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 over Beethoven2008. 2. 18. 16:03
{이 영화는 책 판매 수단?}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엔딩에는 줄리앙 슈나벨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던 반전이 하나 들어있다. 그것은 바로 이 영화는 책을 팔고자 만든 광고편이었다는 것. 다시 말하지만 물론 슈나벨 감독이 만들었을 때 영화는 참 순수했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엔딩 크래딧 위에 책광고 자막들이 삽입되기 전까지 말이다.

이런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특성상 그리고 이런 영화를 거는 영화관의 특성상 관객들은 영화의 엔딩 곡이 끝나기 전에 자릴 뜨지 않고, 또 영화관도 끝날 때까지 극장 불을 켜지 않는다. 엔딩 크래딧의 자막은 대개 음악은 누가 했고 출연은 누가 했고 필름은 어디껄 썼다는 등 별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내용들이지만, 그 시간에 관객들은 영화가 남겨주는 여운을 엔딩음악과 함께 즐기려고 한다. 마치 어두운 극장에서 밖으로 나와 눈이 부실까봐 잠시 눈을 감았다가 게슴츠레 하게 뜨고 있는 시간이랄까. 그렇게 몰입하고 있다가 깨어나기 전의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일 때가 많다.

대관절 누구의 짓인지는 모르겠다. 씨도 먹히지 않을 상투적인 말들로 실존인물 장도미니크 보비의 영화에 나오지 않는 죽음과 그가 쓴 책의 의미와 판매고에 대한 자막들을 관객들로 하여금 읽게 만들 생각을 하다니. 앞서 말했듯 분명 극장의 불이 켜질 때까지 앉아있을 관객들의 특성을 알고서 한 짓 같다. 많은 기대를 하고서 본 영화를 자기 맘대로 정리해버린 그자 덕분에 영화의 재미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으며 어쩌면 출판사와 관계된 마케팅 수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잠수종과 잠수복} 혹시 정말일까 싶어 책을 찾아봤다. 그런데 그렇진 않은 것 같더라. 하긴, 이런 영화로 얼마나 큰 상업적 효과를 보겠다고 그런 짓을 생각했을까, 더 노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도 있을 것을. 책을 찾을 땐 '잠수종과 나비' 가 아닌 '잠수복과 나비'를 찾아야 한다. 원제인 "Le scaphandre et le papillon" 에서 'scaphandre'가 '잠수복'이긴 하지만 책과 영화의 영문 제목이 "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 이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잠수종'을 쓴 듯. 게다가 영화 속에서 나오는 물건 또한 '잠수종' 의 원리로 만들어진 '잠수복' 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고, 영화에서 상징적 이지미로 반복해서 나오는 장면에 '잠수종'이 더 어울리는 느낌이 든다. 그 딱딱하고 답답한 금속의 이미지를 어감을 갖고 있어서 말이다.

{줄리앙 슈나벨 전시회} 공식적인 정보는 아니지만 줄리앙 슈나벨 감독의 전시회가 3월부터 갤러리현대에서 열릴 예정이다. 영화감독이기 전에 미술가였던 그의 또다른 면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10년 전 그가 연출한 '바스키아' 도 그랬지만 이번 영화는 음악도 참 좋았다. 그리고 해변에서 장도미니크 보비의 딸들이 노래를 하면서 역광의 태양을 가렸다가 드러내길 반복하는 장면이나, 일상적이지 않게 요염한 러브씬들, 기념품 가게에서 예수 홀로그램을 이용한 눈깜빡임(오, 얼마나 훌륭한 아이디어란 말인가!) 같은 흥미로운 장면들이 그의 다체로운 작품세계를 더 궁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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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over Beethoven2008. 1. 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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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 블레이(Carla Bley)의 새로운 밴드 The Lost Chords 는 파올로 프레수(Paolo Fresu)를 만나서 두번째 음반을 냈습니다. 그다지 칼라 블레이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일부러 찾아듣지 못하고 있다가 어떤분의 추천으로 듣게 되었죠. 그리고 그 매력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그후 이 엘범에 대한 호감은 곧바로 파올로 프레수 라는 이탈리아 트럼페터에게로 옮겨가게 되더군요.

앨범 자켓의 재밌는 사진들 속의 위트가 음악 속에서도 좔좔 흐르는 느낌입니다. 엘범이 시작되는 여섯곡의 모음곡 The Banana Quintet 부터가 그렇습니다. 여섯곡들은 각각 One Banana, Two Banana, Three Banana, Four, Five Banana, One More Banana 등의 부제가 붙어있는데, 네번째 바나나가 Four Banana 가 아닌 Four 인 것과, 마지막 여섯번째 바나나에도 "One More" 를 붙인 재치도 눈에 띕니다. 제가 특별히 더 좋아하는 곡이 바로 Four 인데, 듣던중 깜짝 놀랐던 것이 이곡의 시작과 중간에 나오는 피아노 프레이즈가 비틀즈의 "I want you/She's so heavy" 를 기반으로 하여 너무 멋있게 연주되었기 때문이죠.

엔리코 라바(Enrico Rava) 가 벌써부터 극찬했었다던, 이탈리아 재즈씬에서 엔리코 라바 이후로 가장 뛰어난 트럼페터라고 흔히들 일컫는 파올로 프레수. 어쩜 생긴 모습도 이리 멋있는 건지 질투가 날정도에요. 이 멋찐 남자를 어쩌죠? 깨물어줄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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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따로 이끄는 퀸텟의 엘범들을 죄다 살까 했다가 "The Lost Chords Find Paolo Fresu" 엘범을 추천해준 분께서 상대적으로 파올로 프레수의 리더작은 좀 떨어지는 편이라하여 망설여지더군요. 그러다가 사서 듣게 된 07년작 "Thinking" 역시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이엘범은 작곡가 에또레 피오라반티(Ettore Fioravanti)의 곡들을 연주한 작품이라 아직도 다른 프레수의 음반들을 사는데는 약간 망설임이 생기는 게 사실이네요.

아래 동영상은 유투브에서 찾은 엔리코 라바와 파올로 프레수, 두 트럼페터의 'round about midnight 실황입니다. 피아노 위에는 역시 이딸리아노 스테파노 볼라니(Stefano Bollani)가 앉아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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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over Beethoven2008. 1. 3. 11:38

꽤 오랫동안 찾고 싶었던 음반을 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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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에서 발매된 Anna Maria Jopek 의 "UPOJENIE" 음반인데, 몇년 전에 이 음반에 수록된 "Przyplyw, Odplyw, Oddech" 란 곡을 mp3 로 듣게 됐었죠. 기억은 잘 안나지만 아마 Pat Metheny 가 연주에 참여한 곡들을 추적하다가 찾아진 곡일테죠. 그런데 워낙 제목이 난해하게 생겨서 저게 제목인지 아니면 그냥 아무렇게나 써놓은 건지 알 수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음악은 너무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후로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듣곤 했었는데 드디어 이 음반을 손에 넣게 됐네요.

모음이 참으로 불성실하여 도무지 뭐라고 읽어야할지 모르겠는 "Przyplyw, Odplyw, Oddech" 란 곡 하나만 들어봤을 때 기대했던 것과 엘범 전체를 듣게 된 건 완전히 다른 경험이군요. 사실은 다 듣고나서 좀 실망했습니다. 이음반은 Pat Metheny 의 음반이고 Anna Maria Jopek 은 거기에 객원보컬 정도의 역할밖에 못하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곡들을 Pat Metheny 가 작곡,편곡했거나 Are you going with me 나 Letter from home 같이 그의 잘 알려진 곡들이 절반이어서 Pat Metheny 의 Best compilation 음반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런데 제가 실망을 한 건 뮤지션의 주체성 같은 문제가 아니라, 항상 들을 것들이 많았던 Pat Metheny 음악이 약간 조악하다 싶을만큼 가볍게 들리기 때문이죠. 결국 Anna Maria Jopek 이란 가수에 대해 궁금했던 것에 대한 대답도 못 됐고, 그렇다고 Pat Metheny 가 대신 만족감을 주지도 못하는 음반이군요.

음반 전면에 "Anna Maria Jopek & Friends with Pat Metheny" 라고 써있는데 "Pat Metheny" 란 이름이 그 앞의 "Friends" 와 따로 적혀있는 것이 참 속보이는 일이다 느껴집니다. 혹시 Pat Metheny 가 Jopek 에게 "난 너 친구 아니야" 라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걸까요? 워낙 특별한 게스트이기 때문에 "알아주십사" 하는 마음에 그렇게 됐겠죠. 거기서도 보이듯 이음반엔 Jopek 보다 Metheny 가 훨씬 더 많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냥 제 느낌일지 모르지만) 음악이 조악하게 만들어졌기에 더욱도 그동안 음반을 구하기 어려웠던 게 아닐까 하는 억측스런 생각도 드네요. 쉽게 말해 Pat Metheny 가 폴란드 밖에서 음반이 발매되는 걸 창피해했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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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over Beethoven2007. 10. 29. 15:00

티켓 오픈되었던 1월에 좋은 자릴 구해놓고서 막상 공연당일이 되자 공연 시간이 6시인지 7시인지 헷갈리기까지 할만큼 그동안 신경을 못쓰고 있었네요. 아마도 기다린 시간이 길다보니 기다림이 좀 소홀해지게 된 것도 같은데 그래서인지 싸인 받을 CD들을 챙기면서 Dave Holland Quintet 에 Chiris Potter 가 있다는 생각을 공연 당일에 발견하게 됐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에 대해 정말 "발견" 이라고 할만큼 놀라야 하다니... 그래서 Chiris Potter 의 CD들도 여러개 챙겼죠. Dave Holland 음반보다 두배는 더 많은 Mr. Potter 의 음반들 중에 골라내려니 쉽잖더군요. (그런데 싸인회 같은 건 없었습니다.) 공연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인터미션 없이 진행된 약 100분 가량의 공연시간은 올해들어 가장 빠르게 느껴진 시간이었네요. 첫곡부터 엄청난 포스를 뿜어내더니 마지막까지 숨 쉴 틈 주지 않더군요.


라인업

  • 데이브 홀랜드 (Dave Holland,bass)
  • 로빈 유뱅크스 (Robin Eubanks, trombone)
  • 크리스 포터 (Chris Potter, soprano, alto & tenor saxophones )
  • 스티브 넬슨 (Steve Nelson, vibraphone)
  • 네이트 스미스 (Nate Smith, drums)

작년에 발표한 Critical Mass 음반부터 드러머가 네이트 스미스로 바꼈습니다.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리듬을 뿜어내듯 파워풀하게 연주하더군요. 꼭 Led Zeppelin 의 John Bonham 이 연상되기도 했죠. Chris Potter 는 정말 가까이서 보니 포스가 장난 아니었습다. 작곡도 그리 잘하면서 연주까지 그리 잘해버리면... 그동안에도 꾸준히 자신의 리더작을 내오고 있으면서 Dave Holland Quintet 에서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어서 기쁨 두배 되는 그런 음악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의 재발견이 있다면 트럼본 연주자인 Robin Eubanks 였습니다. Dave Holland Quintet 에서도 오래 연주했었지만 실제 무대에서 모습을 보니 귀로만 듣던 것과는 다르더군요. 물론 근육질의 몸매에 비춰보이는 강한 인상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번 공연에서 그가 작곡한 곡이(처음 듣는 곡이었습니다.) 공연중 가장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죠. Chiris Potter 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화려한 솔로를 해줬기 때문에 더 좋았지만 곡 구성 자체가 탄탄해보였고, 또 Eubanks 의 백업 연주가 단순하면서도 참 매력적이더군요. 이번 공연을 계기로 Robin Eubanks 의 음반을 찾아서 들어볼 생각입니다.


세련된 무대와 아쉬운 음향

관록의 밴드여서 그런지 무대가 참 세련되어보였습니다. 자신의 연주가 없는 부분에서는 무대 뒤로 사라져서 다른 연주자들에게 관객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배려와, 연주 구성에따라 변화하는 조명들까지 연주에 집중할 수 있도록 관객들을 유도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음향인데, 음향 자체가 나빴다기보다는 자리탓이 컸죠. 앞자리다보니 사운드 벨런스가 좋지 못해서 다른 악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리가 잘 묻히는 비브라폰 연주가 들리다 말다 했습니다. 그래서 비브라폰 연주 중 1/3은 다른 소리에 묻혀서 듣지 못한 것 같네요. 그리고 Robin Eubanks 는 트롬본의 사운드홀에 마이크를 설치해놓다보니 간혼 자리를 이동하면서 연주를 했는데 그래서 듣기 불편했던 부분들이 있었죠.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앞자리의 장점은 연주자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과 엠프를 통하지 않은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 정도인데, 후자의 장점은 사실 단점이 되기 쉽습니다. 트럼펫 같이 소리가 날카롭고 큰 악기는 마이크를 통하지 않고서 직접 듣기에 좋지만 그런 악기와 함께 상대적으로 소리가 작고 음색도 날카롭지 않은 악기가 어울리게 되면 마이크를 통해 두 소리를 적당히 벨런싱 해서 엠프로 출력해야 할 필요가 생기죠. 사실 무대 위에 보면 연주자들 앞에 스피커가 각각 있는데, 그 스피커는 무대에서 자기 소리가 다른 악기에 묻혀 안들리기 때문에 자기 연주를 듣기 위해 설치한 용도고 그래서 '모니터 스피커'라고 부르죠. 그렇게 소리가 묻혀버리는 상황은 무대 위에서 만큼은 아니지만 객석 앞자리도 어느정도 영향을 받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Eubanks 가 돌아다니면서 연주했을 때 사운드홀이 객석을 향하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소리에 많은 차이가 있었고, 또 드럼 마이크나 섹서폰 마이크를 통해 소리가 섞이기까지 해서 거슬렸던 부분이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족으로 한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그런 이유로 객석에서 가장 비싼 좌석은 앞좌석이 아닌 1층 한가운데 중앙 부분이어야 합니다. 사운드 벨런싱이 그지역을 중심으로 맞춰지니까요. 하지만 무대에서 가까운 자리를 사람들이 선호하기 때문에 시장의 원리로써 맨 앞좌석부터 자리값이 정해지는 거고, 혹은 사운드 벨런싱 같은 걸 신경쓰지 않는 공연장들이 있기 때문에 앞좌석부터 가격이 메겨지는 겁니다. 하지만 Dave Holland Quintet 이 연주한 LG 아트센터의 경우 사운드벨런싱도 잘하는 편이고, 그리고 간혹 맨 앞좌석을 싸게 팔기도 하는데 아마 위에서 말한 그런 이유일테고 그래서 제가 선호하는 공연장이기도 하죠.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7. 10. 28. 14:05

오다기리 죠 때문에 보러 갔던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miss casting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두가지 생각이 들었죠. 하나는 만약 오다기리 죠가 주연을 맡지 않았을 때 영화가 어땠을 까, 그리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이 주연을 했다면 과연 영화가 이보다 더 괜찮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오다기리 죠에게 우는 연기는 어울리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오다기리 죠라는 배우는 개성 강한 역할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용이 좀 함축적인 영화에서 개성강한 모습으로 허전한 부분을 매워주는 그런 배우가 아닌가 싶네요. 개성에 대한 장점을 그렇게 말했을 뿐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연기파 배우는 아니라는 거죠. '빅리버'나 '파빌리온 살라만더'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유레루'나 '메종 드 히미코' 같은 영화에 잘 어울리는 느낌이고 그도 아니면 차라리 '인더풀' 같은 순수 코미디 영화에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도쿄타워를 보면 씬마다 너무나 멋있게 등장하는 그의 패션, (특히 스타일리쉬한 스카프들이 눈에 띄더군요) 그리고 실제 그의 취미 도구들 중 하나로 알려진 핫셀블라드 카메라로 극중 어머니의 머리깎는 장면을 촬영하는 씬등은, 영화 내내 그가 보여주는 왠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힘 들어간 자세들까지도 영화를 즐겁게 만들어준다고 느낄만큼 그의 개성을 십분 살려주는 요소들입니다.


오다기리 죠가 아니었더라도 영화는 관객을 울릴 수 없다.

이미 책으로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비교적 알려진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차피 뻔한 내용이고 플롯을 이루는데 꼭 필요한 장면과 대사들은 다 들어있는 것 같아보이더군요. 현재와 과거를 적당히 오고가는 편집 구성도 좋았습니다. 그덕인지 2시간을 훌쩍 넘기는 상당히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뻔한 내용이 그다지 지루하거나 따분하게 느껴지지 않았죠.

그럼에도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건 앞서 말한 것처럼 오다기지 죠가 연기 탓이 첫번째일 겁니다. 그건 어머니 역할을 한 키키 기린이란 배우의 연기와 대조하면서 봐도 쉽잖게 보입니다. 게다가 이영화에는 연기가 서툴어보이기까지 하는 배우들도 나오지요. 하지만 그것 뿐일까요? 다른 연기 잘하는 배우가 오다기리 죠의 배역을 대신 했더라면 관객을 울렸을까요? 도쿄타워란 영화는 관객을 울게 만들기 위한 영화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시나리오상으로도 좀 어설프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와 안타까운 이별을 한 직후 어떤 뚜렷한 동기 없이 단지 자취생활을 한다는 것만드로 생활이 타락해버렸다는 것이 어설퍼보이죠. 아버지 주변의 환락가 여자들이 잠깐 등장하긴 하지만 그보다 나쁜 친구를 만난다던가, 삐뚤어질만한 사건이 생긴다던가 하는 게 필요할겁니다. 원작에서 그런 게 없었다 하더라도 영화는 영화니까요. 그러다가 반대로 정신을 차리고 생활을 열씸히 꾸려가게 되는 동기 역시 어머니의 암 수술 때문인 것으로 나오지만 설득력이 없는 밋밋한 부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오다기리 죠가 울릴만한 연기를 할 수 있는 씬도 별로 없었죠. 울리기에 아주 적당하고 관객들도 울 준비를 하고 있었을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어머니가 자신이 죽은 후에 열어보라던 상자를 여는 씬이죠. 하지만 그 상자 안에서도 그리 큰 감동을 주는 무언가가 나오질 않더군요. 차라리 유년시절 집을 떠날 때 어머니가 1만엔짜리 지폐와 함께 동봉한 편지를 읽으면서 "어머니의 편지에는 자신의 이야기 없이 나를 응원하는 말만 적혀있었다." 라고 독백하며 소년 배역의 주인공이 우는 모습이 더 감동적이었다고 할 정도죠.

어쩌면 그것들이 모두 다 의도된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저 잔잔하게 보여주면서, 안그래도 뻔한 내용의 영화를 심파조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거죠. 하지만 진정 그렇다면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 하면서 스타일리쉬한 오다기리죠를 내새운 것 외에 이영화는 남는 게 도대체 뭘까요?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7. 10. 8. 10:52
음악같은 영화

이영화는 음악으로 먼저 접했습니다. 사실 음악 두어곡 들었을 땐 그냥 그랬었죠. 솔직히 노래만 따지고 본다면 많은 점수를 주고 싶진 않습니다. 조용하게 시작됐다가 내질러버리는 식의 식상한 곡 구성에 목소리나 창법도 참신하지 못해서 말입니다. 그리고서 영화를 봤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노래를 듣고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혹은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다는 느낌... 마치 뮤지컬 영화를 보는듯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계속해서 노래가 끊어지지 않는 느낌이더군요.

내용은 Lost in translation

사실 영화에 내용은 별로 없습니다. 노래하던 남자가 우연히 만난 여자와 함께 음악에 대한 꿈을 실현해내는 과정이랄 수 있겠는데, 그 속에 역경도 없고 갈등도 없고 단지 맺어지지 못하는 인연에 대한 안타까움 하나 있을 뿐이죠. 내용적인면에서는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했던 Lost in translation (국내 제목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_-;) 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남녀가 각자의 삶이 있고 잠깐 동안의 일탈과 같은 만남이 벌어지지만 질펀하지 않고 담백한 마무리를 보이죠.

내용이 별로 없다곤 하지만 흥미로웠던 점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는 (실제 영화 속에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은 단 한 번도 이름이 불려지지 않습니다. 이것도 흥미로운 점이라면 그렇다 하겠네요.) 영화 중반까지 '그녀'의 착각에 의해 과거속 여자로부터 상처받았다고 관객들을 속이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가 런던에 가기 전 어떤 여자와의 전화 한 통이 그걸 알게 해주죠. '그'와 '그녀'에게 영화가 너무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부분을 너무 쉽게 무시하고 넘어가게 만들 수도 있다 싶은데, 생각해보면 이건 상당한 반전입니다. '그녀' 로 하여금 '그'가 상처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의 노래 가사들에 대한 사연은 기실 '그녀'의 생각과는 달랐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관객들까지 그렇게 믿게 했던 '그'에게 상처를 준 '과거속 여자'가 사실은 '현재의 여자' 였다는 것. '그'가 '현재의 여자'를 따라 런던에 가지 않았던 건 아마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겨진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일시적 선택이었던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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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Once 의 의미

그런데 왜 '그'는 상처받은 척, 실연당한 척 '그녀'가 착각하도록 그런 척했던 걸까요? 그부분은 영화의 제목이 약간은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제목 'Once' 는 원래의 영화 포스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래 질문에 대한 대답인 겁니다.

How often do you find the right person?
"이사람이다" 싶은 순간은 단 한 번이란 거죠. '그'는 '그녀'에게 아이가 있고 남편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음에도 '그녀'가 인생에서 '단 한 번' 찾아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에 대한 진실을 말할 필요도 없고 또 그 진실은 별로 큰 의미도 없어지겠죠. (목소리만 출연하는 그여자에겐 미안한 일이겠지만.) 하지만 안타까우면서도 담백하게도 '그녀'는 원래 가정에 한 번 더 기회를 갖기를 선택하고 '그'는 원래의 예정됐던 길을 가게 됩니다. 그 결말의 순간 '그'와 '그녀'가 오토바이를 타고 드라이브 갔을 때의 대화가 떠오르더군요. '그'는 '그녀'에게 체코말로 "그를 사랑하나요?" 라고 어떻게 말하는지를 물으며 그녀에게 남편을 사랑하냐고 묻습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하죠.
Miluju tě.
자막으로 번역되진 않았지만 '그녀'의 사랑고백임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7. 9. 10. 14:07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다가 마드리드에서 밤에 무얼할까를 찾던 중 론리플래닛에서 "Calle 54" 를 알게 됐습니다. Ferdinando Trueba 감독이 자신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목으로 따서 마드리드에 만든 라틴재즈클럽으로 소개가 되었더군요. 그래서 일단 영화부터 궁금해졌습니다. 말하자면 빔 벤더스 감독의 "Buena Vista Social Club" 류의 다큐영화겠다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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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DVD 발매가 됐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서 지금은 거진 다 품절이었죠. 아직 파는 곳이 좀 있어서 구하는데 아주 큰 어려움은 없었네요. 그리고 평소 라틴재즈를 그닥 좋아하했던 것도 아니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봤는데, 한 번에 끝까지 다 보게 되더군요. 십수명의 뮤지션들이 바뀌면서 나오기 때문에 보다말다를 반복할줄 알았는데, 두번째로 봤을 때 역시 끝까지 한번에 보게 되는 묘한 흡인력이 있었죠.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다면...

막상 "가장 인상적" 이라고 꼽자니 절반 이상을 나열해야할 것 같아지는데, 줄이고 또 줄여서 Michel Camilo, Chano Dominguez, Jerry Gonzalez 를 뽑겠고, 이미 어느정도 익숙해져있는 Chucho Valdes 를 다시 보게 된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Chucho Valdes 는 두 곡을 연주하는데, 한 곡은 그의 아버지인 Bebo Valdes (저는 "츄초 아빠 발데스" 라고 부르고 싶네요.) 와의 듀엣 연주고 나머지 하나는 독주곡 "Caridad amaro" 입니다. 영어로 'charity love' 쯤 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가페' 를 뜻하는 말일까 싶기도 합니다. 언제 이렇게 가슴 설레는 연주를 들어봤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Calle" 는 스페인어로 "거리" 라는 뜻입니다. 읽을 땐 "깔레" 가 아닌 "까예" 로 읽고요. 그래서 뉴욕에서 음악으로 유명한 "52th street"가 있드시 스페인 어딘가에도 52번가 같은 게 있나보다 했었죠. 그런데 그렇지 않고 녹음과 촬영을 한 뉴욕의 소니뮤직스튜디오가 있는 52번가를 뜻하는 거였습니다. 영화가 라틴재즈를 주제로 하다보니 스페인말로 "Calle 54" 라고 한거죠. 어쩐지 영화보는 내내 뉴욕이 많이 나온다 싶었습니다.

제 "Calle 54" DVD 는 어제 재즈비평가 김현준 선생님 댁에 놓고 왔습니다. 꼭 보셨으면 해서 함께 보려고 들고갔는데, 한참 Chet Baker 자서전의 번역을 마치고 집에서 편집작업에 열중하고 계셨기 때문에 놓고올 수밖에 없었네요. 그 가슴 설레는 느낌을 그분도 받으셨으면 좋겠네요.

여하튼 이 DVD 덕분에 이번에 마드리드에 가면 뜨루에바 감독이 만들었다는 Calle 54 클럽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더 커지게 됐습니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7. 8. 18. 01:51

노틀담 사원이 아닌 영화박물관에 숨어든 에스메랄다 이야기. 이탈리아 토리노의 꽈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다시 찾기 위해 박물관 밖으로 나온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하는 토리노의 꼽추가 에스메랄다를 꼬시기 위해 쓴 수법은 영화 Love Actually 에서 빌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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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애정이 듬뿍담긴 느낌이 보기 좋았다.

배경이 된 이탈리아 토리노, 그렇게 멋찐 곳이라니 꼭 가보고 싶다.

장면장면 너무 이뻐서 영화보면서 스틸컷으로 저장해놓고 싶더라.

초반과 종반이 연결되는 편집, 아무 효과도 쓸모도 없어보이는데 왜 그랬을까.

다른 우연들은 재밌다, 그럴 수 있겠다 넘어가는데 복권 당첨이란 우연은 필요도 없고 재미도 없다.

주연여배우 프란체스카 이나우디의 가슴이 정말 이쁘더라.

한 번 더 봤음 좋겠다. 가슴 말고 영화.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7. 6. 1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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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노트북 들고서 광화문 스폰지하우스를 찾아갔습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포스터가 걸려있길래 표를 사고서 바로 옆의 카페 themselves 에 들어가서 노트북 켜고 무심하게도 예매한 영화 정보는 찾아볼 생각도 안하고 9월 말에 출발할 여행 계획이나 짜고 있었죠.

극장에 들어섰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일단 빈자리가 거의 없었고 게다가 관객들이 거의 다 여자였기 때문이었죠. 영화가 시작되기 전, 소녀들의 수다에 시달려가며 이게 무슨 일일까 싶어 두리번거려봤지만 정말 남자 한 마리 찾기가 어렵더군요. 알만한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로 물어보니 아라시 라는 일본 아이돌이 주연을 맡았기 때문일꺼란 답장이 와서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5분, 왠 애들이 어른 흉내 내면서 연기하는 게 어색해보였지만 영화는 중반 이후로 들어서면서 그냥그냥 볼만했습니다. 같은 감독의 다른 영화에 비하자면 좀 그랬지만 모든 작품이 다 환상적일 수는 없는 거죠. 하지만 주연배우들이 극중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의 꿈을 꾸고 사랑에 실패하고 다시 꿈 앞에 절망하는 모습인데, 그런 모습들을 소화하기에 나이가 문제는 아니겠지만 누가 봐도 꿈 앞에서 절망하기엔 너무 어려보이기 때문에 진실성이 떨어진다고 할까요?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 올라갈 때, 심취한 영화에 대한 반응으로 보기엔 오버스러울만큼 거의 예외 없이 자리를 뜨지 않은 소녀들을 보고있자니 아다린지 아라신지에 대한 충성심이 느껴지면서 왠지모를 오싹함이 전혀지더군요. 아마 뭔가에 홀려있는 종겨집단 집회 한가운데 나혼자 이단이어서 발각되면 밟힐 것 같은 그런 공포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이 켜지자마자 벌떡 일어나고 문밖을 나서려고 하는데, 불이 켜져도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관객들을 보니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지더군요. 불이 켜져도 정신 못차리고 있다면 혹시 영화보면서 팔걸이에 뽄드라도 꽂아놓았던 걸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죠. 문을 나서려는 순간 이누도 잇신 감독이 극장 안으로 들어섰거든요. 모르고 있던 감독과의 대화시간이 예정되어있었더군요. 그 극장 안에서 나만 모르고 있던 게 아라시 뿐만이 아니었던 거지요. 극 중 아다리의 어떤 멤버 하나가 여자출연자와 합궁한 걸로 해석해야하냐 아니냐 따위를 물어보는 소녀들 사이에 쬐그맣게 구멍나있는 제가 앉았던 자리에 다시 엉덩이를 꼽아넣었습니다. 이누도 잇신 감독, 참 재미있는 사람이더군요. 함께 무대에 선 스폰지하우스 대표도... 감독과의 대화 시간 전에 이누도 잇신 감독은 영화 "괴물"에서 처음 괴물이 출현했던 한강시민공원을 찾아가 영화에서처럼 돗자리 펴고 맥주랑 오징어 씹었다고 합니다.

어려서 봤던 5부작 동명타이틀의 드라마에 대한 감동 때문에 영화화 했다는 감독이 "젊음에 대해서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지만 인생에 대해서는 이기고 지는 게 없다" 라고 말하면서 원작 만화와 드라마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을 때 영화와 함께 큰 공감대를 이루게 되더군요.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7. 5. 30. 14:00
눈물나게 슬픈 건 아닌데 참 답답하게 슬프더군요. 영화 보고나니 흥행하려고 만든 영화는 분명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여우주연상 소식 때문에 어느정도 흥행도 될 것 같네요. 작품상 받고서 '어려운영화' 로 찍히는 거랑 여우주연상 받아서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고 생각하는 거랑은 효과가 다르니까요.

요소요소에서 예측을 깨는, 관객이 바라는 쪽으로는 일부러라도 비껴가려는 것 같은 작자와의 숨바꼭질이 무척 인상적이더군요. 그래서 원작이 원래 그런건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작가가 그러한 대중과의 숨바꼭질에 성공하면 책은 많이 읽히지만 보여주는 매체에서는 반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전도연 효과 때문에 어느정도 흥행하다가 영화 내용에 대한 입소문 퍼지면서 수그러들지도 모르겠다는 예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그리고 전도연 못잖게 송강호의 연기도 참 좋았습니다. 별로 드러나지 않는, 드러나지 말아야하는 역할을 그렇게 해내는 것이... 그런데 전도연이 상타버리는바람에 사람들이 송강호를 잘 안봐줄까봐 걱정이에요. 주연급조연이라지만 스토리상 중요한 역할을 하지도 않고, 어찌보면 지워버려도 되는 역할인데도 송강호의 연기가 없었더라면 2시간 반 가까이 앉아있기가 어려웠을꺼에요. 사실 원작이 궁금해지는 건 송강호 때문이기도 해요. 소설에서라면 없어도 될 게 아니라 없어야 할 등장인물인 것 같아서, 아마 소설은 송강호가 연기한 김종찬이라는 인물의 2인칭 관점에서 서술됐지않았을까 하는 짐작이 가거든요. 만약 정말 그렇다면 전 분명 한 번 더 감동받을꺼에요. 그런 김종찬의 소설 속 역할을 영화에서 그런 식으로 각색한 사람도 대단하고, 또 시점을 잃어버린 관찰자의 역할을 그렇게 소화해낸 송강호한테도 다시 감동받을테고... 뭐 확인해보면 아닐 수도 있지만.

영화 안에 까메오가 있다네요. 어떤 장면인지는 알지만 제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7. 3. 2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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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상당히 펜들이 많아 의외였습니다. 싸인 받기 위해 가져갔던 CD 들의 크레딧에 있는 첼리스트가 아니어서 약간 뻘쭘했죠. 그에겐 하는 수없이 CD가 아닌 팜플랫을 내밀어야 했습니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6. 10. 31. 18:12
얼마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과 '메종 드 히미코'(2005) 로 국내에 잘 알려진 이누도 잇신의 '금발의 초원' 은 2000년 개봉작으로, 거꾸로 옛날 작품이 --- 비록 상영관 하나 뿐이지만 --- 개봉관에 걸리는 걸 보면 국내에 이미 많은 고정 팬들이 생겨났음을 시사하는 것 같다. 동시에 앞으로도 이전 작품을 포함한 이누도 잇신의 작품들이 소개될 꺼라는 기대도 할 수 있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재밌다." 를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전체 줄거리 뿐만 아니라 장면들마다, 표현들마다, 소재들마다 정말 마음에 쏙드는 것들이 100분가량 주루룩 펼쳐졌다. 영화를 줄거리로만 이해하는 게 아니라 장면들 하나하나를 죄다 외워버리고 싶을만큼, 영화가 흘러가는 게 아까울만큼 재미있게 봤다.

일본판 문근영 같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귀여우면서도 그 속에 엉뚱한 섹시함이 묻어나는 이미지의 이케와키 치즈루, 그녀가 벗어놓은 (아마 '벗겨진' 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펜티를 입는 장면은 영화를 한순간에 위기로 몰아넣는 신호탄 같았다. 게다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에서의 이미지와 너무나 틀려 더욱 놀라웠던 그녀, 남자친구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에서 깡패 친구였고, 영화 '유레루'에선 못생긴 주유소 직원이었던 아라이 히로후미라는 사실이 못마땅하게 느껴질만큼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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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닛포리(이세야 유스케)가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에서 알았는데, 이영화 어렸을 때 봤던 'The Boy Who Could Fly' 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그영화에서 자폐아가 결말부에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 문득 떠올랐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인공이 죽고 사는 거?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6. 8. 25. 18:51

영화 보는 내내 생각했는데, 김기덕 감독 영화치곤 피를 덜 쓴 것 같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성형에 대한 시사적인 주제로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영화에 성형수술을 한 성현아가, 게다가 이름까지 '성형'같은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는 것이 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감독의 의도가 시사에 이었다면 그 의도에 반하는(최소한 과거에라도) 배우를 연출한다는 건 아이러니를 넘어서 코메디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성형은 美에 대한 욕구인적이 없었다. 또 남자주인공의 변함없는 사랑을 보고나면 여자주인공의 성형 동기는 그것이 오해에서 시작됐을지언정 진정 사랑받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그건 단지 변신욕구가 아닐까? 나이고 싶지 않은 나. 그러나 얼굴성형으로도 바뀌지 않는 나를 확인하고. 나이고 싶어하는 나. 하지만 또다시 가면을 쓰고 싶어하는 변신욕구.

영화의 종말에 성형외과 의사와 간호사가 가면을 쓰면서 노는 장면은 이런 변신욕구에 대한 직설이 아니었을까?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6. 8. 19. 13:44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오는 중에도 불이 켜지지 않는,
사람들이 일어서지 않고 엔딩곡을 끝까지 듣는,
그런 극장 참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괴물같은 영화가 온 극장과 관객까지 잡아먹어버린 요즘 같은 때에,
김기덕감독이 TV에까지 나와 한국 관객들의 열등의식을 꼬집으며 그들을 완벽히 등져버리는 때에,
조용한 일본영화 한 편이 숨어서 목말라하는 관객들의 목을 축여주더군.

Posted by Lyle