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 over Beethoven2009. 9. 12. 09:28
제가 재즈를 듣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입니다. 그 시작이 된 두가지 계기가 있었죠. 하나는 단골 음반가게에서 얻은예음레코드 재즈 카달로그였습니다. 그 안에 있던 음반 재킷들이 제게 뭔가 말을 걸고 있는 듯 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가 롤링스톤스 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마이클잭슨으로 시작해서 중학교 1학년 때 비틀즈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레드제플린으로 하드락을 듣게됐고, 건즈엔로지즈로 헤비메탈을 즐기게 됐죠. 그때는 지금처럼 음반을 많이 살 수 있는 형편도 못 됐고, 갖지는 못해도 검색을통해 간편하게 들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습니다.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노래들이 '발견'의 의미를 갖을 때습니다. 다양하게 많이알지는 못했지만 비틀즈, 레드제플린, 건즈엔로지즈만 알아도 록앤롤은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었습니다. 롤링스톤스를 몰라도비틀즈를 떠올리면 들리는 듯했고 딥퍼플을, 메탈리카를 몰라도 라디오에서 몇 곡만 듣고서도 전부인 양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서 고등학교 2학년 때쯤 스레쉬 메탈이란 걸 듣기 시작했죠. 빌보드엔 판테라가 있었고 한국엔 크레시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팝에서 시작해서 록큰롤, 하드록, 헤비메탈 이제 스레쉬 메탈까지, 점점 더 제 취향은 시끄럽고 자극적인 음악으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수학의 정석 I 뒤에 II 를 사게 되듯, 성문 기본 뒤에 종합이 순서인 것처럼 그 다음이 데스 메탈이겠거니 너무 당연시하며 카르카스나 네이팜데스 같은 음악이 라디오에서 나와줬으면 좋겠다며 책걸이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무렵에 롤링스톤스가 새음반 Voodoo lounge 을 발표했습니다. 그들과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된 비틀즈는 이미 한참 전에 해체되어 벌써 고전이라고 불리게 될만큼 옛 일이 됐습니다. 헤비메탈마저 전성기를 지나고 얼터너티브락이나 모던락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였죠. 그런데 결성된지 30년이 지난 그 나이에 록앤롤 새 음반을 낸다는 것이 에너지 넘치는 스레쉬 메탈을 듣던 저로써는나이드신 어르신들이 빨간 셔츠에 하얀 구두 신고 다니는 일처럼 비춰보였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죠. 내가 과연 몇살까지 이처럼자극저인 음악에 머릴 흔들어댈 수 있을까 하고요. 예음레코드 재즈 카탈로그를 집에 들고온 어느날 그 안에서 보게 된재킷 사진 속에서 뿔태 안경을 쓴 채 차분히 앉아 있는 백인 아저씨에게 이끌려 재즈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저는 롤링스톤스의 공연실황 DVD, shine a light 를 보고 있습니다. 빨간 셔츠와 흰구두처럼 보였던 voodoo lounge 가 발표되고 햇수로 15년이 더 지나서도 방방 뛰어다니며 그 어떤 밴드들보다 섹시한 스타일과 연주로 무대를 누비는 걸 보고있습니다. 나이들면 락이 빨간 셔츠 같은 게 될꺼라는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그런 착각을 할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사고 싶은음반들을 돈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게 되었고, 음악은 여전히 갖고 싶은 것이지만 검색해서 들어볼 수 있을만큼 가벼워졌고,라디오는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거나 다름 없습니다.)

많이 변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락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어떤 착각으로인해 재즈를 만나게 된 것도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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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over Beethoven2009. 9. 3. 09:45
여름에 하려고 했던 기타 콘서트를 10월 10일 가을에 하게 됐습니다. 원래는 잔디밭 정원에서 하려고 밤이 춥지 않은 여름에 할 생각이었던 건데 한동안 무척 바빠서 연습을 할 수 없었죠. 사실 지금도 좀 무리스럽긴 하지만 더 늦어지면 안될 것 같아서 최대한 빠른 시간으로 잡은 것이 10월 10일이 되었네요. 날짜, 시간, 장소, 그리고 연주할 레퍼토리까지 모두 정해졌습니다. 한 곡은 갖고 있는 악보의 편곡이 맘에 안들어서 어제 해외 주문을 넣었는데 도착하기까지 2주가량 걸릴 껄 생각하면 연습할 시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일시 : 10월 10일 토요일 저녁 8시
장소 :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안흥천 옆 통나무집

프로그램
1. Austurias (Suite española, Op. 47, No. 1) - Isaac Albéniz
2. Granada (Suite española, Op. 47, No. 5) - Isaac Albéniz
3. Recuerdos de la Alhambra - Francisco Tárrega
4. Capricho de Arabe - Francisco Tárrega
5. Cucurrucucu Paloma - Tomás Méndez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9. 8. 6. 02:11
저의 어린 시절에 무척 감명깊게 본 TV만화 시리즈 두 편이 영화화 되었습니다. 하나는 벌써 두번째 시리즈가 개봉된 '트랜스포머'고 또 하나는 최근 개봉한 '지아이조'(G.I.Joe) 죠. 둘 다 만화에 등장하는 장난감 피규어를 하나라도 갖고 있지 않으면 학교에서 왕따가 될 정도로 인기가 많은 만화였죠. (당시 저는 캐나다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트랜스포머도 그랬지만 '지아이조' 또한 만화를 전혀 답습하고 있지 않습니다. 80년대 만화가 내다볼 수 있는 미래 기술과 현재의 표현 능력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어 그런 건지도 모르겠군요. 그럼에도 '지아이조'는 너무나 만화같은 영화가 되었습니다. 대놓고 리얼리티를 무시하는 내용 전개와 컴퓨터 그래픽이 차라리 그냥 만화를 본다는 마음을 갖도록 하였으니까요.

어린 시절에 보던 만화에 대한 향수도 한 몫을 했지만 이병헌의 출연이 결정적으로 이 영화를 보도록 한 계기가 됐습니다. 이병헌이 연기한 '스톰 쉐도우'는 비중이 작은 케릭터는 아니었지만 어딘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헐리우드 영화 속의 비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과거 '스피드 레이서'와 곧 개봉할 '닌자 어세신'에 출연한 가수 비와 비교를 해볼 수도 있겠죠. '닌자 어세신'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스피드 레이서'를 본 관객들의 비에 대한 반응은 별로 비중있는 역할이 아니었는 데 반해 큰 기대를 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비교했을 때 '지아이조'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스톰 쉐도우의 역할 비중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있습니다. 일단 이병헌의 별로 많지 않은 대사가 (대부분 영어 단문 이었고 복문의 대사는 극히 드물었다.) 오버더빙으로 처리된 것 같다는 점도 그렇고, 액션 장면이 많을 뿐 전체 스토리 빌딩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등장인물입니다. 결말에 스네이크 아이와의 대결에서 죽는 것처럼 처리됐지만 원작 만화에서의 스톰 쉐도우 캐릭터가 꽤 자주 등장한다는 걸 생각했을 때, 비단 영화가 만화를 답습하지 않고 있다고 앞서 이야기했지만, 다음편에서 과연 이병헌이 스톰 쉐도우로 다시 등장하게 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굳이 오버더빙까지 해줘야 하고 스토리빌딩에 참여하지 못하는 케릭터를 위해 죽은 것처럼 처리된 등장인물을 또다시 살려내려 할까요?

그의 역할에 대한 아쉬움은 비중이 있는 듯 기실 별로 없다는 것 말고 한가지 더 있습니다. 가수 비의 예를 다시 들어보면, 비의 경우 한국영화에서 이렇다할 작품이 없는 배우로 한국영화든 미국영화든 그냥 그 자체로 판단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병헌의 경우 이미 한국영화에서 자릴 잡은 배우로써 좋은 평을 받은 작품들도 여럿 있기 때문에 헐리우드 영화에 출연해서 비중을 얼마나 차지하고 있느냐를 따지고 있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입니다. 비는 한국영화에서 용머리가 된 적 없으니 헐리우드 영화에서 뱀꼬리가 되어도 그 출연한 것 자체에 의미를 두면 되겠죠. 그러나 이병헌의 경우 용머리의 모습과 비교했을 때 뱀꼬리의 모습이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중견배우입니다.

악역이라도 앞으로의 '지아이조' 시리즈에서 계속 출연한다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 마냥 좋겠습니다만, 뱀꼬리 하느라 가랑이 찢어지느니 한국영화에서 용머리 되면 좋겠습니다. 간신히 본선 진출하는 거에 의미두고서 그 많은 응원을 불러내는 월드컵 대표팀 응원보다 국내 K 리크 응원하는 것이 축구발전이나 선수 개개인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네요.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9. 7. 24. 10:44
이 글은 지난 6월 23일 LIG ArtHall 에서 펼쳐진 재즈피플 2009 리더스 폴 수상자들의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8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LIG ArtHall 2009년 6월 23일

2009 리더스 폴
배장은(p), 최은창(b), 크리스 바가(d), 손성제(s), 최우준(g)


프로그램을 받아든 순간 13곡이나 되는 곡 목록을 보면서 이날 공연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졌다. 시작되지도 않은 공연을 곡의 양으로 판단하는 것이 섣부른 생각이긴 하다. 하지만 연주되는 곡이 많다고 해서 마냥 좋은 공연이 될 리는 없고, 조용필이나 팻 메시니처럼 세 시간쯤 내리 음악을 쏟아내며 청중을 즐거움에 지치게 만드는 경우를 아무 때나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이날의 연주자들이 서로 여러 차례 협연을 해왔겠지만, 리더스 폴 공연을 위해 일시적으로 모여 “V.S.O.P.”를 펼치는 올스타밴드인 걸 생각했을 때 기대 반 의심 반의 마음일 수밖에 없었다.


라이징 스타 2009의 오프닝 무대로 공연이 시작됐다. 지난 6월의 “퓨처스 앙상블 2009” 공연을 통해 워낙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연주자들이어서 연주를 들으며 공연 시작 전의 우려를 잊어버린 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로 연주된 ‘Autumn Leaves’에서 트럼펫과 색소폰이 주고받으며 진행되는 리듬의 변화와, 템포를 바꿔가며 진행되는 피아노 변주들은 스탠더드 곡들이 수도 없이 곱씹어 연주되어도 재즈를 재즈답게 즐길 수 있게 하는 그들만의 모습이었다. 좀 생뚱한 비유지만 할 일 없는 주말에 만화책 수십 권을 옆에 쌓아놓고 누운 채 그 첫 권을 펼쳤을 때의 기분이랄까. 앞으로 즐길 거리가 얼마든지 많다는 풍족한 인상을 주는 오프닝이었다.


2009 리더스 폴 수상자들의 첫 곡은 칙 코리아의 ‘Windows'였다. 배장은의 최근 음반 <Go>의 첫 곡이기도 한데, 음반에서는 들을 수 없는 피아노 인트로가 있었다. 무대에 홀로 오른 배장은의 인트로는 그녀가 어떻게 다른지를 말할 수 있을만한 연주였다. 그런 연주에 청중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를 보인 최은창과 크리스 바가는 인트로가 끝날 무렵 무대에 등장했고, 이내 트리오 편성으로 곡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곡이 끝날 무렵, 십여 곡의 곡목들을 보며 내용면에서 허술한 공연이 될지 모르겠다는 단편적인 우려가 다시 떠올랐다. 성급하게 마무리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더 즐길 게 나와 줘야 할 것 같은 아쉬움은 이어서 연주된 ‘Propose’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최우준의 기타는 다시 한 번 절정을 향해 치달아야 한다고 느낀 순간 끝나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더 듣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렇게 들렸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곡 진행상의 아쉬움을 제쳐놓고 생각해도, 이날 연주된 곡들은 대개 연주자를 소개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었으며, 진면목을 보여주는 연주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연주자 개개인에 대해서는 인상 깊은 요소들이 곳곳에서 보이기는 했다. ‘Chicken’을 연주하면서 기타 현 위에서 핑거링, 피킹, 스트로킹 같은 통상적인 주법 말고도 비비고 때리고 긁기도 하는 최우준의 연주는 그가 기타라는 도구적인 틀을 넘어섰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마치 ‘식사’라는 곡을 연주할 때마다 하는 ‘밥 숟가락질’을 우리가 주법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건 기타를 긁고 때리는 연주 자체가 특이하게 보일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Moody's Mood For Love’에서 화려하면서도 다 보이지 않고 약간은 감춰진 듯한 배장은의 인트로는 또 한 번의 감명을 주었다. 콘트라베이스건 일렉트릭 베이스건 균형 있게 좋은 연주를 들려주는 최은창은 공연 내내 여러 연주자들의 다양한 곡에서 그 자신의 역할을 말해주는 연주를 펼쳤다. 자신의 곡 ‘Carla’를 연주하기에 앞서 그는 한국의 재즈 무대에서 여러 연주자들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평가로 이 자리에 선 것이며, 그것이 스스로에게도 기분 좋은 일임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리더스 폴 2009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강대관 선생은 대한민국 재즈 1세대로서, 손자뻘 되는 3세대 연주자들과 ‘Summertime’을 협연했다. 마치 마일즈 데이비스가 초기 재즈 록 시절에 선보였던 스타일을 연상시킨 이 연주는 상대적으로 짧은 듯했지만 이날 공연에서 선보인 곡들 중에서 그 의미상 가장 흐뭇하고 멋진 순간이었다.


필자가 꾸준히 응원하는 종목은 재즈밖에 없다. 그러기에 스포츠 팬들이 농구나 야구의 올스타전을 구경 가는 느낌을 약간은 갖고 있었다. 그런데 리더스 폴이라는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이날의 공연을 마련한 재즈 팬들은, 결국 이 연주자들이 무언가 진한 승부를 내길 원했던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경기 내용이 대체로 싱거웠다는 이야길 하고 있기에 스스로 재즈 팬이 맞는지 헷갈려하고 있기도 하다. 또 모두 일어나서 응원을 하고 있을 때 팔짱 끼고 앉아서 분위기 망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올스타전을 즐기는 법, 그건 흥겨운 축제를 즐기는 기분과 같다는 걸 안다. 하지만 팽팽하게 전개되는 긴장감은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요구할 수 있는 재즈 팬의 권리다. 마음만 먹었으면 그걸 충분히 해낼 연주자들이었다는 걸 잘 알기에 하는 소리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9. 6. 27. 14:00
 
마이클잭슨의 발견은 다락방에서 찾아낸 잡동사니 같은 거였습니다. 그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아버지의 서재에 가면 오래된 잡동사니들이 많이 쌓여있어서 당신의 옛날 물건들을 뒤지며 놀곤 했었죠. 그러다가 오래된 카세트테이프(MC)들을 발견했을 땐 그 안에 뭐가 들어있나 재생해보기도 했는데 저의 더 어릴 적 목소리 같은 것들이 녹음되어있었어요. (요즘은 캠코더로 아이들을 녹화하지만 그시절엔 카세트로 아이들은 녹음했나보죠.)

그때 그 MC들 사이에서 마이클잭슨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녹색 라벨이 붙어있던 MC 는 해적판 짬뽕이었는데, 주로 엘범 <Thriller> 의 곡들 위주였죠. 그리고 얼마후 저는 제 인생 최초로 용돈으로 엘범을 사게 됩니다.  그게 바로 <BAD> 였어요. (이때 산 MC 는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팝송이라고는 누나가 듣던 Whitney Huston 이랑 초코렛 광고와 영웅본색으로 유명했던 장국영 말고는 몰랐던 제게 엄청난 충격이었죠.

마침 6학년이 되면서 아버지께서 일본에 다녀오시면서 AIWA 카세트 재생기를 사다주셨고 그때부터 아주 불나기 시작했죠.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초등학교 수학여행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BAD> 를 듣던 기억입니다. 돌아올 때 한밤중에 비가 왔는데 제가 젤 좋아하는 'Man in the mirror' 라는 곡이 틀어져나오던 창밖 도로 풍경이 아직도 보이는 것만 같아요.
 

이젠 상당히 많아진 컬렉션들의 일부로 MC 가 아닌 LP 와 CD 로도 마이클 잭슨의 음반들을 가지고 있어서 몇 년에 한 번 들을까 말까에 자켓 사진이 눈에 스칠 일도 드뭅니다. 또 제가 그의 내한공연 때 애써 찾아갔던 것도 아니고 광적으로 그를 좋아해서 프로필을 외고 다니거나 자료를 수집하거나 한 적도 없었죠. 그렇지만 마이클 잭슨이 단지 컬렉션의 최초 시작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란 것, 그건 바로 어제 마이클 잭슨이 죽기 전에도 너무 진하게 알고 있던 사실이에요.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9. 6. 22. 18:21

이 글은 퓨처스 앙상블 2009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7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EBS SPACE 2009년 6월 10일

퓨처스 앙상블 2009 배선용(t), 신명섭(ts), 윤석철(p), 정상이(b), 한웅원(d), 허소영(v)


퓨처스 앙상블(Future's Ensemble) 2009’의 무대가 마련된 공연 당일 EBS 방송국 앞의 매봉역 지하철 역사에는 거리 연주자들의 색소폰 연주가 벌어지고 있었다. 연주할 수 있는 무대로 행인 앞인들 마다하지 않는 즐거운 아마추어들이었지만, 그들 앞에 멈춰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 전 EBS의 <다큐프라임>은 사람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어떤 착각을 불러일으키는지를 다뤘다. 사람들의 착각을 보여주기 위한 여러 가지 실험을 했는데, 연주자의 학력이나 경력에 따라서 연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평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준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쉽게 예상되는 결과를 낸 그 실험은 국내 콩쿨 우승경력의 바이올린 연주자를 통해 이뤄졌는데, 자연스럽게 한국의 재즈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한국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재즈 연주자들 중 유학 경험이 없는 연주자가 얼마나 있던가. 그러나 그들의 프로필에 흔하게 등장하는 유학 경험이나 유명 연주자와의 협연 경험들이 한국의 재즈 팬들에게 어떤 작용을 기대한 결과물이라면 상당한 오해일 듯하다. 그들의 학력과 경력은 대중들에게 잘 모르는 연주자의 음반을 고를 때 비교적 친숙한 연주인과 협연한 음반부터 접해보는 정도의 참고적 의미 이상은 아닐 거라고 본다. 한국 재즈에 고정관념과 편견이 작용한다면 그건 평가절하의 결과를 보이는 경우가 더 많을 테고, 다행히(?) 학력이나 경력으로 포장된 채 그들이 세계적인 연주자라는 대중의 착각을 불러일으키진 않는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재즈 연주자들에게 유학경력이 흔하고 그것도 조기유학이 아닌 늑장유학인 경우가 많다는 건 단순히 한국에서 재즈를 배울 수 있는 기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으리라는 생각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날 만난 여섯 연주자들에 대한 생뚱맞은 반가움은 거기서 비롯됐다. 별로 접해보지 못했던 (유학 경력 없는) 이력의 20대 젊은 연주자들이 그렇게나 재즈를 훌륭하게 그리고 재미나게 연주하는 모습이 신기했던 거다. 기실 이런 젊은 연주자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는데 단지 필자의 경험이 미치지 못한 탓이라면 더 반가운 일이다. 솔직히 이날의 공연에 앞서 ‘실용음악’이란 이름으로 재즈를 포괄하고 있는 학과나 학원에서 공부한 연주자들의 공연을 떠올렸었다. 그런데 퓨처스 앙상블에 대한 의아함은 그들의 연주가 실용음악이 아닌 재즈였기 때문이었다. 첫 곡으로 연주된 섹스텟 편성의 ‘Rising Starts’를 들을 때부터 그랬는데, 이 곡은 그날 연주된 곡들이 예상했던 모습과 전혀 다를 것이란 걸 눈치 채게 했다. 그러한 시작부터 나머지 공연 내내 스윙과 비밥을 기반으로 한 20대의 연주자들은 내게 낯선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면 재즈를 담고 있는 것처럼 얘기되는 ‘실용음악’이 사실 얼마나 재즈와 거리가 먼 표현이었던가.


여섯 명의 출연자가 서로를 소개해가며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형태로 진행된 이날 공연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연주자는 피아니스트 윤석철이었다. 세 번째로 연주된 윤석철 작곡의 ‘Low Passion’에서 무거운 톤으로 철골 같이 심어지는 반복적인 리듬연주와 몰아치는 솔로는 남은 공연 내내 그를 주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찌나 인상 깊었던지 뒤이어진 허소영의 ‘Moody's Mood For Love’의 인트로까지 전 곡에서의 에너지가 이어지는 듯 했고 후반부의 ‘거울’이나 ‘Hope’까지 그의 거침없는 솔로는 계속 됐다. 전체 곡 분위기를 미리 다 보여주는 것 같아서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던 ‘Moody's Mood For Love'의 피아노 인트로는 허소영이 곧바로 노래로 이어받기 아쉽게 만들었던가 보다. 그런데 노래를 시작하기 전 그런 윤석철에게 박수를 보내는 여유를 보여준 허소영의 노래 또한 정말 대단했다. 제임스 무디(James Moody)의 솔로에 가사를 붙여 부른 그 곡은 그녀의 첫 앨범의 컨셉트를 대변하면서 블루지한 목소리와 함께 범상치 않은 신인임을 직감케 했다.


연주된 곡들은 대체로 직관적으로 이해되어 그 자리에서 즐길 수 있었던 곡들이었고, 반복적인 멜로디를 아름답게 발전시켜나가는 신명섭의 ‘Hope’ 같은 곡은 특히 더 그랬다. 반면 배선용의 ‘거울’은 라이브라는 일회성이 아리송함을 남기는 곱씹어 보고픈 곡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곡에서 피아노에게 멋진 공간을 남겨주면서 스스로는 전면에서 내지르지 않는 모습이 의외였다. 다른 곡들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절제된 건지 혹은 소극적인 모습인지 모를 일이지만 확실히 앞으로 더 기대해 볼 연주자였다. 공연 다음날 낯선 곡 하나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그 곡은 한웅원의 ‘Strawberry Princess’였다. 정작 공연장에서는 좋은 리듬감 말고 특별한 감상 포인트를 잡지 못했었지만 역시 탄탄한 기본은 튀지 않고도 오랜 인상을 남긴다. 정상이는 자신의 곡 ‘May Dance’에서 주제를 담은 인트로 뿐 아니라 전곡에 걸쳐 범상치 않은 베이스 라인을 들려줬다.


퓨처스 앙상블과 같은 젊은 신인 연주자들은 어떤 해답과도 같은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근래 들어 느끼고 있는 한국 재즈 연주자들에 대한 신선한 즐거움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하는 의문이 들 무렵에 이들의 무대를 통해 적절한 답을 만난 셈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필자 개인에게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닐 거다. 과거 국내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유학을 떠나 재즈를 배웠던 세대들과는 달리 지금은 국내에서도 재즈를 공부할 기반이 전보다 더 많이 갖춰져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알게 한다. 더불어 어릴 때부터 재즈를 진지하게 듣고 연주하길 즐기던 스윙키즈들이 전보다 나아진 기반 위에서 재즈를 수련하며 앞으로도 재즈 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무럭무럭 자라나주고 있지 않을까. 이건 분명 즐겁고 설레는 기대감이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9. 5. 12. 22:43
지난주 방영된 23번째 에피소드에서 드디어, 드디어 커디와, 드디어 커디와 하우스가, 드디어 커디와 하우스가 러브라인을 형성했더랬습니다. 대체 어떻게 흘러가려고 이러나 싶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시즌5를 약간 우습게 연출되는 헤피엔딩으로 끝내려는 게 아닐까하는 우려도 됐었지요.

그러나 역시 Dr. 하우스는 최고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배경음악과 케릭터 설정도 너무나 훌륭하지만) 만들어진 최고의 드라마입니다. 최근 방영된 에피소드 24를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커디와 하우스의 러브씬은 에피소드 24에서 대반전으로 이어집니다.영화 "Usual Suspect" 를 보고 극장 밖으로 나온 사람마냥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라고 외치고 싶지만 스포일러는 참아야겠지요. 대신 한가지만 이야기하죠. 커디가 하우스의 집에 놓고간 립스틱을 주목하세요.

그나저나 시즌5까지 꾸준히 봐왔던 메디컬 드라마 House 가 종영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소재로 사용되는 병명들이 귀에 익으면서 소재의 진부함도 느꼈던 게 사실이지만 24번째 마지막 에피소드는 드라마 House 의 종영을, 정말 그렇게 된다면 너무나 아쉽게 만드는 Best of the best 가 될 겁니다.

절름발이와 섹시 커디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9. 4. 18. 12:24
영화 Vicky Cristina Barcelona 를 봤습니다. 영화에 플롯이 없어서 재밌다고는 못하겠지만 스페인 바로셀로나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통해서 여행의 추억을 되새길 수도 있어서 좋았고 또 낯익은 스페인 기타곡들이 배경음악으로 자주 나와서 몰입이 더 쉬웠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주제곡 말고 스페인의 대표적인 클래식기타 작곡가 Issac Albeniz 의 Granada 라는 곡이 자주 나옵니다. 이 곡이 틀어져 나오는 한 장면을(아래) 보면서 두번째 개인 콘서트의 테마를 잡았네요.


스페인의 더위 속에서 한밤에 시원해보이는 야외 무대에서 즐기는 콘서트. 실제 이런 게 그들의 생활문화 속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도 해봄직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장면을 통해서 비슷한 영화 하나가 더 떠올랐는데 역시 스페인을 무대로 한 Habla con ella (영제: Talk to her) 입니다. 이영화는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게 아니라 그냥 스페인 영화고 영화 속에 위에서와 비슷한 공연 장면이 있었죠. 두 장면의 공통점이라면 영화 속에 삽입된 야외 콘서트라는 것과 각각의 남자 주인공이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는 것, 그리고 그 눈물을 본 여자 주인공이 남자에게 끌리게 된다는 점이죠.



제가 생각해낸 야외 무대는 강원도 안흥에 있는 친구의 별장입니다. 안흥찐빵으로 유명한 그곳에 두 번 갔었는데, 아주 한적한 곳에 나무로 지어진 별장이 있고 그 앞에 나무 데크 발코니와 잔디밭이 있죠. 그 옆으로는 안흥천이 흘르는 소리가 들리는 무척 아
름다운 곳입니다. 여름밤이 시원해질 무렵에 나무 발코니에 맨발로 앉거나 누운 채로 스페니 기타 콘서트, 모양이 꽤 괜찮을 것 같아요. 작은 촛불들을 곳곳에 켜 놓고서 말이죠.

친구가 허락해줄런지 모르겠지만 지난번 그곳에 갔을 때 그친구가 그곳에서 공연을 해달라고 했던 바, 장소 협찬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네요. 단지 저 곳이 교통이 좀 불편해서 자가운전 아니고서는 사람들을 초대하기가 마땅찮은 것과 하루 자고 가야 하는데 방이 둘 뿐이어서 남녀를 나누거나 거실에서 혼숙을 해야한다는 점. 젊은 사람들끼린 혼숙도 상관 없겠지만 제 손님은 나이대가 다양해서 말이죠.
 
벌써부터 선곡에 들어갔습니다. 스페인 작곡가들의 음반을 죄다 모아놓고 듣는 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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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over Beethoven2009. 4. 9. 05:29
시즌 1부터 꾸준히 즐겨보던 미국드라마 하우스House의 등장인물 커트너가 며칠전 방송된 시즌5 스무번째 에피소드에서 갑짜기 자살했다. 로렌스 커트너의 케릭터는 낙천적인 성격에 천재는 아니지만 재치가 넘치고 그러면서 엉뚱한 면도 많아서, 냉소적이고 천재적인 Dr. 하우스(휴 로리)와 상충되는 이미지로 드라마의 재미를 더해왔다. 그런 그가 너무 갑짝스럽게,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을 해버린 거다. 아무런 앞뒤 개연성 없는 사건도 황당했지만, 앞으로 커트너가 없는 하우스를 본다는 것이 섭섭해졌다.

'Dr.하우스'를 연기한 휴 로리, 그리고 로렌스 커트너 역의 칼 펜과 간접관계된 (정말) 조그만 사연 하나가 있는데, 작년에 쿠바를 여행할 때 만나서 1주일 정도를 함께 다녔던 루이스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루이스는 Dr.하우스와 반대로 무척 타인에게 너그러운 성격이긴 했지만 외모는 어딘지 모르게 Dr.하우스를 연상시켰고 그래서 처음부터 낯설지 않았던 것 같다. 그와함께 동쪽으로 이동하던 중 그는 트리니닷에서 다시 서쪽으로 돌아갔고, 나는 동쪽 끝까지 가겠다면서 관타나모Guantanamo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런 내게 그가 물었다.

"Do you think that is worth heading to Guantanamo?"

사실 그냥 경험해보고 싶다는 이유 말고는 특별한 동기는 없었는데 그에게는 뭔가 그럴듯한 이유를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 '관타나모 가는 길' (The road to Guantanamo) 핑계를 댔더랬다. 꽤 호평을 받은 영화였지만 대중적이진 않았던 이 영화를 역시 그는 모르는 듯 했고, 그대신 그가 '관타나모'를 키워드로 생각해낸 영화 하나를 말해준 게 있는 데,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찾아 보게 됐다. '설마 내가 이 영화를 동기로 관타나모에 간다고 했을 꺼라고 그가 생각했을까!' 싶을만큼 유치한 영화였는데, 'Harold & Kumar Escape from Guantanamo Bay' 라는 2008년 개봉영화로 루이스가 내게 이야기해준 게 2008년 7월이었으니까 당시엔 최신영화였겠다.

2004년에 'Harold and Kumar Go to White Castle' 을 시작으로 헤롤드와 쿠마 시리즈 2편 격인 이영화는 관타나모, 마리화나, 부시 대통령 등, 미국이 갖은 말하자면 어떤 모순점 같은 소재들을 역어 만든 풍자 코미디물인데, 정말 지저분하고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 여자들의 헤어누드가 한 두명이 아닌 단체로 나오고, 남자 성기도 클로즈업 되어 나온다. 그렇다고 그 장면이 딱히 성적으로 묘사된 분위기는 아니어서 참 코메디 스럽긴 했다. 아직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종류의 코메디가 아니다보니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거지 미국에서는 익숙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닥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끝가지 봐야했던 이유가 루이스 생각이 나서만은 아니었다. 이 영화에서 저질스런 역할은 전부 도맡아하는 쿠마 파텔 역으로 나오는 배우가 바로 드라마 하우스의 커트너로 나와서 익숙해진 칼 펜이었기 때문이다. '커트너'와 '쿠마' 사이의 케릭터 갭이란 것은 너무나 놀라워서, 우리나라 TV 드라마 배우가 포르노 영화에도 나온다고 상상하면 그 놀라움이 쉽게 전달될 것 같다.

왼쪽부터, 한국계 미국인 배우 존 조(헤롤드 역), 칼 펜(쿠마 역), 그리고 결코 낯설지 않은 깜짝출연자, 천재소년 두기!!


정리하자면 루이스 > 하우스 > 관타나모 > 쿠마 > 커트너 > 하우스 로 연결지어진 여담이었는데, 그러니 이제 다시 하우스 이야기로 돌아가도 되겠네.

오늘 퇴근하면서 라디오방송을 듣다가 주파수도 기억나지 않을만큼 우연히 듣게 된 영어 방송이 있다. 저녁 7시 좀 넘은 시간이었는 데 두 명의 미국인이(아마 미국인 맞을 꺼다) 로켓 발사 같은 최근에 이슈되는 뉴스들을 다루는 AFKN 비슷한 방송의 한 프로그램이었다. 듣다보니 그들이 커트너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 내막에는 배우 칼 펜이 오바마 선거운동에서 젊은 유권자들을 모으는 주요 역할을 했었기 때문에 결국 백악관에 입성하게 되어 드라마에서 하차하게 된 사연이 있었다는 거다. 영화 속에서 그는 비행기 안에서도 대마초를 피울만큼 마리화나 메니아에다가 테러범으로 오해받는 행동도 하는 사람이지만, 실제의 칼 펜은 전혀 다른 사회 모범적인 인간이란다. 영화속 이미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내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상당한 인기를 얻은 그를 오바마는 선거 운동에 요긴하게 이용했던 모양이다. 일단 유색인종에 종교적 다양성까지 포용할 수 있고, 또 영화 속의 반사회적인(?) 이미지가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돌려 생각하면서 반대급부를 노린 전략일 수 있을 것 같다.

여하튼 결국 그는 Dr.House 를 떠나 White House 로 가버렸다. 우리나라같으면 저런 발탁이 이뤄질 수 있을까도 생각해본다. 아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애로 배우를 TV에 캐스팅하는 것만큼 벌어지지 않을 일이지 싶다. (그러고보니 아주 없진 않구나.)

스러져있는 저 몸은 칼 펜의 것이 아니겠죠.


그런 사정으로 에피소드#20에서는 커트너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쓰러친 장면으로 딱 한 장면 출연했는데, 그것도 얼굴은 나오지 않고 팔꿈치 이하 몸밖에 안 보인 걸로 봐서 커트너는 20편에 출연하지 않은 거다. 20편에 출연해서 자기 역할을 정리하지도 못했으니, 자살 스토리가 얼마나 빨리 급조된 건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래도 드라마 하우스는 참 센스 있는 것이, 아직 시청자들이 커트너의 죽음을 모르는 시작부분 부터 마지막 장례식 장면까지 어두운 조명으로 일관해서 평소와는 다르게 매우 음울한 분위기를 연출하더라. 게다가 장례식을 인도식이라거나 이슬람식이라고 하기도 뭐하게 약간 오묘하게 연출해냈는데, 출연자들이 단체로 모여서서 그를 애도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은 단순히 커트너를 애도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로 비춰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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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over Beethoven2009. 3. 24. 09:54
이글은 피아니스트 배장은과 이선지가 각자의 앨범 <Go>와 <The Swimmer>를 주제로 펼친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4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배장은 쿼텟 2009년 3월 3일 at EBS SPACE
이선지 쿼텟 2009년 3월 19일 at EBS SPACE

'가요'라는 말을 '대중적 음악'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썼을 때 그것은 팝, 록, 재즈 등과 별개의 분류일 수 없다. 우리는 이 말을 '국산음악' 또는 '한국어 가사가 있는 노래'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유통 상의 분류가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예를 들어 음반가게들은 국산음악을 찾기 편하도록 별도로 구분해놓았고, 라디오방송도 가요프로와 팝음악프로가 따로 있는 식이다. 어쨌든 '가요'라는 개념이 '음악'을 즐기는 이에게 존재하진 않기 때문에, 물리적인 거리가 있을지라도 음반가게에서 카드를 긁을 결심이 서는 데는 고려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실 이건 그것들 간의 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재즈에서는 그 전제가 약간 아리송하다. '한국 재즈'라는 단서가 붙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것을 선택함에 있어서 어떤 망설임이 일기도 하며, 상대적인 우위에 의해 밀려나기도 한다. 그래서 최근에 접한 서너 장의 한국 재즈 음반들이 더 크게 와 닿았는지도 모른겠다. 그 중 배장은이 그렉 오스비 등의 해외 연주자들과 작업한 <Go>와, 처음에는 갸우뚱해가며 듣다가 두 번째에서 더 맛을 느꼈던 이선지의 데뷔작 <The Swimmer>은 공연으로도 접할 수 있었기에 만족감이 더 컸다.

음반도 마찬가지지만, 이 둘의 공연에서 크게 기여한 관악 연주자들이 있었다. 배장은 쿼텟의 첫 곡 'Go'가 그렉 오스비(as)의 블로잉으로 시작됐을 때 이런 톤을 공연장에서 들은 게 언제였나 싶을 만큼 생경했는데, 일단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었고 또 세계적 연주자들의 무대일지라도 언제나 수백 이상의 관객을 수용하는 큰 무대였기에 느껴볼 수 없었던 탓일 거다. 이런 느낌은 이선지 쿼텟의 랠프 알레시(t)에게서도 받았는데, 그의 톤은 음계로 들려오는 것 훨씬 이상이었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반의 녹음보다 창조적인 솔로를 연주한 배장은은 재미있는 공연을 만들었다. 'Giant Steps'는 느리지만 공간미가 돋보인 편곡이었고, 쿼텟으로 바꿔 편성한 '고향의 봄'의 경우 후반부의 인상적인 심벌 연주가 고향의 밤에 반짝이는 별을 연상시키며 한국적 정서와 잘 어우러지기도 했다. 이날 출연한 아담 텍세이라(d)와 저스틴 그레이(b)는 음반 작업을 함께한 연주자들이 아닌데다 무척 어려 보이는 외모가 관록의 그렉 오스비와 대비되어 연주 시작 전에는 약간의 걱정을 샀다. 그러나 우리가 흔하게 접하지 못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재기 발랄하게 활용한 그들이 공연의 재미를 더했음은 분명하다.

반면 이선지 쿼텟의 공연은 음반에 대한 만족도에 비해 약간 모자라지 않았나 싶다. 일단 연주 멤버의 변화가 아쉬움을 만든 것 같고, 일부 곡들에선 마무리가 흐지부지 되는 등 어색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연주도 들렸다. 그런가 하면 'On the Fly'에서 원곡의 피아노 왼손 프레이즈를 베이스 솔로 인트로로 활용했다가 다시 피아노가 이어받는 식의 흠미로운 편곡이 곳곳에서 보였다. 새로운 작곡인 'Fallen-Sun'의 경우 단순한 프레이즈들을 끈질기게 이어내면서 록 음악적인 몽환을 풍겼는데, 작곡가로서 일상의 모습들을 이미지화시키는 이선지의 역량을 보여주며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 또한 갖게 만들었다. 앵콜로 연주된 '가요'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은 무대 또는 재즈를 찾아온 관객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됐을 거다.

단지 재즈이기 때문이 아니라 뮤지션이라는 이유로 대중으로부터 선택 받을 가치를 만드는 한국 재즈 연주자들이 많아졌다. 배장은과 이선지의 경우 함께한 해외 연주자들의 역할도 컸던 게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의 좋은 작곡과 편곡이 바탕이 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한국 재즈'라는 단서는 뮤지션들의 역량에 대한 구분만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내한했던 한 피아노 트리오는 동네 슈퍼에 다녀오는 듯한 차림으로 무대에 서서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음악과 무성의해 보이는 연주를 펼쳤다. 그런 그들이 크나큰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로부터 기립박수까지 끌어낸 걸 보면, 한국 재즈라는 단서는 대중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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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over Beethoven2009. 1. 22. 17:19
이 글은 "재즈, 클래식을 품다" 여섯번째 마지막 공연인 '최고의 순간들'의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09년 2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EBS SPACE 2008년 12월 29일

클래식을 소재로 한 재즈의 변주들은 재즈의 대중화라는 이유를 상투적으로 보이게 할 만큼 지루하게 되풀이되어왔다. 하지만 그것들과 달리 EBS 스페이스가 기획한 "재즈, 클래식을 품다"는 확실히 재즈가 그 중심에 있었다. 말 그대로, "재즈가 클래식을 품었다." 그런 의미에 부응하듯 '해석'의 과제를 부여 받은 다섯 명의 피아니스트들은 이전과는 차별화된 성과를 보여줬다. 르네상스부터 현대음악에 이르는 테마들을 아우르며 3월부터 시작된 다섯 번의 공연에서, 연주자들끼리 서로를 의식한 듯한 어떤 긴장감이 감돌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각자의 무대에서 저마다 자존심을 걸고 최선을 다했기에 그들이 일궈낸 성과와 상호간의 경쟁이 "최고의 순간들"이란 무대에서 어떤 식으로 결말지어질지 기대하며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은 이지영 퀸텟의 'Jesus, Joy Of Man's Desiring'으로 시작됐다. 경건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으로 친숙한 바흐의 곡을 발랄함으로 윤색하여 '낯설게 하기'에 성공한 연주였다. 이어서 이지영-임미정의 듀엣으로 바흐의 'Orchestral Suite No.2' 중 'Polonaise'가 연주되었다. 장중한 분위기로 시작되는 'Polonaise'의 선율은 산뜻한 편곡으로 되살아났고, 깔끔한 마무리까지 이어지면서 앞으로 이어질 피아노 듀엣 연주들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렇게 빠른 템포와 발랄한 느낌의 편곡 다음에 이어진 임미정의 베토벤 '비창'은 흥분됐던 공연장 분위기를 정돈했다. 피아노 인트로와 색소폰 솔로까지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연주였는데, 특히 결말에서 일순간 꽃봉오리가 열리듯 피어오른 '비창'의 멜로디가 남은 감동을 자아내면서 앞서 펼쳐진 연주들도 필 듯 말 듯 참고 숨겨온 '비창'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미정은 '비창'의 주제 멜로디를 곡 후반에 배치했다.)

이후 등장한 송영주는 비제의 오페라 '진주잡이' 중 '신성한 사원에서'를 모던한 느낌의 여섯 박 편곡으로 들려줬다. 지난 9월에 쿼텟으로 연주된 곡이 트리오로 바뀌면서 조금 단조로워진 느낌은 종반부의 화려한 혼합연주 마무리로 해소되었다. 배장은과의 듀엣인 '나비부인' 중 '어느 갠 날'은 송영주-배장은이 번갈아 멜로디를 발전시켜나가는 편곡이 일품이었고 긴 연주 시간에도 반복적인 구성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오페라 중창곡을 트리오로 연주하고 아리아를 듀엣으로 연주했기에 두 곡의 편성을 서로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배장은에 의해 퀸텟 연주로 재창조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독주곡 '프렐류드 op.3 no.2'는 원곡의 무거운 분위기를 살리면서 라틴의 느낌이 더해졌고, 송준서와의 듀엣 순서에서는 조지 거쉬윈의 'It Ain't Necessarily So'를 베이스와 드럼과 함께한 독특한 구성으로 연주하여 공연에 다채로움을 더했다. 송준서는 거쉬윈에 이어서 프란시스 플랑의 '토카타'까지 원곡에 솔직한 편곡을 보여줬다. 인상 깊었던 건 그의 연주에서 약간의 광기어린 고집스러움을 느꼈던 것인데, 임달균의 색소폰 솔로 중에도 그는 자신의 연주에 한껏 몰입하고 있는 듯했다. 곧이어 휘몰아쳐 나오는 피아노 솔로로 연결되면서 그것은 이어달리기의 바통터치가 아닌 숨차게 달려온 러너의 라스트 스퍼트처럼 보였다.

준비된(?) 앵콜곡 'Rhapsody in Blue'를 들으면서 '최고의 순간들'이 갖는 여러 의미들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일련의 공연들이 통시적으로 잘 기획된 하나의 공연으로 훌륭하게 마무리 되는 순간이란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다섯 명의 피아니스트들은 모두 다른 무대를 꾸미면서도 서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경쟁을 펼쳐왔다. 그리고 이렇게 한 데 모여 공감대를 형성하는 듀엣까지 엮어내게 됐고, 종국에는 하나의 릴레이 연주로 대미를 장식하는 결말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우리가 다른 공연장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드라마틱함을 안겨줬다. 이렇게 긴 시간을 두고 유기적으로 이어진 훌륭한 기획공연을 꾸준히 현장에서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한 가지 욕심이라도 부린다면 "재즈, 클래식을 품다"가 음반 제작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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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over Beethoven2008. 12. 23. 02:02
일전에 콘서트 계획에 대해 포스팅했던 대로 지난 12월20일에 저의 작은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제 주변 소중한 사람들을 모시면서 적잖은 입장료를 받았는데, 오신 분마다 선물을 쥐어주고 가셔서 입장료를 받은 저를 부끄럽게 했어요. 너무 감사한 분들 한 분씩 나열합니다.
  • 은정이 누나와 항상 말로만 들었던 누나의 언니.
  • 밤새 이야기하고도 모자른 영재와 그녀의 친구.
  • 부산에서 올라와준 도협이와 2월7일 출산을 앞둔 경아씨.
  • 누구에게나 편안한 박순탁씨와 그의 휘앙세.
  • 많은 준비와 배려로 무사히 마치게 도와준 table M 문은진씨.

사용자 삽입 이미지

photo from table-m


프로그램 (연주된 순서대로)

1. Prelude No.4 - H. Villa-Lobus
2. Tango en Skai - Roland Dyens
3. 어머니 - 이병우
4. Lettre a Jacques Cartier - Roland Dyens (보라색 편지 받을 사람을 위해)
4. Villancico de Navidad - A. B. Mangore (출산을 앞둔 경아씨를 위해)
5.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가스펠, 서윤일 편곡 (결혼을 앞둔 박순탁 커플을 위해)
6. Julia Florida - A. B. Mangore
7. Baden Jazz Suite 1악장 - Jiri Jirmal
8. Un Sueno en la Floresta - A. B. Mangore
9. Cavatina - Stanley Myers
10. White Christmas - 캐롤, Low Gek Siong 편곡
11. Felicidade - A. C. Jobim 곡, Roland Dyens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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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over Beethoven2008. 12. 21. 11:58
이 글은 사토코 후지이 트리오와 강태환 트리오의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09년 1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피아니스트 사토코 후지이(Satoko Fujii)
베이시스트 마크 드레서(Mark Dresser)
드러머 짐 블랙(Jim Black)
앨토 색소포니스트 강태환
퍼커셔니스트 박재천
피아니스트 미연

서울 모차르트홀 2008년 12월 10일

‘대화’를 생각한다. 혼자 하면 독백이지만 둘 이상이 연주하면 음악도 대화다. 그들의 대화는 시종일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어울림만 있는 게 아니라 때론 누군가의 도발로 격앙된 싸움이 되거나 토론에 걸친 합의를 만들기도 하며 논쟁의 승리자를 낳기도한다. 사토코 후지이 트리오와 강태환 트리오의 협연도 다양한 모습의 대화였다.

1부 첫 순서였던 강태환 트리오의연주는 그들의 오랜 협연 경험만큼 내게 익숙했다. 자유즉흥에 ‘익숙함’이란 말은 선뜻 쓰기 어렵지만, 연주자들과 공감하는 기회를많이 가질수록 예측불허의 변화 속에서도 기대가 생기고 그 기대가 눈앞에서 실현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강태환 트리오의 연주는 편안했고 전체 공연의 주제를 제시한 역할을 했다.

이어서 연주된 사토코 후지이 트리오의구성즉흥곡 ‘Trace a River’에서 그 역할이 드러났다. 이들은 강태환 트리오의 자유즉흥연주를 반영했다. 그런 어법상의시도 때문인지 덜 정돈된 느낌을 받았는데, 그럼에도 곡의 후반부로 갈수록 구성적 모습을 되찾아가며 감동에 이은 여운까지 남겼다.쉬는 시간 동안 나는 마크 드레서의 보잉(bowing)이 담담하게 털어놓은 음울한 베이스라인을 계속 흥얼거리고 있었다.

차라리 매치-업(match-up) 대결이랄 수 있었던 2부의 듀오 연주들은 태권도나 유도의 단체전을 보는 듯했다. 그것들의 단체전경기 방식처럼 선봉, 중견, 대장의 대결구도였고, 마지막의 6인 혼합연주는 유도의 ‘자유연습’ 혹은 ‘소화다리’라 불리는 무한대련에 그 치열함을 빗댈 수 있었다.

첫 번째 피아노 듀오는 다른 듀오연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만나기 어려운구성이니만큼 대결보다 조화를 이루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했다. 그리고 상대와 조화를 이뤄내면서도 스스로 빛이 나는 걸 보면서,결국 그날 공연을 통틀어 가장 큰 감흥을 준 연주로 각인됐다. 반면 타악 듀오는 어울리는 듀오 편성이란 일반적인 예측과는 시작전부터 벗어나 있었다. 박재천의 타악이 정형화된 틀에서 한참 벗어나 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짐 블랙과 함께한협연은 일정한 불안요소를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현실에 드러나면서 연주는 박재천의 압도로 시작됐다. 짐블랙은 박재천의 옆에서 탬버린과 캐스터네츠를 두드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정말 잔인하다 싶은 생각이 들 무렵 박재천이 짐블랙의 어법으로 섞여들 수 있는 틈을 주었다. 이후로 긴장감에 눌려있던 감상의 재미가 살아났지만 조마조마함은 끝까지 계속됐다.박재천이 그의 방식으로 대화를 압도해나갔기에 연주는 승패를 닮은 결말로 이어졌지만, 그들의 멋진 대화에는 똑같이 박수를 보내고싶다.

앞선 타악 듀오에서 긴장을 놓지 못하게 했던 그 무언가는 결국 마지막의 6인 혼합연주에서 폭발해버리고말았다. 도장의 매트 위에서 닥치는 대로 대련을 벌이는 모습을 방불케 하다가 어느 정도 정리된 결말을 합의해나가고 있을 때,박재천의 갑작스런 도발이 불거졌다. 그들의 치열한 대화는 일순 엉뚱한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다. 그 때부터 마크 드레서는 무대중앙에 우뚝 선 거인처럼 엄청나게 커 보이는 착시를 일으켰다. 박재천의 도발이 결국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 시발점이었지만, 연주자모두와 함께 마지막 3분의 감동을 이끌어낸 것이 바로 마크 드레서였기 때문이다.

그런 거인들의 매치-업을빼놓을 수 없는데, 진정 양 팀의 대장전이라 할 수 있는 명연이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군가와 처음 마주하거나 어떤 책이나 노래하나가 그동안 살아온 각자의 공간과 시간만큼을 연결시켜주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그저 감성적으로 묶여있는 것만으로도 낯선 이와오랜 친구의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는 거다. 강태환과 마크 드레서의 협연은 서로에게 그런 친구의 대화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이날 공연이 다양한 느낌들을 일궈내긴 했지만 사토코 후지이 트리오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곡뿐이었다. 그마저도 어떤 변형을 취하고 있었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8. 11. 4. 13:13

밴드 까페 따꾸바(Cafe Tacuba) 는 저의 멕시코 여행중 가장 큰 소득입니다. 얼마나 여행이 별볼일 없었길래 밴드 하나가 가장 큰 소득이라 하냐고 한다면, 글쎄 일단 멕시코가 기대만큼 감동적인 건 아니었다고도 말할 수도 있겠고, 또 여행은 순간이지만 Cafe Tacuba 는 진행형이니까요.

Cafe Tacuba

Cafe Tacuba

여행을 위해 출국하면서 일본에 하루 머물 게 됐는데, 계획한 바대로 그곳의 전자상가에서 휴대용 CDP 하나를 샀죠. 지역간 이동거리가 길다는 걸 알면서 지루함을 버티기 위한 아이팟조차 가져가지 않았던 건 이번 여행 중에 현지에서 접하게 될 음악에 상당히 큰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행중에 CD 를 사서 듣고 다닐 생각이었는데 정작 쿠바에서도 멕시코에서도 제가 접한 음악들은 기대 이하였죠. 사람들이 얼마나 쿠바 음악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멕시코에서는 온통 불법 CD 천지여서 정품 CD 를 구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기도 했어요.

그러던중 오와하까Oaxaca의 한 라이브바에서 만난 멕시코인 산프란시스코(San Francisco)와 이야기하면서 두가지를 알아냈는데, 하나는 그가 추천하는 멕시코 음악들이었고 또하나는 Mixup 이란 CD 가게에서 정품을 살 수 있다는 정보였습니다. 적을 곳이 따로 없어 넵킨을 내밀었고, 찢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그가 적어준 목록의 가장 위에 까페 따꾸바가 있었죠. 그리고 Mixup 은 여행의 종착지었던 멕시코시티에 가서야 찾을 수 있었는데, 그전에 약 2주간 멕시코를 다니면서 기념품가게의 기념품적인 CD들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만난 정품CD들이었고, 결국 숨통이 트이는 듯한 기분으로 양껏 CD들을 사야했죠. 그중엔 쿠바에서 만났던 루이스가 멕시코에 가거든 꼭 들어보라했던 Mana 의 Revolucion de amor 도 있었고, 까페 따꾸바도 Re 와 Valle Callampa 두 장을 샀습니다. 다 처음 듣는 음악들이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고르기 위한 판단 기준은 오로지 '찍기' 뿐이었어요. 자켓을 뚫어지게 보면서 만지막만지막 집었다 놨다를 반복했지만 계시 땨위는 내려오지 않더군요.

re

Re

Valle Callampa

Valle Callampa

처음 들었을 때의 Re 란 음반은 좀 이상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까페 따꾸바가 일본 음악을 흉내내는 밴드가 아닐까 싶었죠. 음악이 무척 가볍고 너무 다양했습니다. 분명 가사는 스페인어로 노래하는데, 그렇다면 일본 시부야 밴드들의 곡들을 카피해다가 발표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건 오리지넬러티에 대한 의심이라기보다 한 밴드가 하나의 음반 안에서 이렇게 다양한 음악을 할 수가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었죠. 한국식으로 치면 음반 한장에 뽕짝, 락, 발라드, 댄스가 다 들어있는 샘인데, 다시 말해 자우림이 서태지도 하고 옛날 송골매도 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송대관이나 남진의 음악도 하는가하면 HOT 에 핑클까지 해버리는 거죠.

사실 그들의 음악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지금 듣는 느낌으로는 그렇게까지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처음 들었을 땐 어리둥절한 것이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런 음악적 다양함뿐만 아니라 사용된 악기들도 음색도 곡들마다 다르고 보컬톤까지 여러가지 개성을 갖고 있죠. 보통 밴드 음악이면 기타리스트의 톤은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고 또 보컬 역시 마찬가진데 re 라는 음반에선 그런 게 분명한 한가지 색깔이란 건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오는 긴 여정에서 몇 차례 반복해서 들었더니 그 중 한 곡도 버릴 게 없을만큼 빠져들게 되더군요. 정말 놀랍다는 말 말고는 할 말이 없는데, 결국 취향 문제겠지만 귀에 아주 쏙쏙박혀서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지루하지가 않았어요. 그런 기쁨에 가까운 만족감 뒤엔 그들의 음반을 단 두 장 사들고 들어온 데 대한 후회가 이어졌죠. 지금은 까페 따꾸바의 전작을 다 가지게 됐습니다. 라이브와 베스트 모음집까지도요. 정말 너무 마음에 드는 밴드여서 다른 음반들이 궁금했고 결국 해외 주문으로 다 질러버린 거죠.

el cafe de tacuba

el cafe de tacuba

제가 멕시코시티에서 Mixup 을 찾기는 했지만, 한가지 놓친 것도 있습니다. 제가 머물면서 주로 돌아다녔던 이스토리꼬Historico 지역에 따꾸바Tacuba 거리가 있다는 걸 얼마전에 알게 됐는데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el Cafe de Tacuba 라는 레스토랑이 거기에 존재하더군요. 당연히 저는 까페 따꾸바의 밴드이름이 거기서 비롯된 것 조차 몰랐었습니다. 제게 자신의 넘버원 밴드라며 까페 따꾸바를 소개해준 센프란시스코는 그 사실을 알았을까요? 알고보니 꽤 유명한 레스토랑이었고 여행중에 들고다녔던 론리플래닛에도 나와있었는데 전 그걸 뒤늦게 발견한 거죠. 식사를 어디서 할까 고민하다가 도미노 피자도 사먹고 했었는데 미리 알았더라면 재미꺼리 하나를 더 담아올 수 있을뻔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연히 발견하게 된 건, Kronos Quartet 의 Nuevo 음반에 12/12 란 곡이 까페 따꾸바의 곡이더군요. 저는 멕시코에 가기 전부터 까페 따꾸바를 들었던 샘이 되네요.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8. 10. 26. 05:25
지난 8월25일 새벽, 서초동의 모짜르트홀에서 녹음된 미연 & 박재천 선생님의 음반이 나왔습니다. 아직 유통되지는 않았지만 조금 먼저 음반을 손에 받아들고서 놀랐던 건 두가지였네요. 첫째는 엘범 속지에 제 이름이 들어가있다는 겁니다. 녹음현장에서 제가 찍은 사진 두 장이 엘범 속지에 들어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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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번째는, 대략 한달쯤 전 데모 CD 를 받았을 때는 현장에서 듣던 것만 못하다는 느낌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만 (아마 현장에서의 말 그대로 현장감이란 것이 데모CD에는 없었던 탓이겠죠.) 마스터링되어 나온 음반은 그걸 뛰어넘어 현장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걸 들려주고 있다는 거죠. 특히 세번째 곡 '잊혀진 나에게 묻는다' 의 경우 두대의 피아노를 한 연주자가 동시에 연주하는데, 마스터링을 통해서 두대의 피아노를 왼쪽과 오른쪽 채널로 나누어 놓아서 두대가 섞여서 들렸던 녹음현장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묘한 재미를 주더군요. 왼쪽의 스타인웨이와 오른쪽의 파지올리 피아노가 마치 기타의 딜레이 이펙터를 쓴 것처럼 시간차를 두고 스테레오로 나뉘어져 들립니다. 그런데 그때문에 듣는 재미가 더해지기도 하면서도 약간 아쉬운 부분을 남기기도 하더군요. 일단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피아노의 주된 테마들이 연주되고, 타악기 역시 스타인웨이와 같은 왼쪽 채널에 무개감이 더했는 느낌이어서 상대적으로 오른쪽 채널이 조금 심심해지는 불균형이 생긴 것도 같습니다. 

방금 전에 iTunes 를 통해서 CDDB 에 이 엘범의 정보를 등록했습니다. 음악적 특성상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접할 엘범은 아닐겁니다. 그러면서도 국내에서 찾아 듣는 수만큼은 해외에서 찾아들을 수는 있을 것 같네요. 앞으로 국내외를 통털어 누군가 이 음반을 찾아듣는 사람들은 조금 더 근접한 공감대로 저와 연결되는 샘이죠.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8. 10. 15.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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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사진은 2002년에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미니콘서트를 했던 모습입니다. 처음으로 개인 공연을 했던 건 2001년에 첫 직장 그만둘 무렵이었고, 이건 새 직장에서 벌였던 두번째 콘서트였죠. 두 번 다 입장료 5천원씩 받았더랬습니다. 당시엔 저렇게 머리칼이 길었고, 또 라미레즈Ramirez 기타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때 저는 지금보다 훨씬 잘 쳤습니다. 그때 그만큼 잘 연주했다는 뜻이 아니라, 한동안 악기를 거의 놓다시피 했기 때문에 지금은 형편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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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왼쪽 사진은 아마 2004년쯤 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 활동하던 연주 동호회에서 꽤 그럴싸한 공연장 하날 빌려서 했던 연주회죠. 기타는 지금까지도 애지중지 하는 그로피우스Gropious 로 바꼈습니다. 저 무대에선 Baden Jazz Suite 를 연주했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펜레터를 받기도 했어요. 펜레터 보내준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땐 어여쁜 아가씬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어여쁜 아줌마여서 무척 실망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쨌거나 저 무렵엔 꽤 많은 관객들 앞에서 연주하곤 해서 무척 열씸히 연습하고 열씸히 연주하러 다니고 했던 것 같네요. 지금 이렇게 다 까먹고 언제 그랬었나 싶게 지내고 있는 스스로가 어색하리만큼.

아래 사진은 제가 악기를 놓고 살게된 무렵의 것입니다. 꿈에 그리던(?) 연습실을 꾸미게 됐는데 갖은 게 많아질 수록 그걸 지키느라 삶의 여유가 없어진다는 걸 알게 된 때였죠. 결국 몇 번 들어가지도 않은 연습실 따위 포기하고 다시 본디 분수에 맞는 생활로 돌아왔지만, 한 번 사라진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 건 그리 쉽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이러고 있다고 핑계대고 있는 겁니다.

요즘들어 뭔가 집중할 것이 필요해서 전보다 자주 악기를 드는 편입니다. 그냥 가만히 있다가도 왕왕 머리 속에 기타 연주곡의 악상이 떠오를 때가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집중해서 열씸히 몇 곡 연습한 걸로 작은 미니 콘서트를 해볼까 해요, 아주 오랜만에. 장소도 문제고 누굴 초대해야할지도 고민되고, 과연 5천원을 내고 제 연주를 들어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12월에 친구들 너댓명 모아놓고 조그만 까페에서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면 다시 즐거워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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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8. 5. 17. 00:00

혼자 영화관에 갔습니다.

가운데 열 가장 왼쪽 자리였죠.

"내가 먼저 들어갈까?"

옆 통로에서 그렇게 말하더니 커플인듯한 남녀 중 남자가 먼저 제 무릎을 스치고 들어와 앉았고, 그 뒤를 따라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가 제 무릎을 안 스치고 들어와 그남자와 제 사이에 앉았습니다.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아니 극장 불이 꺼짐과 동시에 여자가 남자쪽에 찰싹 감기더니 남자로하여금 자길 만지게 하더군요.

영화보던 중 왜 제가 도둑놈으로 오해 받을 것 같은 민망함을 느껴야 하는 거죠?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8. 3. 19. 01:40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읽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낯설게 하기 - 황수정}
배우 황수정이 출연하는 걸 모르고 봤다면 어땠을까. 아니, 영화 홍보매체를 통해서 그녀의 출연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들 영화 등장인물의 역할까지 파악하고 보지 않는 이상 --- 어쩌면 그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서 영화를 봐야 한다는 건 불쌍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 홍상수감독이 파놓은 함정(?)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되어있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이제는 낯설어진 황수정이란 배우에게 홍상수 감독이 장치해놓은 '낯설게 하기'에 속아 관객들은 제대로 계산된 재미를 느끼게 된다.

프랑스로 도피중인 김성남(김영호 분)이 밤에만 전화를 통해 그리워하는 아내, 낮에 그리워할 사람이 생기기 전까지 외로움과 정욕을 참기 어려워하는 남편을 위해 자위를 해주는 아내의 목소리, 바로 그 주인공이 황수정이란 것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에 난 무릎을 쳤다. 황수정이 출연하는 걸 어딘가에서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영화에 몰입하면서 그녀의 등장을 기대하고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설사 기대하고 있었더라도 주인공 김성남이 길모퉁이를 돌다가 마주치게 될 등장인물일 것을 기대하지 전화 목소리의 주인공일 꺼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론 배역의 특성상 처음엔 전화로 등장했다가 나중에 실체를 드러낼 수 밖에 없지만, 그런 배역에 우리들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어진 배우를 썼다는 건 그런 배역의 특성에 대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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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하기 - 꿈} 또 하나 감독이 성공한 '낯설게 하기' 중에 감탄을 자아냈던 것은 다름 아닌 '꿈'이었는데, 내가 본 영화의 그 어떤 꿈에 대한 표현보다 훌륭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레이션이 들어간 1인칭 시점이기 때문에 모든 씬에는 주인공 김성남이 들어가있다. 영화를 보면서 어느순간부터 그걸 의식하게 됐는데, 갑짜기 어떤 시점에서부터는 그의 시점이 빠진 씬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그 씬부터는 배경과 등장인물의 역할이 갑짜기 바뀌어 또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의아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안 것은 김성남이 꿈에서 깨는 순간이었다.

홍상수 감독은 정말 꿈 같은 꿈을 그렸다. 우리네 꿈이 언제나 황당무게하듯 관객들로 하여금 황당함을 점점 고조시키게 하다가 극에 달한 순간에 돼지를 끼워넣어 꿈에서 깨도록 한다. 아마 그순간에 관객들이 "저게 뭐야" 했던 것처럼 꿈을 꾼 김성남 역시 "저 돼지는 뭐야" 하면서 꿈에서 깼을 것이다.

게다가 그 꿈의 내용이란 게 무작정 황당함만을 지향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영화를 한 번만 봐서 약간은 불확실하지만, 홍상수 감독은 낮의 연인 유정(박은혜 분)이 배낀 그림의 원작자로써 김성남과 잠깐의 만남을 갖게 했던 여배우를 김성남의 아내로 재배치하여 출연시킨 것 같다. 만약 내가 본 배역이 맞다면 홍상수 감독이 김성남이 꾸도록 한 꿈은, 그가 왜 그런 내용의 꿈을 꿨는가를 생각해봤을 때,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전이'와 '치환'등으로 어떤 얼개를 풀어낼 수 있다. 다만 그 내용은 개인적인 해석일 뿐 정신분석학 따위는 그 얼개를 통해 재미를 느끼는 정도의 의미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실제로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그 어떤 상징성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혹은 어떤 의미부여를 하고 싶어 애쓰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런 작용들이 그다지 영화를 재밌게 만드는에 필요한 것 같진 않기 때문에 더더욱 나의 해석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8. 2. 24. 19:09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서 나서는데 함께 극장에 갔던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나온 노래들이 정말 다 비틀즈 노래에요? 저는 한 1/3 정도 빼곤 모르는 노래던데.
저도 반 정도밖에 모르겠더라고요.

마지막 주인공 주드와 루씨가 재회하는 장면에서 연출된 "All you need is love" 에선 슬쩍 눈물까지 흘렸던 저로써는 그때서야 이 영화가 비틀즈 애호가들만을 위한 영화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죠.

광고만 보고 영화를 보러온 사람들은 단지 비틀즈의 음악이 영화의 사운드트렉으로 사용되어졌다고 알고서 영화를 봤을꺼에요. 그래서 어쩌면 훌륭한 사운드트렉을 가지고 있는 영화를 기대했을 꺼고, 얼마전 그같은 기대를 200% 충족시켜줬던 영화 "ONCE" 에서와 같은 감동을 기대한 사람들에겐 실망을 안겨줬을 법도 하죠. 그런 기대를 하지 않고 본 저로써도 영화 자체에는 그다지 감흥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른 의미가 있었죠. 미리 말하자면 이건 마치 비틀즈 애호가들의 파티와 같은 영화였습니다.

{비틀즈 키드들의 파티} 이 영화는 음악 말고도 거의 모든 요소들이 비틀즈로부터 나왔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나 배경 뿐만 아니라 주연과 조연들의 이름, 그리고 연출된 상황과 대사까지도 비틀즈에서 소재를 차용했습니다. 주연인 주드(Jude)와 루씨(Lucy)는 "Hey Jude",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에서 따왔다는 건 누구나 다 알겠지만, 그밖에 멕스(Max), 프로던스(Prudence), 세이디(Sadie), 닥터 로버트(Doctor Robert), 조조(JoJo) 모두 다 음악 또는 가사에서 띠온 이름들이죠.

단역으로 나온 조 카커(Joe Cocker)나 보노(Bono) 역시 그냥 출연한 게 아닙니다. 보노의 U2 는 "Helter Skelter" 등, 다수의 비틀즈 노래들을 공연장에 또는 음반에서 선보였었고, 조 카커역시 그랬죠.

케빈
제 또래라면 아마 어릴 적에 TV 에서 "케빈은 12살" 이란 드라마를 봤을 겁니다. 그리고 조 카커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그 다라마의 테마곡이었던 비틀즈 원곡의 "little help from my friend" 로 우리에게 꽤 익숙해져있기도 합니다. 하긴 비틀즈 노래를 리바이벌 한 가수가 어디 한 두명이겠습니까만 조역이나 단역까지도 비틀즈 펜이라면 그 출연 의도를 알 수 있을만큼 영화는 비틀즈 애호가들을 향해서 영사기를 돌리고 있는 거죠.

영화의 마지막 씬인 세이디의 옥상 공연도 사실 비틀즈가 69년에 해체 직전에 단행하다가 경찰에 의해 해산되었던 사건을 개기로 만들어진 겁니다. 그렇듯 단지 음악 뿐만이 아니란 걸 알고 보면 영화는 정말 철저하게 비틀즈로 스토리를 기워냈습니다. 맞춰냈다거나 역었다는 말대신 '기웠다'라는 표현이 여기에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데, 때로는 노래 가사가 영화에서 대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상황이나 배경이 되기도 하고 또 노래 가사에 나름의 해석을 붙여 이야기를 지어내고 그것들을 정말 기가막히게 바느질해놓았죠.

영화를 보던 중에 저는 안정효 작가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라는 소설이 떠올랐는데, 그 소설 속의 주인공 병석은 너무나 영화를 사랑한나머지 어렸을 때부터 봤던 영화들을 짜맞춰서 영화 한 편을 완성했고 그 영화가 결국 명작의 평가를 받아 수상까지 하게 되죠. 그런데 병석은 끝까지 자신이 영화를 창작했다고 믿고있다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결말에서는 자기 자신이 남들을 속였듯 자신도 자신 안에 키워왔던 '헐리우드 키드'에게 속았다는 말을 합니다. 그것에 비유하자면 이 영화야말로 비틀즈 키드가 만들어낸, 비틀즈 키드를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비틀즈를 모르면 영화도 없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일반 관객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실망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노래들 뿐만 아니라 영화에 안 나오는 노래들의 가사까지 알고 있어야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전쟁터에 보내질 운명의 맥스가 반전과 자유를 갈망하며 연출된 "I want you" 에서 "she so heavy" 라는 가사가 절규하듯 반복되는 후렴부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등에 걸쳐맨 장면으로 바뀔 때 저는 폭소를 터뜨릴 뻔했습니다. 너무나 상황과 노래의 가사를 재치 넘치게 연출한 연출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죠. 그리고 영화 전반부에 주드가 일하는 리버풀의 선박회사에서 (아마도 일당을 지급하는) 창구 담당자인 노인과의 대화 중에 노인이 "When I'm 64" 라는 대사를 읊으며 자신의 은퇴에 대해 언급합니다. 멜로디 없는 그냥 대사에 불과하지만 사실 그 짧은 대사 또한 "When I'm 64" 라는 노래의 제목으로써, 은퇴 뒤의 행복한 삶을 구상하는 내용의 노래죠. 약간은 억지스럽게 끼워넣은 씬 같기도 하지만 의도를 알아차린 관객이라면 반가워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She's so heavy

She's so heavy. 자유는 정말 무겁죠.


{멋찌게 연출된 장면들} 영화 내용 자체에 약간 어리벙벙해진 관객이라도 즐길 수 있는 부분이 조금은 있습니다. 주관적인 생각으론 비틀즈의 노래들을 그다지 훌륭하게 리메이크 한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노래들의 배경으로 멋찌게 연출된 장면들이 뮤직비디오처럼 지나가는 데는 흥미를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두시간이 넘도록 그런 것만 보고 있어야 한다면 짜증스럽기도 하겠지만 말입니다.) 대표적으로 제가 감동했던 장면들은 빨간 딸기에 못을 밖아 피를 흘리는 듯 이미지 메이킹을 하면서 전쟁터의 피바다를 연출해낸 "Stroberry fields forever" 와, 세이디의 공연 실황으로 연출된 "Helter Skelter" 였습니다. 특히 "Helter Skelter" 의 경우, 대부분의 사운드르렉에 큰 점수를 주고 싶지 않은 저로써도 상당히 후한 점수를 메기고 싶을만큼 좋아했죠. 동시에 노래를 한 다나 퍼치스(Dana Fuchs)에게 상당히 관심이 갔습니다. 외모에서 약간 카산드라 윌슨(Cassandra Wilson)의 분위기가 나더군요. 그런데 "Helter Skelter" 가 연출된 장면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연출이었습니다. 아마 같은 곡의 실황인 U2 의 "Rattle and Hum" 실황에서 같은 곡에 비슷한 연출을 썼던 것 같네요. 그래서 보노의 영화 출연과 어떤 관련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 (아이디어 제공이라던지...)

Helter Skelter

Helter Skelter 를 부르는 Sexy Sadie.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사실 저역시 영화 자체에 만족스럽진 않았습니다. 스토리를 상당히 중요시 하는 저로써는 이영화를 재밌게 봤다고 말해도 될런지 지금도 헷갈려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찌릿찌릿한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때로 왜 닭살이 돋고 있는지 모르겠을만큼 정말 아무데서나 소름이 돋더군요. 비틀즈 키드의 한사람인 저로써는 어쩔 수가 없는가봅니다. 10대의 제 감성은 비틀즈의 음악들 주변을 맴돌면서 자라났으니까요. 마치 우리들이 '엄마' 나 '아빠' 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 뭉클해지듯 저로써는 비틀즈의 노래가 틀어져나오는 것 만으로도 가슴 찡한 무언가를 느끼게 되나봅니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8. 2. 21. 16:57

제가 주로 찾는 만화의 장르 중에 하나가 스포츠물입니다. '크게 휘두르며'는 언젠가 만화방에서 1권만 봤던 기억이 나는데,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여 더 보기를 그만 뒀었죠. 그리고 최근에 다시 25편짜리 에니메이션으로 무척 재밌게 봤습니다.

제가 스포츠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자기가 무얼 좋아하는지 아는 성장기 캐릭터들이 나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능력이 너무 현실적이지 못하게 과장되고, 때로는 열혈 스포츠 소년들의 열정만으로 모든 꿈이 현실화되버리는 것이 스포츠 만화를 만화답게 만들기도 하면서 동시에 질리게 하기도 하죠. 그와 비교해보면 '크게 휘두르며'는 그런 보통의 스포츠만화들과는 다릅니다. 게다가 그 나름의 신선한 재미와 연출이 매력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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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