가 짧죠.
  • 환전을 위해 여권이 필요 없습니다. 단, 제 경험을 토대로한 일반화일 뿐입니다. 그밖의 다른 은행도 간혹 여권 없이 환전이 되기도 하며, 모든 까데까를 제가 다 가본 게 아니기 때문이죠.
아직 쿠바로 들어가는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특히 미국인들이 USD 가 환전이 안되거나 무척 불리한 줄 압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수년전엔 정말 그랬다고 합니다.) 현재는 USD 도 아무 문제 없이 환전이 되고, 아주 가끔은 그냥 화폐처럼 사용할 수도 있더군요. 제가 보기엔 USD 보다는 유로의 환률이 좀 더 나은 것 같긴 했는데 큰 차이 없기 때문에 관리하기 편한 걸로 가지고 가면 될 것 같네요.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Cuba2008. 9. 11. 15:18

쿠바가 덥기는 덥지만 습도가 많이 높진 않은지라 그냥 햇볕이 따갑다 싶을 정도고 후텁지근함은 없습니다. 그래서 덥기는 한국이 더 더운 것 같아요. 어쨌거나 뜨거운 햇볕 아래서 돌아다니다보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바로 맥주죠. 쿠바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한 번은 내가 맥주를 연료 삼아 걷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질만큼 무척 많이 사다 마셨습니다. 쿠바에서 맥주를 살 수 있는 곳들을 꽤 흔하게 발견할 수 있었거든요.

쿠바에서 재밌는 건 맥주 가격이 레스토랑에서 마시나 가게에서 사거나 거기서 거기라는 거죠. 아무리 비싸게 받는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마셔도 캔 하나에 1.5 CUC 를 넘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일반 가게에서 산다면 1CUC 하는 게 일반적이죠. 우리나라에서 마시는 맥주보다 조금 싼 정돈데, 가게나 레스토랑이나 가격 차이가 별로 안나다보니 그냥 아무데서나 찾아도 부담스럽지 않고, 기왕이면 편히 앉아서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하나 마시고 나오게 되기도 하더군요.

쿠바에서 살 수 있는 맥주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끄리스딸Cristal 과 부까네로Bucanero 입니다. 전자가 우리나라의 hite 정도라면 후자는 약간 쓴 맛이 더 강한 cass 정도 되겠습니다. 게다가 부까네로는 MAX 라고 알콜함유량이 6% 가 넘는 스트롱비어(Strong Beer)도 있지만, 제가 먹어봤을 땐 좀 아니다 싶더군요. 이 두가지 맥주는 쿠바 사람들에게 더위를 달래주는 일종의 로망 같은 거죠.

간혹 큰 마트에 가면 우리에게 낯이 익은 수입 맥주들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이네켄 정도는 꽤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편이죠. 물론 가격은 조금 더 비쌉니다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마시는 것보단 쌉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드물면서 CUC 가 아닌 CUP 로 살 수 있는 맥주도 있네요. 바얌Bayam 과 띠에라Tierra 가 그것입니다. 마트 같이 공산품 파는 곳에서 팔고 있는 걸 보긴 했지만 거의 마주치기 힘듭니다. 대신에 CUP 를 받는 페소(peso) 까페에 있거나 핫도그나 햄버거 가게(Hamburgeria;암부르게리아)에서 팔기도 해요. 띠에라는 10 CUP 밖에 안합니다. 우리 돈으로 500원이 채 안하는 데 한 모금 마시고 그냥 버릴 뻔했어요. 호가든 같은 밀맥주 맛이 나는데 정말 맛이 없죠. 그에 비하면 바얌은 만나는 순간 반가워지면서 사게 되는 맛있는 맥주입니다. 그러나 가격은 20 CUP 가까이 하기 때문에 결국 1 CUC 짜리 Cristal 이나 부까네로와 큰 차이가 없네요.바얌 역시 밀맥주 맛이 나는데 꽤 맛있습니다.

(참고로 쿠바에는 CUP 와 CUC 두가지 화폐가 통용됩니다. 1CUC = 24C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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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른쪽은 TuKola 는 쿠바 고유의 콜라입니다. 그리고 Ciego Montero 는 콜라부터 각종 주스와 사진 속의 맥주들까지 쿠바의 모든 공산품 음료를 생산하는 회사 이름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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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Cuba2008. 8. 3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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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다시 피웠어요.

한대 피우고서 한참을 누워있어야 했네요.

눈물이 날만큼 이렇게 쓴 기억은 없었습니다.

필터조차 없어 앞뒤로 연기가 뿜어지는 데, 짧막한 한토막을 다 태우기조차 두렵네요.

짧아질 수록 점점 더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이 맛에 익숙해지고나면,

다시 건강해지고 싶을 때가 곧 오겠죠.
 



쿠바 까마궤이Camaguey의 길거리 페소peso까페였어요. 날아드는 파리들을 손으로 털어내면서 수분이라곤 햇빛에 다 말려버렸을 것 같은 두꺼운 치즈 한 덩이만 끼워진 센드위치를 먹고 있었죠. 제가 앉아있던 바에 시커먼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며 한까치씩 혹은 한갑씩 사가는 걸 보고 호기심에 하나 사버렸어요. 돌아가면 누군가 줄 사람이 생각나겠지 싶고, 게다가 한갑에 100원도 안하는 쿠바에서 최고로 싼 담배거든요. 그런데 돌아다니면서 배낭 속에서 굴러다니다가 그만 쭈글쭈글해져버렸네요. 주기도 민망해질만큼...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2008. 8. 29.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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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중에 친구를 만났어요.

하지만 그친구는 곧 떠나요. 어차피 함께 시작한 여행은 아니었으니깐......

오늘은 뭔가 하나 해주고 싶어서 다니는 내내 주머니 속에 넣고다녔어요.

마지막으로 마주쳤을 땐 몰랐었는데, 그때 그게 마지막 인사였던 거네요.

그게 아쉬운 듯 더 좋아요.



그런데, 주머니에 손 넣으면 왠지 좀 이상해질까봐 망설이게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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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스의 고대 도시 유적에서 만난 고양이. 웅크리고 앉아 노려보고 있는 이친구에게 식당에서 챙겨놨던 빵을 뜯어 던졌다. 하지만 멀지 않은 내 앞에 던져놓았고 기실 그건 일종의 거래 같은 거다. 빵을 거저 주는 게 아니라 실은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의 댓가로 주는 거다. 나조차도 빵이 바닥에 떨어져 미끼로 변하는 걸 보고 나서야 알게 된 그 거래의 의미를 알아 차렸는지, 이친구는 내 앞으로 다가와서 빵을 집어 오물오물 먹었다. 그다음 손바닥에 물을 담아 그에게 내밀면서도 그걸 핥아 마실꺼라고 기대하진 않았었는데, 이친구의 대범한 행동은 나를 놀래켰다. 그때까지 내 손바닥에 올려놓은 무언가를 먹는 고양이는 처음 봤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람 손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내가 키우는 고양이도 내 손 위에 있는 걸 먹지는 않는데... (글 쓰고서 다시 테스트해보니 내 고양이도 손에 있는 걸 집어먹긴 한다. 짜식, 지긴 싫었던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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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고대 도시의 역사와 함께 살아온 고양이일지도 모르겠다는 동화같은 생각을 해봤다. 이 곳에 사람이 살던 시절에도 이친구는 여기 살면서 사람들 다리 사이를 피해다니며 먹을 걸 구하러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꼭 이 친구가 수천년을 살아왔음에도 억울하게도 꼬리가 하나밖에 없을 뿐이라고 우길 필요는 없다. 그동안 엄청 많은 할아버지 고양이들이 방만하게 씨를 뿌리며 힘겨운 환생을 거듭해왔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오랜 세월동안 이친구가 배우고 길러온 사람을 대하는 요령은 겨우 몇십년 산 나보다 훨씬 나을테고, 이제 그 오랜 숙련으로 낯선이의 손바닥에 담긴 물도 마실 수 있게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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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서점에서 읽었던 어느 일본 작가의 그림동화가 떠올랐다. 그책에서도 저렇게 표독스럽고 약간 성질있게 생긴 얼룩무늬 고양이가 나온다. 게다가 그 고양이는 백만번이나 환생을 했다 하니, 어쩌면 이친구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백만번 산 고양이 - 시노 요코

100만 년 동안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100만 번이나 죽고서도, 100만 번이나 다시 살아났던 것입니다.
정말 멋진 호랑이 같은 얼룩 고양이였습니다.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단 한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Turkey2008. 7. 27.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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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이스탄불에 도착하기 전까진 과연 그 고등어 캐밥이란 것이 먹을 수는 있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캐밥(Kebab) 이란 걸 '구운 고기 요리' 정도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접시 위에 담겨있는 것 말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구운 생선을 빵에 싸서 먹는다니! 여행중에 만난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에크멕(Ekmek; 터키 바게트빵)에 고등어 구이와 채 썬 양파를 넣어 먹는다기에, 그 음식은 상상만으로는 전혀 맛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빵에 생선이란 매치가 쉽지 않은 느낌이었죠. 붕어빵 안엔 붕어가 들어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라면 누구나 그럴 겁니다.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카라괴이Karaköy 지역의 갈라타Galata 다리 주변을 거닐다보니 철판 위에서 이글거리는 고등어들을 여기저기서 보게 됐습니다. 꼭 단체로 헤엄치던 고등어떼를 넓다란 쥐잡이 찍찍이판으로 붙여 잡아놓은 것 같더군요. 처음엔 음식에 대한 낯설음과 사람들 무리를 헤집고 철판에 접근해야 하는 생경함 때문에 지나치기 일수였죠.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길 꼭 먹어봐야 한다는 음식을, 또 사람들이 맛집이라 부르는 곳을 일부러 찾지 않고도 만나지는 고등어캐밥을 냄새만 맡고 지나칠 수는 없었죠. 그리고 한밤중에 갈라타 다리 위를 걷던 중 강변에서 흔들거리는 고등어캐밥 보트의 불빛을 봤을 땐, 여기 와보라는 듯한 그 손짓에 불나방처럼 끌려들어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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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타 다리 위에서 바라본 카라괴이 지역. 왼편 작은 보트 세 척이 모두 고등어캐밥 보트.


3 터키리라짜리 고등어캐밥을 처음 먹어본 순간, 그곳에 머물던 3일 내내 하루 몇개씩이라도 먹게 될 거란 것을 직감했습니다. 남은 돈을 잘 쪼개어 고등어 캐밥을 한 개라도 더 먹으려고 했고, 심지어 마지막 날 비행기 타러 가는 길에 배낭을 맨 채로 들러서 최후의 하날 더 먹었죠. 추운 날씨에 다니다보니 화장실에 자주 필요했는데, 1 터키리라 미만인 공중화장실 사용료가 아까워 요의를 참아가면서까지 고등어캐밥을 먹었습니다. 결국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걸 만들어먹겠다는 생각에 제 팔뚝길이만한 에크멕 하나를 사서 배낭에 통째로 넣고 들어오기도 할만큼 저는 그맛에 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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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캐밥 보트 앞은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보트를 선착장에 바투 대고서 그 앞에 천막을 치고 사람들이 쪼그리고 앉을 수 있는 앉은뱅이 의자와 작은 탁자를 사이사이 배치해놓고 장사를 하죠. 그리고 그 천막 앞에선 삐끼 한명이 행인들을 붙잡습니다. 저도 여러차례 삐끼질을 당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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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로 다가가보면 한 사람이 선착장 위에서 주문을 받으며 계산을 하고 보트 안으로부터 고등어캐밥을 넘겨받아 손님에게 줍니다. 몇개씩 봉투에 싸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천막 아래 쪼그리고 앉아 먹는데, 흡사 우리가 길가다가 포장마차에 들러 떡볶이나 오댕을 먹는 것과 흡사한 분위기죠. 고등어캐밥을 먹는 방법은 저마다 다릅니다. 탁자 위에 고등어캐밥을 올려놓고서 어린이처럼 양파를 덜어내는 사람들도 있고, 고등어의 뼈를 발라내거나 살을 갈기갈지 찢어 에크멕 안에 재배치 한 후 먹는 사람도 있죠. 비치된 소금이나 레몬즙은 취향에 따라 뿌려먹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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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의 한강에 배를 띄워서 마치 갈라타다리 아래에서 그렇게 하듯 고등어 캐밥 장사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동안의 붕어빵에 대한 상식을 깨는 일이 될 겁니다. 누군가 돈벌이에 능한 분이라면 제 아이디어로 한강 위에 보트를 띄워 장사해도 뭐라 하지 않겠습니다. 혹시 망하더라도 절 원망하진 마세요. 저는 꼭 단골이 되어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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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Turkey2008. 7. 2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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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쉴 자미 (Yeşil Cami)

무슬림들의 예배당인 자미(Cami)는 그 규모가 클 수록 관광객들이 많이 찾기도 하겠지만, 규모가 작을 수록 왠지 모를 부담감에 안을 열어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관광지로써보다 더 제 기능에 충실하기 때문이겠죠. 부르사를 대표하는 울루 Ulu 자미와 인접해 있으면서 그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규모의 예쉴 Yeşil 자미를 찾았을 땐 기도가 한창 진행중이었기에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미 앞 정원에 유난히 고양이들이 많아 슬금슬금 다가가보기도 하고, 눈치채고 도망가면 쫓아다니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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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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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외면

곧 기도가 끝났는지 자미에서 사람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문 밖에서 서로들 얼싸안고 인사를 나누다가 그 앞에서 배급해준 간단한 음식물을 먹기 시작하더군요. 얼쩡거리면 제게도 기회가 올까 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고요, 하지만 고양이들은 계속 배급의 기회를 노리는 것 같았어요. 그냥 괜히 정원에서 서성였던 게 아니라 그들도 예쉴 자미 앞에선 잔뼈가 굵은 고양이들이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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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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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2008. 7. 13. 08:59
이곳은 오사카 간사이 공항 탑승구 앞입니다.

지난달 여행을 떠나면서 바로 이자리에 앉아 여행 떠나는 이야길 썼었죠. (공개는 안됐지만)

한국에서 4주만큼 멀어져있었는데 이젠 두 시간만큼 가까워져있군요.

이제부터는 여행 중에 한 번도 안 신어본 양말을 다시 신게 될겁니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여행에서 돌아온 제가 가장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것들 중 하나일 뿐이겠죠.

그래도 며칠간 고생하게 될 시차적응 따위보단 더 오래걸릴 겁니다.

여행 내내 맨발에 묻어난 흙과 바다물과 땀과 때가 쉽게 벗겨질 리 없으니까요.



아, 비행기가 또 한 대 떴습니다. 비행기 이륙하는 모습은 정말 멋찐 것 같아요. 여행을 떠나는 설레임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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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Turkey2008. 6. 12.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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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락가락하던 날의 이스티크랄 Istiklal 거리.
탁심 Taksim 광장을 향해 트램을 따라 걷던 저 길은, 서울의 명동 거리처럼 샵들이 번화하게 들어서있습니다.
그런 샵들 중 한 청바지샵의 쇼윈도 안쪽에서 발견한 고양이 한마리.

트램도 피하고, 사람도 피하고, 비도 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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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도시 쿠샤다스 Kuşadası 에서 꿈꾸는 고양이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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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Turkey2008. 5. 18.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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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공항에 도착한 밤, 끝내 예니카프 Yenikapı 선착장을 찾긴 했지만 부르사 Bursa 행 마지막 고속선을 놓치고 말았다.

공항과 연결된 악사라이 Aksaray 지하철(Metro)역은 악사라이 트램(Tram)역과 이름만 같을 뿐 기대했던 환승구간 따윈 없었다. 어둠과 낯설음 속에서 찾아간 악사라이 트램역에서 예니카프 전철(Train)역까지의 길은 그보다 더 어려웠다. 위에서만 바라보며 그려진 지도는 그 길이 찾기 쉬운 대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적당한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면 될꺼라 생각하게 만들었지만, 실제 그 대로에는 고가차도와 지하차도가 막고 있어 길 하나 건너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다행히도 예니카프 선착장은 예니카프 전철역에서 눈에 보이는 정도의 거리였는데...... 하지만 결정적으로 가이드북에 써있던 부루사 행 IDO 쾌속선의 잘못된 막차 시각이 그렇게 어렵사리 찾아갔던 것조차 소용없는 짓으로 만들고말았다.

터키의 첫날밤을 부루사에서 보내려던 무리한 계획을 세웠던 나는 어딘가 주저앉고 싶은 피로를 느끼며 지금까지 헤맨 것 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해서라도 잘 곳을 찾아야 한다는 각오를 해야했다. 여행은 여행이 아닌 것으로 바꼈다, 그것이 잠시뿐이길 바라면서.

다음날 해뜨기전 새벽, 잠시 쉬게 했던 몸을 일으켜 숙소에서 가까운 잔쿠르타란 Cankurtaran 전철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예니카프 선착장으로 향하는 첫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전날 놓친 부루사행 계획을 최대한 가깝게 쫓아가기 위함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잔쿠르타란. 곧 해가 뜰 것처럼 바다 넘어 서광이 비치기 시작하고. 마치 일출인냥, 첫 전차가 이스탄불의 아침을 깨운다.

...여행이 시작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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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India2008. 5. 16. 10:16
그곳을 운영하는 사람은 파파그루(Papa Guru; 아빠 선생님이란 뜻)와 아들 레디시, 딸 케롯, 그리고 어린 손녀딸이었다. 비지니스는 주로 레디시가 맡아하고 파파그루와 케롯은 레슨과 공연연주를 주로 하는 것 같았다. 딸은 부드러운 인상에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말은 한 마디도 안하면서 시따르 연주에서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내뿜어 신비한 인상을 풍겼다. 손녀딸 역시도 어린 나이에 상당한 솜씨를 보였다. 따블라를 주로 연주하는 레디시까지 그렇게 넷이서 낮에는 레슨을 하고 저녁 땐 공연을 하는 곳이 트리비니 뮤직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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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나에게 나흘간 시따르를 가르쳐주신 파파그루. 영어를 다 알아듣는 것 같긴 하면서도 대답은 무척 짧게 하고, 레슨중에도 잘한다는 말 외엔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직접 보여주고 손짓하고 잡아주고 그림으로 그려가며 열씸히도 가르쳐주셨다. 금방 친근감이 생기는 할아버지 외모인데다, 무엇보다 어렸을 때 봤던 만화 '드레곤볼'에 나오는 '거북신선'을 똑 닮아서 더욱 그랬다. 그의 한시간 레슨비용은 100루피. 그돈은 인도사람의 노임치고는 엄청나게 비싼편이다.

시따르 악기까지 하나 주문해놓은 마당에 레슨비 100루피는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도의 모든 곳에서 통하는 흥정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에 아무말 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돈으로 치면 그다지 비싸다고 할 수도 없으니까. 그리고 나중에 델리에서 레디시를 다시 만나 그의 이야길 들었을 때, 그땐 되려 흥정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곳에서의 며칠간 내가 의아해하며 느꼈던 것처럼 트리베니는 인도 안에 있지만 인도가 아닌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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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Turkey2008. 5. 15. 00:57
세비야 알카자르의 정원에 앉아 쉬고 있었다. 엄청난 규모의 미로와도 같은 정원에 숨어들어갔다가, 그늘 아래서 한참을 앉아있었나보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그가 내게 다가왔던가, 혹은 그를 보지 못한 내가 다가갔던 걸까. 한참을 앉아있던 곳의 바로 왼편에는 고양이 한마리가 누워 잠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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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보듬고 등을 쓸어주고 배를 간지렀다. 그런데 고양이는 잠든 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깨우지 않으려 조심스러웠던 내가 무안해져서, 조금 약이 올라 끌어다 안아버릴까 하던 찰나였다.

"이거 혹시 죽었나!"

흠짓 놀라 잠시 숨죽이고 지켜봤지만 다행히 그의 옆으로 누운 도톰한 배가 부풀어 오르는 게 보였다. 나보다 더 그곳을 즐기고 있는 그를 방해할 생각을 버리고, 아까처럼 다시 그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귀찮게 구는 날 바라봐주지조차 않는 고양이를 몇 번 더 어루만져줬다, 조심스럽게. 문득 그 엄청나게 넓고 아름다운 정원 속에 내가 혼자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혼자 있다는 것, 참 잘못된 거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만난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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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Turkey2008. 5. 11. 15:21

에페스(Epes, Ephesus) 유적지를 나와 셀축(Selçuk) 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편을 찾던 중이었습니다. 마침 그곳에는 한국 관광단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절버스에 올라타던 중이었죠. 그들이 한국인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원형극장에 둘러 앉아 장기자랑을 해대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으니까요. 그 버스 앞유리에 교회 이름이 적혀있는 걸로 봐서는 단체로 성지순례를 왔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죠.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혹시 버스가 셀축으로 가면 얻어탈 수 있겠냐고 물어봤지요.

보통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면 흔히 집단 이외의 소속원들에 대한 목적 없는 거부감 같은 걸 갖고들 합니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접근도 해보지 않았겠지만 설마 성지순례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그런 여유조차 없을까 싶었지요. 그냥 버스 좀 얻어타자고 물어보는데 별 걸 다 따지고있다 싶기도 한데, 그래서 사실 제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저와 동행하던 친구가 먼저 가서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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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축 인근 지도


{하루 여정} 저는 이른 아침에 셀축의 오토가르에서 미니버스를 타고서 서쪽으로 40분 거리에 있는 해변 도시 쿠샤다스(Kuşadası)에 먼저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셀축으로 돌아가는 미니버스를 타고 돌아가던 중 에페스에 내렸던 거지요. 사실 에페스에서 셀축으로 돌아오는 길은 걸어서도 갈 수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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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스의 히치(Hitch) 소녀

만큼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일정을 그리 잡았던 겁니다. 셀축에서 가깝다 하여 에페스를 먼저 갔다면, 에페스에서 쿠샤다스로 가기 위한 차편이 셀축에서보다 애매해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실제로 해보니 구간을 오가는 미니버스는 정류장도 없는 곳에서 잠깐씩 정차할 뿐이어서 현지사람이 아니고서는 에페스에서 미니버스를 잡아 타는 게 쉽지는 않겠더군요. (버스에서 내릴 때 역시 같은 이유로 난감해지긴 하지만 다행히 버스기사가 눈치껏 내려줍니다. 관광객 처럼 보이는 동양인이 내릴 곳이라고는 종점, 기점 그리고 그 사이의 에페스 뿐이니까요.) 게다가 셀축과 쿠샤다스를 오가는 미니버스는 해가 꺼질 무렵에 운행을 중단하기 때문에 에페스를 먼저 들렀다가 쿠샤다스를 간다면 돌아오는 차편이 위험해질 수 있게 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에페스에서는 폐장 시간이 문제일 뿐 돌아오는 건 걸어서도 갈 수 있으니까 부담이 덜하죠.

에페스 유적지의 북쪽 입구는 셀축의 오토가르(버스터미널)에서 서쪽으로 3km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이들은 산책삼아 에페스까지 걸어가기도 한다죠. 실제로 에페스에서 우연히 만나 동행했던 친구는 셀축에서 그곳까지 걸어왔다고 합니다. 걷던 중간에 히치하이킹을 해서 차를 얻어타긴 했다는데, 특이하게도 경찰차를 잡아 탔다더군요. 성지순례단 버스 얻어 탈 때도 알아봤지만, 히치(hitch) 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히치 소녀와 함께 버스를 타고서 셀축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셀축과 에페스 유적지 사이길 옆에는 또다른 유적지 하나가 있는데 그곳을 지날 무렵 인솔자가 마이크를 꺼내 들더군요.

"여러분들 왼쪽에 보이는 곳이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던 터 입니다."

이쁘장한 여자애한테 승차를 허락해준 건데 덤으로 저까지 따라 탄 게 불만인 듯 해보였는데, 거기다 귀동냥까지 하고 있으니 밉상으로 보여질까봐 안 듣는 척 하고 있었지만 사실 듣긴 다 들었죠.

"지금은 다 부서지고 터만 남았는데, 방금 전에 여러분들이 나오신 에페스에서 보셨던 것들 중 일부는 이곳에 있던 것들을 옮겨다 놓은 것들이기도 해요. 자, 이렇게 여러분들은 오늘 세 곳을 보신 겁니다. 처음에 들르셨던 게 성모마리아의 집이었고요, 에페스를 거쳐서 이렇게 들르진 않았지만 아르테미스 신전까지......"

이들은 아마 대절한 버스를 타고, 저는 차편이 마땅치 않아 갈 수 없었던 성모마리아의 집에 갔다가 에페스 유적지의 고지대인 남쪽 입구에 내려줬나봅니다. 그리고서 셀축에서 가까운 북쪽 입구에서 관광을 마친 그들을 픽업한 거겠죠. 몇년 전 어머니께서 터키와 그리스에 성지순례를 가셨을 때 이들처럼 이렇게 다니셨겠구나 싶어졌죠. 성모마리아의 집은 신자가 아닌 저에게 그다지 흥미꺼리는 아니었지만, 언젠가 어머니의 그곳에 대한 인상적인 말씀이 떠올라 가보고 싶기도 했죠. 하지만 굽이굽이 산길을 꽤 올라가야 하고 시간도 모자랐기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이틀 여정} 사실 시간만 많다면 문제될 것이 뭐가 있겠어요. 에페스와 쿠샤다스를 하루에 다 보기 위해 위에 제가 설명한 것처럼 일정을 고민할 필요도 없겠죠. 만약 셀축에서 하루 여행을 한다면 저처럼 하는 게 좋을 것 같고, 이틀 여행을 한다면 마리아의 집까지 가는 차편을 알아보고 그곳을 구경한 후에 에페스의 남문 또는 북문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 마리아의 집에서 성지순례단을 만나기 십상일테니 에페스까지 가는 데 차를 얻어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루는 에페스 근방을 여행하고, 또 하루는 쿠샤다스에 가는 거죠. 날씨만 좋다면 쿠샤다스는 꼭 가볼만한 곳입니다. 오전에 도착해서 점심식사를 한 후 늦은 오후에 셀축으로 돌아와 에페스 방물관을 관람하면 충분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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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etown 에 도착하기 위해서 엉덩이가 네모내지도록 비행기를 탔다. 그렇게 간신히 도착했지만 정작 시내로 가기 위해 미리 예약해둔 트랜스퍼를 찾지 못해 어찌나 당황했던지 모른다. 심난하던 나에게 호객하며 귀찮게 하던 택시기사는 나에게 예약한 트랜스퍼의 도착 여부를 물어보라며 자신의 휴대전화기를 내밀었다. 갖 환전을 마치고 나온 상태어서 랜드(Rand) 화폐 동전이 있을리 만무하니 어딘가에 전화를 걸려면 그의 미심적은 호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트랜스퍼는 있었다. 전화기를 돌려주며 늦어졌을 뿐이라고 설명하자 택시기사는 전화요금을 요구했다. 애초에 전화를 시켜보고 트랜스퍼가 없으면 택시 손님으로 돈을 벌고, 트랜스퍼가 있으면 전화 손님으로 돈을 벌 궁리었던 거다.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아프리카에서의 첫 대화가 그런식이다보니 앞으로의 여행이 상당히 피곤해질 것 같은 예감에 몸이 더 지치는 듯했다. 그에게 얼마나 줘야 하냐고 물었더니 나더러 알아서 달랜다. 내가 제안을 하면 그가 그대로 받아들일 리 없고, 분명 올려서 다시 부르겠지. 왜 흥정이란 과정에는 먼저 카드를 꺼내보이는 게 불리하게 여겨지는 걸까? 내 생각을 먼저 들키기 때문일까?

정리하자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내가 처음 쓴 랜드 화폐는 전화사용료가 됐다, 택시기사에게 지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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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India2008. 2. 29. 14:07
슈림버를 우연히 다시 만난 그날은 새해 첫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엔 인디아게이트에서 만난 수많은 인도인들 속에 섞여 많은 시간을 보냈죠. 가족단위로 놀러나온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가 늦은 시간까지 저를 오래 기다리는 것이 미안해지더군요. 그래서 돌아갈 때는 알아서 갈테니 그만 가보라고 했죠.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제가 묵고 있던 게스트하우스 앞으로 찾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그의 머뭇거림을 봤는데, 처음엔 다음날 만날 수 없다는 뜻인가 싶었지만 곧 그가 아직 받지 못한 돈에 대해 걱정한다는 걸 알게 됐죠. 다행히 약속했던 일당을 계산해주고도 숙소로 돌아갈 택시비가 남았습니다.

슈림버를 보낸 후부터 잠들기 전까지 저는 인도 사람들에게서 최고의 감동을 선물받았습니다. 그날의 느낌을 길게 끌고 싶었던지 다음날 아침에는 늦잠을 자버렸죠. 그러다보니 외출 준비가 늦어졌고 슈림버와 약속한 아침 8시를 지킬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기다리고있을지도 모를 그가 불안해하거나, 포기하고 실망한 채 가버렸을까봐 저는 무척 서둘러야 했죠. 준비하다 말고 일단 나가서 그에게 더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들어올까 하고 생각함과 동시에 저는 그가 밖에 없을 꺼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나 붙잡아 "헬로! 꼬레안? 웨어아유고잉?" 하는 릭샤왈라가 꼭 저를 태우기 위해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요! 바라나시에서 만났던 사이클릭샤왈라도 저를 기다리기로 하고서는 다른 손님이 생기자 그냥 떠나버렸었는데, 인도에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고 욕먹을 일도 아니었죠. 그래서 준비하던 도중에 나가보는 건 좀 우습다 여겨졌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거니와 괜히 그가 와있지 않음에 제가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갈 채비를 서둘렀지만 30분 이상을 늦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메인바자르로 들어서자 그곳엔 오늘도 파란색 스웨터의 작업 유니폼(?)을 입은 슈림버가 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안녕하세요, 슈림버!"

저는 무척 기분이 좋아져서 그에게 인사했습니다. 그가 거기 와있었던 건 약속을 지키기 행동이기보다 하루 일꺼리를 벌기위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가 안 왔다면 다른 릭샤를 타도 그만이었고요. 그런데 그는 약속도 지켰고 저를 기다리기까지 했지요. 제가 그가 기다릴 꺼라고 기대 안했던 것처럼 슈림버 역시 제가 다른 오토릭샤를 타고 나갔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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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메인바자르로 나와준 슈림버. 전날까진 사진찍길 거부했었는데 이날은 포즈를 취해줬다.


제가 그에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을 때 그는 "노 프라블럼, 마이 프랜!" 했습니다. 인도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가벼운 말이지만 그때만큼은 가볍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는 제가 그에게 보인 것 이상의 믿음을 보여줬으니까요. 게다가 그는 "마이 프랜" 이란 말을 잘 쓰는 편도 아니었고요. 여기서 무겁게 '믿음' 이란 말을 쓰기보단 서로간에 어떤 긴장감이 덜어져 편한 느낌이 되었다고 하는게 더 어울릴 것 같네요.

그와 헤어질 때, 처음 델리를 떠나면서 역전에서 샀던 침낭을 그에게 선물했습니다. 어차피 버리려고 했던 물건이라 좀 미안했지만 그라면 그걸 팔 수도 있을꺼라고 생각했죠. 그가 가격을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흔쾌히 200루피 달라는 걸 100루피에 샀다고 말해줬고 팔아서 쓰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는 저를 공항까지 태워가고 싶어했지만 훨씬 더 싼 셔틀버스도 있었고 돈도 거의 남아있질 않아서 그럴 수는 없었죠.

어쩌면 그가 오늘 절 기다렸던 건 공항까지 태우고 갈 수입까지를 계산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좋게 받아들이면 그만인 일인데도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게 인도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슈림버는 헤어지면서 다시 또 델리에 오게 되면 전화하라고 말해주더군요. 아마도 저는 또 슈림버를 오해했던가봅니다. 언제나 그곳에 다시 가게 될지가 의문이지만, 그때 그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저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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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India2008. 2. 26. 15:52
트리베니 뮤직센터(Triveni Music Center)는 바라나시에 머무는 나흘 동안 매일 찾아갔던 곳. 첫날 찾아갔을 때 시타르(Sitar) 하나를 주문했고 그후로 나흘간 찾아다니며 시타르 레슨을 받았다. 그곳은 1층이 공연장 및 강습소였고 옥상은 레스토랑으로, 중간 층들은 장기 강습생들을 위한 도미토리 및 연습실로 사용되는 건물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준의 '공연장'이나 '레스토랑' 등을 떠올리면 엄청난 착각이다. 한번은 오전에 레슨을 받고서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자기들 옥상에 테라스 레스토랑의 전망이 좋다고하여 올라갔었다. 그런데 음식을 어디서 배달시켜서 내오는 건지 엄청 늦게 나왔고(인도니까 늦는 건 상관 없다), 게다가 날파리들이 나눠먹자고 달려들다가 스스로 건더기가 되어준 덕분에, 아직 닭의 로망도 모른 채 유명을 달리했을 병아리로 의심되는 자의 다리가 담궈져있는 치킨커리를 더욱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외국인들은 날파리들을 건져올리고 있는 나에게 단백질이니까 그냥 먹으라고 했다. 그들역시 그러다 포기했다는 듯한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바라나시의 미로와 같은 골목길에서 어딘가를 찾아간다는 건 발길 닿는 데로 떠돌다가 우연히 만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트리베니 뮤직센터 역시 우연히 만나게 될 때까지 떠돌아야 한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 무척 헤매야 했다. 그렇게 헤매던 중에 골목길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던 어떤 여자분이 있었는데 왠지 찾는 바가 같을 것 같아 불러 세운 후 같은 깨달음을 향해 동행했고, 그렇게 우린 함께 트리비니에 찾아 들어서게 됐다. 그곳의 내부가 무척 어두침침했기 때문에 첫인상에 호감이 가질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타블라를 만들고 있던 이는 상대적으로 밝은 입구쪽에 나와 앉아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안에는 인도식으로 꼬르따와 펀자비를 곱게 차려입은 일본인 커플이 한 쌍 앉아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여기 이후로도 계속 낯선자일 것을 암묵적으로 합의했던 건지,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더욱 낯선 기분을 하고서 카페트 위에 앉아 누군가 접대해오길 기다려야 했다.

인도에 도착해서 바라나시로 들어가기 전까지 인도사람들은 나로하여금 그들에 대한 어떤 선입견을 갖게 만들었다. 그런 선입견은 그들의 친절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게 하거나 그들의 언행에 어떤 의도가 있을 꺼라는 생각을 하게끔 했다. 그때문에 여행중 무척 지치기도 했는데 트리비니 안에 있는 동안에는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했다. 그곳은 내가 인도라고 부르던 곳에서 동떨어진 공간인 것처럼 느껴졌고, 처음엔 그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곳과 그곳의 사람들은 결국 나에게 또다른 인도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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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Turkey2008. 2. 17. 01:18

사실은 널 기다린 거야.

숙소에서 나와 아타튀르크 자데시(Caddesi;도로) 쪽으로 걸어내려갈 때었어. 맞은편 보도에서 발견한 너의 작은 손엔 차이(Çay) 쟁반이 들려있었지. 흔들거리게 되어있는 쟁반 위에 차가 쏟아지지 않는 걸 보면 넌 아마 꽤 오래 차 배달을 다녔던가봐, 그 어린 나이에도 말이지.

그런 네가 예뻐보여서 난 널 다시 보고 싶었어.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추고 네가 지나간 맞은편으로 건너가 밴치에 앉았지. 네가 차 배달을 마치면 이 길로 다시 돌아올 것 같아 기다렸단다. 저 앞에 아타튀르크 자데시에서 이 길로 꺽어지는 좁은 보도의 모퉁이를 네가 비집고 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넌 정말 내가 상상했던 모습으로 나타났지. 밴치에 앉은 내가 마침 너와 눈 맞추기 좋은 높이를 하고 있어서 다행이야. 혹시, 언젠가 내가 다시 돌아올 날이 있다면, 여기 다시 앉아있을께. 그때는 서서 널 맞아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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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